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과 다정 그 사이
by. 워커홀릭
아무말없이 날 쳐다봐주는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이번엔 피하지않고 같이 쳐다보다,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눈을 피하는 순간 현빈이 다가온다.
"..."
"..."
3초도 안되는 짧은 입맞춤이었지만 한 3분같이 느껴졌다. 충분히 내가 피할 수 있었는데, 난 피하지 않았다. 분위기 탓인가?
"...그.. 이제 늦었는데..!!"
여전히 아무말도 안하고 서있는 현빈이 어색해 아무렇지 않은척 웃으며 말하자, 현빈도 '응.'하며 옷을 챙긴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
저녁에 그렇게 돌아가고서는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았고, 이제 곧 스케줄이라 얼굴을 봐야 하는데 진짜 미치겠는거다. 어제 뽀뽀한 직후보다 지금이 더 쪽팔린 것 같고...
먼저 촬영장에 도착한 현빈을 발견하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오......."
"빨리왔네"
"핫... 오빠보다 빨리 왔어야 하는데 ㅎㅎ"
"ㅋㅋㅋ"
"ㅎㅎ.."
"밥은 먹었어?"
"아뇨..! 아직.. 아직 안먹었어요..ㅎㅎ"
나만 어색해 죽을 것 같은건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나를 대하는 현빈에 긴장이 살짝 풀리기는 한다..
광고 촬영에 앞서, 현빈의 옷을 정리해주는데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평소보다 말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스케줄 끝나고 뭐해?"
"저요??"
"그럼 누구요?"
"아..ㅎㅎ..."
사실 어제 밤에 하정우한테 전화가 또 왔었다. 이번엔 무슨 시계를 안챙겨갔다나. 오늘은 집에 없으니까 오지 말라했더니, 그러면 스케줄 끝나고 달라기에 알았다고 했다.
근데 왠지 이거 말하면 어제처럼 또 뭐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말 해야겠지.
"그.. 어.."
사실 하정우를 뭐라고 칭해야 할 지 몰라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한다.
"어제.. 수트 가져가면서 시계를 놓고 갔다고.."
"..."
"그래서 그거 갖다주기로 했어요"
"너가?"
"네"
"..."
"..."
괜히 말했나. 계속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져서 쳐다보며 눈치를 보자 또 어제처럼 싱긋 웃어보인다.
"오늘은 같이 안있어도 돼?"
"네???"
"같이 가주냐고"
"아.. 아니에요. 그냥 혼자 갈래요."
"..."
"ㅎㅎ.. 하고싶은 말도 있고.."
"그래"
-
생각보다 일찍 끝난 스케줄에 내가 택시를 타고 하정우 집 앞으로 간다고 했다.
집 앞에 도착해 전화를 하니, 차라도 마시고 가라며 올라오라는 말에 억지로 발을 뗀다.
"...."
익숙한 향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좋은 향은 아니지만, 익숙한 향이 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 보면 실내용 슬리퍼가 아직도 두개 놓여있다.
결혼하자마자 같이 마트에 가서 내가 졸라서 산 슬리퍼. 집에서 무슨 신발을 또 신냐며 질색을 하던 하정우도 결국 익숙해져서 매일 신고 다녔는데.
슬리퍼를 쳐다보다 들어가 식탁에 앉자, 따뜻한 커피를 내민다. 나 커피 안좋아하는데.
마시지도 않는 커피잔만 만지며, 무슨말을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먼저 입을뗀건 하정우였다.
"일은 할만해?"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잘해줘?'하고 바로 물어온다.
"뭐가요?"
"현빈- 나보다 안까다로울거 아니야"
"아.."
난 또.. 어제 우리 사이를 오해한 줄 알고 해명할뻔 했다.
"그 있잖아요.."
"응"
"..그냥.. 이제 연락 안했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니까요.. 그냥 사귀다 헤어진것도 아니구. 이혼한건데.. 이렇게 집에 오는것도 이상하고.."
".."
"그냥.. 그냥 우리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면 안돼요?"
"불편하대?"
"..?"
"그 친구가 싫대?"
"아니..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냥 내가 불편해서 그래요."
"..."
상처받은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게 너무 싫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나와버렸다. 상처를 준 건 하정우인데, 그 눈을 보고 있자니 내가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아 보기가 싫다.
이게 맞는 선택이고, 그렇게 해야 하는 사이가 맞는데. 결국 이렇게 말로 선을 그어버리니 씁쓸하고 뭔가 마음이 허하다.
딱히 목적지 없이 혼자 걸으며 생각을 하는데 그동안 하정우와의 추억들이 스쳐간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이혼하는 날 까지. 그 기억속에는 상처보다는 아름다운 추억들이 더 많다.
매니저도 먼저 보내버리고 날 집에 데려다준다며 차로 집앞까지 가서는 차 안에서 첫키스 했었는데.
그때 기억이 떠오르더니, 문득 어제 현빈이랑 뽀뽀한것도 생각났다. 그러면 난 무의식중에 현빈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
생각보다 빨리 전화를 받은 현빈에 나는 목적없이 건 전화를 붙잡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어디야?
"한남동이요.."
-뭐하는데?
"...그냥.."
-그냥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네"
무슨 용기였는지, 보고싶냐는 현빈의 말에 그렇다고 냉큼 대답해버린다.
.
약속한곳에 앉아 멍때리고 있으면 뒤쪽에서 클락션이 작게 울린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또 10분만에 도착한 현빈의 차가 서있다.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타면 '아침부터 조금전까지 봤으면서 뭘 또 보고싶대 ㅎㅎ'하며 장난을 치는 현빈이다.
아까의 용기는 사라지고 내가 아무말 없이 고개를 내리고 가만히 앉아있자 현빈이 먼저 손을 뻗어 내 왼손을 잡는다.
자연스레 손에 힘을주고 깍지를 껴오는 현빈이지만 난 손에 아무런 힘도 주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왜 보고싶었어?"
"...그냥.."
"그냥 보고싶었어?"
"그냥 오빠 생각이 났어요"
"잘했어. 주연이가 안했으면 내가 전화 했을거야"
"..."
"얘기는 잘 했어?"
"...이제 연락하지 말자고 했어요."
"너가?"
"그냥..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자구. 그러고 나왔어요"
내 말에 현빈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괜찮아?"
"네..! 뭐, 끝난 사이잖아요. ㅎㅎ.."
"그래. 너가 괜찮으면 된거지."
그렇게 또 한참을 아무말없이 있는데, 마주잡은 손이지만 내 손에는 힘이 없는걸 느낀 현빈이 깍지 낀 손을 풀려 하기에 그제서야 손에 힘을 준다.
"밀당인가?"
"아니....ㅋ.....ㅠㅠ"
"아니?"
"아니이....ㅠㅠㅠㅠㅠ"
"이제 반말도 하네"
"아뇨ㅠㅠㅠㅠㅠㅠ"
민망해서 거의 울먹이며 얘기하자 현빈은 귀엽다는 듯 한참을 웃는다.
"근데 오빠, 만약에요"
"응"
"만약에.. 제가 오빠 집에 갔는데"
"우리집?"
"아니, 만약에요."
"ㅋㅋㅋㅋㅋㅋ응"
"집에가서 얘기 좀 하자고 했어요."
"응"
"그러면 저한테 마실거 뭐 줄거에요?"
"마실거???"
뜬금없는 질문에 현빈이 의도가 뭐냐며 물으면 그냥 대답부터 해보라고 재촉한다.
"물?"
"그냥 물이요?"
"응. 뭐 마실건 커피밖에 없는데 너 커피 안마시잖아"
현빈도 기억하는 걸 하정우가 까먹었다니. 괜히 더 씁쓸하다.
"근데 왜?"
"아니, 그냥요.."
"커피줬어?"
"네??"
"오늘 커피줬어?"
"...."
"와..~ 나보다 모르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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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암호닉은 새로 받을게요...! 물론 이전 암호닉 쓰고 댓글 달아주시는거 다 기억하구 잘 보고있슴니다...♥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