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지만 괜찮아
w.1억
"사실은.."
내가 아프다는 걸 '사실은'덧붙여 말해야 된다는 게 조금 슬프긴 했다.
내 말을 듣기 위해 나를 바라보는 언니는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심장이 좋지 않아서 약을 자주 먹고 있구요."
"……."
"등산 갔을 때도 계속 저만 늦었던 게.. 무리하면 안 돼서."
"아, 진짜?"
"…네."
항상 나를 무시하고, 아래로 보았던 친구들과는 반응이 사뭇 달랐다.
"하나도 티 안 나서 몰랐어. 약 먹는 것도 못 봤는데???"
"…몰래 먹었으니까요."
"아.. 그래? 왜? 왜 아픈 거 숨겨????"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어. 여태 동안 제가 아픈 걸 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무시하고.."
"미친놈들. 누가 그러디? 아픈데 왜 무시를 해?"
"…모르겠어요. 같이 놀러갈 때도 힘들어서 잠깐 쉬면.. 나 두고 앞장 서서 가서는 앞담을 하기도 했구.."
"진짜??? 언제!"
"…대학교 다닐 때요 ㅎㅎ."
"별 미친년들이 다 있구만? 그걸 그냥 뒀어????????'
"…응."
"진짜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나중에 만나면 내가 진짜 확 그냥!!!"
"그리고.."
"그리고?"
아직 할 말이 더 있었다. 이재욱의 대한 얘기 말이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면, 언니가 뭔데- 하고 코를 팠고, 나는 그 모습에 괜히 픽- 웃다가도 입을 천천히 열었다.
"사실은 이재욱이랑.."
"양다리!?!??!?!"
"아, 아니요!! 그런 거 절대 아닌데.."
"어.. 미안 순간 흥분했어. 말해."
그때의 일들을 얘기해주자 언니는 곧 막 심한 욕들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언니에게 웃어주며 말했다.
"그래도.. 이젠 괜찮아졌어요. 다 지나간 일이니까.. 이재욱이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신경 안 쓰려구 해요.."
"신경이 안 쓰여져? 그런 소릴 들었는데.. 진짜 미친놈이네.. 애가 원래 싸가지 없는 건 알고 있었는데."
"싸가지..."
"그래! 싸가지 없어. 애가 생긴 것도 되게 막 무섭게 생겨가지고는 막 내려다보면서 '뭐요' 이러는데 크으.. 한대 때릴까 싶었는데. 진짜 때릴 이유가 생겼네."
"ㅎㅎ 싸가지 없긴 하지만.. 애가 친해지면 정이 많아서 착해요."
"정 많아서 착하다는 애가 너한테 그런 못 된 소리를 하냐."
"…착하던 애가 갑자기 차가워진 이후로 그래서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너무 섣불렀나봐요."
"…긍정적이게 생각 하지 마. 진짜 저런 막말하는 새끼들은 다 진짜!"
"…ㅎㅎ."
"진짜 대박이다. 회사에서 다시 만난 것도..."
"그러게요."
비밀을 다 털고나니 정말 별 거 아니었다. 그래서 더 신기했다.
이 별 것도 아닌 얘기로 나는 왜 고생을 하고 있었던 거였을까.
새벽에 언니는 자는데.. 잠이 너무 안 와서 잠깐 펜션에서 나왔을까.
펜션 앞에 누군가가 담배를 피고 있기에.. 누군가 싶어서 몸을 기울어 확인해보자..
"……."
화들짝 놀라는 이재욱이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이재욱의 모습이 꽤 볼만하고 웃겨서 픽- 웃으며 말했다.
"귀신 봤어?"
"…뭐야, 이 시간에 안 자고."
"잠이 안 와서."
"…두신데."
"응. 넌?"
"…원래 늦게 자."
"…아."
이재욱은 담배를 발로 비벼 껐고, 난 뒷짐을 진채로 그런 너를 바라보았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담배냄새만 맡으면 인상을 쓰던 네가, 담배를 피고 있다.
"언제부터 핀 거야?"
"군대 가서."
"고등학생 때는 담배피는 사람들만 봐도 욕했잖아."
"…그러게."
"몸에도 좋지도 않은 걸."
"…끊어야지."
"여자친구 없어?"
"……."
대답이 없는 너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내게서 조금씩 떨어졌고.. 물음표를 띄운 채로 바라보면 너는 내게 말한다.
"없어."
"…왜 그렇게 떨어져?"
"담배 냄새 나니까."
"…아. 괜찮은데."
"……."
"근데 왜 여자친구 없지.. 네가 눈이 너무 높아서 그런가."
"…그런가봐."
"하긴.. 아까 낮에 그 여자분한테 번호 안 준 것부터 알아봤어."
"추운데 들어가지."
"응. 들어가야지."
"응."
생각보다 춥네.. 중얼거리며 들어가려고 계단을 밟고 올라섰을까, 이재욱이 나를 불렀다.
"이그리."
"…어?"
뒤를 돌아보면 너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아니야.얼른 들어가."
시시하게 그 말을 한 뒤에 담배 하나를 더 꺼내는 너를 보며 나는 궁금한 듯 너를 바라보다가 펜션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걸까. 너의 표정이 너무 슬퍼보여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너네 술 더 안 마셨어? 당연히 마셨을 줄 알았는데. 둘 다 멀쩡하네?"
"저 이제 금주한다니까요 ㅎㅎ."
"금주?? 진짜?"
"네. 여태 많이 마셨으니까 뭐.."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금주 프로젝트???"
"…그럼요!"
"화이팅 해보자."
신팀장의 행동에 언니가 한참 손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주먹을 쿵- 부딪힌다.
저 행동을 하고선 먼저 펜션에서 나가버리는 신팀장에 언니가 내게 달라붙어서는
"봤어? 봤어?????"
"ㅎㅎㅎㅎ봤어요."
계속 설렌다며 얘기를 하는데. 나까지 다 설레어왔다.
윗층에서 가방을 가지고 와야 돼서 언니에게 '잠시만요'하고선 계단을 밟고 올라가고 있었을까.
갑자기 뒤에서 언니가 '그리야!'하고 부르는 바람에 뒤를 돌아보았을까..
발을 삐끗 해버렸고, 마침 내 뒤 따라 계단을 밟고 올라오던 이재욱 위로 넘어져버린 것이다.
모두가 놀라 우리를 보았고, 아픈 건 둘 째 치고 너무 놀래서 이재욱 위에서 내려와 입을 틀어막았다.
손목이 아픈지 손목을 잡고 인상을 쓰고 있는 너의 행동을 보자마자 나는 큰일났음을 느꼈는데.. 정신을 차린 너는
"이그리."
"…어?"
"…괜찮아? 너?"
나를 먼저 챙겼다. 나는 아픈 곳이 없는데. 걱정 하는 표정으로 나를 먼저 살피는 네 모습에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 했다. 분명 더 아픈 건 너일텐데.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이재욱을 보았다.
"재욱이 너 괜찮아?"
"……?"
"손목 완전 꺾였ㄴ.."
"…야 이재욱... 쿵 소리 엄청 크게 들렸는데.. 진짜 괜찮아? 그리는 괜찮아."
"전 괜찮으니까. 이그리나 챙겨줘요. 놀랐을 텐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2층오 올라가는 너는 나를 너무 당황스럽게 했다.
나뿐만이 아닌, 모두를 당황스럽게 한 게 분명했다. 모두가 벙찐 표정으로 이재욱을 보았고.. 곧 '짐 챙기자..괜찮다니까..'하고 분위기를 푸는 서주임에
다들 하나둘씩 그래! 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언니가 '괜찮아?'하고 내게 다가왔고, 나는 '네..'하고 고갤 끄덕였다.
버스를 탔고, 회사까지 2시간을 더 가야 했다. 모두가 지쳐서 잠에 들었고..
나는 이어폰을 꽂은 채로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보다가 대각선으로 보이는 너를 훔쳐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때처럼 나를 걱정해주던 모습이 보여서 너무 놀랐다. 그리고..
"……."
분명 아까 아파서 꼭 잡았던 손목은 퉁퉁 부어있었다.
아픈 게 분명한데 티 안 내고 꾹 참는 너에게 너무 미안했다.
창밖을 보고 있는 너를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네가 너무 너무.
"……."
"그리씨!!!!"
"네!?"
"…그리씨 오늘 완전 넋 나간 거 알죠? 아주 그냥 한 번만 더 대답 안 했어봐. 나 며칠동안 그리씨랑 절교할 뻔 했잖아?"
"…아, 미안해요."
"왜 그래요? 무슨 생각 해?"
"…저 때문에 다친 사람이 있어서요."
신경이 쓰였다.
5년전
그때
"그냥 이재욱이랑 나는 분신이라 생각하면 돼. 나 얘랑 어렸을 때부터 친구거든. 나랑도 친하게 지내자! 난 알지? 나! 전교회장!"
"…아, 응."
"너네 좀 웃어라! 내가 뭐 안 웃는 애들 사이에 껴있는 스마일귀신이냐?? 정색킹은 이재욱으로도 만족한다구! 그리야! 너라도 웃어! 웃어!"
"웃기지도 않은데 웃으라 그러면 누가 웃냐?"
"그냥 웃으면 되지!!"
"세상 사람들이 다 너랑 같냐?"
"같으면 되징!"
"진짜 한대 때릴까."
"떄려봐라~~"
둘이 막 투닥 거리면, 그리가 픽- 웃었고.. 그런 그리를 보며 재욱도 픽- 웃는다.
동희가 그런 재욱을 보더니 곧 그리를 보더니 따라 웃으며 말한다.
"그래애! 호탕하게 하하하하! 하고 안 웃어도 좋으니까. 그렇게 썩소라도 지어라!"
"닌 이게 어딜 봐서 썩소냐?"
어쩌다보니 셋이서 같이 등교하고, 하교하는 일도 많이 생겼다.
동희와 재욱 그리는 셋이서 매일 같이 다니게 되었고, 여자들은 그런 그리에게 질투를 했다.
그리고 소문도 참 이상하게 돌았다.
'아픈데 그냥 놀아주는 거래.'
'이그리랑 동희랑 재욱이랑 사귄대. 무슨 두명이랑 사귀는 경우가 다 있지?'
'아 그리도 불쌍하다.'
그래도 이 셋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다녔고, 그리도 웃음이 꽤 많아졌다.
"……."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셋.. 동희는 책을 찾으러 가더니 오랫동안 오지 않았고.
재욱은 책을 읽다가 허리가 아픈지 허리를 폈을까..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서 자고있는 그리를 보며 잠깐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리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려고 했을까. 갑자기 눈을 뜨는 그리에 재욱이 놀란 티 한 번 내지도 않고 바로 딱밤을 맞춘다.
그리가 '아!'하고 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았고, 재욱이 웃음을 참으며 다른 곳을 본다.
"…뭐야."
작게 뭐야- 하자, 재욱이 어깨를 으쓱하고선 책을 본다.
"ㅎㅎㅎㅎ 그리 입에 소스 묻었엏ㅎㅎㅎㅎㅎ."
점심에 밥을 먹다가도 그리가 급히 입을 닦으면, 동희가 '뻥인뒈~'하고 놀렸고.. 그런 동희를 보며 재욱은 고개를 젓는다.
학교가 끝나고 동희가 자연스레 재욱과 그리의 반 뒷문에 서있었고.
그리가 가방을 매면, 재욱이 그리에게 다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그리가 고갤 들어 재욱을 올려다보며 작게 웃으면, 재욱이 괜히 틱틱 거린다.
"뭘 웃어."
"…에?"
"웃으니까 못생겼어."
"아? 진짜?"
"아침에 거울 보면 무슨 생각 드냐?"
"아…."
"ㅋㅋㅋㅋ."
"치.."
재욱이 웃으며 뒤돌아 먼저 뒷문을 열고 나가면, 갑자기 웬 여학생이 재욱에게 선물박스를 건네주며 말한다.
"…좋아해!!"
"…아, 미안."
"…괜찮아. 차일 거 생각하고 준 거니까..! 그럼 이거 먹어줘! 초콜렛인데 만들었어!..."
"괜찮아."
"부탁이야! 받아줘.."
"…줘, 그럼."
재욱이 선물을 받았고, 그리가 뒤에서 나가지도 못 하고 빼꼼히 고갤 내밀고 재욱을 보고 있자, 동희가 그리에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같이 손을 흔들었을까. 재욱이 앞장서 걸었고.. 동희와 그리가 놀래서 뒤늦게 재욱을 따르면.. 재욱이 그리에게 선물박스를 준다.
"…응?"
"너 먹어."
"내가? 아, 아니야! 네가 받은 건데.."
"그럼 버려."
"어????"
"야! 왜 버려! 나 먹을래! 야 그리야! 같이 먹자!!!"
선물박스를 받은 그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동희에게 건네주면, 저 멀리서 재욱에게 고백을 한 여학생이 울면서 그리의 욕을 한다.
그리고 재욱은 무심하게 걸으면서 초콜렛을 먹으며 좋아하는 동희와 그리를 보며 웃는다.
"아! 오늘..우리집 올래? 엄마가 너네 놀러오라고 그랬는데..."
"아, 진짜?? 갈래! 무조건 가지!!! 이재욱 너도 갈 거지!? 그치?"
동희의 말에 그리도 '갈 거지?' 하고 웃었고, 재욱이 그런 그리를 한 번 보았다가 다른 곳을 보며 말한다.
"…생각 좀 해볼게."
"…야 무슨 생각이야! 그냥 가 ㅡㅡ."
"나 화장실 좀 갔다오게쑤다!!!"
동희가 화장실 좀 갔다온다며 방에서 나갔고.. 그리와 단둘이 방에 남은 재욱은 아무 말도 없이 그리를 본다.
그리가 '아 맞다!'하면 재욱이 급히 눈을 피한다.
"다음주에 영화 보러 갈래? 동희랑 셋이서!.. 아빠가 티켓 있다고 해서..!"
"무슨 영화."
"음.. 가서 확인해보자. 나는 아무거나 다 좋아서."
"셋이서?"
"응!"
"둘이 가자."
"응??"
"…김동희 쟤는 공부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
"그리고 쟨 영화 안 좋아해."
"아, 진짜? 영화 안 좋아해?..."
"어. 쟤는 답답한 거 싫어할 걸?"
"…아, 몰랐네. 그럼 둘이 가지!..뭐...ㅎㅎ"
사실은 그리는 둘이 가는 게 부끄러워서 셋이서 가자고 했던 거였고.
재욱은 둘이서 가고싶어서 거짓말을 한 거였다.
"너 근데 학교에선 예뻤는데. 집에서 보니까 되게 못생겼다?"
"…학교에서도 못생겼다고 했잖아?"
"지금이 더 못생겼어. 생각이 바꼈어."
"아?"
"ㅋㅋㅋ."
"장난이지 또... 맨날 놀려 왜?"
"너 손이 왜 이렇게 작냐?"
"…나??"
그리가 손을 펼쳐보이자, 재욱이 그 손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춰본다.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손크기 차이에 그리가 웃었고. 재욱도 그 따라 웃는다.
"너 손 짱 크다.."
"네가 작은 거야."
"……."
"귀엽냐 왜 이렇게."
"나?"
"너 말고 손."
"아..ㅎ"
"바보냐?"
"ㅎㅎㅎ.."
방에 들어오려고 했던 동희가 웃음 소리를 듣고서 들어가지 않고 멈춰서서 둘의 모습을 본다.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동희가 곧 굳은 표정을 풀고선 웃으며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선다.
"야아!!!야아아아아!!! 오늘 저녁 떡볶이 콜??"
재욱은 학교가 끝나고 선생님과 상담이 있어서 상담을 하고선 나왔을까.
음악실로 오라는 동희의 문자에 음악실로 향한다.
음악실 문이 열려있기에 재욱이 문 앞에 서서 혼자 앉아서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치는 그리를 보며 인사하려고 손을 들었을까.
"……!"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동희가 그리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
재욱은 뻘쭘한 손을 주머니 안에 넣고선 곧 뒤돌아 건물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동희와 같이 피시방에 간 재욱은 착잡하면서 티 하나 안 내고 게임을 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동희가 '할 말 있어..'했고, 재욱은 '말해'하며 게임에 집중을 한다.
"…나 그리 좋아해."
"……."
"근데 그리도 나 좋아하는 것 같아."
재욱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동희가 웃으며 그리와 같이 나눈 카톡 내용을 보여준다.
- 엄청 좋아해.. 너무 좋아.
[진짜?.. 언제부터?]
- 처음 봤을 때부터..!
[몰랐네... 진짜.. 몰랐어!...티를 하나도 안 내서..!]
- 나름 많이 냈다고 생각했는데..
- 용기 많이 냈어. 진짜.. 너무 떨려서..
[(이모티콘) 허얼..]
- 지금도 너무 보고싶다...
보고싶다며 좋아하는 걸 티내는 그리의 카톡 내용에 재욱은 '사귀면 되겠네'하고 다시 게임에 집중을 한다.
이제서야 모든 게 맞춰졌다. 둘이 음악실에서 입을 맞췄고.. 둘이 유독 잘 웃고,잘 놀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 며칠 뒤엔.
"야 이재욱.. 너 괜히 그리한테 뭐라 하지 마라?"
"뭐래."
"…아, 아니야."
"뭔데. 말을 해."
"…아냐!"
"말 하라고."
"…아니 요즘 너 소문 이상하게 난 거.."
"……."
소문이 이상하게 났었다. 다른 학교 여자에게 욕을 하면서 고백을 찼다는 소문과.. 때렸다는 소문.
그 소문은 절대 아니었지만, 모든 애들은 소문을 믿기 시작했었고.. 그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거 그리가 그랬다고 해서.. 난 알고 있을 줄 알았어. 그리한텐 뭐라 하지 마!.. 그리고 다른 애한테 소문 듣고.. 잘못 알고 그런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어?"
"이그리가 소문 냈다는 거 확실해?"
"…이거."
동희가 재욱에게 카톡 캡쳐본을 보여주었고, 재욱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치며 다른 곳을 보았다.
정말로 그리와 동희가 카톡을 한 내용에.. 그리가 직접 소문을 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한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배신감에 너무 화가 났다.
나는 너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나는 너의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너는 결국 내 친구와 연애를 하고, 결국 나의 대한 이상한 소문을 내었다고 한다.
내 이상한 소문이 난 뒤에는 네가 갑자기 다른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나는 이상하게 네가 소문을 내었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되었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난 그런 너를 이해를 하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여자였으니까. 그래서 너를 이해 하려고 했는데.
"좋아해."
"……."
"전학 온 처음부터."
이해를 할 수가 없어졌다.
"미안한데. 난 너 싫어."
분명히 내 친구랑 서로 좋아하던 애가. 나보고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니 그게 너무 싫었다.
"담임이 너 아프다고 챙겨달라고 해서 몇 번 챙겨준 것 뿐이야."
"아.."
나는 그런 너를 찼고, 집에 가는 길에 동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 그리랑 잘 안 됐어.
"……."
- 갑자기 네가 좋대. 그냥.. 그래도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어. 그래도 난 좋아!..
그래서 더 싫었다.
그런 애가 나한테 좋다고 따라다니면 질리지도 않는지 달라붙는 게 지겹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그런 너에게 모진 말을 하는 것 보다 무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넌 지치지 않고 나에게 붙어서 또 고백을 했다.
"좋아해."
너는 처음 내게 웃어주었을 때처럼 환하게 웃었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싫다는 사람한테 계속 좋다고 붙어있는 너도 참."
"……."
"하나만 물어보자. 죽을병 걸린 사람도 연애라는 걸 하긴 하냐."
"…뭐?"
"심장이 안 좋다며. 매일 정해진 시간도 아니고, 수업시간에, 점심시간에 틈만 나면 약 먹는 게 죽을병 아니면 뭔데?
약 없으면 버티지도 못 하는 네가 사랑이란 걸 할 수가 있냐고."
"무슨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아픈 사람은 누굴 좋아할 수도 없는 거야?"
"안 그랬음 좋겠어."
"……."
"너한테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더 더욱."
"……."
너는 눈물을 꾹 참고 나갔고, 나도 너무 슬펐다.
좋아했던 여자에게 모진 말을 하는 건, 정말 못할 짓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상처를 준 내가 너무 싫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생각을 해보아도.. 뭐든지 다 네 탓이고,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슬픈영화를 보고도 다 울 때 한 번 울지 않았던 나는, 너에게 모진 말을 하고서 눈물이 났다.
"…진짜, 뭣 같네."
그리고 네가 전학을 가고. 학교엔 수많은 소문들이 돌았다.
'동희랑 이그리랑 썸타고 있었는데.. 이재욱이랑 이그리랑 양다리 친 거래.'
'아 동희가 너무 불쌍한 거 아니냐..'
'야 근데 이쯤되면 서로 다 좋아한 거 아니야?'
'동희랑 재욱이랑 개껄끄럽겠다... 동희랑 이그리랑 잘 되고 있었는데.. 왜 이그리가 재욱이한테 고백한 거지? 개궁금해..'
분명 나는 너의 고백에 싫다고 했고, 너에게 선을 넘었던 적도 없었는데.
"……."
"……."
네가 전학을 가고 다음 날. 김동희는 나를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리고 5년 후에 너를 회사 안에서 마주쳤을 때.. 솔직히 말해서 너무 힘들었다.
"……."
이렇게 다시 마주치니, 그때의 모든 일들은 다 잊게 되고,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네가 김동희랑 서로 좋아하다가 나에게 고백을 했던,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냈던.. 말이다.
그리고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너에게 너무 미안했다.
기회가 된다면 사과를 하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