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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카디] 빈 병실 | 인스티즈





종인 X경수
W.순백

 

 






1.
 눈 앞의 저 아이는 울고 있다. 보는 사람마저 슬프게 만들 정도로, 정말 서럽게 울고 있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는 파란 빛이 감돌 정도로 새하얗게 질렸다. 맑고 깊은 눈동자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이 그의 셔츠를 적셔가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정말…아무것도. 이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끅끅거리며 우는 그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손이 갈 곳을 잃고 갈팡질팡 아이 머리 위의 허공을 멤돌다 툭 떨어졌다. 달래주지 못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이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가만히 있기만 했다. 병원은 하얬다. 벽도, 침대도, 시트도. 아이의 눈에서 넘쳐나는 눈물이 시트도 적셨다. 얼룩덜룩해진, 아까까지만 해도 하얗던 침대 시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아이 때문에 나는 또 번거롭게 시트를 갈아야만 했다. 시트를 가지러 가면 아줌마들이 이것저것 말을 시키는데. 그거 귀찮은데.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지만 아이의 커다란 울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아이는 참다못한 내가 병실에서 내쫓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울었다.






2.
 아침밥을 잘못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간호사를 쫓아 병실 문을 열었지만 발빠른 간호사는 온데간데 없고 웬 갈색 뭉텅이만 눈 앞에 있었다. 이내 깨달았다. 갈색 뭉텅이가 아니라 머리카락이구나. 덩그러니 눈 앞에 놓인 머리가 밤톨같았다. 장난끼가 발동해 뿌리 쪽을 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째질 듯한 비명소리가 머리를 띵하게 울렸다. 사내아이주제에 더럽게 엄살도 심하다. 아이니까 그런건가.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줄곧 보아왔던 아이의 서러운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려 입을 꾹 다물었다. 갈색 아이가 일어나서 외쳤다.



"누구신데 남의 머리를..김종인 씨?"



 내 이름을 알고있다. 누구지? 사고 전에 알던 사람인가? 혹시 아는 사람인가 싶어 눈을 치켜뜨곤 세세히 살펴봤지만 낯익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저 발갛게 부어버린 눈가만 눈에 띌 뿐이었다. 울은건가? 아파서? 말없이 저를 관찰하는 나에게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어제는, 죄송했어요.."



 아ㅡ? 뜬금 없는 아이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아이는 날 아는 것 같았다. 어제라니. 어제 이 아이와 내가 만났던가? 어리둥절한 나의 표정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침대 시트는 잘 가셨나요? 갑자기 웬 침대 시트 얘긴지, 인상까지 찌푸려가며 어제를 곰곰히 생각하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잔상에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제 내 시트에 후득후득 눈물을 흘려댄 아이. 그 아이가 이 아이인건가. 귀찮게 했다는 명분 하에 매섭게 눈을 뜨곤 아이를 째려보았다. 아이의 눈가는 여전히 벌겋다.







3.
"안 갈래요."



 볼 일 끝났으면 이 곳에서 나가라는 손동작을 취했건만 아이는 단호했다. 계속해서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을 보아하면 이 곳에 있기 불편함이 분명했건만 아이는 굳이 남겠다 고집을 부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음이라 짐작했지만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병실 밖으로 등을 떠밀려 했으나 사고 후유증으로 비실비실해진 내게 건장한 남성인 아이를 제어할 힘같은건 없었다. 완강한 아이의 고집에 결국 포기하곤 그를 병실로 들였다. 이 병원에 입원한 후로 첫 번째 손님이었다.



"미안해요."



  시선을 돌려침대 곁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좁지만 아늑한 뒤뜰에 몇몇 환자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평화로워보였다. 관심조차 생기지 않는 아이의 이야기를 계속 들을 생각따윈 없었다. 듣는둥 마는둥 온 신경은 창밖에 집중한 채 아이의 이야기는 귀로 흘려보냈다.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싶지도 않았다. 왠지 그러했다. 여전히 왜인지는 모르겠다.




"정말 미안해요."




 아이는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진짜 미안해요. 정말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로는 끝나지 않을 만큼 미안해요. 몇 번만 더 들었다간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은 기분에 짜증이 치솟아올랐다. 또다시 '미'를 발음하기 위해 입을 여는 아이의 등짝을 후려쳤다. 잔뜩 마른 손과 팔로는 딱히 커다란 충격을 전해주진 못했지만 저의 의사는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았다. 어찌됐든 아이의 미안해요 타령은 멈췄으니.







4.
 그 날 이후로 아이는 매일매일 꼬박꼬박 병실에 찾아왔다. 그만 좀 오라고 아이에게 화난 표정도 지어보았고, 문전박대도 해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아이는 계속해서 병실로 찾아왔다. 아이는 병원 밖 이야기도 해주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아이는 자신을 도경수라고 소개했다. 이름을 물어본 적은 없는데. 퉁명스럽게 대꾸하니 아이는 그냥,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하고 짧은 답변을 내놓았다. 그 또한 재미는 없었지만 듣는 척은 해주었다. 적어도, 나를 찾아와주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아이는, 도경수는, 가끔 환자 침대 옆 간이 침대에서 자기도 했다.







5.
 어느 날부터 아이의 출입이 잦아들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가 드문드문 찾아왔다. 그러다가 곧, 아예 발걸음이 뚝 끊겨버렸다. 그로인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잔뜩 늘어났다. 그 예전. 아이를 만나기 전 아무도 저를 찾아오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다 없어진 느낌은 별로 좋지 못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심지어 한 달이 지나도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조용한 병실에서 버릇처럼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바람만 살랑이는 뒤뜰엔 아무도 없었다. 괜히 화나고 피곤했다. 아이가 보고싶었다.




_

도경수 구하려다 뛰어든 김종인이 약간의 지체장애를 갖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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