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고등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놀 땐 역시 왕게임이지."
"○○이 있잖아. 자제해."
"..."
니들끼리 왕게임할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길래 자제하래? 건전하게 논다더니, 술만 없지 사실은 건전하지 않은게 아닌가. 지금 당장이라도 이 집에서 나가 우리집으로 달려가야 하나, 큰 방에 둘러 앉아서 과자봉지를 뜯기도 전에 왕게임을 언급하는 변백현을 향해 도경수가 말을 뱉었다. 도경수의 한 마디에 나는 별의 별 생각을 다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검지 손가락으로 내 미간의 주름을 펴던 김종대가 큭큭대며 입을 열었다.
"야, 백현이 친구가 무서워 하잖아. 말을 왜 그렇게 해."
"그래도 왕게임은 좀 아닌데."
"..."
종대의 말에 경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답했다.
어느새 나를 향한 종대의 호칭은 다시 백현이 친구가 되어있었다. 어쩐지 그 대화를 하고 난 후엔 내 이름을 부르는 것과 백현이 친구라 부르는 것 중 어느 것이 편한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더 어색하다 느낄 수도 있겠다는 같잖은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이 진지해진 머릿속을 휘휘, 날려버리고 아이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들은 아직도 왕게임을 할 것인가, 에 대해 열띤 토론(?)을 진행중이었다.
"야! 걍, 해! 왕게임이 뭐라고!"
"올~역시 ○○○."
"이쁜아, 너 그러다 훅간다. 우리가 무슨 벌칙을 할 줄 알고."
"..."
설마 뽀뽀라던지, 뽀뽀같은걸 시키지는 않겠ㅈ...
"1번, 2번 뽀뽀해, 했는데 니가 2번이면 어쩌려고 그래. 멍충아. 여기 다 남자야."
"...그런거 할거야?"
도경수는 늘 맞는 말만 한다. 그래서 항상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멍충이다. 차라리 2번 지금 창문에서 뛰어내려! 하면 그건 할 수 있겠는데 여기 있는 누군가와 뽀뽀를 하라고 한다면 그건 못할 것 같다. 그건 진짜 아닌데?
"나야 모르지, 왕게임은 왕 맘대로 하는건데."
"백현아. 내가 말을 잘못했다. 왕게임 그거 되게 안좋은거 같아."
"에이, 기대했는데. 그럼 뭐할까? 진실게임?"
"진실 다 알면서 뭘 해."
"...샹."
말 할때마다 전부 까인 변백현은 (변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굳이 게임 안해도 재밌을 수 있다, 그냥 이런 저런 얘기나 하자며 달래듯 얘기했다. 그러자 여자 보다 수다스러운 그들의 입에선 각종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고, 나는 나름 재밌는 분위기를 유도한 것 같아 뿌듯해 했다.
-
한참을 떠들다 새벽 3시 쯤 되었을까, 원체 잠이 많은 나지만 우리집이 아니어서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준면의 집이 익숙한 여럿은 졸리다며 잠이 들기 시작했고, 나는 준면이 내어준 각방에 홀로 앉아 모두가 잠들어 연락없는 폰을 뒤적이고 있었다.
"○○아, 자?"
"어? 아니, 안 자."
그 때, 닫혀있던 방 문 밖에서 조그맣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컨데 나를 ○○아, 하고 정상적으로 불러주는 사람 중에 저 목소리는 준면이리 확률이 높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준면이 서있었다. 안자고 있었네? 하는 물음에 잠이 안오네, 라고 답하며 방에서 나섰다.
"안잘거면 집 구경이나 좀 시켜줘. 넓어서 한참 걸릴거 같은데."
"보기에만 그렇지 별 거 없어. 가자."
나와 준면은 나란히 서서 천천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딱히 어색하지도, 그렇다고 막 친근하지도 않는 기류가 우리 둘 사이에 흘렀다.
"다음엔 정식적으로 초대할게. 오늘은 너무 갑작스러웠으니까."
"오, 나 부잣집 아드님한테 초대받는거야? 완전 공주된 기분이네."
"애들이 너를 공주처럼 대해주긴 하지."
"응? 공주...라고 하기엔 좀 푸대접아니야?"
나는 공주라는 단어가 낯설어 큭큭대며 말했다. 공주처럼 대해준다기엔 변백현과 나사이엔 너무 욕설이 난무하고...뭐 그렇다고 못대해주는 애들도 아니지만.
혼자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내가 여느 여자애들보단 특별한 존재임은 확실했다. 왜냐면 나는 이들의 유일한 여.사.친이니까.(오글)
"작년 이맘쯤인가, 너를 닮은 여자애가 있었어."
"...어?"
"성격도 너처럼 활발하고, 느낌도 너와 비슷하고."
"..."
"대뜸 이렇게 말하면 이해 안될테니까, 나중에 우리 집오면 다 설명해줄게."
"음, 좋아. 약속."
나는 씩, 웃으며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쯤이 아마 한참을 걷고 우리 둘이 부엌에 다다른 때였을 것이다. 새끼 손가락을 마주 건 우리 둘과 마주친건 물컵을 손에 든 민석이었다.
"...둘이 뭐해?"
"아, 내가 집구경 시켜달라고 했거든."
"아, 그렇구나."
"귀신처럼 인기척도 없이 다니냐, 너는."
"냉장고 좀 바꿔, 물이 밍밍하네."
"..."
잠에서 막 깨서 그런건지, 우리 둘을 보는 민석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준면의 말에 엉뚱하게 대답하는 투도 어쩐지 찝찝했다. 여자의 육감으로 보자니, 그 둘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괜한 오지랖이 발동했다. 이 둘 사이에 있던 그 무언가를 알아내볼까, ...아니면 모르는 척 무시해버릴까.
-
"벌써 가게?"
"응, 애들 깨기전에 버스 첫 차 타고 가려고."
"아침이라도 먹고가지."
"괜찮아, 다음에 초대해준다며. 그 때 한 끼 먹으면 되지. 가볼게."
"응, 조심히 가."
빠르게 날은 새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지만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준면이 언급했던, 나와 닮았다던 그 여자아이. 그리고 나와 준면이 단 둘이 있던 모습을 보고 싸늘해졌던 민석. 그 여자아이는 민석이와 연관이 있는걸까. 사건에 대해 조금도 아는게 없으면서도 다 아는 사람마냥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사람이 거의 없는 첫 버스처럼 내 마음도 휑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걸 알게 되겠지. ...굳이 벌써부터 신경쓰지말자, 다짐을 하는 나였다.
[ ○○아아아!!! 왜 먼저갔어!!!! - 똥백 ]
[ 너 자는거 추접스러워서 ]
[ 내가 그렇게 더럽게 잤어? 침 얼마 안흘렸는데.. - 똥백 ]
[ 구란데 침흘렸냐? 더럽... ]
[ 더럽? the love? 나두ㅎ - 똥백 ]
[ 버스 유턴한다 너 죽이러 ]
[ ㅈㅅ - 똥백 ]
[ 잘가라 돼지야 - 똥백 ]
[ 네 보스 ]
[ ...너무해T^T - 똥백 ]
버스가 집에 거의 도착했을 쯤 변백현에게 메세지가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또다른 메세지.
번호도 알려주지않은 민석의 메세지였다.
[ 첫 차로 간거야? 조심히 가 번호는 변백현한테 받았어 ]
[ ㅋㅋㅋ집 거의 도착했어 고마워! ]
[ 고맙긴 다음주에 학교에서 보자 ]
[ 웅안뇽! ]
웅안뇽이라니, 내가 이런 말투를 사용하다니 정말 속이 메스껍다. 변백현 이 새끼는 내 번호를 지번호마냥 참 잘도 넘긴다.
죽을라고.
아무튼 어제와 오늘은 나에게 궁금증이 한 개 더 생긴 날이었다.
일기라도 쓴다면 형광펜으로 중요 표시를 마구마구 해놓을만큼 중요한 사건인듯하고.
...이 사건을 모두 알게되면 저 아이들과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을 것도 같고.
-
"엄마, 다녀왔습니ㄷ...뭐야."
"○○○. 너는 고2가 벌써부터 외박이냐?"
"...오빠?"
"와, 내 얼굴 기억은 하냐? 어떻게 전화도 안해. 죽을라고."
"아, 아!! 아파!! 악!! 미안!! 오빠!!!"
이른 아침부터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집 신발장엔 못보던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져있었다. 분명 남자 운동환데 아빠가 이런 캐쥬얼한 운동화를 신지는 않으니, 운동화의 주인이 될 사람은 분명 한 명 뿐이다. ...윤두준.
"언제 왔어?"
"어제 밤 비행기로 와서 공항 주변에서 하룻밤 자고 왔지. 좀 보고싶었냐?"
"...아니."
"뭐?"
"아니, 존나 보고싶었다고."
윤두준(20, 축구빠)은 삼 년 전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이유라면 축구 선수라는 큰 꿈을 접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기 위해 공부를 하겠다는 거였다. 솔직히 짐 챙겨 비행기를 타고 떠날 때까지 나는 절대 믿지 않았다. 공부는 개뿔 깝치다 총맞고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윤두준은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저번엔 수신자 부담으로 국제 전화를 걸었다가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은근히 기분나쁘고 퍽퍽거리는 영어 욕을 무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삼 년이 지났다. 갓 고딩이었던 오빠는 미국 물을 먹고 오더니 내가 봐도 좀 멋있는 스무 살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좀, 멋있다?"
"원래 멋있었잖아. 사람들이 나보고 아깝다는 말을 더 자주했었지."
"...시벌탱."
사실 미국으로 떠날때는 아빠가 하던 사업이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는데 미국에 가있는 동안 우리집이 부자가 되어버리고 아빠의 회사는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버렸다. 사실 유학 기간은 더 길어질 예정이었지만 아빠의 요청으로 한국에 돌아온 것이라 했다. 나와 윤두준은 성이 달랐다. 윤두준은 아빠 성을, 나는 엄마 성을 따랐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우리 둘은 밖에 나설때마다 커플이냐며 오해를 받곤했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거였다.
...솔직히 윤두준이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벌.
"백현이랑은 아직도 연락하고?"
"헐, 오빠가 걔를 어떻게 알아?"
"나랑 백현이 매일 밤마다 축구했었잖아. 기억안나냐?"
"아...같은 학교다녀, 친구야."
"그래? 잘됐네. 언제 한 번 불러. 밥이나 사주게."
"...그래."
그랬었지, 참. 축구를 좋아하던 두 사람은 매일 같이 축구연습을 하고 그랬었지.
오빠도 저걸 기억하는데 내가 백현이를 기억 못해냈다니, 돌이켜보면 나는 병신 중에 참병신이 맞는 거 같다. 경수가 보는 눈이 좋네. 병신을 한 번에 알아보다니ㅎ.
안녕하세요. 변리게이트입니다.
참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는 것 같아요.
글잡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대학생활에 적응하기 바빠 글을 쓸 수 조차 없었네요.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감도 많이 잃고,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여러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린것 같아 면목이 없습니다.
다시 천천히 연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 암호닉은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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