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만." 려욱의 어리둥절한 눈망울을 괴롭게 응시하던 규현이 눈을 살짝 피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키스해봐도 되냐?" "...뭐?" 려욱의 표정을 확인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조규현, 그걸 진짜 말하냐. 넌 진짜 미친 놈이야. 머릿속에 조규현이 한 다섯명은 자리잡은 것 마냥 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 농담이지?" "......" 려욱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규현이 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려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변명을 시작했다. "...내가 여자를 오래 안만나긴 했나봐. 요즘 자꾸 네가 여자처럼 보인다." "......" "아니,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고. 뭐, 내가 게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야. 아, 물론 네가 게이같다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냥... 아, 그거 뭐라고 하냐? 아, 그래. 착시현상! 그거거든, 응."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횡설수설 말해서 려욱이 알아들었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던 려욱이 답답하다는 듯 물어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내가 이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좀 도와줘. 다른 거 필요없고, 그냥 키스, 아니, 뽀뽀 한 번만 해보자. 그럼 내가 정신차릴 것 같거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려욱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런 려욱을 보며 규현은 걱정에 빠졌다. 려욱이가 거절하면 어쩌지? 오랜 친구를 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도 벌써 몇 주 째였다. 설마 자신이 게이일리는 없고, 다른 종류의 감정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장 친한 친구와 입을 맞추면 그 충격 때문이라도 이 낯선 감정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규현의 생각이었다. "그래." 뜻밖의 담백한 대답에 놀라 쳐다본 려욱은 조금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규현을 미친 놈처럼 보는 눈빛은 아니었다. 규현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짜 괜찮냐? 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키스도 아니고 그냥 뽀뽀인데 뭐 어때. 뽀뽀는 친구끼리 장난으로도 하잖아." 려욱의 아무렇지 않은 말투에 규현은 깊은 감사를 느꼈다. 하, 덩치는 작아도 마음은 태평양같은 놈. 내가 이래서 널 좋아한다니까. 아, 물론 친구로서. "그럼 지금 해...도 되지?" "그런 거 묻지 마. 민망하니까." 려욱의 허락을 받은 규현이 침을 꼴깍 삼키고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쓸데없이 심장이 쿵쾅거리며 거칠게 뛰었다. 쿨하게 허락했어도 민망한지 려욱이 입술을 축이고 눈을 감았다. 마침내 규현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려욱의 입술을 내리눌렀다. 한참동안 맞닿아있던 입술이 잠시 떨어지고 두 눈이 마주쳤다. 당황스러움, 민망함으로 어쩔 줄 모르는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규현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다섯명의 조규현이 한 목소리를 내었다. '키스해!' 그건 충동적이었다.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인 규현이 눈을 감고 보다 빠르게 고개를 숙여 려욱의 입술을 찾았다. 규현의 혀가 부드럽게 려욱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갔다. 당황한 표정의 려욱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했지만 규현이 부드럽지만 강한 손길로 려욱의 허리를 붙잡았다. 방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이따금씩 입술과 입술, 혀와 혀의 마찰소리만이 야릇하게 들릴 뿐이었다. 규현은 숨 쉴 틈을 충분히 주었지만 이 야릇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려욱이 숨 막히다는 핑계로 규현의 어깨를 밀어냈다. 두 입술이 멀어짐에 따라 길게 늘어지는 타액에 려욱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색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던 려욱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가장하며 규현을 올려다보았다. "넌 이게 뽀뽀냐?" "아..." 멍한 표정으로 려욱을 바라보던 규현이 이내 씩 웃었다. 괜히 려욱의 볼을 꾹 눌러 우스꽝스럽게 만든 규현이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뭐, 별 거 아니네!" "오호, 그러셔? 그런 놈이 혀는 왜 넣어? 욕구불만이냐?" "...아씨, 그런가보다. 야,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규현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려욱의 대답도 듣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려욱을 뒤로 하고 화장실로 들어온 규현은 문을 닫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말도 안 돼." 규현이 큰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좀 전의 키스를 떠올렸다. 진심 반 농담 반으로 시작한 키스였지만 애초에 혀까지 넣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짧게 입술만 부딪히고 놓아줄 생각이었는데 몇 분인지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 오랜 시간 입 맞추고 말았다. "미쳤구나, 조규현..." 규현의 시선이 부쩍 무거워진 제 아랫도리에 닿았다. 규현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 욕구불만인 모양이다. 문제는 그 욕구의 대상이 남자, 그것도 거의 10년을 함께 한 친구라는 것이었다. "규, 뭐해? 진짜 딸이라도 치는 건 아니지?" 낯뜨거운 말을 서슴없이 뱉는 려욱의 목소리에 규현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곧 깊은 회의에 빠졌다. 생긴 게 남자치고 좀 곱상할 뿐이지 야한 농담도 곧잘 하는 시커먼 사내놈에게 진심으로 키스하고, 또 흥분해버린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더 난감한 것은 그 키스가 순간적인 충동이 아니라 오랫동안 참아온 욕구가 분출된 것 같다는 직감이었다. "뭐해? 나 심심해!" "아, 시끄러!" 생각을 방해하는 조잘거리는 목소리에 소리를 빽 지른 규현이 아직도 촉촉하게 젖어있는 제 입술에 무심코 손을 올렸다. 입술에 닿았던 감촉이 떠올라 귀가 확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이런데 쟤는 아무렇지도 않나? 어떻게 심심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내 순결을 빼앗아놓고 이럴 거야? 밥 안 줄 거야!" "아, 나가면 되잖아! 똥 싼다, 똥!" "아, 어쩐지 표정이 안좋더라." 사람 마음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자기면서 생각을 정리할 틈도 안 준다. 저 포로리같이 얄미운 놈을 어쩌면 좋을까. 규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소한 착각일 뿐이라고 간과했던 감정은 이로써 더욱 알 수 없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착각이 아니라면, 이건... 고민하던 규현의 눈에 제 아랫도리가 띄었다.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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