너를 정의한다면,
흔들림
男의 시선
01
연애하는 걸 별로 안좋아했었다.
항상 누군가를 만날 때 마다 얘랑은 언제 헤어지나, 그 생각부터 하고 앉아있었으니까.
하지만 조금씩 변해갔다. 걔를 만나면서부터.
02
요즘따라 부쩍 삶이 피곤하다.
업무 도중 그대로 멈춰 자는 건 수준급을 넘어서 점점 장인급으로 치닫고 있었다.
위에서 치이고, 아래서 치이고, 양 옆으로 치이고.
유일하게 기댈 곳은 너 하나라는 걸 알면서도,
발걸음은 이상하게 너에게로 향하질 않는다.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내일은, 내일은 만나러 갈게.
어제도, 그저께도 했던 그 거짓말을 난 또 다시 반복했다.
03
널 만났다.
뭔가 이상했다. 기댈 곳을 찾아 널 만났건만.
이상하게 허전했다.
너를 보아도 아무런 느낌도 와닿지 않았다.
피곤해서, 많이 피곤해서 감정도 무뎌진거라고.
매번 반복했던 그 합리화를 난 또 시키고 있었다.
04
[UK. 다음주 출국이다.]
내 한 쪽의 내면은 더 이상 이 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으리라.
내 또 다른 한 쪽의 내면은 혼자 여기 남을 너의 생각에 비통했으리라.
그 생각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한계령의 안개마냥 뿌얘지다 못해, 섀하얘지고 말았다.
05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던 그 날 밤.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결국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나를 위한 결정이였나.
그런 내게 상처 받을 너를 위한 결정이였나.
당일 새벽 날.
난 너에게 이별을 선고했다.
06
"좋겠네, 잘 다녀와라."
동기들의 부러움을 한 데 받고 2년 뒤에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인사를 나눴다.
2년 뒤에 보자.
"그래, ... 2년 뒤에 보자."
07
"그나저나 한빈, 자네는 여자친구 없어?"
"그러게. 한국에 있을 것 같은데."
"... 없어요."
처음 만난 영국인 동료들의 질문에 그저 애써 웃어보였다.
너를 두고 나를 택한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기도 했고,
출국 전부터 아른거리던 네 얼굴이 더 선명히 보이는 것이 괴롭기도 했다.
"... 저 먼저 일어날게요."
술잔을 놓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더 마시다가는 정말 너한테 전화해버릴지도 모를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제정신일 때에, 일어나야만 했다.
01
오늘 연애전선 이상 무
오늘 연애전선 이상 무
오늘 연애전선 이상 무
...
한 달 전부터 써내려간 다이어리엔 작은 글씨로 새겨진 글씨들이 빼곡하다.
오늘 살짝 다투긴 했지만 괜찮았다고. 오늘 너 때문에 조금 울긴 했지만 다 괜찮았다며 나를 달래왔었다.
그리고 다이어리엔, 여기 쓰인 것 처럼 똑같이 끄적였다.
'오늘 연애전선 이상 무'
02
조금씩 변해갔다.
늘 연애의 루트가 그렇듯, 무성히 찬란했던 푸른 잎들은 가을이 되면 떨어지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꼬인걸까. 매일 밤을 이 생각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래도 다이어리엔 어김없이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오늘 연애전선 이상 무'
03
토요일 아침.
푹 자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뻐근했다.
창문 밖의 하늘은 왜이리 흐린지 모르겠다.
문자가 와있었다. 내가 잔 사이에, 너에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04
전화가 왔었다. 친구에게.
'어떻게 지내.'
그냥 저냥 지내지. 잘 지내.
평소라면 그리 답할 것을,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나도 괜찮지 않다고, 나 힘들다고.
그렇게 말하고만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달려가 그 품에 안겨 울고만 싶다고.
그 고즈넉한 품에 다시 한번만이라도 안겨보고 싶다고.
05
분리수거 날이였다.
가득 쌓인 폐휴지 함엔 한 달 동안 써내려가던 그 다이어리가 있다.
혹시 다음에도 다이어리로 태어난다면, 꼭 '이상 무' 로 끝맺음이 맺어지기를.
말도 못하는 그 사물에게 난 나보다 더한 행복을 빌고 있었다.
나도 못해 본, 나도 끝맺지 못했던 그 행복을.
고작 한 달 만났던 그 다이어리에게 바라고 있었다.
06
일주일 정도 지났나. 너에게 연락이 왔다.
술이 가득 취한 채로.
넌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아, ... ○○아.'
그만 부르라고, 그 목소리로 내 이름 불려지는 거 듣기 싫다고,
내가 먼저 끊어버릴 수도 있었을텐데.
끊질 못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목소리에 그렇게 난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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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52입니다 새작 내기 전에 단편 하나 내고 싶었는데 엄두가 안나서 …. (허허) 그대신 요렇게 짧은 글을 갖고 왔어요! 男 시선, 女 시선 으로 나눠서 써봤는데요... ! 가볍게 (너무 가벼울까요) 그저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주 시작, 즐겁게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