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랑 죽고 못 하는 친구 사이
(부제 : 조금 혼란스러운 사이)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 함께 지내왔던 경수와 나는 종종 가족들끼리 모여 여행을 가곤 했다. 한 번은 다섯 살 때 경수와 나는 수영장에 발을 디딘 적이 있었다.
수영장을 처음 와본 경수는 가지 말라는 나의 만무에 불구하고 신기하다며 2M짜리 성인용 수영장에 발을 담그다 몸이 미끄러져 그대로 수영장 물에 풍덩 빠진 적이 있다.
그 후 경수는 수영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며 괜한 화풀이를 나에게 부려댔다. 또 한 번은 놀이동산에 놀러 간 우린 괜히 서로 티격태격하다 손을 놓쳐
길을 잃은 이후 그 날 펑펑 울고 며칠 간 집에서 꼼짝없이 지냈던 적도 있었다. 쨌든 한 마디로 경수와 나는 어릴 적부터 정말 당연하다 듯이 두텁게 지내왔다.
손을 잡는다든가 헤어지기 전 포옹을 한다든가 그런 행동들이 원래 당연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우리는 이성에 대한 감정이 다른 또래 애들보다
굉장히 무지했고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경수도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린 당연하다 듯이 손을 꼬옥 잡은 채
교문을 들어섰고 주위 애들은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는 문득 의문점 하나가 뒤늦게 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경수와 나는 무슨 사이인가. 나는 그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시원하게 찾지 못하고 경수와 나는 눈 깜짝할 새에 1학년을 지나 2학년이 되었다. 아, 세륜.
" 야. 이거 먹어봐. "
" 나 매운 거 싫어하잖아. "
" 그러니까 먹으라고. "
너나 먹어. 먹으란다고 커다란 떡볶이를 한입에 집어넣는 경수에 한심하다 듯이 혀를 몇 번 쯧쯧 찼다. 시간이 지나음에 무색하게도 항상 경수와 붙어 다니면 듣는 질문이 있다.
너 도경수랑 사귀어?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그런 멍청한 애랑 왜 사귀어.
아무리 시원하게 답을 해주어도 주위 친구들의 수상하다는 눈초리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2학년에 들어서면 그런 눈초리가 조금이나마 떨어질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벗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득하게 물어오는 질문들은 전과 다르게 더 얄팍해졌다.
처음엔 왜 이리 경수와 나 사이를 주위 친구들이 이리 신경을 많이 쓰나 했더니 뜻밖에 경수는 주위 여자애들 사이에 말이 오고 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도경수 존나 못생겼는데…. 저런 애가 뭐가 잘생겼다고 지나갈 때마다 꺄악거리는 건지 모르겠다.
꼬추도 존나 작은데. 한참 어릴 적 목욕탕에서 한 번 본 경수의 미더덕 생각에 불쾌한 미소를 띠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이 빨던 포크로 내 포크를 탁탁 치는 경수의 행동에
음탕하고도 더러운 추억을 잠시 접어두곤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 순대라도 먹어. "
" 징그러워. "
" 뭐가 징그러워. 씨발. 네 얼굴이 더 징그러워. "
미친놈아. 왜 존나 시비야. 떡볶이를 씹어대며 내 포크를 계속 탕탕 치는 경수의 눈을 포크로 찌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는 뜨거운 오뎅 국물을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 아. "
속 뜨거워. 미간을 한 번 좁히며 튀김을 먹으려 손을 움직이는데 먼저 선수 친 경수가 멋스러운 튀김을 하나 포크로 찍어 빠르게 나에게 내민다.
" 센스 없긴. 떡볶이 국물에 찍어줘. "
" …그냥 주는 대로 처먹을 것이지. "
욕을 한 번 씹어대며 떡볶이 국물에 대충 튀김을 찍으며 다시 '아' 라는 소리와 함께 내 앞으로 들이 내미는 경수. 그제야 나는 경수의 튀김을 받아먹곤 어느새 싹싹
비운 접시를 차곡차곡 쌓았다. 아, 뜨거! 정리하는 내 뒤에서 몰래 마지막 떡볶이를 거침없이 입에 넣던 경수가 입천장이 뎄는지 짧은 비명을 내지른다.
뜨거움에 몸을 비틀며 발을 동동 굴리는 경수의 모양새가 웃겨 접시를 정리하다 말고 안면붕괴를 하며 껄껄대니 웃지 마라며 내 머리를 아프지 않게 밀어낸다.
그리곤 입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씹어대며 겨우겨우 삼킨 경수가 웃는 거 존나 기분 나빴다며 내 머리를 잡아당기다 이내 먹은 것들을 계산하곤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 야. 하지 마. 그거. "
" 뭐. "
"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거. "
내 말에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로 멀뚱하게 쳐다보는 경수. 얘는 소문이라는 거에 둔한가? 경수와 내가 사귄다는 소문이 애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내 귀에까지 들어 오는 건
당연하고도 뻔한 일이었다. 스킨쉽을 좋아하는 경수가 무의식적으로 지금처럼 내 어깨에 팔을 두르던가 누가 보든 말든 내 볼에 서슴없이 뽀뽀한다든가
가끔은 갑자기 툭 튀어나와 백허그를 하는 행동이 어느새 경수와 내가 둘이 벌써 잤다는 소문까지 돌게 만들 정도였다. 내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골치가 아픈데.
" 요즘 우리 이상한 소문 돌아. "
" 뭔 소문. "
" 존나 둔해. 너랑 사귄다는 소문. "
" 그런 소문이 왜 돌아? "
왜 도냐고? 지금 네가 하는 짓을 봐. 답답한 마음에 팔을 박력있게 뿌리치곤 경수를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아, 왜! 뒤에서 짜증 섞인 경수의 외침과 동시에 바로
내 빠른 걸음을 따라잡아 자연스레 나란히 걷는 경수에 뒷골이 절로 땡겼다. 그 순간 난 더는 이 자식이랑 이렇게 계속 붙어먹었다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미쳤다.
솔직히 내 성격상 소문이란 거에 별 신경을 두지 않지만, 요즘 들어 내가 경수를 본의 아니게 잡아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물론 경수와 나는 그저 친구 사이에 불과했다. 아, 뭐라고 해야 하지.
경수와 나 사이의 끈을 더는 느슨하게 풀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
" 도경수. "
" 응? "
" 여소 받을래? "
내 말에 으응? 이라는 작은 외마디를 소리를 내며 걸음을 차츰 낮추는 경수. 나도 경수 따라 걸음 속도를 낮추고는 생각에 빠진 경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뭘 고민해. 받으라면 받을 것이지.
" …누군데? "
한참 정적 뒤에 나온 경수의 물음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듯이 평소 나에게 경수 얘기를 침 마를 정도로 하던 친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여주었다. 얘 남자들한테 인기 진짜
많고 성격도 진짜 좋아. 너 웃는 얼굴 예쁜 여자가 좋다며. 얘 눈웃음 개쩖. 진짜 뻑 갈껄? 키도 적당하고 공부도 잘한다? 그리고.
" 존나 못생겼는데? "
" ……. "
" 안 받을래. "
…도경수가 이렇게 눈이 높았나? 한껏 떠들어대던 내 입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도경수 주제에 뭔 얼굴을 따지고 있어. 계속 못생겼다며 툴툴거리는 경수의
면상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애써 꾸역꾸역 참고는 이리저리 여소 해줄 애들을 구하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도경수 이 병신 같은 녀석은 하나같이
다 못생겼다며 아주 자신의 눈은 존나게 높으니 개여신이 아니면 안 받겠다는 거만한 태도를 뽐내었다. 재수 없는 놈….
도경수. 너 설마.
" …게이야? "
이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미친년이. 진지하게 물어오는 내 말에 입에 걸레를 문 채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는 경수. 아, 폰을 왜 뺏어…!
자연스럽게 카톡 비밀번호를 풀곤 카톡 친구 목록을 휙휙 둘러보더니 뭔 나 같은 애들밖에 없냐며 나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네가 뭔데 내 친구들 계속 무시함? 씨발.
듣자 듣자하니 기분이 더러워져 이번엔 갤러리에 들어가 내 셀카를 보고 있는 경수의 얼굴을 일부러 힘을 잔뜩 준 채로 홱 하고 밀어냈다. 폰 내놔.
내 찰진 손맛에 조금의 콧방귀도 뀌지 않고 한참 손가락을 움직이며 사진을 감상하던 경수는 이내 끓어오르는 분노에 헐크로 변해가는 내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치더니
" 이 셀카 톡으로 보내줘. "
라는 뻔뻔한 말과 함께 폰 액정에 선명히 비추고 있는 내 셀카를 가리킨다. 존나 병신같이 나왔는데? 나의 의문 섞인 말에 그나마 사람처럼 나왔다며 보내달라고 재촉한다.
경수의 침도 안 바르고 나온 사탕 발린 말에 난 그대로 말려들고 말았다. 쟤가 나보고 사람 같다는 소리도 다 하네. 웬일이야. 씨발. 이런 거에 감동하는 나도 참 불쌍하다.
결국, 난 아까의 와이파이처럼 콸콸 터지던 분노도 잊은 채 졸라 귀척한 뿌잉뿌잉 셀카를 경수의 톡으로 보내주고는 우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
※그날 밤 톡 ver.※
야. 뭐함?
뭐하냐고
뭐해
씻고 있었음 왜?
심심해서
오늘 혹시 기분 나빴던 거 아니지?
? 기분이 왜 나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네 친구들
다 못생겼다면서 짜증 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맞다ㅡㅡ 졸라 짜증 났음
욕하지마ㅠㅠ
뭐 씨발ㅠㅠ 기껏 해졌더니 다 까기만 까고 .. 도경수 주제에ㅠㅠ
씨발 욕하지마ㅠㅠ
너나 하지마ㅠㅠ
쨌든 그런 너에게 사진을 하나 줄게
ㅇㅇ
기다려보
봐
ㅏ
사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포즈 해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했음?
ㅋㅋㅋㅋㅋ뭘 해 병신아;
거울을 보고 저 포즈를 하면 기분이 풀린다잖아 ..
으..응...(그냥 존나 가만히 있어야겠다)
기분 좀 풀렸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 같은 거 보내주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지 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존나 빠개네;
ㅇ;; 풀림
ㅇ
애들한테 저 사진 보내줘야지
그래 내일 봐 ㅂㅂ
ㅂ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