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62.
어떻게 하나도 변한 게 없냐. 지민은 툴툴거렸다. 태태가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지민의 어깨를 움켜 서고 있었다. 그러고 지민은 희완과 정국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정국이 뭐냐는 눈으로 수저를 내려놨다.
“뭘 봐.”
“…….”
정국의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말거나 지민은 희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희완이는 태태를 제 어깨로 옮겼다. 태태가 보다 능숙하게 희완이의 어깨를 그러쥐었다. 희완이는 태태를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지민이 생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가 누군가에게 이토록이나 깊게 갈망하며 빌었던 적이 있던가.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을 또 다시 머금었고, 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리고 지민은 전보다 덜 느껴지는 희완이의 느낌에 인상을 썼다. 무언가 가로 막은 듯 흐리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보이지가 않았다. 분명 안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그것을 비운 듯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 하는 것처럼.
“너네 표정 진짜 웃기다. 찍어서 보여주고 싶어.”
희완이는 인상 쓴 지민을, 인상 쓴 정국이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지민은 희완이의 웃음에 곧바로 표정을 풀었지만 정국은 아니었다. 둘 사이에 낀 지민에 자리가 비좁아진 것도, 희완과 떨어지게 된 것도 불만이었다. 정국은 대체 이 불청객은 누구냐는 듯이 희완을 쳐다봤다.
“아, 얘는 박지민. 박지민, 너는 얘 알지?”
“날 알아?”
“알지.”
지민은 차갑게 뜬 눈을 곧바로 곱게 접으며 말을 이었다.
“축제 때 봤잖아.”
“아.”
정국은 답을 얻었단 듯 감탄사를 질렀지만 여전히 표정을 풀지 못했다. 분명 그때는 후플푸프 교복이었는데 지금은 래번클로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 아는 사이야?”
“아니까 여기 앉아 있지.”
“너한테 안 물어봤는데.”
“아는 사이야. 그리고 박지민 넌 여기 왜 왔어.”
“……네가 안 보이니까 왔지.”
“평소에는 잘만 사라지더니 이젠 내가 안 보이니까 찾아왔다?”
“안 보인다는 게 그 뜻이 아니라……”
“불편해 하는 것 같은데.”
정국의 목소리에 지민이 고개를 돌렸다.
“그만 가보지. 후플푸프로.”
얘 무슨 소리 하니. 그제야 지민은 정국과의 첫 만남 때 후플푸프 교복을 입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보니 희완이의 눈초리가 꽤나 무시무시했다.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썩 달갑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정국이랬나?”
그런데 저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지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네 안 사귄다며.”
“뭐?”
“근데 애들 사이에는 사귀는 거 아니냐고 말 나오던데.”
“야, 박지민.”
“김희완이 그러지는 않았을 거고. 너. 행동 똑바로 해. 괜한 말 나오게 해서 애 곤란하게 만들지 마.”
“너 진짜 미쳤니?”
희완이 지민의 등짝을 때렸다. 지민은 자리에서 나와 희완을 쳐다봤다. 황당하다는 표정이 전 날 밤과는 대비돼서 픽 웃었다. 내내 그랬으면 좋으련만. 지민은 희완이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쓸어주며 말했다.
“안 미치면 이 긴 생을 어떻게 살겠어?”
지민이 연회장을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희완이는 눈으로 좇았다. 안 그래도 심란한데 괜한 말을 해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난리야. 지민이 끼어 있던 빈자리가 어색해진 공기만큼이나 멀어보였다. 그 공백을 먼저 채운 건 정국이었다.
“그런 말 나오는 줄 몰랐어.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그런 말 싸지르고 다니는 애들이 이상한 거지. 남녀가 붙어 다니면 다 그런 줄 알아.”
“싫으면 그러지 말라고 애들한테 말할게.”
“아니 뭐, 굳이 정정하러 다니는 건 또……. 애들도 트리위저드 게임 때문에 거의 까먹었을 건데.”
그러고 희완이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둘 사이에 다시 떠올랐다.
“오늘 저녁에 결과 나오겠네.”
“그러게.”
“이름 넣었어?”
“넣었지.”
“나도.”
“…….”
“긴장하지 마.”
“결국 우리 뜻대로 될 거니까?”
정국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은 희완이 이렇게 자기 말을 기억해주고 적당한 상황에서 대답해주는 게 좋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희완이 동아줄이 되고 그 이상이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정국은 그게 가장 좋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건 나였고 너는 정말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어. 정국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희완이 그 ‘우리’에 회의감을 갖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연회장의 천장에 하늘이 생겼다. 오로라와 은하수가 한 데 겹쳐 마치 별의 폭포를 보는 듯했다. 나는 옆에서 잡아오는 손에 천장에서 시선을 돌렸다. 전정국이 말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전정국은 본인이 긴장하기보다는 긴장할 나를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 빠진 웃음을 입에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제야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단상을 쳐다봤다. 이어 작은 종소리와 함께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여러분.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멀리서 온 분들의 입맛에 맞았을지 모르겠군요. 아시다시피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트리위저드 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에,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만찬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그렇다고 내일부터는 불편하다는 뜻이 아니니 걱정 마세요. 내일부터는 아주 뜨겁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핀도르, 래번클로, 슬리데린, 후플푸프, 그리고 보바통과 덤스트랭의 선별 인원 모두가 연회장에 앉아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뜨겁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즐겁게.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관람하는 사람들도, 주최하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살아있는 뜨거움을 느껴야 할 게임임을 내포하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나는 그 뜨거움에 타 질식할 것 같은데.
“자,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일정, 트리위저드 게임 참가자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평소보다 배는 큰 박수소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불의 잔 안에 들어 있을 이름들을 떠올렸다. 모두가 협의 후 넣은 것이었지만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나온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을 뜨자 선생님이 손짓했고, 불의 잔이 푸른 불꽃과 함께 첫 번째 이름을 뱉어냈다.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해진 장내에는 목소리 대신 숨 막히는 긴장감이 돌았다. 선생님은 아직 연기가 나는 종이를 잡아채 몇 번 흔들더니 첫 번째 이름을 말했다.
“덤스트랭 2학년, 랙스.”
환호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덤스트랭 쪽에서 누군가 주변 사람들의 격한 축하를 받으며 자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의 밝은 표정에서 본래 불의 잔의 선택을 받으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단상 앞에 서자 또 다른 이름이 허공을 날았다.
“보바통 3학년, 김란다.”
이번에는 보바통이었다. 하늘색 교복들 사이에서 푸른 물결이 일었다. 그녀 역시 밝은 표정으로 단상 앞에 섰다.
“보바통 2학년, 정이홉.”
이어 보바통의 모든 참가자가 뽑혔다.
“덤스트랭 3학년, 디티.”
곧바로 덤스트랭의 모든 참가자들도 뽑히고 남은 건 호그와트였다. 나는 이질감에 또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언젠가 이름이 불렸던 날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작게 인상을 쓰자 전정국이 손에 힘을 줬다. 아직 놓지 않은 손이 그제야 느껴졌다. 나는 그 손을 맞잡으며 귀를 기울였다. 작은 화염소리가 들렸다. 깃털처럼 천천히, 좌우를 횡단하며 내려오는 종이가 머릿속에 그러졌다.
“호그와트 1학년, 김희완.”
또 다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일어섰다. 뒤에서 꽂히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단상 앞에 서자 불의 잔이 더 자세히 보였다. 겉에 세긴 문양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앞에 놓인 수많은 눈동자들을 잊으려 노력했다.
“이제 마지막 참가자군요.”
나는 회의를 거치며 이름을 넣기로 결심한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뽑히지 않기를 바랐다. 뽑혔을 땐 플랜을 실행하기 쉬워지겠지만, 온전히 본인 의지로 이름을 넣은 사람이어야 내 마음이 조금 더 안정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이건 오롯이 나 혼자만 감당하고 싶었다. 나는 줄줄이 이어지는 이기심들에 입꼬리를 올렸다. 자조적인 숨소리가 입가에 걸리는 듯했다. 그리고 불의 잔에서 마지막 불꽃이 피어올랐다. 방금 눈을 감으며 상상했던 그대로 허공을 횡단하는 모습을 연회장에 있는 모두가 눈으로 따랐다. 마침내 선생님의 손에 다다른 종이에는.
“호그와트 1학년, 전정국.”
내 이기심에 벌을 내리기라도 하는 듯,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단상으로 오는 동안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지만 나는 전정국의 걸음 하나하나가 들리는 듯했다. 어디까지 조작한 거냐고 마법부에 소리치고 싶을 만큼, 까맣게 타들어간 종이 끝자락이 내 마음 같았다. 옆에 선 전정국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참가자들이 뽑혔습니다. 덤스트랭 랙스, 디티. 보바통 김란다, 정이홉. 호그와트 김희완, 전정국. 이 학생들은 이틀 뒤에 있을 첫 번째 게임에 참가하게 됩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겨내고 뜨거움을 쟁취해낼지 기대하면서, 오늘 연회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아직도 넘실거리는 오로라가 장관이었다. 은하수와 오로라는 별의 폭포, 이곳 가득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는 그 소리. 나는 우레 같은 중력에서, 그것을 올곧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회의실에 모였다. 우연인지 조작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전정국이 한꺼번에 뽑혔기 때문이었다. 전정국은 연회장에서처럼 손을 잡아오지는 않았지만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어 눈을 맞춰왔다. 뽑힌 건 너랑 난데 왜 나를 걱정해. 부드럽게 말했지만 전정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꼭 제 눈 속에서 답을 찾으란 듯이 시선을 돌리지 않을 뿐이었다.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게임이 시작되면 둘은 같이 있을 수 없고, 조금이라도 낌새를 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까.”
회장이 말했다. 민윤기 선배는 맞은편에 앉아 펜을 굴렸다. 일련적인 행동들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느껴졌다.
“플랜B로 간다.”
교장선생님이 없을 때마다 암묵적 리더였던 선배가 입을 열었다.
“둘은 끝까지 살아남는 걸 목표로 해. 전정국은 최대한 김희완을 돕는 걸 전제로 하고. 어떤 게임이 나올지 모르지만, 둘 중 누가 탈락하든 붙어 있게 될 테니까 걱정 말고.”
걱정 말라는 말을 이렇게 무심한 목소리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저 선배뿐일 거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안정감이 들었다. 걱정 말아야 한다는 짐을 덜어주는 느낌. 선배는 항상 그런 식으로 말했다.
“저는 어떤 게임이 나올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것은 항상 같은 방식일 것이었다.
“마법부는 언제나 잔인했으니까.”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을까 봐 서둘러 회의실을 나왔다. 점호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그때까지 누가 내 방에 찾아 올 일은 없었다.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간단한 게임 설명을 했을 때, 마법부 장관이 나를 보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많은 것이 함축된 눈빛. 김태형과 로운이 있던 때와는 다르다. 이번 게임은 온전히 나로 인해 조작된 게임이므로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또한 마법부는 표면적으로 일개 학생의 말에 자극받아 일을 벌인 것이므로 사회적 타격과 도덕적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장관은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 또한 온전히 갖고 있어야 함을 확인시켰다.
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불구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든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뭘까.
“가지마.”
“…….”
“위험해. 나가지마.”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제발.”
나는 전보다 옅어진 뷔의 머리칼로 손을 뻗었다.
“갈색이 더 예쁜데.”
그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빛을 받아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많은 영혼들을 머금고서는, 탁한 건 제 영혼이 아니라는 듯이.
“어떻게 네가 다시 뽑힐 수가 있어.”
“이건 말도 안 돼요. 이름을 넣은 적이 없다잖아요.”
“다시 뽑히다뇨. 나는 이번이 처음인데.”
“이제 됐어. 나랑 같이 가자. 다시 머글세계로 가자. 거긴 안전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여기 있을 거예요.”
“로운.”
“내 이름은 김희완이니까.”
“…….”
“로운이 아니라, 김희완이니까.”
마법부는 언제나 잔인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용해야 했다.
“‘증명’해낼게.”
그 언젠가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아니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죠? 이번 화에 트리위저드게임 하는 거 넣을랬는데 망했군요. 그래도 이름은 불렀습니다 오~
"안 미치면 이 긴 생을 어떻게 살겠어?" 하는 지민이의 대사는.. 신곡이 나오기 전에 써뒀던 것으로.. on에 비슷한 뉘앙스의 가사가 나와서 혼자 우와 했다는 비하인드가 있네요^^ 대사 자체는 크게 비슷하지 않은데 뉘앙스가 비슷해요 그냥 뉘앙스가...
요즘 코로나 때문에 화나는 일이 너무 많은데^^.. 아니 저.. 올콘 가게 돼서.. 혹시나 할 수 있으면 독자님들께 나눔 하는 건 어떨까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하..
그래도.. 다들 잘 이겨내시고(저 포함) 으쌰으쌰 하길 바라요.. 함께.. 시름을 덜어나가요...☆ 파이팅,, (ง°̀ロ°́)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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