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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일삼 전체글ll조회 1089l 4












[방탄소년단/민윤기] 민후배 2 | 인스티즈










민후배 2



















11월 2일 화요일.




수업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과방에 들렀다. 아무도 없어 혼자를 만끽하며 노트북을 켰다. 일요일까지 피피티를 완성했으나 다른 과제에 밀려 아직 피드백 받은 걸 고치지 못 했다. 파우치에 달린 키링을 건들이며 노트북이 로딩 되기를 기다렸다. 켜진 바탕화면에는 아이콘들이 왼쪽에 몰려 있었다. 나는 맨 아래의 아이콘을 클릭했다. 그리고 화면에 피피티가 띄워짐과 동시에 누군가 과방에 들어왔다.




[방탄소년단/민윤기] 민후배 2 | 인스티즈


“안녕하세요.”




이제는 익숙한 금발이었다.




“현사광?”

“네.”

“잘 됐네. 같이 들어가면 되겠다.”

“이거 우리 피피티예요?”




민윤기가 옆자리에 가방을 놓으며 말했다.




“아직 못 고친 데 있어서 지금 고치려고.”

“저 그때 바빠서 자세히 못 봤는데 혹시 지금 봐도 돼요?”




나는 노트북을 밀어주며 그러라고 했다. 민윤기는 한 손은 키보드에 두고 한 손에는 종이를 들고 피피티를 넘겼다. 발표문이었다. 피피티와 발표문을 번갈아보며 잠깐 중얼거리더니 마지막 장이 되었을 때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짬바가 느껴지네요.”

“내 부전공 피피티학과야.”

“템플릿 어디서 받았어요?”

“내가 만들었어.”

“진짜요? 완전 잘했는데.”

“부전공 피피티라니까.”




내 말에 민윤기가 웃었다. 미미하지만 속없는 웃음은 아니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은은하다.”

“네?”

“너 되게 은은하게 웃는 것 같아.”




내 뜬금없는 말에 잠시 말이 없던 민윤기는 또 그 은은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방탄소년단/민윤기] 민후배 2 | 인스티즈


“그런 말 처음 들어 봐요.”




그날 우리는 같이 강의실에 들어갔다.

























11월 5일 금요일.




발표날이 됐다. 10월의 끝자락에 준비했는데 벌써 11월이구나.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날씨가 추워졌다. 재킷 대신 과잠을 걸치기 시작했다. 점퍼형이라 꽤나 따뜻했다.




발표는 민윤기가 맡았다. 이수훈이 말한 ‘가장 고생하시는 두 분’이 맡은 건 피피티와 발표였다. 눈이 빠지게 자료를 넘긴 조원들과 거북목으로 키보드를 두들긴 조원에게는 섭한 말이었다.


발표순서는 조가 정해진 것처럼 랜덤이었다. 수업 시작 직전, 초록창을 켜 바로 사다리타기를 하시는 교수님은 거침이 없었다. 발표자가 아니라 조금은 느슨한 마음으로 줄이 그이는 사다리를 쳐다봤다. 여섯 개의 조 중 우리 조는 세 번째였다. 적당한 순서였다.




“출석 불렀어요?”




민윤기가 조금 급하게 내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니 뛰어 온 모양이었다. 나는 물병을 건네주며 대답했다.




“아직. 순서만 정했어.”

“세 번째네요.”

“긴장 돼?”

“아뇨. 저도 부전공이 발표라서.”




물을 마신 민윤기는 눈짓으로 고맙다는 표현도 잊지 않고 머리를 정리했다.


앞의 두 조는 모난 데 없이 발표를 끝마쳤다. 교수님의 짧은 질문에 짧게 대답하고 피피티도 발표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6조를 부르는 목소리에 민윤기가 일어섰다. 미리 저장해둔 피피티를 켜고 마이크를 잡았다. 평소에 듣는 목소리와 마이크를 통해 듣는 목소리는 새로웠다. 조곤조곤한 말투가 강의실을 울렸다. 낮지만 사람을 잡아끄는 울림이 있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발표의 흐름도 그랬다. 회의만치 물 흐르듯 진행됐다. 오디오가 빈 부분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찬양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그랬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봐도 그럴 것이다. 민윤기는 발표를 잘한다.


교수님과 학생들의 질문이 하나씩 있었다. 민윤기는 당황하지 않고 예의 그 은은한 미소를 띠고는 하나하나 답해줬다. 눈알을 굴리거나 서론처럼 ‘어……음……’ 하는 게 길지도 않았다. 내 전공지식은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처럼 말하는 감자라 할 수 있는데, 민윤기는 무슨 교수 같았다. 태도도 그랬고 내용도 그럴싸했다. 교수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보면 그럴싸한 게 아니라 정답인 것 같았다. 나였으면 어……음……거리다가 보다 못한 교수님이 설명을 빙자한 답을 줬을 텐데. 인재다, 인재. 완전 밥 사주고 싶네. 다른 조원들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민윤기가 들어오자마자 잘했다며 한 마디씩 했다.




“부전공 발표, 인정.”




내 말에 민윤기는 은은하게 웃었다.


























발표가 끝나면서 조별과제도 끝이 났지만 자리는 애매하게 유지됐다. 그러면서도 민윤기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자리에 앉았다. 누가 늦게 들어오면 자리를 잡아주기도 했고, 화요일 수업에는 과방에 있다 같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동안 과톡방에서는 ‘17 민윤기’가 열심히 공지를 날랐다. 나는 가끔 확인했다는 뜻으로 이모티콘을 보냈다. 내가 보내면 그 아래로 주르륵 다른 동기들이 이모티콘이나 짤막한 확인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민윤기가 공지를 나를 동안 나도 꽤나 바빴다. 내가 속해있는 대외활동모임에서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학과설명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와 지혜가 한 팀이 되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설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재작년, 지혜는 작년 경험을 되살려 기존의 예상 질문지를 보완하고 짤막한 대본을 만들었다. 이런저런 이벤트 물품과 상담일지 샘플까지 제작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설명회 개최 장소는 지혜 집보다 우리 집이 더 가까웠다. 때문에 이런저런 소품들로 가득 찬 방을 보다 내일 입을 옷을 꺼냈다. 16이 박혀 있는 과잠은 세탁한 지 얼마 안 돼 뽀송했지만 이리저리 구겨지고 금간 듯 떨어지려 하는 가죽 부분은 시간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했다. 어차피 내 설명을 들은 친구들이 입학하면 나는 없을 텐데. 몇 년 앞선 어른 입장도 실은 너희와 별 거 없다는 걸 말해주려면 그 친구들이 몇 년의 시간을 더 견뎌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왠지 아득해져 머리를 흔들고는 과잠에 뿌릴 섬유향수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다.


그리고 울리는 벨소리에 눈을 떴다.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집었으나 벨소리가 끊겼다. 덜 뜬 눈을 애써 비비며 확인한 액정에는 오전 3시라는 글자와 부재중 전화 5통이라는 글자가 동시에 떠 있었다.




“어 지혜야. 왜 전화했어?”

- 아, 여주야. 자고 있었지? 미안해.

“무슨 일인데?”

- 내가 갑자기 장염에 걸려서 응급실에 왔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염에다 과로가 겹쳐서 며칠 병원신세를 지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간의 지혜를 생각해 보면 갑작스러울 것도 아니었다. 눈곱을 떼면서 병원이름과 호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혹시 몰라 카톡으로도 보내달라고 했다. 행사가 끝나고 시간 나면 들릴 작정이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메시지와 카톡에도 지혜의 이름이 왕창 떠 있었다. 나는 줄줄이 늘어놓은 소품들에 한숨 쉬었다. 대타를 구해 본다고는 했지만 구해지지 않을 것을 알았다. 이 새벽에 갑자기, 오늘 오전 열시에 있을 행사를 부탁한다고 하면 대체 누가 해……. 돈이라도 줘야 겨우 할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거기까지 달려가면서 오를 택시비를 생각하며 다시 잠들었다.























11월 21일 토요일.




주말에 과잠을 입으면 기분이 묘하다. 나 대학생이에요, 광고하는 느낌이라. 지혜는 아프면서도 철두철미했다. 내가 택시 탈 것을 알고 얼마를 보내왔다. 굳이 거절은 하지 않았다. 거절하면 아주 비싼 밥을 먹이려 할 것이었다. 내 주위에 몇 없는 엄청난 친구였다. 기사님이 행사장 부스 안까지 짐 나르는 것까지 도와주시고 나서야 본격적인 행사 준비가 시작됐다. 행사라 해 봤자 내가 하는 것은 부스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밖에 없었지만. 미리 비치되어 있던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고 소품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다과와 설명 책자, 상담일지와 볼펜, 학과를 소개하는 미니배너 등. 부피가 큰 건 이벤트 선물이었다. 뽑기 상자는 모양이 구겨지면 안 돼서 가져오기 가장 까다로웠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그제야 주위를 둘러 볼 여유가 생겼다. 우리 앞에는 국어국문학과가 있었고, 양옆에는 경제학과와 사회복지학과가 있었다. 저쪽은 어문 계열이고 이쪽은 사회 계열인 모양이었다. 시간은 벌써 9시 55분이었다. 10시부터 학생들이 입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 대본을 대충 읽었다. 행사가 처음은 아니지만 2년 전 일이라 파트너 없이 혼자 하려니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방탄소년단/민윤기] 민후배 2 | 인스티즈


“안녕하세요. 저 안 늦었죠?”

“어……? 뭐야?”




그리고 곧바로 혼자가 아니게 됐다.




“지혜 선배 대신 왔어요.”

“네가?”

“네. 새벽에 급하게 연락 받았거든요.”

“대타를 진짜 구했네…….”




민윤기는 나와 같이 두툼한 과잠을 입은 채로 말했다. 나는 옆자리에 뒀던 짐을 뒤로 빼고 자리를 만들었다. 상담일지와 볼펜 몇 자루를 더 꺼내면서도 얼떨떨했다.




“주말이라 늦게까지 깨 있었거든요.”

“그래서 연락이 닿았구나.”




10시가 되고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오는 게 들렸다. 나는 급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학교와 학과를 설명하고, 상담일지를 작성하게 하면서 상담하고, 끝나면 이벤트에 참여시키는…….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민윤기가 정말 다 알아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설명이 덜 끝났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하나가 우리 부스 앞에 섰다. 내가 웃으며 눈길을 보내자 주저하던 발걸음이 내 앞으로 향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말을 끝으로 첫 상담을 시작했다.


10시부터 2시. 네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고, 민윤기는 생각보다 잘해냈다. 처음 하는 것 치고는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잘했다. 발표 때 느꼈던 느낌이랑 비슷했다. 표정변화가 크지 않던 평소와 달리 웃는 민윤기는 낯설기까지 했다. 저렇게 활짝 웃는 건 처음 봤는데. 잘 웃는 걸 보니 마음이 놓여서 나도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저희 내년에 여기 입학하면 언니 볼 수 있어요?”

“아, 어쩌지. 언니는 내년에 졸업하는데.”

“힝……그럼 오빠는요?”

“볼 수는 있는데, 그래놓고 우리 학교 안 온 애들이 많아서…… 좀 미심쩍네요.”




민윤기는 아이들의 돌발질문에도 능숙하게 답했다. 끝에는 약간의 의심의 눈초리로 답하자 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마지막 상담이 끝나고 마감시간이 다가왔다. 소품들과 자료를 챙기고 있을까 의자를 접어 올리던 민윤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거 다 선배 혼자 들고 온 거예요?”

“아니. 의자랑 책상은 다 주더라.”




책걸상을 물은 게 아닌 걸 알면서도 괜히 저렇게 답했다.




“지혜 선배한테 밥 사달라고 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장염 때문인데 뭐.”

“저 사준다고 했었으니까 그때 같이 얻어먹으면 되겠네요.”

“그럼 지혜한테는 나중에 얻어먹고, 오늘은 같이 점심 먹으러 갈래?”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한가득 든 짐을 덜어준 민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석에 명찰을 제출하고 소품은 우리 팀 트럭에 실었다. 진작 이랬으면 좋았을 걸, 수거해갈 때만 이러더라. 올 때와는 달리 품이 가벼워져 우리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나란히 버스에 앉아 무엇을 먹을지 정했다.


든든한 걸 먹고 싶다는 나의 의견에 따라 자취방 근처에 있는 덮밥집에 왔다. 주문을 마치고 수저와 휴지를 챙겨 앞에 놔주자 이미 내 앞에 놓인 물 잔이 보였다. 귀찮음이 많다면서 누군가를 챙기는 데에 익숙한 듯했다.




“너 잘하더라. 설명도 대충 해준 것 같은데. 너무 능수능란해서 놀랐어.”

“저도 작년에 이거 했었거든요. 다른 곳에서 한 거긴 하지만.”

“아아.”

“그리고 선배 설명도 충분했고요.”




나는 대답 대신 물을 마셨다.




“근데 너 저번엔 흑발이었잖아.”

“네? 아.”

“두피 안 아팠어?”

“세 번까진 괜찮았는데, 네 번째는 좀 아프더라고요. 근데 저 원래 알고 계셨어요?”

“응. 과대였잖아.”




지금도 과대고. 뒷말은 삼켰다. 원하는 정보도 얻었는데 자꾸 언급해서 불편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피부가 하얘서 그런지 잘 어울린다.”

“그래요? 제 주위에선 다들 나이 먹고 주책이라 그러던데.”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었다고……. 사회 나가면 다 어린이들인데.”

“그래서 그냥 했죠. 탈색.”




씩 웃는 얼굴이 낯설어 한참을 보다 음식이 나와서야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대놓고 쳐다봤는데 눈 안 마주친 게 용하네. 괜히 머쓱해져 음식에 코를 박고 먹었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안 먹어서 그런지 그릇은 금방 비워졌다. 금방 비웠다고는 했지만 워낙 느리게 먹는 편이라 식사시간은 꽤 길었다. 민윤기도 마찬가지였는지 비슷하게 수저를 내려놨다. 항상 밥을 같이 먹는 친구들마다 나보다 빨리 먹었다. 나를 기다려주는 그 시간이 괜히 미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그런지 매번 누군가와 밥 먹을 때마다 그릇에 남은 양을 가늠하며 먹었는데, 이번에는 누구 하나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머쓱했던 것도 잊어버리고 왠지 기분이 좋아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오자마자 말했다.




“좀 아쉽지 않아?”




민윤기는 가게 문을 닫으며 나를 돌아봤다.




“원래 오늘 지혜랑 밥도 먹고 술도 마시기로 했었거든.”

“아.”

“근데 네가 오늘 지혜 대타니까 술도 마셔줘야겠다.”




갈래? 내가 살게. 제안의 옷을 입은 강제였다. 이대로 집에 가 봤자 잠만 잘 것 같았고, 선약이 어쩔 수 없이 깨져버렸으니 깨진 흥을 주워 담아야 했다. 하지만 곤란한 기색을 비치는 순간 강제를 주워 담을 생각이었다. 불편한 사람이랑 술 마시는 것만큼 주말을 낭비하는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민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갈 건데요?”




그렇게 나는 강제 대신 흥을 주워 담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희재와 개총 때 갈까 생각했던 곳이었다. 새로 생긴 곳이라 인테리어가 번쩍번쩍 했고, SNS를 저격한 문구들이 네온사인으로 걸려 있었다. 오픈하고 첫 손님인지 주위가 조용했다. 하긴, 술 마시기 조금 이른 시간이긴 했다. 그래도 해가 짧아 밤은 금방 온다. 그리고 밖이 아무리 밝아도 안이 이렇게 어둡고 딱 좋은 음악이 깔려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나는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술 잘해?”

“그냥 그래요.”

“주량 얼만데?”

“두세 병?”

“그냥 그런 게 아닌데……?”




내 말에 민윤기가 웃으며 물었다.




“선배는요?”

“나는…… 반 병.”




술 못 하는데 술 마시러 왔다고 비웃을까 봐……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주량에 내가 웃겨 보일까 봐 한 병으로 속일까 싶었지만 관뒀다. 어차피 다 뽀록날 터였다. 방금 밥 먹었으니 안주는 간단하게 한 종류로 시켰다. 음악은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히 비워진 오디오를 채워줬다. 물론 술이 들어가고 손님이 몰려오면 모두 무용지물 될 것이었지만.


민윤기는 술잔과 물 잔을 나눠 또 물을 따랐다. 술이 나오자 또 술을 따랐다. 우리는 안주 없이 첫 잔을 나눠 마셨다.




“근데 선배도 힘들었겠어요.”

“뭐가?”

“대외활동도 하는데 조장까지 맡았잖아요.”

“조금 바쁘긴 해도 나쁘진 않았어. 그리고 조장은…… 솔직히 말하면 우리 조 너무 잘 되고 있어서 놀라는 중이라.”

“그렇긴 하죠. 다들 안 빼고 열심히 하더라고요.”

“학번이 높아서 그런가? 다들 조별과제에 너무 데여왔던 거지.”

“데인 적 많으신가 봐요.”

“응. 너는?”




이어 안주가 나왔다. 나는 빈 잔을 따르며 물었다.




“저도 많죠.”




그리고 우리는 술과 함께 조별과제 불행 배틀을 시작했다. 보노보노 피피티를 능가하는 캐릭캐릭 체인지 피피티와 나무위키로만 가득 채운 자료조사는 물론이요, 발표자의 당일 결석과 제사가 일주일에 다섯 번 있었던 조원……. 술이 들어가니 말이 술술 나오면서도 꽤나 과격해졌다. 무슨 놈 무슨 새끼라 칭하며 우리를 불행하게 했던 조원들을 한껏 욕하자 술도 금방 동이 났다. 나는 내가 사는 거니까 더 시키라고 말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시키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빠르게 다음 안주와 술이 대령됐다. 시간은 또 빠르게 흘렀고,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음악소리가 점점 말소리에 묻혀 안 들릴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나 술 늘었나 봐!”




일어났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지도 않고 휘청이지도 않았다. 분명 반 병 넘게 마신 것 같은데. 민윤기도 멀쩡해보였다. 딱 기분 좋게 알딸딸한 정도. 가게를 나온 우리는 바로 옆에 담배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 사람들에 서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묻지 않고 옆 골목으로 빠졌다. 원래 술 마시면 더 땡기는 법이었다.




“선배 저랑 같은 거네요.”

“난 이게 제일 좋더라. 다른 거 다 피워 봐도 결국 이거로 돌아오더라고.”

“저도요.”

“아, 말 편하게 해도 돼. 이걸 잊고 있었네.”




우리는 그때처럼 나란히 서서 연기를 내뿜었다.




“우와 취한다.”

“갑자기요?”

“원래 담배 피우면 더 취하잖아.”

“이제 가요, 춥다.”

“잠깐만 나 아직…….”

“미안해요. 천천히 피워요.”




허겁지겁 필터를 빨아 당기자 민윤기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진짜 웃었다. 소리 내어 웃는 얼굴이었다. 말 옆에 키읔이 두어 개쯤 붙은. 음, 취해서 왜곡된 건지는 내일의 내가 확인하면 된다.


우리는 골목을 나와 집 쪽으로 걸었다. 술이 늘기는 개뿔이. 일어서니까 혈관으로 알코올이 순환하는 게 느껴졌다. 덧보태 니코틴까지 들어가 진정 성인임을 온몸으로 깨닫는 중이었다. 남들은 마시면서 는다던데 아직도 이 모양인 걸 보니 나는 예외인 듯했다.




“잘 가~ 오늘 고생했어.”

“어디 가요, 같이 가요.”

“너 집 안 가?”

“데려다드릴게요.”

“뭘 데려다드려 가깝구만.”

“가까우니까 데려다드릴게요.”

“말 안 놓을 거야?”

“아. 놨으면 좋겠어요?”

“아니…… 나는 상관없어. 너 편한 대로 해.”

“내일 기억하면 놓을게요.”

“나 그 정도는 아니거든…… 너야말로 기억해.”

“저는 주량 반도 안 마셨는데요.”

“이상하다…… 술값이 반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 축축 늘어졌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입술을 떼는 속도가 느려지는 느낌이었다. 민윤기 집에서 우리 집은 멀지 않아 금방 왔다. 현관 앞에서 민윤기에게 손을 흔들었다. 말하는 것보다 조금 더 느리게. 민윤기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방탄소년단/민윤기] 민후배 2 | 인스티즈


“누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리고 나는 민윤기가 누나라고 불렀던 것을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기억하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원래는 상중하로 세 편만 쓰려고 했는데 더 늘어날 것 같아서 1, 2, 3으로 업로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윤기 주량 저거보다 많은데 속인 거예요 ㅋ ㅋㅋ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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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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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방금 1편읽고 바로 읽으러왔는데 작가님 상중하로 끊었음 아쉬울뻔했어요! 너무너무 재밌네용!! 잔잔하고 그냥 캠퍼스물인데 우당탕탕 이런거 없고 막 전개가 빠르지도 않고 딱 좋은거 같아요! 다음글도 기대하며 있겠습니다! 작가님 화이팅 해서 또 글쪄와주세영❤️
4년 전
육일삼
저는 개인적으로 딱 떨어지는 거 좋아해서 아쉬웠는데 독자님이 좋아해주시니 다행입니다 ꒰◍ˊ◡ˋ꒱੭⁾⁾  우당탕탕도 언젠가는.. 다른 멤버로 올라오지 싶어요 껄껄..*^^* 우리 모두 파이팅해요 파이팅!!
4년 전
독자2
윤기 후배....저랑 만나줘요ㅜㅠㅠ
4년 전
육일삼
아나 너무 정직하셔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윤기후배의 반응이 궁금해지네요*^^*
4년 전
독자3
작가님 오늘의 이야기 정말 잔잔하고 평화로운 캠퍼스물 하 정적이라 너무 좋아요 중간중간 윤기 웃는거 표현도 잘 해주시고.. 윤기가 어떤 표정으로 웃는지 그려진다니까요💜다음 화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4년 전
육일삼
헉 다행입니다 이게.. 키읔을 안 쓰니까 그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리저리 말을 붙여봤는데 좋아해주시니 다행입니다꒰◍ॢ•ᴗ•◍ॢ꒱  다음 화도 얼른 들고 오겠습니다 우리 3화에서 만나요💜!!
4년 전
독자4
윤기 후배 저도 만나보고 싶어요 ㅎ휴ㅠㅠㅠ
4년 전
독자5
작가님 넘나잼나게 보고있어요 작가님 가사해여 후배윤기 넘조아용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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