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온!
3. 연애전선?
w. 감개무량
집에서 좀떨어진 경로당에 일찍이 나가신 할머니를 확인한 현우가 대문안을 살폈다. 조용한 마당을확인한 그가 손에잡고있던것을 끌어당긴다.
빨리이 하고 잡아끄는 현우의손에 이끌려마당안에 발을디딘 그가 경계를 풀지않은채 주위를 살핀다. 기어코 그를끌고 방문을 연 그가 가져온 짐꾸러미를 뒤져 물티슈를 꺼내었다.
"넌..좀깨끗해지면 훨씬 나을걸?"
물티슈 한장을 뽑아든 현우가 그의 얼굴을 문질러닦았다. 영문도 모르고 축축한것으로 얼굴을 닦이는 그가 으르렁거리는것도 아랑곳하지않았다. 안돼겠다...한숨을쉰 현우가 그를 끌어다넣은 욕실문을 잠궜다.
샤워볼에 거품을낸 그가 등을 닦아주기시작한다. 골격이좋은 등짝에 괜시리 민망해져 헛기침을 한 그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려는 그를 똑바로 돌려앉힌다. 향긋한 냄새에 킁킁거리던 그가 이젠 얌전했다. 머리까지 꼼꼼히 감겨준 현우가 수건을 던져주곤 바닥에널브러진 누더기를 봉지에담아 버렸다. 제일 널널한 옷을골라 방에넣어주곤 욕실로 걸음을 옮긴다. 에고고 하고 뒤로젖힌 허리에서 우둑 하고 뼈소리가 났다.
"야! 너 옷도 안입고...뭐했어!"
젖은머리를 털며 욕실문을 열고나오다 마주친 그를보곤 눈을꼭감아버린다. 구석에 처박혀있는 옷가지를 주워든 현우가 실눈을뜨고 옷을 꿰어 입혔다.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도 옷을 다입혀준 그가 말끔해진 그것의 인상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의 어깨를 툭툭털어주던 현우의손을 잡아챈 그가 같은냄새가 나 신기한지 손에 코를 파묻는다. 간지러운느낌에 손을 꼼지락대던 현우가 그의 뺨을 어루만져본다.
그늘진 마루위에 수현의 무릎을 배고누운 현우가 깜빡깜빡 졸았다. 나른한 오후에 매미소리가 시끄럽기보단 평온했다. 이제 곧 장마가올텐데 지금 울어둬야겠지? 한철뿐인 그들의 하모니를 놔두는것이 좋지않을까싶다.
그사이 이름이 생겨버린 그가 현우의 감긴눈을 가만가만들여다본다. 날카롭게자란 손톱탓에 얼굴을 만져보려던 손을 내린다. 첫사랑의 이름이라나 뭐라나. 졸지에 수현이되어버린 그와현우가 한가함을 만끽하고있을뿐이었다.
"...맞다! 할머니오시겠다..!"
방금까지 졸음을 못이기고 눈을감고있다 벌떡일어난 현우를 멍하니 보고만있는 수현의 손을 급하게 잡아끌었다. 별생각없이 뻗은손이 그의 손톱에 긁히고 만다. 아..! 하고 손을 놓쳐버린 현우의 손바닥에서 손목까지 얕고긴상처가 져있다. 어찌할바를 몰라 상처를 보고있던 수현이 송글송글맺히는 피를 정성스레 핥아올렸다.
"야!!..너..너뭐해! 지지야! 너빨리 집에가야돼!"
당황해 얼굴에 열이 오르는 그가 괜히 수현의 등을 밀어 산비탈을 올라간다. 말없이 비탈을 올라 나무까지 수현을 밀고올라온 현우가 등을 훽돌려 집으로 뛰어가기시작한다. 등을긁적거리던 수현이 그의 뒷모습을보다가 굴을찾아 걷는다. 싱그러운 풀냄새, 시끄러운매미소리 사이에 섞여 남아있는 그의냄새를 킁킁 맡아본다.
아 진짜 뭐야..
손바닥의 상처를 바라보며 타박타박걷던 현우가 궁시렁궁시렁거린다. 그리큰상처도 아닌데 걱정이 가득담긴 눈이 생각나 귀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야릇한느낌이 생각나서 머리를 헝클인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낸현우가 통화버튼을 당겼다.
어! 선우야 하고시작한 전화를 끝마친 그의 표정이 어딘가 좋지못하다. 언제 할머니댁에서 돌아오냐는 친한친구의 물음에 어..곧! 하고 대답하긴했지만 뭔가가 잘못 박힌돌처럼 캥긴다. 집앞에 도착해 산비탈을 바라보던 현우가 에휴..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버린다. 서서히 가라앉기시작한 햇볕이 의외로 따갑다. 오늘도 이곳은 조용하기만하다.
*
아침부터 닭모이를주고 삽으로 할머니의 텃밭에 물길을낸다. 비오기직전이라 유난히 습하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삐질삐질나는 땀을 닦았다.
충분히 익은 과일과 감자를 미리 캐어내고 내려가신 할머니가 그만내려오라고 부르는소리가 들린다. 삽을 챙긴현우가 할머니께서 잘가꾼 텃밭이 이번장마를 잘견뎌주길바랄뿐이었다. 그새 내려가 잘삶아진 감자를 호호불어 까먹던 그가 손을 멈춘다. 밥을 가져다주지않은지 3일째인데 닭장도 털리지 않았고..뭘챙겨먹고있긴 한거야? 하고 불현듯 걱정이 스친다.
"할머니! 나잠깐만 요위에 다녀올게!"
대답도듣지않고 대문밖으로 뛰어나와 산비탈을 향했다. 분명 인기척을들었을텐데 닭장을지나 풀숲을 통과해 나무까지 왔는데도 그가 나타나질않았다. 갸웃 하고 그의 굴을찾아 입구에서 수현! 하고불러도대답이 없어 안으로 발을 딛는다. 끝까지 들어왔을때쯤 입구로 수현이 모습을 비춘다. 사냥을하고왔던지 얼마전 갈아입혀준옷에 간간히 튀어있는 핏물이보인다. 쩝하고 입가에묻은 피를 날름삼키는 수현의행동에 현우가 서늘해지는느낌에도 별수없이 웃었다. 이젠 두발로 서있는게 익숙한 그가 성큼성큼다가오는탓에 뒤로물러서다 등이 벽에 닿았다.
"왜,왜..?"
헤헤.. 하고 어색하게 웃는 현우의 오른쪽어깨에 머리를얹은채 눈을감은 그에게서 그릉그릉하는 숨소리가 들린다. 어색하게 손을올려 수현의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때톡톡 하고 비떨어지는 소리가들린다. 저보다 큰 수현을떼어낸 현우가 입구로가서 손을뻗는다.
"비..!"
나빨리가야겠다! 내일또올게! 하고 뛰어나와 비탈을내려가기시작한다. 너무열심히 뛰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다른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독일 묘책은 따로 없었다.
어쩌면나는 반짐승의 수현에게 마음이 이끌이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