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수인 세계라고 할까요? 그래서 휴카 입양한 걸로 스타트.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우울증 치료에 좋다고 해서 입양한 여주.
사실 자기 목숨 부지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애를 집에 데려와... 하고 키울 생각 없었는데 여행 가 있는 동안 맡겨둔 선배가 튀어서 이집저집 떠도는 생활하는 카이가 집에 온 이후로 같이 살게 됨.
원래 카이를 키우던 윤선배가 여행 간다면서 교환학생으로 튀어버리고 유목 생활을 하던 카이의 마지막 집인 여주.
그냥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됨. 사실 카이가 그냥 일반 셰퍼드인 줄로만 알고 있었지 수인인 줄은 몰랐음.
진짜 내가 맡아야지 하고 결심한 날 동물병원 데려가서 수인인거 알았음. 병원 담요 두르고 앉아있는 남자 보고 거의 기절할 뻔 했지만 최강침착맨 여주, 사건 경위부터 파악합니다.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하면서 눈치 보는 카이. 덩치도 있는 애가 한껏 찌그러져서 더듬더듬 말하는 거 듣고 병원에서 바로 신고하려고 했지만 여주 입양 절차 어디서 밟냐고 묻고 그날 바로 절차 다 끝내고 집으로 복귀.
이날 여주를 보호자로 인식한 카이. 그전까지는 그냥 맡아주는 사람 정도.
여주랑 지내면서 거의 대부분 셰퍼드로 있는 휴카. 이유는 여주가 불편할까봐. 여주는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사람 몸으로 있을 때 묘하게 자기를 꺼리는 게 느껴졌거든. 여주가 나갈 일이 있으면 그때 잠깐 신체 모드 바꾸고 열심히 사람 목소리 내다가 여주가 비밀번호 누르는 순간 멍멍!
여주 오기 전까지 잠 안자고 기다리는 휴카. 혹은 여주가 매트리스에 눕기 전까지. 셰퍼드는 털이 많이 빠지는데 여주 비염 있어서 침대에는 안 올라가고 옆에 만들어준 전용 자리에 누워서 기다림. 빨리 오라고 보채지 않고 여주가 오면 반갑게 맞아줌. 여주가 침대 없이 매트리스만 써서 누우면 대충 눈높이가 맞음. 불 끄고 누우면 잠 들 때까지 휴카 쓰담쓰담하다 눈 감음. 사실 여주가 불면증이 생겨서 엄청 고생하다가 휴카가 치료해줬다는 서사가 필요할 것 같음. 모종의 사건이 터지고 우울증과 함께 불면증이 생겨서 힘들어 했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수면제 안먹어도 된다고. 대부분 여주가 일어날 때까지 꿈쩍않고 자리에서 기다리는 편이지만 가끔 먼저 자리를 떠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여주가 부름. 그러면 카이 바로 달려와서 애교 부려야지. 꼬리 흔들면서. 카이가 모닝 인사 해주기 전까진 자리에서 안일어나는 여주. 모닝 인사 안받으면 몸이 축축 늘어지고 우울해져서. 여주가 휴카 인사 받고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 메일 확인. 여주 건강 이상의 절대적 원인이자 근원, 법정 싸움. 할아버지 돌아가시자마자 소송 당하고 난리도 아님. 할아버지 재혼 전 자식들인 이모들과 삼촌이 재혼 후 자식인 엄마와 이모, 할머니, 그리고 여주에게 유산 문제로 소송을 걸었음. 사실 여주는 엄마 손윗형제들의 존재여부를 알게 된 지 얼마 안됨. 평생 연 끊고 살면서 할아버지 병문안 한 번을 안오다가 유산 문제에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어이가 없긴 함. 엄마와 이모의 자식들 중 첫째이자 할아버지가 제일 아꼈던 손녀 여주에게 거의 모든 재산이 돌아가서 사실 이 재판의 중심은 여주. 갑자기 들이닥친 일 때문에 우울증, 불면증 등등 심리적으로 불안해짐. 여주네 쪽도 내부적으로 의견이 잘 안맞고, 다툼도 조금 생기고 힘들어서 의지할 곳이 사라진 차에 휴카가 등장. 여주 상태도 많이 호전됨. 변호사한테 온 메일 확인하고 휴카랑 밥 먹고 아침 산책 감. 카이 몸에 하네스 잘 채우고 출발. 이 산책은 여주를 위한 산책이라 휴카는 여주 옆에 붙어서 움직임. 대부분 천천히 동네 한 바퀴 도는 정도. 가끔 장난친다고 여주 운동화 끈 잡아당겨서 푸르고 도망감. 사실 아침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하네스 줄이랑 입마개 거의 안하고 다님. 카이 원하는 대로 다니라고 풀어주는데 그냥 여주 옆에 붙어서 천천히 다니는 편. 산책 갔다가 집에 오면 밥 먹고 여주는 변호사 만나러 낮에 잘 없음. 그때 카이가 뾰로롱 변해서 꼼시락꼼시락 본인 털 수거 하느라 청소기 돌리고, 돌돌이 굴림. 여주는 카이가 셰퍼드 치고 털이 정말 안빠진다고 생각할 듯. 여주가 혼자 두는 게 미안해서 본인이 쓰던 헤드셋이랑 공기계 휴카한테 줬음. 휴카는 그걸로 음악도 듣고 게임도 함. 여주한테 졸라서 산 화분한테 클래식도 들려주는데 사실 너무 많이 죽여서 이번이 다섯번째임.
여주는 늦어질 것 같으면 인스타로 들어가서 프로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계정에 대충 아무거나 찍은 사진 업로드함. 비공계 계정인데 팔로우0, 팔로잉1. 그거 휴카.
휴카와 유일한 연락망 인스타. 카톡은 휴카 전번이 없어서 기각. 페메는 여주가 페북 계정이 없음. 쓰지도 않는 인스타만 유일하게 깔려있어서 씀. 왜 dm 안써요? 휴카가 타자 칠 줄 몰라요. 그냥 통보용.
휴카 화분에다 노래 불러주다가 인스타 알림 뜨면 바로 들어가서 하트 누름. 확인했어용 을 대신함. 유리에 비친 여주 실루엣 보고 귀여웡...
이렇게 여주가 늦는 날에는 휴카 혼자 산책 나감. 여주 없어서 심심하당... 생각하면서 동네 돌다 보면 버스에서 내리는 여주랑 딱 마주침. 신나서 막 달려가서 앵기면 여주 비틀거리면서 안아줌.
그리고 반대로 휴카가 산책 간 사이에 여주가 돌아왔을 때. 대부분 휴카를 반겨주지만 가끔 숨음. 언제 한 번 장롱에 숨은 적이 있었음. 비밀번호 누르고 카이가 들어와서 여주 신발 보고 막 안으로 달려갔는데 없음. 순간 막 불안해져서(임시보호 시절에 여주가 커터칼을 몇 시간동안 바라보고 있는 걸 여러번 봄. 그때가 여주 상태 악화의 정점을 찍었을 때. 그때 한창 재판 때문에 힘들었음.) 다시 몸 체인지 하는 것도 잊고 집 안에서도 찾았다가 혹시나 싶어서 밖에도 막 찾으러 다니다가 결국 장롱 안에서 잠든 여주 보고 다행이다 싶은 휴카. 혹시나 해서 팔이나 다리에 상처 없나 확인하고 있을 때 여주 깸.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사람 얼굴에 그제서야 얘가 사람이었지 싶으면서도 당황. 휴카가 말, 표정 없이 손목만 보길래 아 많이 걱정했구나 싶음. 화났어...? 미안. 깜박 잠들었어... 휴카 정말 아무일도 없던 거 확인하고 본인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망각하고 막 파고듦. 놀랐어요... 라고 말하는 거 들으면서 뛰어서 펄펄 끓는 휴카 등 토닥토닥. 안그럴게. 걱정시켜서 미안. 본인은 말한 줄도 몰랐는데 여주가 대답해서 깜짝 놀라가지고 보니까 본인 지금 휴먼 바디. 여주한테서 확 떨어지고 얼굴 새빨개지고 엄청 당황함. 그리고 이때 이후로 여주 앞에서 철저히 셰퍼드로 있는 편. 여주는 카이가 사람일 때도 좋은데 셰퍼드로만 있길래 사람은 불편한가 싶음. 그러다 여주가 변호사 만나서 안좋은 소식 듣고, 엄마랑 할머니가 크게 싸우고, 돈이며, 뭐며 너무 힘든 날 집에 울면서 들어옴. 꼬리 흔들면서 여주 기다리다 울면서 들어오니까 휴카 어쩔 줄 모르고 그냥 주저 앉아서 흐느끼는 여주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여주가 카이한테 한 마디 했음. 나 너 사람으로 있을 때 불편한거 아는데 나 좀 위로해주면 안돼? 그말에 휴카 결정 못 내리고 있어서 여주가 혼자 진정하고 아니야 미안. 오늘은 나 혼자 방에서 잘게. 하고 방에 들어감. 휴카 침대는 거실에도 하나 있어서 문제는 없다만 여주가 방 안에서 계속 우는 소리 듣고 결국 똑똑 노크. 잠긴 문고리가 돌아가고 여주 서 있는 휴카 보고 두 발자국 걸어가서 안았음. 그럼 휴카 말 없이 등 토닥토닥. 여주한테 물도 가져다주고 괜찮아질거라고 계속 얘기해주면서 여주 재웠음. 수고했어 오늘도 나지막히 불러주면서 코 앞에 누워있는 여주 젖은 속눈썹 보면서 마음 아파 했음. 그리고 이때부터 사람으로 더 많이 지냈음.
여주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휴카한테 본인의 감정을 전달시키는 것 같아 슬쩍 물었음. 카이야 바다 있는데로 가서 살래? 지인이 바닷가에 사는데 셰퍼드 입양할 의향이 있다고 했었음. 휴카는 당연히 여주랑 같이 가는 줄 알고 좋아용 했지. 저 질문 말고도 나랑 있으면 우울하지 않냐, 피곤하지 않냐 와 비슷한 맥락의 것들을 던지니까 카이 거기서 눈치챔. 전 여주가 힘들 때 옆에 있을 수 있어서 좋아요. 여주가 저한테 기대는 것 같아서 기뻐요. 여주랑 같이 있는게 행복해요. 이 이후로 여주 이런 얘기 입도 뻥긋 안함.
사실 휴카도 여주한테 많이 기대고 있음. 주인한테 버림받고 떠돌이 생활하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여주랑 지내면서 아물었지. 흉터는 옅게 남았지만. 그래도 마음 어딘가에 버림받는다는 불안함이 있을 듯. 여주가 연락이 없을 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만 엄청 불안해 했음. 자정을 넘기고 돌아온 여주를 보자마자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안았음. 그리고 약간의 눈물. 일주일동안 여주 옆에 딱 붙어서 다녔음. 집 안에서도 졸졸 쫓아다니고 잘 때도 너무 불안해 하길래 여주 매트리스 대신 커다란 요 깔아놓고 같이 자고. 그러다 여주가 카이도 친구가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어서 수인 동반 모임이라고나 할까요 암튼 거기 데려감. 휴카 낯도 엄청 가리고 그런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있는데 여주가 은근히 다른 개들이랑 잘 얘기하는거 싫은데 말도 못하고 혼자 구석에 있었음. 여주가 나중에 찾으러 오니까 못 가게 잡아만 뒀음. 생전 한 번을 안하던 무릎 위에 올라가 있기, 가려고 하면 소매 잡아당기기, 낑낑 거리기를 하니까 여주 그냥 카이가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구나 싶음. 휴카 사실 동네에 같이 사는 고양이 태풍이만 있어도 친구 충분했음. 모임 잘 다녀왔냐고 태풍이가 물었을 때 여주가 다른 개들이랑 얘기하는거 싫었다는 얘기하니까 태풍이가 너 보호자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해줘서 처음엔 아닐꺼야 했는데 정말 좋아하는게 아니라 사랑하는거였음.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좋아하는 것보다 더 진해서 사랑이라고 느낌.
반면에 여주는 이번 재판으로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을 듯. 고작 돈에 무너지는 게 사랑이구나. 가장 근본이라는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이렇게 무너지는데 남녀는 어떨까 싶어서 사랑을 점점 비관적으로 바라봄. 이제는 믿지 않음. 문제는 휴카도 알고 있다는 거.
그래서 휴카는 여주한테 부담줄 생각 없었음. 늘 그랬듯 여주하고 보드게임하다가 티비보고, 영화도 봤다가, 음악도 들었다가, 힘든 여주 위로 하고 또 가끔 여주한테 기대기도 하고. 여주가 휴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건 휴카한테 들은 대답 때문에. 낮에 본인이 없을 때 무슨 생각하면서 집에 있냐고 물었을 때, 맑게 웃으면서 저는 여주 생각만 해요. 라고 대답했을 때. 그때 당장 옆의 카이가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게 됨. 그렇게 둘 사이에 무언가가 달라짐.
카이는 여주한테 강요할 생각도 없고 고백 생각도 없음. 여주는 충분히 다른 일로 머리가 아프니까. 여주 이름만 떠올려도 온 머리와 마음이 벅차서 다른 생각은 하나도 못함. 여주랑 사귀는 건 고사하고 고백하는 장면조차 떠올릴 수가 없었음.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고 여주가 본인의 감정을 이해할 때쯤 고백을 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생겼음. 재판 날짜가 잡히고 법원에 들어간 여주를 문 앞에서 기다리는 휴카. 재판이 끝나고 나오는 여주에게 시비 아닌 시비를 거는 얼굴조차 본 적 없던 사촌들에 카이는 아무 힘도 쓸 수가 없었음. 결국 집에 도착했을 때 카이가 말했음.
사랑을 배운 적은 없지만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어요. 여주를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