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는 칼 모습에 살짝 웃었다. 금방이라도 뭘 웃느냐고, 주황머리를 휘날리며 화낼 것 같은 박지민은 지금 내 손아귀에 있다. 나는 칼날을 고쳐 들었다. 직전에 주황색 수정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지금 무슨 표정인가. 내게 영혼을 준 자의 영혼을 파괴하기 직전의 표정은 어떤 것인가. 보이지 않는 내 얼굴에 조소가 띠길 바라며 칼을 꽂아 넣었다.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지만 소리는 빛에 먹혔다. 나는 눈을 감으면서도 내 얼굴이 슬픈 얼굴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었다.
바야흐로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58.
나는 일기장을 펄럭이며 넘겼다. 일기장이 내 손에 있음에도 별 말 않았던 것은 그 누구보다 나의 손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을 보낸 건 민윤기 선배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그의 호크룩스가 있는 걸 안 이상,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의 열쇠를 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 이상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였다.
“뭘 한다고?”
내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선배의 표정이 굳었지만 나는 아랑곳 않았다. 옆에서 영문을 모르고 온 전정국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도 한다고요. 호크룩스 파괴.”
“김희완.”
“네.”
“……무슨 생각이야?”
“우리 모두 공통점이 뭔지 알아요?”
볼드모트 뷔에게서 살아남았다는 거예요. 금지된 도서관도 아닌데 나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나의 위치를 안다고 위험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만 모른다면.
“그게 무슨 소리야.”
“얘는 아무것도 모르나 본데.”
전정국이 내 팔을 잡아왔다. 먼저 설명하지 않고 데려온 이유는, 말하자면 복잡했고 생각하자면 엉켜 버렸기 때문에. 그냥, 얘라도 없으면 이런 말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기에.
“말해달라며.”
“…….”
“이게 내가 숨기고 있던 거야.”
기억이 끊어지는 이유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전정국은 내 팔을 잡은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저도 할게요.”
민윤기 선배는 굳건한 우리 둘의 표정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따라와.”
교장실로 향하는 동안 전정국의 눈치를 살폈다. 그를 언급하는 것조차 힘들어했었으니까. 갑자기 괜한 짓을 한 건 아닌가 후회가 밀려왔지만 전정국은 생각보다 다부지게 걸었다.
그래, 사실은 전정국을 앞에 두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전생에서 그와 어떤 사이였고,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게 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는 상상만 해도 테이프가 망가지듯 엉키고 촛불이 꺼지듯 심지가 꺾였다. 조금 비겁한 방법이었다. 결국 전정국 또한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이렇게라도.
“셋이 동시에 올 줄은 몰랐군요.”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역이었다. 나는 그를 온전히 미워할 수 없으니까.
“체크메이트. 내가 이겼어요.”
“아, 이번엔 졌군.”
“이번에‘도’겠죠, 교장선생님.”
파리처럼 꼬이는 이 기억들이 나도, 내 전생도 아닌 그의 기억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교장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한참동안 아무 말을 않으셨다. 민윤기는 작게 한숨을 쉬었고, 나는 또 찻잔만 멀거니 보고 있었다. 전정국은, 글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안 된다고 해도 끝까지 나를 설득할 거죠?”
“네.”
굳건한 내 말에 선생님은 웃으며 선배를 쳐다봤다.
“윤기 군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내가 반대했지만, 동기와 본인의지가 확실해서 더 말리지 못했죠. 하지만 윤기 군이 하는 일은 호크룩스를 찾는 것뿐입니다. 파괴까지는 하지 않아요. 희완 양이 저번에 봤듯이 꽤나 위험한 일이거든요. 그때는 나름대로의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언질하지 않았던 건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군요.”
“마법부에서도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죠.”
“지금까지 몇 개나 파괴됐나요?”
“지금까지 파괴된 건 총 세 개입니다. 희완 학생 앞에서 파괴했던 목걸이와 그 전에 파괴했던 명찰, 그리고 얼마 전에 파괴한 망토죠.”
나는 일기장을 내밀었다.
“제가 호크룩스를 찾아왔다고 한다면. 명분이 될까요.”
선생님은 굳은 얼굴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걸 어디서 얻었죠? 아니 그보다, 이게 호크룩스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요?”
일기장을 내게 전해줬던 선배도 몰랐던 사실인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가 저를 찾아왔거든요.”
나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그 애한테 왜 이때까지 숨기고 있었던 거야?”
“숨긴 게 아냐.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그 애가 이 사실을 알아도 되는 거 맞아?”
“……모르겠어.”
“민윤기.”
“응.”
“너 이 일, 원해서 하는 거 맞지.”
시완이 윤기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 애가 네 모든 걸 쥐고 있다며. 난 그 말,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
“…….”
“그 애가 너한테 뭔데?”
“그러게.”
윤기는 펜을 돌리며 말했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는 책 냄새가 났다. 그간 호크룩스를 찾아다니면서 알게 된 지독한 냄새가 아닌, 익숙하고 낡은 정겨운 냄새. 맡고 싶지 않아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맡을 수밖에 없는 냄새들. 숨 쉬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공기의 흐름. 어쩔 수 없이 머릿속을 울리는 그런 것들. 윤기는 펜 돌리는 것을 멈췄다. 희완이의 뜻이 아니었음에도 희완이 제 모든 것을 쥐고 있노라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그 뒤를 봐왔으니까. 민윤기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서, 숨 쉬는 사람이라서 했던 모든 행동들이 김희완이라는 것에 얽혀 있었으니까. 윤기는 희완이 제 앞에 있을 때 느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토록 기도하고 모시던 신을 만난 종교인의 기분.
“난 네가 너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네 친구도 좀 생각해라 나쁜 자식아. 걱정했잖아. 그동안 네가 뭘 하고 다니는지 걱정했다고. 바스라지지만 말라고 생각하는 기분이 얼마나 무너지는 것 같았는지 알고 있냐.”
“미안하다.”
“미안하면 좀 더 생각해 봐. 내가 볼 때 이 일 네가 계속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넌 충분히 최선을 다 했잖아.”
“종교인한테 최선이라는 게 있을까.”
“뭐?”
“걔가 교장실에서 뭐라 그랬는지 아냐.”
시완이 책을 덮었다. 더 얘기해 보라는 뜻이었다.
“트리위저드 게임을 한다구요. 그럼, 그때 그 사람을 부르는 건요?”
“뭐라고? 자칫하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길 거야.”
“아뇨, 제가 있는 한 그러지 않아요. 내가 알고 있다는 걸 그 사람은 몰라요. 그러니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겠죠.”
일기장을 받은 뒤로 전생의 기억을 꿈으로 꾼다면서 트리위저드 게임에 그를 부르자고 했다. 무슨 속셈인지 함부로 물어볼 수 없었다. 트리위저드 게임에서 아쿠룹스에게 죽은 전생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저런 말을 하는 이유를 추측할 수도 없었다. 윤기는 희완이 필히 그때의 기억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트리위저드 게임에 그가 나타날 거야.”
“뭐? 내가 아는 그 사람?”
“그래.”
“김희완이 그런 거야?”
“안 된다고 해도, 그래서 부르지 않아도 그는 나타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곧 교장선생님께서 널 부르실 거야. 이젠 정말 ‘판’을 짜야 하거든.”
시완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윤기는 그 모습에 웃었다.
“웃음이 나와?”
“나오네. 왜 나오지.”
“가만 보면 참 속을 모르겠다, 너도.”
“바스라지지 않을게.”
“…….”
시완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절대.”
왜 이미 한 번 바스라진 것처럼 말하느냐고, 시완은 묻지 못했다.
전정국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전정국은 대체 뭐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멋대로 끌고 와서 민윤기와의 대화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유추하게 만들었고, 의도한 것이기는 했지만 위험한 일에 가담하게 했으니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는데. 전정국은 도리어 고맙다고 했다. 그에 나도 똑같이 대체 뭐가?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전정국은 웃고 있었다. 미미하지만 워낙 표정 변화가 없어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미소가 아니라, 정말로 활짝 웃고 있었다.
“선물 잘 받았어.”
“무슨 선물?”
“오르골이랑, 그 안에 있던 것들.”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을 또 받으려고 한 짓도 아니었고, 내가 도움 받은 게 더 많았으니까. 어떻게 보면 미안할 일도, 내가 많이 해왔고, 하고 있고, 할 것 같아서.
“나 이제 안 무서워.”
“어?”
“사탕도 거의 안 먹어.”
“…….”
“네가 그날 아쿠룹스한테 당했을 때.”
“응.”
“그게 더 무서웠어.”
전정국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전정국이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걸 가만히 구경했다. 나는 오늘도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누구의 기억인지도 모르는 기억을 떠올렸고, 시도 때도 없이 꿈을 꿨지만 그게 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네가 고마워.”
전정국이 손을 바로 쥐었다. 깍지 낀 손과 차분한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나왔다. 나는 이렇게 많은 이들의 손을 잡았다. 연결돼 있다는 느낌. 진심어린 고백.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해 있음을 알았다.
로운. 들리니.
그래서 나는 내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고, 순식간에 비워진 손을 내려다봤다.
너와 내가.
“연결돼 있는 소리가.”
화가 나기보다는 점점 처연해졌다.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이네.”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거래를 하고 있는가.
“지난번에 물어봤던 거 답해주러 왔어.”
“물어봤던 거요?”
후플푸프 교복을 입고 래번클로 자리에 앉은 정호석 선배는 언제나 그랬듯 밝은 얼굴이었다.
“그가 무슨 소원을 썼는지 물어봤었잖아.”
“못 썼다면서요.”
“왜 못 썼는지 알아냈거든.”
어떻게요? 물어보려던 것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위저드 게임에서 친구가 죽었대.”
“…….”
“그 친구를 살려달라고 했다더라.”
“…….”
“말도 안 되는 소원이지. 죽은 사람을 살리는 마법 같은 건 없으니까.”
“죽었어요.”
“아.”
“그래서 못 썼대.”
“로운이.”
“죽어서요.”
“그거 말고 다른 소원은 없었다나 봐.”
나는 지난번에 꿨던 꿈을 떠올렸다. 두려움이 나를 옥죄고 그림자가 가까워졌을 때 들렸던 목소리는 분명 그의 목소리였다. 정말 로운은 아쿠룹스에 의해 죽었을까. 트리위저드 게임에서 죽은 학생이 로운 이외에 언급되지 않는 걸 보면 그가 살인을 저지를 만한 대상은 단 한 명.
“선배는.”
사람도 호크룩스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윤회라는 답을 얻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마법.
“참, 따뜻하신 분이네요.”
그는 로운을 죽이고 호크룩스로 만들었다.
“…….”
“후플푸프랑 잘 어울려요.”
“……너 저번에도 그 말 했던 거 알아?”
“선배도 그러셨잖아요. 래번클로랑 잘 어울린다고.”
“그랬지.”
“네. 서로가 선택한 기숙사니까요.”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로운을 호크룩스로 만들었고 나는 여전히 호크룩스였다. 그래놓고서 나를 살리려 했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입술을 짓씹으며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박지민.”
“응.”
“나 지금 기분 안 좋은데.”
“그래서 왔잖아.”
이 끝없는 굴레는 결국 끝을 향해 갈 것이다. 네가 시작했으니 내가 끝내도록 할게. 쉼 없이 영원을 향해 달려갔으니 이젠 잠시 멈춰도 좋아. 내가, 내가 끝을 향해 달려갈 테니까. 너를 대신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응. 그래서 고맙다고.”
그게 결국에 나를 파괴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선택한’ 기숙사라고. ……다 알고 있네.”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중간에 정국이랑 대화하다가 기억이 끊기고 호석이와의 대화로 넘어갔는데 혹시 헷갈리진 않으셨는지.. 걱정되지만.. 전부터 말했듯이 이런 경우가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또 언급 해보자면.. 이탤릭체는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설날 당일이네요. 저는 아무데도 안 갔답니다 후후 집에서 요양 중이에요. 다들 연휴동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암호닉 |
다람이덕 김석진잘생김 자몽해 몽9 우주 낑깡 빙구 잠만보 파냥 감귤 뮵 민덩방아 뇸 하루 방람둥이 어덕맹덕 미드나잇 뽀이뽀이 오징어만듀 말랑 노츄껌뜌 5959 뽐슈 샛별0309 푸른하늘 스리 반투명 더 퀸 썬코 둘셋 레브 랄라 쑤기쑤기 녹차나무 두두 파인애플맛젤리 밍늉깅 태탄 지니예 세라 이안_ 포롱이 베이컨 노랑 연꽃 일곱다이아 진이 이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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