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ISM ; ㅍㄹㅈㅁ -
' 01 '
Strange
" 안녕. "
- PRISM ; ㅍㄹㅈㅁ -"
안녕. 천천히 끼워 맞추려 했던 퍼즐이 별안간 나엎어진 꼴을 보는 것 같았다. 예상과는 다른, 짧은 그의 인사가 제 복잡한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한참을 입을 뗐다 닫았다 번복하며 어떻게, 무어라 입을 떼야 할지 몰라 한참 뜸을 들이는 저를 그는 재촉 없이 기다린다. 그냥 가벼운 인사일 뿐인데, 갈증이 인다. 주먹을 가벼이 말아쥐며 응. 겨우 꺼낸 말이다. 제가 힘겹게 꺼낸 대답에 또다시 고개를 숙여 웃음을 짓던 그가 비어 있던 제 옆자리의 책상에 걸터앉는다.
" 보고 싶었어. "
당혹스러운 말이다. 상상도 못 할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제 표정은 사정없이 구겨진다. 고작 해봐야 복도에서, 그것도 마주쳤다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러한 만남이 다인 사이에 나올 말은 전혀 아니다. 제 표정을 본 그가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어깨를 들썩인다. 또, 그 거만한 웃음. 마치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는 듯 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한 달 전, 엘로디에게 한국인 친구가 한 명 더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그래서 보고 싶었다고. 묘하게 당한 느낌에 턱에 힘을 주고 이를 아득 가는 저를 본 그가 책상에 걸터앉은 몸을 수구려 자신의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다. 몸을 수그린 탓에 조금 더 위에 위치하게 된 나를 보기 위해 그가 시선을 위로하고, 그 때문에 살짝 치켜뜬 그의 눈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너에 대한 재미있는 소문이 돌아. 전학은 왔다고 하는데 도통 보이질 않으니까. 뭐…. 마약이라든지, 다른걸. 팔러 다니느라 학교에 잘 안 나온다. 같은 이런 것들 말이야. 진짜야?
" 그게 궁금해서 날 찾아온 거야? "
쿵쿵. 심장이 뛰고, 목구멍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뜨거워진다. 말을 마치며 옅은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을 한 대 갈기고 싶었다. 복도에서 그를 뻔히 쳐다본 것이 그리도 불쾌했나 싶을 정도로, 당최 알 수 없는 이유로그는 부러 생채기를 낼 만한 것들로 골라 말한다. 네가 하는 그 질문, 정말. 같잖다. 뒤 따라 나올 뻔한 말을 애써 삼켜낸다. 대신 네가 보기엔 어떤데. 뾰족하게 갈아낸 날을 건넨다. 그 날붙이를 받아든 그가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주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가 한쪽으로 기운 고개를 바로 세우며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실험실 앞문으로 들어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아까 복도에서 보았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잠시 돌린 그가 I don't mind 중얼거린다. 그를 부른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간 고개가 제자리를 찾으면, 그도 곧바로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본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동자가 매섭다.
"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
그는 날붙이를 쥐고, 우리 사이엔 불꽃이 튀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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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나의 실수였다. 애초에 복도에서 그 묘한 분위기를 느꼈을 때 진즉에 그 자리에서 떠났어야 했다. 아니, 그 엿 같은 웃음을 보기 전에. 온 복도를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듣기 싫어 가던 길을 멈추고 신발을 벗어 집어던지자 제 이런 모습을 본 럭비부 남자 두 명이 자신들의 캐비넷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며 입을 비죽였다. 낄낄거리는 그들을 뒤로하며 캠퍼스를 스타킹 하나만 신은 발로 무작정 걸었다.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제 행동이 우스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분풀이를 마땅히 할 곳이 없어 그저 제 성질껏 걷다 보니 학교 수영장 근처의 벤치까지 왔다. 점심시간이라 주변은 한산하고 목구멍이며 가슴께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들을 풀어내기엔 적합한 곳이다. 곧장 보이는 벤치에 메고 있던 가방을 집어 던지며 앉으니, 그와의 대면으로 미처 닫지 못한 가방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며 어지럽혀진다.
집 문제에, 학교 시험에, 나도 모르는 거지 같은 소문까지.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을 감고 몸을 숙여 무릎에 엎드렸다. 지금 이 기분으로 물건들을 주워들었다간 죄다 다시 집어던질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 미국을 오기로 했을 때는 계획이 참 거창했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 목을 옥죄는 부모님의 품에서 떠나 자유도 누리고, 엿도 먹여보고, 난생처음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도 해보고. 후에 걸려서 맞아 죽더라도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다 누리고 오자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떠나 왔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서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부모님 곁으로 죽어도 돌아가긴 싫어졌다. 그렇다고 어떻게 어떻게 학교 출석 문제를 넘어간다 치더라도, 그 잘난 성격들이 내 처참한 테스트 점수를 봐줄 리도 없겠지. 게다가 갑작스러운 학교 스타와의 신경전은 더더욱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선생님한테는 문제아, 학생들한테는 마약 혹은 다른 걸 팔러 다니는 애. 거기에 추가로 학교 인기 만점인 애랑 쌈박질까지. 벌써부터 화려하게 최악으로 치닫는 꼴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미래가 그려진다. 짜증나.
" 그런 걸로는 해결되지 않는 거 알잖아. "
" 응. "
되묻는 말에 대답이 없다. 다시 한번 물으려는 찰나 그의 손에 들려진 제 휴대폰이 벨 소리와 함께 진동을 울리며 빛을 낸다. 됐으니까 이리 줘. 그에게 손을 뻗으며 휴대폰을 가져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 제게서 그는 오히려 한 걸음을 물러서고, 그 때문에 기가 차 뭐해? 라고 물어도 그는 여전히 제게서 물러난 상태로 가만히 서 있을 뿐 반응이 없다. 그런 그를 말 없이 노려보다 결국에는 전화 오잖아. 하고 짜증을 내도 그는 꼭 쥔 휴대폰을 들고 그저 저를 주시하고 있다.
기어이 여러 차례 진동을 울리던 휴대폰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는 꼭 쥔 휴대폰을 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진짜 이상한 새끼. 제 말을 들은 그가 바람 빠진 웃음을 픽 지으며 두 걸음을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곤 내내 꼭 쥐었던 손을 펴 보이며 선택할 기회를 주는 거야. 알 수 없는 말을 꺼낸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금 그의 손아귀에서 휴대폰이 울리고 액정 위 하얗게 뜬 것은 바네사다. 휴대폰을 집으려는 손이 허공에서 멈칫거리며, 어딘가 묘한 그를 올려다본다.
" 해결해야 할 일이 많잖아. "
학교든, 집이든. 그는 허공에 띄워진 제 손목을 붙잡으며 오른손에 들린 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받는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받으면 늘 멀리 떨어져서 받는 습관 때문에 통화 볼륨을 꽤 크게 해두었던 터라, 전화를 받자마자 뚫고 나오는 바네사 비명과도 같은 말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 덕에 귀 바로 옆에 대고 전화를 받았던 그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케이트! 학교에는 간 거지!? 그녀는 대답 않는 상대방에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물었다. 고개를 젖혀 잠시 휴대폰을 멀리한 그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전화를 받은 이가 내가 아님을 알아챈 그녀와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러고는 케이트 전화를 왜 네가 받냐는 바네사의 물음에 그는 저를 빤히 쳐다보며 천연덕스럽게도 거짓말을 한다.
" Kate was having lunch with me. now she doesn't have a juice, so went to buy it.. "
남의 전화를 받는 게 실례인 걸 알지만, 연달아 오는 게 마음에 걸려서 받았어요. 그의 말이 끝마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 바네사의 안도의 숨이 길게 늘어진다. 확실히 케이트가 학교에 간 것이 맞냐며, 전화 받는 넌 이름이 뭐냐고까지 캐묻는 바네사의 말에 꼬박꼬박 답한 그 덕분에 케이트가 돌아오면 텍스트라도 좀 보내라고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바네사는 곧바로 통화를 종료했다. 통화 종료 후 꺼진 화면을 바라보던 그가 붙잡은 손에 힘을 줘 제 손목을 돌리더니 손바닥에 휴대폰을 놓아준다. 그의 전부 알고 있다는 듯한 말과 행동이 의문스러웠다.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을 쳐다보는 제게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가 붙잡았던 손목이 불을 가까이한 것처럼 뜨거워진다.
" 우리가, 정리할 게 좀 생겼네. "
PRISM
PRISM ; 빛의 분산이나 굴절 등을 일으키기 위해 유리나 수정으로 만들어진 기둥 모양의 광학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