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뭐하는 거야."
집에서 나온 남자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듯 인상을 쓴 채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우도환을 안심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도망치면 이 여자에게 더 미움을 받을 거니까.
"…괜찮아요. 정말!..."
"……."
"갔다올게요."
괜찮다는 내 말에 우도환은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여자를 따랐다.
나름이 지은을 따라 가자, 효섭은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 뜯다가 옆에 서있는 시완에게 말한다.
"…그냥 따라 갔다올게요. 저러다 진짜 무슨 일 나면 어떡해. 누나가 유나름 죽이고 싶다고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믿어보자, 지은이를."
"…벌레 한마리 못 죽이는 애가. 사람을 죽여?"
그 말에 효섭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괜찮은 척 해도.. 다들 힘들어 하고 있다. 예전 보다는 말이 별로 없어진 사람들에 아린은 눈치를 보며 재욱의 옆에 바짝 붙었고..
재욱은 아린이 귀찮은지 밀어내려다가도 울먹이는 아린을 보며 밀어내지도 못한 채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하나둘씩 지친 표정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고, 다른 곳으로 향하면 아린이 조용히 재욱의 옷자락을 잡고선 말한다.
"다들 많이 변했어.. 예전엔 그래도 많이 웃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유현석이 허무하게 죽어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그치?"
"이제 좀 놓지."
"…아, 응!"
재욱은 저 멀리 사라져가는 나름을 한참 바라보다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아린이 풀이 죽어서 한숨을 쉬면, 시완이 웃으며 아린에게 말한다.
"재욱이도 참 한결같네. 이렇게 귀여운 아린이한테 철벽은 엄청 쳐."
"그러니까요!.. 그치만.. 뭐라할 수 없는 게.. 저 혼자 좋아하는 거니까요."
"쑥스러워서 저러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재욱이가 쑥스러움 타는 애도 아니고오.."
"그런가?.."
시완이 웃으면, 아린도 따라 웃는다. 시완은 그런 아린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고선 다른 곳으로 향했고.. 아린은 여전히 웃으며 저 멀리 나름과 지은을 본다.
정말 괜찮은 걸까.. 지은 언니 화나면 무서운데.. 하며 중얼거리던 아린에 창욱은 아린을 바라보다 무신경하게 다시 다른 곳을 본다.
마을까지 오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한테 화가 난 게 분명한데.. 나한테 화 한 번도 내지 않고 마을 까지 왔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도 말 한마디도 없다.
나도 그저 여자를 따라 걷기만 했고, 한 가게에서 멈춰 선 여자는 빵 하나를 받아 내게 던져준다. 그럼 난 그 빵을 받아 벙찐 표정으로 여자를 본다.
"먹어."
"…네?"
"너 밥 제대로 안 먹었잖아. 먹으라고."
"……."
"남은 사람이라도 살아야 될 거 아니야. 죽을 거야, 너? 거슬리게 하지 마."
"…아니요."
"그러니까 좀 먹어. 너 챙겨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알아서 먹으라고."
"…감사합니다."
"고맙단 소리도 하지 마."
"……."
"죽을 거면 배고파서 말고, 배불러서 죽어."
"……."
저 말을 끝으로 무심하게 뒤돌아 다른 가게로 들어서는 여자에 나는 작게 웃어보였다. 그래도.. 좋으면 안 되는데. 저 사람들이 나를 챙겨주니까 좋고 그러네. 정말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음료수까지 받아서 내게 무심하게 들이미는 여자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음료수를 받았다. 그리고서 다시 또 다른 가게로 향하는 여자에 나는 어정쩡한 걸음으로 여자를 따른다.
장바구니에 음식들을 담다보면 많이 무거워보여서 '제가 들게요..'하면 여자는 말한다.
"들고 가다가 자빠지게? 됐어."
됐다며 혼자 들고 간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여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고.. 여자도 반갑게 인사를 받는다.
나한테 못 됐어서 잠깐이라도 여자를 밉게 봤었는데. 내 큰 착각이었다. 당연히 내겐 못될 수 있는 거였는데. 내가 이기적이었다.
장을 다 봤는지 말 없이 집 쪽으로 향하는 여자에 난 말 없이 여자를 따랐다. 여자도.. 나도 서로 말을 아꼈고, 그렇게 한참을 말 없이 걷는다.
저녁이 되어서 아까 장을 봐 온 것들로 저녁을 한다. 저녁은 여자들이 지내는 집에서 하고, 이지은은 머리가 아프다며 방에서 쉰다고 한다.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저녁을 차리려는데 안효섭, 이재욱이 들어온다. 어색하게 웃어주고선 칼을 잡으면 안효섭이 칼을 뺏어 들며 말한다.
"이 위험한 걸! 들고있다니. 나 줘! 나 칼질 잘해."
"…내가 해도 되는데."
"됐어!"
"저 형이 하게 납둬요. 저 형이 매일 밥 차려요. 요리도 잘 해서."
"아, 그래? 넌?"
"에?"
"너는 뭐하는데?"
"그냥...구경..?"
"너도 요리 잘할 것 같은데 ㅎㅎ.."
쟤가? 하고 효섭이가 재욱이를 보고 비웃으면, 재욱이는 콧방귀를 뀌며 식탁 의자에 앉는다.
그냥 앉아있으라는 효섭이의 말에 나는 가시방석이지만.. 그래도 재욱이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효섭이를 바라본다.
그럼.. 효섭이는 채소를 썰다가도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지은이 누나랑은 별 일 없던 거야?"
"…응. 정말 별 일 없었어. 오히려.. 먹을 거 챙겨주셨어."
"그 누나가 못된 누나는 아니야. 되게 정도 많고, 착해."
"나한테 화낼 수밖에 없는 거잖아. 나는 이해 해..!"
"그래도.. 저 누나가 괴롭히면 나 불러라. 알겠지."
"…네가 더 약할 것 같은데."
"내 키 안 보여?? 나190 가까이야!! 내가 여기서 제일 커!!"
"재욱이가 더 큰 것 같은데.."
"와! 야! 이재욱 너 이리와봐! 서봐!!"
재욱이가 귀찮다는 듯 손사레를 쳤고, 효섭이가 당장 오라며 재욱이의 팔을 잡고 끌면.. 결국 재욱이가 일어서서 효섭이 옆에 선다.
그럼 서로 뒤돌아 마주 섰고, 효섭이가 누가 더 크냐며 내게 당당히 물으면..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똑같아."
"뭐어? 말도 안 돼. 다시! 다시! 내가 더 컸는데?"
"아니 키가 뭐가 중요해. 진짜.. 이 형은 맨날.."
"야 인마! 중요해! 인마!"
둘은 티격태격 하느라 바쁘고, 나는 그 둘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몰래 그들을 보며 웃고 있다가도 그들이 우리 아빠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너무 아련해지기도 했다.
많이 힘든 사람들인데..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고.
다같이 집 안에서 밥을 먹었고, 설거지는 나랑 아린이가 같이 했다. 그래도 처음 보다는.. 그나마 덜 눈치를 보게 되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많기에.
나는 밖에 나와있어봤자 사람들의 심기만 건드릴 것 같아서 방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방에만 쳐박혀 있지 말고, 애들이랑 바다 갔다와."
"바다요..?"
"못 봤어? 주변에 바다 있는데."
"…아."
"마을 사람들도 바다 잘 안 가서. 가면 우리밖에 없어. 가서 놀다 와."
"…네."
"지창욱이야."
"네?"
"내 이름 지창욱이라고."
"…아, 네."
"그래. 갔다오자. 아린이랑 천천히 나와."
"아, 응..!"
효섭이와, 지창욱이 나갔고.. 이지은은 나를 한 번 무심하게 바라보고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아린이가 옷 갈아입는다며 방으로 들어갔을까.. 아직 나가지 않은 남자가 내게 말한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벌써 넘어왔고, 네 아버지 장례도 치루고 있더라. 너는 실종 됐다고 알고 있어, 다들."
"……."
"너도 궁금하고 걱정 될 거 아니야. 눈치 보여서 물어보지도 못했을 텐데."
"왜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
"너도 피해자니까."
"……."
"우리가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 너 미워하는 건 오래 못해. 너도 우리가 밉겠지만, 우리처럼 맘 놓고 너그럽게 봐줘."
"……."
"먼저 간다. 아, 맞아. 내 이름은 박서준이야."
진짜 간다- 하고 손을 흔들며 나가는 남자에 나는 벙찐 표정으로 남자를 보다가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나까지 이해를 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하!! 진짜 하지 말라구여어어!! 물 뿌리지 마요오오!!!"
"아린이 울겠다, 울겠어.."
"까불어 아주 그냥.. 최아린 이 스끼."
"물놀이에도~ 인맥이 있어야~ 한다~ 오케이? 최아린?"
"몰라요! 안 오케이!!!"
재욱아아아아! 하고 아린이가 저 멀리 물에 다 젖은 채로 재욱이를 부르고.. 재욱이는 이제서야 도착해서 내 옆에 자리를 잡는다.
모래 위에 그냥 앉아서 사람들을 보는데. 너무 행복해 보였다. 한참 그들을 바라보다가 재욱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안 놀아?"
"…네."
"왜?"
"그냥. 별로..재미 없어요."
"다같이 놀면 재밌잖아."
"…그런가."
"나도 친구들이랑 여름 되면 바다 놀러가는데. 나도 항상 아린이 처럼 혼자였어. 나 놀리면 반응이 재밌대."
나름이의 말에 재욱이 나름을 힐끔 보았다. 나름이 웃으며 사람들을 보고 있자.. 재욱도 어느새 웃고 있다.
"……."
여태 제대로 웃는 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 재욱은 혼자 생각을 하며 나름이의 시선을 따라 본다.
여전히 물을 맞고 있는 아린과.. 나머지 형들. 여자 한명 가지고 뭐 저렇게 열심히 물을 뿌리는지.. 아린이 재욱을 열심히 불러도, 재욱은 대답도 안 하고 그냥 지켜볼 뿐이다.
"근데.. 처음에. 왜 나를 도와준 거야?"
"…아."
"……."
"그냥요."
"…그냥?"
"처음엔 다들 너무 화가 나 있어서. 정말로 누나를 어떻게 할 것만 같았어요."
"……."
"정말 끝인데. 왜 누나한테 까지 피해를 가게 하는 걸까 싶었고, 그냥 보내야겠다 싶었죠. 뭐.."
"고마워. 그래도.. 네 덕분에.. 처음에 막 그렇게 무섭진 않았어. 의지 할 사람이 있어서.."
"…에? 아.. 그래요? 그럼.. 뭐.. 다행이고.."
"근데 아린이는 별로야? 아린이가 너 좋아하는 거.. 너도 알잖아."
"그냥."
"…또 그냥?"
"네."
"치..ㅎㅎ.."
"……."
재욱도 또 나름을 따라 웃어보인다. 그리고 멀리서 모래 위에 앉아 책을 읽다가 애들을 본 서준은 소리 없이 웃는다.
"……."
그리고 또 새벽이 되었을까.. 나는 또 잠이 안 와서 밖에 나오게 되었다. 이번엔 아까 왔었던 바다로 향했다. 밤 바다라 무서울 법도 한데.
그래도 전등으로 인하여 밤 바다가 예쁘게 보였다. 혼자 그냥 무릎을 모아 앉아서 바다나 보고 있는데..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보면..
"따라다니는 거 아니고. 내가 가려고 하면 네가 있는 거야."
"…에?"
"오해 할까봐. 오늘은 안 우네."
"아.. 아, 네. 안 울어요..!"
"내가 어제도 말했잖아. 혼자 새벽에 이렇게 나와있으면 못구해준다고."
"그치만 혼자가 아니잖아요."
"…뭐, 맞는 소리네."
"잠이 안 와요?"
"응."
"같이 바다 봐요, 그럼."
우도환이 말 없이 나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내가 아직 불편한가보네.. 거리 벌린 채로 앉은 우도환에 조금은 뻘쭘하지만.. 티내지 않고서 다시 바다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다 우도환이 '야'하고 나를 불렀고.. 나는 에? 하고 놀란 눈을 하고서 고갤 돌려 우도환을 바라본다. 그럼.. 우도환이 내게 손목 시계를 건네준다.
"시간 못 본다며. 가져."
"…아."
"얼마 안 해. 특히나 너같은 부자들한테는 진짜 얼마 안 하겠지."
"……."
"…보통.. 선물을 받으면.. 고맙습니다..가 먼저 아닌가?"
"아, 고맙습니다..!"
"빨리도 말한다."
"…죄송해요."
"잘 차고 다녀. 명품은 아니더라도.. 무려 우크라이나산인데."
"ㅎㅎ 고마워요.. 정말."
"고마운 거 확실해? 진심이 안 느껴지는데."
"정말..! 진심이에요!..."
"알겠어ㅋㅋㅋ."
"근데.. 날씨가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나름."
"네?"
"너 이름 부른 거 아닌데."
"…아, 네."
"바보냐."
바보냐는 말에 나는 또 바보처럼 허허- 하고 웃어버린다. 그러다 너무 어색해져서 말 한마디도 오고가지 않았을까..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할 것만 같아서 입을 열었다.
-
-
-
-
냠냠...
먼가.... 이 글이 재미가 없더라도.. 마지막은 꼭 내고시퍼여.... 그게 가능할랑가 모르게찌만 ㅠ-ㅠ 마지막화가 너무너무 쓰고싶땨...
밑에! 여주가 할 말을 선택해주시면 돼용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실수로 투표 위로 올려버려써욬ㅋㅋ헿 수정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