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이불을 입까지 올리고는 침대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석민 씨를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니 그럼 불 끌게요, 하고는 문을 닫고 나가는 석민 씨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철컥, 소리와 함께 닫히는 문을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사실 아직까지 이게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죽은 사람, 그러니까 귀신이 분명한데 오늘만큼은 꼭 살아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온기와 사람과의 대화에 대한 따뜻함. 석민 씨는 대체 어떻게 내가 보이는 걸까. 설마 다른 것들도 보는 걸까. 그렇다면 좀 위험한데.. 귀신은 잠도 없다는데 오늘은 눈꺼풀이 무거운 게 푹 잘 수 있을 거 같다.
꿈속의 그녀
창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빛에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7시? 그럼 나 4시간 정도 잔 거야? 말도 안 돼. 귀신은 잠이 없다. 이건 다 맞는 말이다. 죽고 난 후 지금까지, 수면을 취하면 평균적으로 자지 않거나 자더라도 1시간 미만. 아무리 많이 자봐야 2시간 채 못 잤다. 근데 4시간이라니. 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대충 머리를 정리하며 방 문을 열고 나오자 편한 후드티 차림으로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석민 씨가 보였다. 요리도 하는구나.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네.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어느새 뒤를 돌아 본 석민 씨가 나를 발견했다.
"어, 잘 잤어요?"
"네. 덕분에요. 석민 씨는요?"
"저야 뭐 항상 똑같죠. 아, 여주 씨 혹시라도 배고플까 봐 한번 차려봤는데..."
여주라는 이름에 살짝 이질감이 들었다. 이름이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그 이름의 주인이 궁금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여주라는 이름을 내게 지어주는 석민 씨의 말과 표정이 생각나 물어보는 건 그만하기로 했다. 어딘가를 가리키며 물어보는 석민 씨의 손끝을 따라가자 갖가지 반찬이 올려져 있는 식탁이 눈에 보였다. 요리 진짜 잘 하는구나.. 만들려면 족히 한 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은 반찬 구성에 입이 벌어졌다.
"이걸 다 석민 씨 혼자 만든 거예요?"
"네, 뭐... 근데 여주 씨 먹을 수 있어요..?"
혹여나 내게 상처 되는 질문일까 조심스레 물어보는 석민 씨의 모습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서 못 먹죠. 내 끄덕임에 안도했는지 그제야 자신도 웃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와, 진짜 맛있어요. 파는 거 아니에요? 진짜 팔아도 될 거 같아요."
"그 정도는 아닌데,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니에요?"
"어어, 진짜예요! 진짜 맛있는데..."
"알겠어요. 얼른 먹어요."
나의 말에 수줍게 웃어 보이며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니냐는 석민 씨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아니라며 크게 손을 저었다. 진짜 맛있는데... 내 행동에 작게 웃음을 짓던 석민 씨가 알겠다며 내 밥에 반찬을 놓아 주었다.
"어디요?"
".... 어, 내가 자주 가던 아이스크림 가겐데.. 시내 구석진 곳에 있어서 사람이 많이 안 오거든요."
"좋아요."
긍정적인 나의 대답에 석민 씨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목적지를 정하고 나가는 외출은 처음이었다. 죽고 난 후는 항상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떠돌기만 했으니까. 괜히 웃음이 지어졌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허겁지겁 밥을 먹는 나를 본 석민 씨가 낮게 웃어 보였다.
"천천히 먹어요. 그러다 체해."
꿈속의 그녀
딸랑, 문에 딸랑, 문에 달려있는 종소리에 카운터에 앉아있던 종업원이 벌떡 일어나고는 밝게 인사했다. 저쪽에 앉아 있어요. 갖고 갈게요. 석민 씨의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석민 씨가 가리킨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고는 가게 내부를 둘러봤다. 아기자기한 스타일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내부에도 불구하고 손님이라곤 나와 석민 씨, 단둘뿐이었다. 아무래도 시내 안쪽에 위치해서 찾는 사람이 많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아기자기한 스타일부터 깔끔한 내부. 사람이 없는 것까지. 뭔가 익숙했다.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들려오는 석민 씨의 목소리에 얼굴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