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우지호!"
"..어? 응? 왜?"
왜 또 얼이 빠졌냐. 우죠.
행복했던 우리사이에 요새 많은 일들이 휘몰아치다보니 작은것 하나에도 예민해진 것 같아.
같잖게 서로를 구속하고 감시하지는않지만 질투아닌 질투로 신경쓰이는 것도 사실이었고,
종종 송민호와 연락을 하며 웃고있는 척하는 우지호의 모습도 신경쓰였어.
"침떨어지겠다. 멍때리지말고 나 좀 보지? 내가 더 예쁘지않나?"
그래서 내 팔자에도 없는 애교를 부리고있는거야.
"ㅋㅋㅋㅋㅋ지랄한다~"
"내가더예쁘지않냐? 예쁘지않냐? 너 미쳤냐?"
..표지훈과 김유권은 왜 이 타이밍에 오는걸까, 참 거지같다.
"우리 쭈한테 왜그러냐? 귀엽기만하구만."
"우죠, 쪽팔리니깐 닥치고 있어줘."
"응."
그나저나 너네들은 여기 왜왔냐.
내 물음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응? 그냥 너네 수능 원서 접수했나 궁금해서"
내용은 별 거인데?
미친, 왜 우리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조차 꺼내시질 않으셨던걸까.
"표정을보니 몰랐네. 어차피 너네 대학을....못가지?"
"응 못가 새끼야. 빨리 니네반에나 쳐 가세요."
어차피 못가는걸 알고계셨으니깐 그런거였겠지...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막 드는데 우지호의 표정이 또 심각해졌어.
"....우죠. 왜그래 또?"
"..응? 아니...그게아니라.."
.....이거 말끝을 흐리고 화제를 돌리려고 애쓰는데 뭔가 있네 있어.
"똑바로말해. 내 눈보고 솔직하게. 무슨 일인데?"
"...아씨...그게.. 이따 학교 끝나고 말해줄게,"
사람 겁나 궁금하게 만드네. 찜찜하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어.
안절부절못하며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고, 어쨌든 시간은 흘렀지.
학교를 나와서 지갑도 챙길 겸 우리집을 갔어.
"..여주야, 너는 왜 혼자살아?"
응?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지만 아무렇지않은척 대답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집 얻어주신거야.
"..너는?"
"..나는 출가?"
장난치지마. 이 상황에 농담을 하는 우지호에게 톡 쏘아붙였는데 표정을 보니.. 진짜인듯하다.
"진짜?"
"응. 외국나갔다가 왔었는데, 그 때 집에서 나와서 지금 집 얻고 살고있는거야."
헐. 대단하다. 상상을 뛰어넘는 대답에 놀란것도 잠시
"..아까 대답해줘야지."
잊고있었던 게 생각났어. 요새 우지호가 얼이빠져있는 이유.
"여주야, 너 졸업하면 뭐 하려고 했어?"
"..어차피 대학도 못가는거, 원래 꿈이었던 인테리어하려고했지."
인테리어? 응. 이 집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한거야.
"..나는 미술을 했어. 그거 마저 하려고."
"미술? 아 진짜? 어쩐지 그림 잘그리더라."
평상시에 고퀄리티의 낙서를 하는게 신기했었는데, 미술을 전공하려하다니. 좀 멋져보이는데?
"유학을 가야 할 것 같아."
곧이어 나온 우지호의 말에, 순간 땡- 하고 얼음이 됐어.
"...유학?"
뭐야 갑작스럽게. 아 목소리가 떨린다.
울고싶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떨어진다.
"...쭈."
우지호의 다정한 목소리에 주체할수없이 눈물이 나와.
나는 우리 졸업하면 알콩달콩 같이 앞날을 준비할줄알았는데.
이게 뭐야, 우지호. 유학이라니 너무 갑작스럽잖아.
"..울지마."
"..너 미워 진짜.."
눈물을 닦아주는데, 그 손길이 또 따뜻하다.
"아- 어떡하지? 나 유학가면 너 혼자 외로울텐데."
"그걸 아는 새끼가 지금 그러냐?"
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빽 소리를 지르니깐 뭐가 그리 좋다고 실실 웃는다.
"너, 너 왜 웃어. 나랑 떨어지니깐 좋냐? 너 진짜 나빴.."
헐. 방금 이게 뭐야? 울음이 뚝 하고 멈췄다.
그러니깐, 방금 내 입에 닿았다 떨어진게... 우지호 너야?
"같이 가자. 같이 가서 공부하자. 그렇게 오래있지는 않을꺼야."
...이씨. 그렇게 귀엽게 쳐다보면 내가 어떻게 거절해 멍청아.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니 환하게 웃는다.
"..그럼 나랑 같이 가는거다?"
"그래 바보야."
"그럼, 축하의 의미로 한 번 더."
한 번 더? 곧 그 의미를 알았지만, 아까보다 더 깊었던 건 비밀.
<여주는 모르는 이야기>
전화를 끊고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분명 이미 한국에서 대학은 못갈정도로 성적이 형편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미술을 하기에도 썩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주는 지금 혼자 살고있고 표지훈과 김유권 또한 대학을 가면 여주를 보살필 겨를이 없을것이다.
"...아..씨발..."
어떻게 생각해도 결론이 나질 않아 침대에 드러누웠다.
"....김여주....널 어떻게 하면 좋냐, 진짜."
떨어지기싫은데. 진짜 지금도 얼굴 보고싶고 목소리 듣고싶은데, 어떻게 널 두고 내가 어딜가.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켜니 배경화면엔 떡하니 네 얼굴이 보인다.
찍지말라며 울상을 짓던 표정이 귀여워 봐도봐도 웃음이 나온다.
'우죠, 자냐? 보오고오시이잎다아아 - 우리쭈♥'
귀여운 문자내용에 또 한번 웃음이나온다.
'안자는데 바보야. 나도 보고싶다. 왜 우리는 같이 안살까?ㅠㅠ'
'닥쳐 변태새끼야 (사진) - 우리쭈♥'
답장을 기다렸던 듯 칼같이 빠른 답장과 익살스런 표정의 셀카가 또 웃음짓게 한다.
김여주, 너는 내게 행복만 주는 사람인 것 같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사나이가 말이야, 강단으로 밀어붙여야지.
내일 물어봐야겠다. 거절하면 그 때 다시 고민해보지 뭐.
여주야, 너는 나랑 같이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