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레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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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GER WARNING 외모에 대한 평가와 선입견이 있습니다.
수빈은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던져버릴 뻔했다. 왜? 저 미친 상사 때문에.
"쏘쟈~ 이 옷 어때? 괜찮죠?"
쏘쟈: 콩
수빈은 가방에서 얼른 담요를 꺼내서 무작정 상사의 팔에 걸었다. 저 인간이 어떻게 옷을 입든 간에 수빈은 하등 상관이 없었지만 본인 상사의 상사에게 이 옷차림이 걸린다면 말리지 못한 수빈의 월급이 처참하게 갈릴 게 뻔했다.
"이사님... 제발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세요ㅜㅜ"
수빈은 정말 울라고 하면 울 수 있었다. 이제 피로연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드레스를 바꾸겠다고 난리를 치는 상사 때문에 속이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수빈은 오늘만 해도 총 구백 번째 퇴사 욕구를 잠재웠다. 내가 진짜 돈만 아니었어 봐 얼굴에 사직서 던졌다.
수빈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서글서글한 웃음을 만들었다. 안면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사님 다시 갈아입고 오세요."
"아 아쉽다. 이거 진짜 예쁜데. 역시 아빠가 보면 뭐라고 하겠지?"
회장님이 이사님께 뭐라고 하시는 게 아니고 제 월급이 깎이겠죠.
수빈은 상사가 피팅룸 안에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널브러졌다. 무슨 결혼식을 일주일씩이나 해. 그것도 피로연만 4일째였다.
결혼식 하다가 사람 잡겠다. 그리고 그 사람 나.
비서 최수빈의 상사는 젠니야의 외동딸이자 천재 디자이너라고 그렇게 칭송 받는 젠니였는데... 그럼 뭐해, 그럼 뭐하는데!
최수빈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좀 산다는 선배가 최수빈에게 슬쩍 찔러줬었다. 젠니야에서 이번에 사람 구하던데 너 한 번 넣어봐. 너 약간 젠니야 상이야. 그 말만 믿고 일단 지원했다. 도대체 젠니야 상이라는게 뭔진 몰랐지만 좋은 뜻으로 얘기 했겠거니 싶었다. 그때 한창 돈이 궁해서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1차 서류를 통과하고 2차 면접까지 무사히 통과했다. 마지막 3차 면접을 보러갔을 때 최수빈은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면접장에 늦은 상태였다. 그때 청심환을 먹고 잠들어서 면접 늦는 새끼는 나 밖에 없을거라며 돈을 아끼느라 평생을 안타던 택시를 잡고 면접장 까지 달렸다. 기사님 달려.
그리고 일단 들어와는 보라며 선처를 베풀어주신 덕에 최수빈은 겨우 면접장 안까지 들어갔다.
젠니는 칙칙한 양복들 사이에서 한 눈에 튀는 핑크색 정장을 입고 가운데 앉아있었다.
그리고 최수빈은 들어가자마자 젠니의 질문 세례를 받았다. 나이, 키, 몸무게 따위의 것들을 물어봤는데 솔직히 모델 뽑는 거랑 착각한 건 아닌가 싶었다.
보통 신입사원 뽑는데 이런 걸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젠니는 그것 말고도 이상한 걸 많이 시켰다. 이쪽부터 이쪽까지 걸어보라는 둥, 서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본라는 둥, 면접관에게 등을 보인채로 서서 상체만 뒤로 돌려보라는 둥, 최수빈은 한낱 서민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일단 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3일 뒤에 최수빈은 합격 문자를 받았다. 웰컴 투 헬^^
젠니야 상이라는 선배의 말이 정말 젠니가 좋아하는 얼굴이라는 걸 알아차린 뒤로 수빈은 비서라는 직책 하에 젠니의 요구를 들어줬다.
젠니는 수빈을 보고 영감을 얻는대나 뭐래나.
수빈은 그 부분에서 전혀 감흥이 없었다. 수빈의 포인트는 비서라는 직책 하에 젠니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업무의 양이 배로 늘어난 데 있었다.
한창 스케줄을 조정하다 젠니에게 불려가서 이것저것 자세를 취해줄 때면 수빈은 정말 거하게 현타를 맞았다.
나는 모델도 아닌데 잡지를 보고 왜 이런 걸 하고 있을까...
젠니는 수빈 말고도 작업실에 여러 사람을 불렀는데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아주 잘생기거나 아주 예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혹 어린 아이들도 불렀는데 그걸 본 수빈은 처음에 젠니를 범죄자 취급했다.
나중에 가서야 그 오해가 풀렸지만.
젠니에게 '사람' 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거의 모든 건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젠니에게 '사람' 이란 아름다움이었고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젠니에겐 한낱 금수였다.
경우에 따라 아름다움의 정의가 달라졌지만 그래도 젠니에게 일반적으로 아름다움이란
외모였다.
젠니는 특히 사람의 몸에 아주 거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일단 베이스로 깔고 갔다.-
남성의 몸에서는 특히 엉덩이
여성의 몸에서는 목에서 어깨로, 마지막 갈비뼈에서 골반으로 떨어지는 그 라인에.
그리고 젠니는 인체에 대한 과학적, 생물학적 지식도 왠만한 전공자들 못지 않게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젠니는 사람을 보면 일단 몸을 분석했다.
젠니가 다시 그나마 정숙한 옷차림으로 피팅룸에서 나오고 수빈은 소파에서 일어나 젠니의 뒤를 따랐다.
수빈의 업무는 젠니의 드레스 컨펌에서 인물 맞추기로 옮겨졌다.
결혼의 당사자는 모델 에이전시 사장들이었고
남의 결혼을 내가 왜 보고 있냐 라며 수빈에게 청첩장은 전부 찢어버리라고 했던 젠니가 유일하게 참석한 결혼식이었다.
'모델' 에이전시 사장들 결혼식이래잖아. 세상에 젠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뒤집었다.
쏘쟈, 결혼식 맞춰서 일정 빼놔요. 우리 무조건 갑니다.
젠니는 샴페인을 들고 레이더를 가동했고 수빈은 전날까지 에이전시에 있던 모델들의 얼굴와 이름을 줄줄 외운 성과를 이뤘다.
가끔다가 모델들의 아이도 눈에 보였는데 그때마다 젠니는 누구의 자식인지 체크해놓으라며 수빈의 업무를 하나 더 추가 시켰다.
통통 튀는 밝은 매력의 아이들은 주로 젠니가 S/S 시즌에 많이 부르는 뮤즈들이었다.
오늘도 젠니는 마시지도 않은 샴페인을 손에 들고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수빈은 젠니의 시선을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도대체 누굴 보는 건지.
수빈씨, 저 파란머리 대체 누구야...?
네? 파란머리요?
수빈이 종이를 미친듯이 넘겼다. 찾았다. A엔터 최연준이네요. 런웨이는 안서고 피팅 촬영 위주요.
쏘쟈는 지금 퇴근해요. 당신 상사는 오늘 추가근무 예정입니다.
수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꾸벅 인사했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이사님.
네에 쏘쟈. 내일 출근하지 말아요, 당신 상사 내일 출근 안할거니까.
아싸 개이득. 수빈이 호텔을 빠져나갔다.
젠니가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젠니가 샴페인 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잘빠진 콧대에 내가 좋아하는 무쌍 눈꼬리도 길게 빠졌고 입술은 약간 쳐졌지만 부드럽게 올라가는 곡선이 마음에 들어. 아 입꼬리가 예쁘네. 입술 두께도 적당하니 보기에도 좋고 오 눈썹 모양이 예쁘다. 안정적인 산 모양으로 거의 대칭. 코가 너무 날카롭지도 너무 둔탁하지도 않아. 보기에 거북하지 않네.
눈에 애교살도 있는데 오 좋아. 애교살이 눈을 잡아먹지 않는다. 아이홀도 나름 깊고 정면으로 얼굴을 보니까 코가 은근 크네. 좋아 잘 어울려. 광대도 딱 안정적으로 잘 박혀있고 어머, 턱이 짧네. 옆광대부터 턱까지 떨어지는 라인이 부드러워 좋아. 너무 뾰족한 턱이 아니네. 약간 둥그런게 좋아, 딱 좋아.
눈이 약간 삼백안이구나. 눈의 끄트머리가 아슬아슬하게 닿아있는 삼백안끼? 밑트임 했으면 바로 삼백안 되겠다.
저렇게 이마를 드러내는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데? 이마가 예쁘다. 근데 덮어도 괜찮을 것 같아.
체형은 스키니. 키도 큰 편. 목도 길고. 목부터 어깨까지 똑 떨어지네. 어깨가 말리지도 않았고 흉통도 적당히 두껍다. 좋아, 아주 좋아. 가슴 운동도 열심히 하는 모양이지? 셰입이 예쁘네. 골반도 적당하고. 그리고 대망의 아, 엉덩이도 예쁘다. 다리도 길게 뻗었고. 좋아. 누드 모델로 세워도 전혀 부족한게 없을 정도야. 근육도 잘 잡혀있는 것 같은데 이번 ss 컨셉을 한 번 바꿔볼까. 좀 핫하게.
젠니의 샴페인 잔이 빙글빙글 돌다 몀췄다.
안녕하세요 권대표님~ 오랜만이에요~ 이번에 사무실 이전하셨다면서요?
말은 권대표에게 모든 신경은 최연준에게.
그런데 이쪽은...?
안녕하세요 최연준이라고 합니다.
하아 지저스. 대체 왜 예수를 보러 브라질에 가는 거야. 내 앞에 있는데.
혹시 A엔터...? 권대표님~! 이런 마들이 있었으면 제일 먼저 저한테 알려주셨어야죠!
최연준씨, 언제 한 번 제 작업실 안놀러 올래요?
젠니야의 대표가 말하는데 거절이 어디있겠는가.
이제 막 데뷔한 최연준한테 젠니가 지금 작업거는 거 아니야.
작업하자고.
최연준이 해사하게 웃었다. 아. 이런 무해한 웃음 곤란한데.
눈이 없어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야 완전 감사하죠. 언제 가면 될까요?
지금.
네?
지금 갈까요? 시간 괜찮아요?
젠니가 샴페인을 내려놨다.
지금 가요. 지금 연준씨를 보니까 영감이 막 셈솟네.
역시 야한 남자들이 영감에 효과적이야.
연준이 젠니의 차에서 내렸다. 젠니는 마음이 급한 지 차를 한번에 대충 쑤셔넣고 내렸다.
이렇게 급하게 도착한 곳은 스튜디오. 젠니는 무작정 최연준을 카메라 앞에 세웠다. 그리고 무작정 셔터를 눌렀다.
연준은 눈치껏 자세를 잡았다. 젠니는 아주 작은 디렉팅도 내리지 않았다.
미쳤다... 사진 배운 보람을 느낀다...
조명 열에 땀까지 뻘뻘 흘리는 최연준이 프롬프터 앞에 섰다.
저 잘 나왔나요?
또 저 웃음. 미치겠네. 젠니가 애써 눈을 내렸다. 눈에 들어온 최연준의 수트를 훑어내렸다. 아 맘에 안들어. 옷 상태 왜 이래.
벗어볼래요?
네?
수트요. 이거 제작한 거 아니죠? 제가 좀 만져줄게요.
최연준은 순순히 자켓을 벗었다. 그리고 그렇게 젠니는 최연준의 자켓을 만지고 최연준은 젠니 작업실을 둘러보고.
이렇게 첫 만남은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는 없을 건전한 만남이었다.
이제 젠니야의 전속 모델은 최연준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젠니야에서 나오는 모든 옷은
최연준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니까.
덕분에 최연준도 빵 떴다. 갑자기 등장한 신예가 갑자기 젠니야의 전속 모델과 뮤즈를 꿰차니
모든 언론이 최연준을 집중했다.
언론이 집중을 하면 뭐하나, 어차피 최연준은 젠니 작업실에서 나오질 않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공항을 빠져나온 최연준은 곧바로 젠니의 작업실로 갔다.
익숙하게 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왔어? 방금 전에 공항이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과속 좀 했어요. 뭐하고 있었어요?
최연준 얼굴 감상. 너 지금 보니까 입술이 진짜 예쁘더라.
뭐래, 원래 잘 알았으면서.
뭐야, 지금 키스하자고?
내가 입술 예쁜거 몰랐다니까 되게 빈정 상하네요.
니가 입술 말고도 예쁜 데가 너무 많아서 그래. 눈만 1년을 좋아해도 모자라.
그건 좀 듣기 좋다.
그래서 이번 주제를 최연준 입술로 잡아볼까 해.
내 입술로? 옷을 만들 수가 있어요?
폭신폭신하고 부드럽다를 모티브로 삼고 만들어야지.
사람들은 내 입술이 그런지 모를텐데, 젠니만 괜히 의심사는 거 아닌가 혹시.
뭐래. 빨리 와서 입술이나 줘.
네,네 입술 대령 합니다.
아니 내 눈 앞에 대령 말고, 내 입술에다 대령해야지.
TMI
최연준이 나이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