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연지는 얼굴이 붉어졌다. 연지는 살아왔던 날들 중 ‘오빠’라는 단어를 입에 담아 본 기억이 손에 꼽는다. 집안에 남자라고는 아빠와 인간 이하라고 느껴지는 동생 하나였고 여중·여고 루트를 타고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동네에서 친하던 오빠 한 명 정도? 그말고는 없다. 이걸 불러야해, 말아야해? 하고 무한번 내적갈등이 계속되었다. 정우는 재촉하지 않고 그저 연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오빠라고 부르지 않으면 여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 눈빛을 계속 받자니 묘하게 두근거리는 것도 같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그렇지만 정우는 객관적으로 보면 잘생긴 얼굴임이 분명했다. 그건 내 주관적으로 봐도 마찬가지긴 하다. 더 이상은 안되겠어. 계속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정우에 그저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연지는 눈 한번 질끈, 감고 내뱉었다.
“정, 정우 오..빠?”
그러자 정우는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연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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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몇주가 흘렀다. 우리는 밥을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대화를 주도하는 쪽은 주로 정우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우에 대한 정보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대학가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는 것과 나중에 소아 쪽으로 갈 거라는 것? 연지도 소아쪽에 조금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정우에게 자신도 그쪽으로 관심이 있다고 말하자 정우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했다. 그래, 같은 동기 중에는 대부분 그 쪽은 관심이 없을 테니까. 아이들을 치료해주는 정우를 머리속으로 상상해보았다. 꽤나 잘 어울리는 것 같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주말이니까 도서관 가서 공부 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점심만 먹고 도서관 갈 준비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은 찰나에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연지야~ 월요일 쪽지시험 준비하러 도서관 갈건데 같이 안 갈래?’
정우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마침 나도 공부하러 가려고 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했다.
‘저도 마침 공부하러 가려고 했는데. 그러면 2시에 도서관 앞에서 봬요’
‘그러면 내가 일찍 가서 자리 잡아놓을게! 나중에 봐.’
정우의 첫인상과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우는 실제로 엄청 발랄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강의실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정우는 브이-한 손을 흔들어 나에게 인사를 해주곤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를 계속 쳐다보고 있자면 그와 동기들이 얘기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애교도 곧장 잘 부리는 것도 같아 보인다. 그런 그를 생각하자니 살풋 웃음이 났다. 빨리 점심 먹고 씻어야겠다, 생각한 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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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연지는 도서관에 도착했다. 원래 도서관에 갈 때는 츄리닝이 ‘국룰’이라지만 그러기에는 정우가 묘하게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옷을 골라보다 시간이 조금 늦었다. 정우는 열람실이 아닌, 탁 트여있는 공간에서 나를 맞이했다. 모르는 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잘됐다. 정우는 맞은편에 놔뒀던 책을 치우고는 나에게 이리오라며 손짓했다. 그러고보니 오늘 정우는 안경을 쓰고왔다. 원래 시력이 나빴나?
“주말인데 와줘서 고마워! 나 혼자 도서관가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너 기숙사 사는 거 생각나서 불렀어.”
“아니에요, 저도 쪽지시험 때문에 도서관 가려고 했어요. 근데 저, 모르는거 물어봐도 돼요?”
“어어! 모르는 거 물어봐. 근데 나도 모를 수도 있어. 우리 같이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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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흑색질(substantia nigra)에 병변이 생기면 파킨슨병이 나타나는 거야. 이해됐어, 연지야?”
“음...네! 이해 됐어요. 감사해요.”
“아니야. 너 덕분에 나도 한번 더 정리됐어. 바람 좀 쐴 겸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내가 사줄게. 저번에 못 사줬으니까.”
정우의 제안에 연지는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과학은 재밌기는 한데 너무 어려워. 영어도 외워야하고, 한글도 외워야하는데. 정우에게 많은 걸 물어보면서 연지는 정우가 정말 대단하고 생각했다. 공부 잘 한다고 들어서 알고있기는 했는데, 이정도일줄이야. 맨날 집에서 복습하나봐. 예습과 복습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연지는 정우가 새삼 대단하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하고. 못하는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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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경쾌한 벨소리가 편의점을 울렸다. 연지와 정우는 나란히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연지는 항상 먹는 아이스크림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스크류바. 평소에 달달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 연지였지만, 아이스크림만큼은 항상 상큼한 걸 고집했다. 과일맛 아이스크림이면 다 좋아했지만 특히 스크류바를 제일 좋아했다. 연지는 망설임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 스크류바를 꺼냈다.
“저 사실 이 아이스크림 제일 좋아하거든요.”
“어 진짜? 나도 스크류바 최애야! 내 것도 꺼내줄래, 연지야?”
“아 정말요? 우와, 신기하다.”
연지는 아이스크림을 두 개를 꺼내 정우에게 건네주었다. 의도치않게 연지와 손이 맞닿은 정우는 귀 끝이 빨개졌다. 잠깐 스친 손이었는데도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에 정우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작 연지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만.
“2000원입니다. 어, 연지?”
“..도영오빠? 여기서 알바해요?”
“응, 나 여기서 알바해.”
“아 그렇구나. 여기 자주 들려야겠네요.”
“나 심심하니까 자주 들려줘.”
둘의 대화를 보다못한 정우가 도영에게 얼른 카드를 내밀었다. 도영은 정우를 향해 눈길을 한번 준 후 계산을 이어나갔다. 계산 완료되셨어요, 감사합니다. 연지야, 또 와줘.
편의점에서 나온 후 연지와 정우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연지와 도영의 관계를 미덥잖게 보던 정우가 은근슬쩍 연지에게 물었다.
“방금 저 분이랑 아는 사이야?”
“네,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살아서 알아요. 근데 왜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
근데 그 분 되게 잘생기셨다.“
“뭐... 그런 편이죠? 우리엄마도 도영오빠 보면 잘생겼다고 입에 침을 튀기면서 말하니까.”
“그렇구나. 빨리 가자. 우리 아직 할 거 많잖아”
묘하게 얼굴이 굳어진 정우를 눈치 챈 연지는 뭔가 잘못한 점이 있나, 하고 스스로를 되짚어봤다. 딱히 없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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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아직 많다며 들어온 정우는 굳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안경을 벗고는 잠들어버렸다. 근데 하필 고개를 돌린 쪽이 내 쪽이라, 공부를 하는데도 계속 정우가 신경 쓰여 공부에 집중이 안 됐다.이 오빠는 옆에서 보니까 콧대가 진짜 높네, 하고 나도 모르게 정우의 콧망울에 손이 갔다. 톡톡 건드려도 정우는 깊게 잠든 듯, 미동도 없었다. 대범해진 연지는 콧망울에서 눈썹, 눈썹에서 눈으로 손을 계속해서 움직여나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 호기심이 불러일으킨 결과였다. 그러다 갑자기, 정우가 눈을 뜨며 연지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쥐었다. 당황한 연지는 아 죄,죄송해요 라며 말을 더듬거리며 사과했다. 그러자 정우는 잡았던 연지의 손목을 부드럽게 풀며 말했다.
“내 앞에서 도영인지 하는 선배 얘기 안 했으면 좋겠어. 나 괜히 질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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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태껏 쓴 두 편 중 분량이 가장 많은 것 같아 뿌듯해요!
사진도 많이 넣었고 제가 보고싶은 장면도 넣었어요!!
그나저나 여러분... 여러분의 댓글이 저를... 성실하게 만듭니다..
글 쓰려고 밀린 공부하고 과제하고.. 다끝내야 글을 쓸 수 있는 제 성격때문에 제가 성실해지고있어요!!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많은 댓글 남겨주세요!! 저는 이 글 쓸때 정우 좋아 반+ 여러분 댓글 좋아 반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쓴답니다!
내일은 정우 시점으로다가 한 번 글을 써볼까, 해요.
여러분 감사합니다ㅠㅠㅠ히히 아 그리고 같은 전공이신 분들은... 제 얄팍한 전공지식에 대신 부끄러워해주세요...ㅠㅠ 힝부끄러
+ 고민하다 마지막 말 수정했어요!! 궁금하신 분들만 다시 읽어주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