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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방탄소년단 정해인 더보이즈 변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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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체.   사랑했던 기억이 저기 쓰러져 있다.  하얗게, 눈에 덮여가면서 천천히... 호흡곤란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미 죽은 그 사람 없이는 숨 조차 쉴 수 없어 힘들어 하던 나를 대신해 죽어가고 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첫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고마워. 





어두운 하늘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보면서, 별들이 뿌려주는 눈송이를 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코드핑크 #05 ------------------------------------------

억지로 울음을 버티며 짧은 밤을 꼬박 새웠다.  터지려는 울음을 참아내다 보니 목이 타들어가듯이 아파왔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시계를 보니 출근 준비를 이미 마쳤어야 했을 시간이 되어있었다.  한숨을 쉬고, 얼굴을 두드리며 냉장고로 향했다.  잠을 안잤는데, 울지도 않았는데도 얼굴이 푸석하니 부어있었다.  얼음을 꺼내 수건에 감싸들면서 난 어이없게도 웃음이 픽 터졌다.  이렇게 마음은 힘든데도 삶은 현실로 다가오는게 화가 나다가도-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끝도 없을 고통 속에 잠겨만 있을 수가 없게 만드니까.





-그냥 오늘 하루 열심히 현실을 살아내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힘든데.   어떻게 그런 것들까지 다 신경쓰면서 살아.





사랑하면 닮는다더라.  언젠가 대리님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말대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현실을 살아내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일주일 넘게 식음을 전폐하면서도,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도. 그것도 못깨달을 정도로 살아내고 있었다.



겪어보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던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더라.  이렇게 , 다른 사람으로 잊혀지기도 하더라.





-그러다 정 힘들면 가끔씩 이렇게 나한테 기대면 돼.





문제는, 이렇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게 또 다른 고통이라는 것 정도?  어젯밤부터 터져오는 울음을 참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젠 기댈 수 없다. 그에게, 다시는.....





























"네 아 심하게 아픈 건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지..... 정말 병원에 들렀다가 가야하나?  이것도 꾀병인건가.... 학창시절에도 한번 해본 적없던 땡땡이를 치는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급하게 현관을 나서다가 걸음을 멈췄다.



오버핏의 롱코트, 터틀넥 스웨터에 검은 청바지.  그가 어제의 옷차림 그대로 건물 앞 화단에 기대 앉아 있었다.  뒷모습인데도 밤새 저기 저러고 앉아 밤을 샜을 그의 퍽퍽한 얼굴이 느껴졌다.  인기척을 느끼고 그가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저러고 앉아서 차가운 밤기운을 다 맞았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것저것 차려입고 출근준비부터 하고 나온 내가 미안해졌다.





"시간이 부족하긴 했는데, 생각은 좀 정리된것 같아서..."





그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천천히 미소지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미소였다.  입은 웃고있는데 눈이 너무 슬퍼보였다.





"이제 내일이 됐으니까.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서."





오늘은 아무래도 진짜 땡땡이 치는 날이 될 것 같다.













































"우연히, 처음엔 우연히 사진에 찍혔지.  아, 이 여자 우리 미술관에 자주 오던 사람이네.  누가봐도 이쁘지 않을, 털 숭숭하고 이가 다 빠져서 혓바닥이 주둥이 한쪽으로 쑥 나와있는 유기견 중 하나였는데 그런 늙은 개를 보고도 안쓰럽고 이쁘다고 있는대로 끌어안아주는 거 보고 아, 진짜 이 사람 강아지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 모습이 진짜 이뻐보였어. "





나는 벌받는 사람처럼 쏟아지는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바로 다음날 미술관에서 다시 마주쳤고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깨달았어.  이 사람이 어제 왜 그렇게 유난히 이뻐 보였는지.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거 앞에서 신나서 그렇게 이뻐보였던 거였어."





언제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눈을 맞춰주던 사람이었는데 마주앉아 입을 연 순간부터는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너 그림보는 거 별로 안좋아하잖아.  지루하고 재미없었는데도, 억지로 그 남자 옆에서 무던히도 노력했잖아.  안타까웠어. 그 예쁜 표정 내가 다 아는데. "





결국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버렸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떠나버린 그와 함께 있던 내 모습을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의식하기 훨씬 전부터.





"헤어진 게 분명한데, 그런데도 다가설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한 그림을 보러 계속 미술관에 왔잖아.  네가 혼자서 계속 되돌아 오는 이유는 추억 때문이잖아. 그 사람을 못 잊어서..."





시체더미 속에 죽은 척하고 누워 있는데,  그런 나를 향해- 확인사살을 하려고 조용히 들이대는 총구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네가 미술관에 오랫동안 오지 않으면 '아 이제 그 사람을 조금씩 잊어가는구나.'싶었지.   그러다 '그러면 이제 이곳엔 영영 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또 따라오는 거야.    그래서 네가 미술관에 오면 반갑다가도 슬프고..."





부드러운 진갈색 눈동자가 반쯤 가려진 앞머리 사이에서 흔들렸다.  저 순한 눈망울로, 저 흔들리는 목소리로,  모두 다 알면서 그는 나를 보듬기 위해서 얼마나 애썼을까.





"내내 짐작만 하다가... 어느 순간 확신이 왔지. 죽었구나, 그 사람. 용기가 났어. 아, 결국 내가 이기겠구나. 아니, 이길 필요도 없겠구나.   .....이기적인 말이라는 건 아는데, 그 사람은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하다 말고 한 쪽 손등으로 턱밑을 슥 훑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만큼 큰 라이벌이 없더라."





계절의 네 모퉁이를 돌고 돌아 다시 같은 온도의 모서리 안에 들어설 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의 눈물이었다.  지겨울 정도로, 웃어주던 얼굴만 기억이 나서- 지금 이런 그의 모습과 목소리가 너무 낯설어서-  그가 내게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가, 얼마나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었는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이길 수 없는 상대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야."





숨이 턱 막혔다.































































남자사람 친구가 된 이후로 그가 처음으로 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지 않았다.  머뭇머뭇, 그 답지 않게 망설이다가 결국 까페 앞에서  헤어졌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자리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거실에는 미처 못 치우고 출근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 식어버린 커피, 그가 싸왔던 죽, 사진들, 패브릭트리와 미니전구....  손을 뻗어 전구의 스위치를 누르자 반짝, 불빛이 들어오면서 깜빡거렸다.  젖어드는 눈안에서 불빛이 아롱지며 번져갔다.



자신이 우는 것도 못깨닫고 고해성사하듯이 내게 말을 쏟아내던  그의 얼굴이 불빛을 따라 눈앞에 아른거렸다.  슥- 손등에 뭍어나는 눈물을 보며 당황해 흔들리던 눈빛도. 울음을 삼키며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던 입술도.  언젠가의 내가 떠올라서 나는 결국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언젠가의 나처럼  사랑 투정하는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한 걸까.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지쳐버릴동안 그 애타는 마음을 방치한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속상했다.



사람으로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너무 아픈일이다.  누군가를 잊는 것도, 누군가를 이용하는 죄책감이 드는 것도.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모른척하고 행복해만 했던 이기적인 내가 다시 한 번 이렇게 벌을 받나보다.  창밖에서 쏟아지던 햇살이 반대편으로 기울어져 커튼 그림자가 길게 거실에 내려앉을 때까지 나는 그렇게 깜빡이는 전구와 함께 울었다.























 

































전화가 몇번이나 울렸는지 모르겠다.





-많이 아파? 왜 연락이 안돼? 

-네........ 죄송해요. 정신이 없어서...

-입원했어? 어디가 아파?

-입원은 안했는데... 몸살인가봐요 몸이 너무 ....

-에휴... 그래 며칠 안좋아보이더라. 일단 연차 처리 됐어.

-네 감사해요.

-내가 뭘..... 목소리가 다 죽어가네...어쩌나.... 내일은? 내일도 하루 더 쉴까?

-내일은... 나갈께요.

-좀 쉬어. 내가 처리할께. 그러다 진짜 쓰러져.

-네 감사해요...





죽어 없어지지 않는 이상, 나는 현실을 살아내야한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눈앞에서 별이 번쩍 거렸다.





-자기, 며칠동안 점심 한끼도 안먹은거는 알아? 밥은 먹고 다니니?





어제부터 제대로 잠도 못자고 며칠째 한끼도 제대로 못먹은 게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거의 하루를 꼬박 거실에 놓여있던 그가 사온 식어버린 죽이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죽을 꾸역꾸역 먹고나니 그제야 조금 움직일 힘이 났다.  이게 무슨 꼴이람.....



설겆이를 끝낸 후, 거실에 다시 앉아 식은 커피를 마시며 그가 가져온 사진을 보았다.  그에게 받았던 usb 속 사진들과 겹치는게 몇 장 보였다.  거실 바닥에 펼쳐진 패브릭 위로 사진들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나열했다.  내 얼굴, 그의 얼굴,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고, 손가락 하트나 뒤통수 처럼 장난스런 사진들도 있었다.  그가 보아오던 내 얼굴,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들. 그가 함께 추억하고 싶어했던 우리의 시간들.  하나하나 고르고 현상하면서 그는 얼마나 기대에 부풀었을까.  맨 마지막 사진에, 반지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커플링같아보이는.  어쩌면 어제부터 내 손에 끼워져 있었을 지도 모를.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의 반지를 주워들었다. 다시는 이 방안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들고 있을 수도 없다.  한 손에는 반지 한 쌍을, 한손에는 반지가 현상된 사진을 들고 벽에 걸린 그림을 쳐다보았다.  이런 마음으로 이 그림을 쳐다보게 될 거라고는 예전엔 상상도 못했는데.  처음으로, 머리 맡의 그림이 원망스러웠다.





-이젠 정말 어떻게 하지? 





한참을 쳐다보다가,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그림에 손을 뻗었다.





-미안해. 이젠 이 그림을 보는게 화가 날 정도로 힘들어. 그만보고 싶어.





다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아직도 흘릴 눈물이 몸 안에 남아있나보다.





-네가... 네가 죽지만 않았어도, 너와 나의 마지막 기억이, 내가 너에게 사랑투정하면서 싸우던 기억이 아니기만 했어도.   나는 이 그림을 떼어내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을거야.





나도 모르게 점점 울음소리가 커졌다. 나는 결국 또다시 그림을 붙잡고 어린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서 울었다.  그러자, 그림 속의 보이지 않는 손이 나와 나를 다독여 주었다.



 

-..........괜찮아.

-그랬으면 그 사람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야.

-괜찮아. 다 괜찮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그림을 떼어 든 채로 울고 있었다.  거칠었던 호흡을 가르며 울음을 멈추다가, 손 안의 캔버스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긴 시간 머리 맡에서 마음을 무겁게 짖눌렀던 10호짜리 캔버스는 생각보다 너무 가벼웠다.  아마도 내 마음 속에, 이미 누군가가 더 무겁게 들어와 있어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손 안에 잡힌 그림이 말했다.





-잘했어. 어서 가, 더 늦기 전에.  나 같은 실수는 하지마. 절대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서 가. 너 때문에 말라죽기 직전인 그사람에게로.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걸치고 급하게 현관문을 나섰다.





-그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말해.  떠나가지 말라고 말해.  사랑한다고 말해.

























































"70만원이요. 많이 쳐준거에요"

"네 감사합니다."





금은방 아줌마는 내가 진짜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였는지 생각보다 후한 값에 반지를 사주었다.





"힘내요 아가씨."





쯧쯧.... 요즘 경기가 힘들지. 한숨 쉬 듯 하는 혼잣말을 듣고서야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이 눈에 들왔다.  헝클어진 머리, 퉁퉁부어 형편없는 얼굴. 있는대로 구겨진- 집 앞 슈퍼에 나갈 때나 입는 외투를 대충 걸친 모습이라니.  이런 행색으로 어떻게 지하철을 탈 생각을 했지? 여기까지 오면서 왜 나는 몰랐지?



집을 나서자마자 골목 앞 쓰레기장으로 향했었다.  그림을 바닥에 놓고, 그 옆의 쓰레기봉투로 나도 모르게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아트포스터 캔버스정도는 이렇게 골목에 버려진다해도, 반지는........  나는 아직도 덜 아픈걸까. 계속 이기적인 걸까.  마음이 급한데도 계속 속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시간은 지금도 계속 가고 있는데. 손끝을 곱씹었다.  그가 뿌려진 바닷가는 너무 멀었다.  미술관 공원의 자선행사는 아무래도 양심이 허락치않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손에 집히는대로 입고 그렇게 나왔던 거 같다.



금은방에서 받아든 돈을 들고 바로 골목 메인거리 입구에 있는 자선냄비로 향했다.





"후원자 이름을 써주시면 나무에 달아드려요. "





오늘따라 안하던 행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 없는데. 이러다가 상처입은 그 사람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 버리면 안되는데.  급한 마음에 괜찮아요- 돌아서려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이제 너한테는 미안하지도 않나 봐. 이렇게 그 사람 생각부터 나.





별모양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정말 급하게, 오랜만에, 낯선 세글자를 적었다.  



......너의 이름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았구나.



거리 한복판 거대한 트리 위에 별처럼 달리는 이름을 마지막으로 쳐다보았다.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그냥 웃어보였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옷이라도 갈아입고 가야겠다 싶어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그를 보러 가고 싶어서, 붙잡으러 가고 싶어서 마음이 애달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그의 눈에 내가 이뻐보여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차올랐다.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도 좀 하고....... 이와중에  화장할 생각이 나다니, 이 상황에서.

 

 집 앞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가로등이 탁, 켜졌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만큼 마음도 조급해졌다.  한 때는 시간들이 제발 타임워프하듯이 내 인생에서 휙휙 지나가버렸으면 싶었던 순간도 있었는데 이렇게나 일분일초가 아까워지다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 사람에게로 가고 싶었다.  더 늦기전에. 제발 이렇게 끝이 아니길 바라면서.  익숙한 골목 건물들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미친듯이 뛰어 들어왔던터라 숨을 고르느라 잠시 멈추는데  골목 안 가로등 밑에, 내가 버린 그림 앞에 누군가 서있는게 보였다.





"..........."





그였다.  잘못봤나 싶어 눈을 부비고 다시 봐도, 눈 안에 들어오는 실루엣은 그가 분명 맞다.



숨을 고르고 한걸음 다가서는데 최소 다섯번정도는 그에게 건낼 말을 머리 속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또 한걸음, 다시 댓번은 더 생각을 바꿨다. 인기척을 느꼈을 법도 한데 그는 미동도 없었다.





"저기......."





그리고 고작 뱉은 말이 '저기'라니.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나와 시선을 맞췄다.





"내가....... 내가 가려고 했는데...."





그는 조용히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내 차림새가 의외였는지 살짝 갸우뚱, 하더니 바로 다가왔다.  그제야 다시 내 몰골이 어떨지가 떠올랐다.





"아, 내가... 잠깐 나가서 처리할 게 있어서....."



 

머슥해져서 외투를 바투 잡아끄는데 옷 사이사이 찬바람이 느껴졌다.  해가 떨어지자마자 바로 얼음같은 공기가 내려앉아서 속살까지 추위가 파고들었다.  그는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내게 건내 감아주고는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었다.   커다랗고 하얀 손이 어깨를 스칠때마다 울컥했다.





"다 정리하고 가려고... 내가... "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기처럼 말간 얼굴이 여전했다.  변함없는 그의 얼굴에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마주칠 때마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따스함이 아직 그 안에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시선을 맞추며 늘 내게 건내던 따뜻한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   무슨 말이든지 해야했다. 정적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도 여지껏 이런 마음이었을까.  다시 한 번 마음이 아려왔다.

 



"미안해요"





그가 잠시 흔들리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네가......... 왜 미안해"

".........미안해요."

"먼저 좋아한 것도 나였고..... 다 알고 시작한 것도 난데."





마른 입술을 깨물고 겨우겨우 말을 이어나가는 그를 보면서  그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지금의 이 정적을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게 아니에요 나는....내게 주는 그 마음들이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자마자  감당하지 못할만큼 만큼 몰려들었다.





"너무너무 속상해서........."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나는 마냥 잘해주기만 하던 그의 호의를 권리처럼 누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겪었던 아픈 마음을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주게 만든 그가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도 속상했다. 바보같이...  그래서 다시 미웠고, 또 다시 미안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그의 얼굴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급한 마음으로 지난 추억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옛사랑을 하늘의 별처럼 떠나 보낸 순간에도  계속 그가 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게 너무 힘들어서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원하는 대로 되는게 아니잖아요.  원래 원하는대로 사는 사람은 많이 없다고 했잖아요. 나는, 이미....."





다음 말을 차마 못 잇고 흑, 울음이 터졌다.  네가 무슨 마음으로, 무슨 자격으로 울어.  다시 숨을 고르고 입을 앙 다물었다.  그에게 해야할 말이 산더미처럼 많았는데 또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알아"





그가 내 손을 잡아끌었지만 나는 그에게 쉽게 손을 내어 줄 수가 없었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어서...누군가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다가와 손 내미는 마음 그 어느 한 순간도 믿지 않고 물러서기만 했잖아..."





내 손을 감싸쥔 그의 두 손 위로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그랬던 네가, 단호한 눈빛을 풀고 처음으로 내 이름 세글자를 불러주었을 때-   그게 그냥 단순한 호명이었다 해도 나는...... 숨이 멎을 만큼 기뻤어."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손 끝에 힘이 풀렸다.  온 몸에 긴장이 풀리자 꼬박 이틀 동안 제대로 잠 한숨 못 잔게 실감이 났다.  그가 내 뺨을 보듬어 감싼 채 다정히 눈을 맞춰주었다.  꿈꾸는 것 처럼 그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퍼졌다.





"그렇게 보내고...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와 봤는데... 저거 보고..."





진짜 꿈 같았다.  또 다시 후회하며 끝날 줄 알았던 사랑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내가 달려가 붙잡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먼저 다가와 내게 손 내밀어 주었다.  이젠 너무 울어서, 이러다 탈진해서 죽겠다 싶었다.





"저 그림 버릴 때...  네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아프지만 않았음 좋겠어. "





그가 눈물을 닦아준 뒤  품 속에 나를 꼭 안아주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미안하고, 고맙고....그 생각 밖에 안나서...."





어깨를 감싸쥔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고마워. 용기 내 줘서."





내 눈물 때문에 그의 어깨가 다 젖어가는 것 같아서 물러서려 했는데 그는 팔의 힘을 풀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고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사방이 깜깜해져 있었다.  까만 하늘에 하얗게 떠오르는 것들이 별빛인가 싶었는데, 조금씩 움직이며 지면과 가까워지는게 보였다.그렇게 점점 가까워지더니 내 속눈썹 위로 그 중 하나가 살포시 내려 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사르르 사라졌다.  눈송이였다.  한 손을 뻗어 떨어지는 눈송이를 받았다.   손 바닥에 내려앉은 눈송이가 곧바로 눈물처럼 스륵 녹아 없어졌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 하얀 눈송이가 내려 앉았다.  내 눈물로 젖어가던 그의 어깨 위에도 하얗게 올라앉은 눈송이는 곧바로 골목으로 퍼져갔다.  가로등 전선 줄 위에도, 골목 길 담장과 헐벗은 나뭇가지 위에도, 그리고 가로등 밑에서 빛을 잃어가는 10호짜리 캔버스 위에도... 나는 그의 어깨에 고개를 갸웃 기대고 하얗게 눈송이에 덮혀가는 캔버스를 바라보았다.



추억의 시체.  사랑했던 기억이 저기 쓰러져 있다.  하얗게, 눈에 덮여가면서 천천히.... 호흡곤란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미 죽은 그 사람 없이는 숨 조차 쉴 수 없어 힘들어 하던 나를 대신해 죽어가고 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고 첫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고마워. 





어두운 하늘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보면서, 별들이 뿌려주는 눈송이를 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 하은아..."





그가 나를 불렀다.  그의 따스한 손가락이 뒤통수에 닿았다.  커다란 그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내 손끝에도 힘이 들어갔다.





"지하은."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뿐인데.  나는 시에 나오는 꽃이라도 된 듯 기뻤다.





"사랑한다. 지하은."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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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2
외전 있겠...ㅈ...ㅛ...?(눈물 광광
4년 전
비회원127.55
사랑함미다 작가님..세상에 계정 없어도 댓 달 수 있는지 몰라서 댓글 계속 패스했는데 진짜ㅠㅠㅠ헝헝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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