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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열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젯밤 홧김에 바닥에 던졌던 물건들은 가지런하게 제자리에 가 있었고, 새벽에 차버린 이불 역시 목까지 덮여있었다. 자는 중에 명수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분명하지만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뻣뻣한 팔다리를 움직여 문을 열고 나왔다. 왠지 모를 상큼한 기분에 하품을 하며 아침인사를 했다.


"굿모닝."

"잘잤어?"

"덕분에."


성열이 배를 긁으며 어제 봐둔 화장실에 들어갔다. 명수는 너무 익숙한 듯 한 성열의 행동에 살짝 웃었다. 잠시후 세수를 했는지 앞머리가 살짝 젖어있는 성열이 머리를 긁적이며 간단하게 아침밥이 차려진 식탁 의자에 앉았다. 명수가 카레를 들고 성열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카레 냄새도 싫어해?"

"냄새는 뭐, 상관없어. 계란말이네, 내일부턴 후라이로 해줘."


성열이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반으로 자르며 말했다. 누구누구보다 잘하네. 맛에 만족한 성열이 밥을 흡입하는데 명수가 물었다.


"성열아."

"응?"

"너 쌍둥이 있어?"

"쌍둥이?"


생각났다. 몇달전부터 연락이 끊겨 잊고 있었는데. 그럼 나 대신 내 자리에 있는 사람이 형인가? 성열이 젓가락질을 멈추고 멍하니 있자 명수가 손을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성열아?"

"아? 응. 있어. 까먹고 있었는데."


성열이 다시 젓가락질을 하며 입안 가득 밥을 밀어넣었다.


"그 사람이 뭐, 영적으로 그런 사람이야?"


명수의 말투는 오늘 날씨 좋지? 라는 말을 하듯 담담했지만 성열은 그렇지 못했다. 표정이 석상처럼 굳어진 성열이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지만 입안 가득 밀어넣었던 밥알들이 방해했다. 차마 음식을 뱉을 수는 없어 턱을 빨리 움직여 삼키고 물도 한번 마신 성열이 말했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 그냥, 어제 너 방에 들어가고 나서 연습실을 들여다보는데 너랑 똑같이 생긴애가 있는거야. 근데 걔 옆에 흐릿한 여자애 하나가 있길래."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계속 숟가락을 움직이는 명수를 성열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얘는 정체가 뭘까. 나도 아직 잘 모르는 형을. 성열이 수열의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축 처진 분위기에 명수가 밝게 말했다.


"하고싶은건 생각해봤어?"

"조금."


다시 숟가락을 든 성열이 밥그릇을 비웠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숟가락을 내려놓은 성열이 말했다.


"나 가게 열고싶어."

"가게?"

"응. 매주 화요일은 쉬는거지. 그 화요일은 하고싶은 다른 것들을 하는거야. 예전부터 해보고싶었는데."


상상속에 잠긴 성열이 흐뭇하게 웃었다. 하늘색 수첩을 꺼낸 명수가 성열이 계속 주절거리는 말을 대충 받아적었다.


"무슨가게 열건데?"

"음, 생과일주스같은거? 거기서 빵도 굽고 차도 만들고 기타등등."

"생과일주스라."


명수는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펜을 움직여 수첩에 썼다. 그리곤 벌떡 일어섰다.


"일어나봐. 가자 빨리."

"어딜?"

"일단 와보면 알아."


성열이 명수를 따라 일어섰다. 명수가 간 곳은 거울방이었다. 연두색 테가 둘러진 거울앞에 선 명수가 성열의 손을 잡았다. 명수가 성큼성큼 거울속으로 들어갔다. 성열도 잠깐 머뭇거리다 따라들어갔다. 거울 속은, 아니 거울 저편의 그곳은 정말 굉장했다. 여러 종류의 처음보는 나무들과 식물들이 햇빛을 받아 각자의 빛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곳 best! 에서 본 듯한 열대지방의 섬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읽은거라곤 추리소설밖에 없는 작가의 풍경묘사력이 딸려서 그렇지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으며, 섬의 반쪽은 전혀 다른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야, 장난아니다."

"그치? 예전부터 관리한 곳이야. 여기는 열대지방, 저쪽은 봄, 가을. 주스 재료는 여기로 해결할 수 있겠지?"


명수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하며 성열이 섬을 둘러보았다. 성열의 눈에 가장자리에 있는 바다가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간 성열이 한쪽 손을 담갔다. 시원하고 맑은 바닷물의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발도 담그려 하는데 어느새 성열의 뒤에 서있는 명수가 말했다.


"이 바다 너머로 가면 안돼."

"왜?"

"거기는 내구역이 아니거든."


성열의 팔을 잡아 큰 나무 아래로 끌고 간 명수가 나무에 기대 앉아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자. 가게 분위기나 뭐 이런건?"


명수의 옆에 앉은 성열이 명수의 콧대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여름이니까 시원해보이게. 건물 계약같은건 니가 알아서 해."

"당연하지. 여기 있는것들로 메뉴개발 해봐. 빵 구울줄 알아?"


성열이 코를 긁적였다.


"몰라."

"내 친구중에 그쪽에 관심있는 애가 있어. 우리 둘로는 좀 힘들테니까 두명 더해서 같이하자. 가게 이름은 뭘로할까?"


한참 고민하던 성열이 아무렇게나 말했다.


"몰라. 니가 생각해봐."


명수가 계속해서 펜을 움직였다. 성열은 뭐랑 뭐를 섞으면 멀쩡한 주스가 나올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기록을 마친 명수가 성열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거울 앞으로 성열을 데려간 명수가 말했다.


"여기랑 연결하고 닫는 방법 알려줄게."


명수가 거울 위에 8을 눕힌 모양인 무한대 기호를 그려보았다.


"이렇게 그리면 어디의 거울이든 여기랑 연결할 수 있어. 한번 더 그리면 연결을 차단하는 거지. 여는것도 중요하지만 닫는건 더 중요해. 닫을 땐 똑같이 한번 더 그리고."


이번엔 거울 위에 숫자 8을 그렸다.


"이건 집이랑 연결하는거. 이것도 이렇게 한번 더 그리면 닫는거야. 간단하니까 잊어버리진 않겠지? 바다 밖으로 가면 안되는 것도 까먹지 말고."


성열이 신기하다는 듯 거울에 숫자 8을 그려보았다. 금새 거울이 말랑말랑하게 변해 손이 통과했다. 손을 뺀 성열이 다시 8을 그렸다. 거울을 눌러보자 단단하게 변해 그냥 평범한 거울로 돌아와있었다.


"우와, 신기하다."


성열이 계속 거울 위에 그려보고 눌러보다 생각난 듯 명수에게 물었다.


"넌 이렇게 안하잖아."

"응?"

"니가 여기 데려왔을땐 이렇게 안했잖아."

"니가 쓸 수 있게 만든거야. 이제 갈까? 구경은 다음에 하고."


다시 거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온 성열은 거실 소파에 누웠다. 숙소보다 더 편한 느낌에 성열이 실실 웃었다. 성열이 혼자 웃고있는데 명수가 자기 방에서 나와 검은색 자켓을 걸치며 말했다.


"나 이틀이나 사흘동안 집에 없을거야."

"왜?"

"가게 구해서 꾸며야지. 나중에 보면 깜짝놀랄걸?"

"헐. 그럼 나 혼자 여기 있으라고?"

"미안해. 필요한 물건 있으면 G방에 가봐. 최대한 빨리 올게."


거울방으로 들어가는 명수를 성열이 살짝 노려보다시피 봤다. 진짜 간건지 아무 소리 없는 방을 살짝 열어보니 텅 비어있었다. 왠지모를 서운함에 성열이 드러누워 뒹굴거렸다. 결국 심심해진 성열이 메뉴개발을 하기로 마음먹고 거울 앞에 섰다. 뭐였지? 무한대 기호였나? 성열이 거울 위에 무한대 기호를 그리곤 얼굴을 살짝 들이밀어 주변을 살폈다. 아까 갔던 곳이 맞는 것 같아 신나서 거울을 통과했다. 물론 다시 기호를 그려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김명수 없어도 잘 할 수 있어."


보이는 과일들을 몽땅 딴 성열이 담을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대충 옷에 싸서 들고갔다. 과일들의 무게에 옷이 늘어날까 걱정한 성열이 지금 입고있는 옷이 어제 끌려올 때 입은 옷이고, 다른 옷은 없단걸 생각해냈다. 김명수한테 옷사달라고 해야겠다. 중얼거린 성열이 다시 거울을 통과해 식탁 위에 방금 따온 과일들을 늘어놓고 담을거리를 찾았다. 바구니를 찾긴 찾았지만 쓰레기통이고, 다시 옷으로 대충 싸오자니 이미 늘어날대로 늘어나버린 옷에 슬퍼졌다. 곰곰히 생각하던 성열은 아까 명수가 말했던 G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창고로 쓰는지 잡다한 물건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한참 방을 뒤지던 성열이 카트를 찾아냈다. 카트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진 성열은 카트를 끌고 다시 섬으로 갔다.

 

 

 

 

 

명수가 쇼핑백 여러개를 들고 거울을 통과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이틀만에 돌아오긴 했지만 혼자 집에 남은 성열이 걱정되는건 마찬가지다. 데리고 갈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설마설마 하며 집에 돌아와 거실을 둘러보는데 바닥에 끈적끈적하게 붙어있는 이상한 액체들과 씽크대에 쌓인 컵들만 남아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잠가둔 방문까지 다 열어보아도 성열은 보이지 않았다. 바다 너머 그곳으로 갔을까 싶어 명수는 쇼핑백들을 소파 위에 던지곤 거울방으로 급히 갔다. 만약 그곳으로 갔다면 정말 큰일이다. 연두색 테의 거울을 통과하려는 순간 은빛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명수를 들이받았다.


"우얽"

"악!"


정확하게 배를 맞은 명수가 배를 감싸며 휘청거렸다. 거울에서 나온 건 퀭한 눈으로 카트 손잡이를 잡은 성열이었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성열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괜찮냐며 카트를 놓고 명수에게 온 성열을 꽉 끌어안았다.


"뭐야, 얘가 왜이래."

"그냥, 좋아서."


명수를 밀쳐내려던 성열이 명수의 기분이 이상하게 좋아보여 그냥 가만히 있었다.


"잘있었어?"

"응."

"나 안보고싶었어?"

"니가 뭐가 이쁘다고."

"에이, 혼자 심심했으면서."

"안심심했어. 계속 믹서 돌리고 있었는데 재밌었어."

"계속?"

"응, 뭐랑 뭐를 섞으니까 환상적인 맛이 나더라."


성열이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명수가 성열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고 성열의 얼굴을 마주봤다.


"가게 보러갈래?"

"응."

"가게 거울도 연결해놨어. 시계방향으로 원 한번 그리면 돼."


노란색 거울로 성열을 이끈 명수가 거울 속으로 발을 디뎠다. 주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나온 성열은 주변을 둘러봤다. 가게의 크기와 인테리어에 만족한 성열이 밖에선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야, 김명수."

"응?"

"간판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니가 말한대로 한건데?"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간판엔 '몰라, 니가 생각해봐' 라는 글자가 정확하고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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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앜ㅋㅋㅋㅋㅋ가게이름어쨐ㅋㅋㅋㅋㅋ
12년 전
판타
명수의 네이밍센스란 ㅋㅋㅋㅋ
12년 전
독자2
저 비회원인데 암호닉 해도 되나요?? 너무 재미있어요~~ 만약에 되면 잔망동우로 할께요~~
12년 전
판타
네 기억할게요 ㅎㅎ
12년 전
독자2
샤방샤방이에요!!! 많이기다렸어요!!! 그래도기다린만큼역시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마지막에 가게이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12년 전
판타
샤방샤방그대! 감사해요ㅠㅠ 이번엔 좀 빨리!
12년 전
독자3
서율이에요ㅎㅎ명수 성열이가 한말을 그대로 가게이름을ㅋㅋㅋㅋ정말ㅋㅋㅋ보다가 웃겼어요ㅋㅋ성열이가 이제 거울안에 잘적응을했나봐요ㅠㅠㅠ 다음편은 어떨지 무지 궁금해요ㅎㅎ다음편기다릴게요ㅎㅎ
12년 전
판타
감사해요 서율그대ㅠㅠ 최대한 일찍 가져올게요!!
12년 전
독자4
ㅋㅋㄱ안기민데ㅋㅋㅋㅋㄱ아놕ㅈㄱㅋㅋㄱㅋㅋㅋㄱㄱㄱㄲㅋ가게이릉미...ㅋㅋㄱㄲ 명수bbbbㅜㅜㅜ잘읽고가요 너믜 지ㅡㅎ아여♥
12년 전
판타
좋아해주시다니 감사해요ㅠㅠㅜ
12년 전
독자5
모모예요!!!! 드디어 나왔네요!!! ㅋㅋㅋㅋㅋㅋㅋ재밌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몰라 니가 생각해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2년 전
판타
모모그대!! 감사해요ㅠㅠㅠ 명수의 네이밍센스란bb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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