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떨어진다면 당신이 있는 공간으로
- 성동혁, 1226456
광화문 메가 빌딩 18층에서 박수 세례가 터졌다. 아이보리 벽면에 Green-age in Korea 필기체가 화끈하게 그려진 곳. 쉬운 일은 몰래 하고 하기 싫은 건 떠넘기는 편이에요. 농담을 진담처럼 말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수장 김 팀장이 악수를 청했다. 시원한 입매가 매력적인 그녀는 잡은 손을 그대로 당겨 귓가에 속삭였다.
캐나다에서 위드 좀 해봤어요? 눈치 있으면 빈손은 아닐 텐데? 갈라진 옷 주머니에서 불투명한 바이닐을 찾는 기대의 눈빛. 붓 통에 목화 씨를 담아올 문익점 선생님의 두두등장을 고대하던 영의정의 마음이 느껴졌달까.
― “입국 통관에서 성분 표시를 콩가루로 적었으면 승산이 있었을 텐데.”
― “그보다 먼저 제 인생이 콩가루가 될 것 같아요.”
― “어딜 가서든 잘 섞인다는 반증이겠죠?”
― “선례 그 어디에도 긍정으로 쓰인 콩가루는 없어요, 팀장님.”
― “없으면 우리가 만들면 됩니다. 준비됐어요? 알 유 레디?”
― “팔짱 빼주세요.”
― “놉. 회의실로 고.”
오전 아홉 시 반, 같은 층 대회의실에서 본격적인 업무 브리핑을 들었다. 본사 파견직은 특정 직무 대신 팀장의 부재에 따른 일차적 임시 컨펌과 부진한 파트의 산소통 역할을 맡게 됐다.
본사 부편집장 디에잇은 업무 한정 멱살 잡고 끌어올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실력파를 보낸다는 첫 메일링으로 한국 라이프지 팀장을 혹하게 했음이 틀림없었다. 몇 달간 진척 없는 프로젝트 중반부와 더불어 온라인 월간지 영문판 제작과 계절 호에도 참여 권유를 했으니까.
정 힘들면 거절해도 돼. 망한 밥상 엎어버리고 위에서 개 같이 까이다가 일주일 내내 우는 거 할 만하잖아요? 나만 그런 건가? 응?
말이 소박한 권유지 반강제 요구와 다를 게 없었다.
머리통을 녹이는 햇볕만큼 버거운 리스트가 메모지에 쌓인다. 팀장이 한국어가 유창한 일당백 경력직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허니콤보 먹고 싶다는 데이비드 보냈으면 부편집장은 평생 들을 한국 욕 다 먹었겠다. 응, 그렇고말고.
라이프 스타일 팀의 작업은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퀄리티와 더불어 스피드를 중시하는 팀원 전체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이프지는 전체 중 후반부를 담당하지만 총 분량은 패션과 메이크업을 합친 쪽수와 비등했다. 우리 쪽 입김이 좀 세요. 아이라인을 세 번 덧댄 최가 옆에서 말했다.
요즘 트렌드가 인간 극장 쪽이라 사람 사는 세상에 관심 많아졌거든요. 삶이 하도 팍팍해서 그런가? 정치가나 경제 인물 성공 요인보다 30년 분식집 욕쟁이 할머니 떡볶이 후추 맛이라든지, 요가 강사 펄스널 컬러가 봄 웜인지 겨울 쿨인지, 삼성 이재용 부먹인지 찍먹인지 관심들이 그렇게 많다니까요? 저번에는 이재용이 엘지폰 쓴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몰래 취재하다가 우리 목 하마터면 다 날아갈 뻔.
팀장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최는 백합처럼 입을 다물고 ‘팀장님 점심 먹고 설사’를 다이어리에 다섯 번씩 반복해 적었다. 귀여운 육공 노트가 데스노트로 변하는 과정을 본 유일한 목격자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때 회의실 앞쪽에서 얇은 눈썹 스크래치가 돋보이는 박이 살그머니 손을 들었다. 이번 하반기 특별 호 어쩌죠? 박의 질문에 팀장과 나머지 팀원들의 힘겨운 고개가 뒤로 넘어간다. 이번엔 최에게 먼저 물었다. 그녀는 눈가에 앉은 피그먼트 펄을 정리하며 몰래 펜을 들었다.
작년부터 팀장님이 공들인 개싸가지 있는데 저희랑 인터뷰하기 싫다고 일 년 넘게 퇴짜 놓는 중.
팅커벨 큐빅 인형이 달린 펜대가 계속해서 부연 설명을 날려 적었다.
뉴욕 타임즈에 한국인 건축가 최초로 헤드라인 실렸던 거 아시죠? 그 건축가가 국제 공모전 대상이랑 젊은 건축가상 받고 맨하탄 건너가서 9번가 홀 게이트 지었잖아요. 네네, 맞아요. 그때 국뽕 미쳤었죠. 구글링만 해도 한국 영상이랑 기사 트래픽 장난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분 루트를 비슷하게 타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개싸가지인거죠. 국내 관심 달아올랐겠다, 때마침 국제 공모전 대상 받고 젊은 예비 건축가상 수상까지 하겠다, 팀장님이 제2의 뉴욕즈 헤더 걸고 이슈 좀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글쎄 당사자가 꿈쩍을 안 하더래요. 사이비 매체 같은 건 믿지도 않는다면서.
작년에 팀장님이 직접 꽃다발 들고 공모전 시상식에 찾아갔는데도 보는 척도 안 하더래요. 완전 투명 인간인 줄. 그날 팀장님 사무실에서 혼자 운 것 같았음.
팀장은 벽에 이마를 찧었다. 중얼중얼 한이 많았다.
고작 스물일곱에 상이란 상은 휩쓸어 담으면서 주목받기 싫은 안티 소셜은 내가 살다 살다 첨 봐. 심지어 건설 회사 대표 외동아들이래. 땅값 오르면 백억대로 뛰는 건물을 부자지간이 사이좋게 짓고 있는데 옆에서 보는 내가 탐이 나, 안 나? 수상 소감 미끼 던져서 재벌 인터뷰 딱! 아버지랑 사진 빡! 그린 에이지 홍보 팡팡!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얼마나 좋아? 싸가지 밥 말아 먹은 놈이 찾아가도 무시하고 전화는 원래 안 받아. 열 받아서 열 번 넘게도 했어. 또 안 받아. 스팸 돌렸어.
눈치 없는 박이 기합을 넣었다. 팀장님은 할 수 있어요! 라이프 스타일 파이팅! 최와 팀원들은 귀를 막았다. 팀장의 욕설이 박에게 랩으로 꽂히는 것쯤은 그들에게 일상이었다. 쇼미더머니를 왜 봐요. 파이널 라운드 랩퍼가 저기 있는데. 최의 혼잣말이 박의 두꺼운 목을 움켜쥔 팀장에게 향한다. 그녀의 기다란 손톱이 아찔했다. 이 새끼 저 새끼가 난무하는 자유로운 환경이었다. 팀원들은 욕을 ASMR로 때려 박기 시작한 팀장과 감격한 박을 제외하고 회의 속도를 높였다.
젊은 예비 건축가상 시상식 언제라고 했죠? 내일 오후요. 주 기자한테 미리 연락은 했는데 저희는 아예 못 들어갈 수도 있어요. 건축 인사들 포함해서 관련된 사람들 줄줄이 사탕으로 앉아있겠죠. 수상 끝나고 스카웃 러브콜 보내려고 똥줄 탈 걸요? 저희가 갖고 싶은 그분은 이미 경쟁률 과포화고요.
부정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그들 사이에서 굼뜬 눈을 깜빡였다. 시상식엔 개구멍이 없냐고 물어볼 찰나였다. 팀장에게 목을 내주고 얼굴만 달랑거리던 처연한 박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싱긋 웃었다. 결국 미쳐버린 걸까. 어느새 박이 팀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유는 아마 나 때문이었을 거다. 팀장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저요? 왜요? 아니요. 싫어요.
― “연락 불통에 명함은 받지도 않고 거절. 여기서 그 싸가지한테 무시당해보지 않은 사람 없어. 내가 한 명씩 다 보내 봤거든.”
― “팀장님?”
― “그러니까 이번엔 미스 캐나다 차례.”
빨간 네일이 나를 가리킨다. 아니요. 안 돼요.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를 또 찾아가요? 시간 낭비 아닐까요? 팀장님? 어디 가세요? 절 좀 보시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 일과 맞지 않은 형편 없는 인재라 어필한다. 팀장은 콧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얇게 발린 네일처럼 마음을 빠르게 굳힌 듯 보였다.
― “명함 주고 오는 걸로. 성공하면 반은 넘어간 거니까.”
― “무시 받지 않은 사람 없다면서요.”
― “혹시 모르지? 그 로또 확률을 뚫을 실력자일 수도 있잖아?”
― “그러지 마시고 다른 일 주시면 진짜 열심히 할 자신 있거든요.”
― “모든 일에 열과 성의를 다하는 게 그린 에이지 창립 모토 아니었어? 본사에서 다이렉트로 온 사람이 이래도 돼?”
― “초심 찾기 굿이라도 할까 봐요. 여기선 돼지 목 구하기 쉽죠?”
팀장은 초심 찾기 운동에 매우 기뻐했다. 내일 있을 시상식 주소를 문자로 보내더니 행사장까지 몰고 갈 회사 차도 친히 제공했다. 명함 받을 일은 정말 이-만큼도, 정말 요-만큼도 없으니까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아요. 미친 사람처럼 웃는 그녀를 따라 사회성 좋은 팀원들이 맞장구쳤다. 정리하자면 무조건 참패할 전쟁에 홀로 뛰어 들어가라는 개소리였다. 레벨 1 나무 목검을 쥐고 던전 보스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랄까. 흔한 물약도 없고 강화 주문서도 없다. 팀장은 ‘해산’을 외쳤다. 최는 ‘밖에서 울지 말고 사무실에서 울기 ㅠㅠ’가 적힌 쪽지를 남기고 회의실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내게 팀장이 파이팅을 외쳤다.
― “외국물 먹은 것 좀 봅시다.”
― “명함 주는 건 외국물을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걸요.”
― “스땁 플리즈. 어노잉. 월킹 나우.”
― “팀장님?”
― “노패인 노게인. 시간 없어요.”
― “고통 없이 얻는 게 없다뇨? 갑자기 왜 그러세요?”
― “달리고 달리고 달려봐도 도대체 언제 앞지르냐고-!”
― “춤은 왜 추시는 건데요!”
1. 캐릭터명: 나
2. 퀘스트: 매체 극혐 안티 소셜에게 명함 주기 (수상자 중 유일하게 혼자 받기 때문에 찾기 쉬울 예정)
3. 난이도: 최상
4. 경험치: 우여곡절에 따라
5. 추가 보너스: 인사고과 반영 가능
가장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으니 알려주도록 하겠다. 짬 찬 상사도 앉기 어렵다는 창가 자리를 얻었다. 에어컨도 적당한 거리에 있어 기가 막힌 자리지. 최가 준 등받이용 쿠션을 보듬고 엄지발가락으로 데스크탑 전원을 켜고 인프라넷 로그인. Green-age 캐나다 홈페이지 클릭. 내부 게시판. 직원 고발 어딨어. 디에잇 당신 내가 고소한다. 임원 소개 상위를 차지한 부편집장의 젠틀한 미소가 압도적이었다.
부편집장님, 얼굴 좋아 보이시네요?
이 노래 아세요?
옛날 노래긴 한데 부편집장님과 너무 잘 어울려요.
근데 잘빠진 트래쉬 블랙베리로 검색이 되려나?
모험은 시작됐어!
김여주 가자 렛츠고!
여주 씨 미안해!
한국 가라고 꼬드겨서 미안해!
……캐나다, 다시 갈까.
Oh My Rainbow
; The Finale
02. 필연
우중충한 아침이었다. 원룸 거실 바닥에서 이불과 하나가 되어 맞이하는 낯선 공기. 기상 악화로 다음 주에나 올 매트리스를 원망하며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주방에서 우유보다 많은 시리얼을 그릇에 담았다. 반절은 손으로 퍼 먹었으니 이제 우유와 건더기의 양은 동일하다. 베란다 앞에 앉아 팔각정이 보일 것만 같은 남산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인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탄수화물만 잔뜩 든 옥수수 뻥튀기를 씹는다. TV에서는 오전부터 헤드라인을 걸고 앵커가 소식 전하기에 바빴다. 눅눅한 시리얼을 시계 방향으로 젓던 숟가락이 어느 한 지점에 멈췄다.
K건설 주가 상승세.
이 회장 외아들 약혼 가능성.
K건설 빌딩 앞에서 리포터가 아침 햇살을 맞으며 경건한 표정으로 대본을 읽는다. 수년 간의 흑자 그래프를 화면에 띄우며 지훈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오른쪽 하단에 비치다 사라졌다. 코스닥과 증시. 활발한 대기업 간 거래가 그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왔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아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들과 지저분하게 섞였다. 그럼에도 시리얼을 씹는다. 탄수화물만 잔뜩 든 그것을. 살고자 먹는 것이었다.
다 찌라시야. 혹시 HBS 뉴스 봤냐? 그것들 하는 말마다 거짓부렁이잖아. 아직도 대한민국 물 부족 국가라면서 심층 취재 발로 하던 놈들이었어. 야야, 약혼은 무슨. 진짜면 이지훈이 나한테 말을 안 했겠냐? 차라리 이석민 발 이백 삼십을 믿겠다.
회사 SUV를 타고 송도로 향하는 내내 승관의 입은 마를 줄 몰랐다. 내 말 듣고 있지? 끊겼냐? 묵묵히 말을 삼키다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알아. 그 방송사 전부터 말 많았지. 응. 석민이 삼성동 갈치 발. 알지. 나 거의 다 왔다 퇴근하고 연락할게. 그대로 종료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주 기자 연락이 왔다.
H홀 앞에서 주 기자는 몇 없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며 당부했다. 개인 촬영은 불가하고요. 인터뷰 따면 잡지에 실을 사진 공유할 테니까 연락 주세요. 팀장님은 잘 계시죠? 작년 공모전 수상 때도 혹시 몰라 찍어뒀걸랑요. 트렁크에서 꽃다발을 꺼낼 뿐 자신의 질문에 반응이 없자 주 기자는 뚱한 얼굴로 기자실에 들어갔다.
시상식장 안은 꽤 많은 건축계 관련 인사들뿐만 아니라 나처럼 방문증을 건 사람들도 많았다. 뉴욕 타임즈 최초로 한국인 건축가가 소개된 이후로 관심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는 게 이로써 증명된 셈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무리들은 입을 가리며 소곤댔다. 주제는 역시 K건설 외아들의 약혼이었다. HBS뉴스 인기 많네. 거짓부렁을 잘도 믿는구나. 그럼 석민이 발 이백 삼십인데. 뚱함은 주 기자와 다를 게 없었다.
22회 젊은 예비 건축가상 시상의 도입을 알리는 사회자가 하얗게 센 노인들을 소개했다. 말이 노인이지 나름 건축에서 한가락 했거나 현재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인사들이었다. 그들과 맨 앞줄을 차지한 풍채 좋은 남자가 시상대에 올라 주최 인사말을 했다. 형식적인 멘트는 긴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을 거쳐 돌림노래처럼 돌고 돌았다.
― “이어 시상이 있겠습니다.”
반대 입구 쪽에서 정장 입은 무리가 레드카펫으로 들어왔다.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들 틈에서 홀로 여유롭게 걷는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단상에 올라 이따금 다른 수상자와 대화를 주고받는 맑은 얼굴. 그러니까 공식 석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로 상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남자에게 아무런 위기 없이 아웃당하고 만다.
이지훈
대한민국의 미래 건축을 이끌어갈 젊은 인재의 뛰어난 면모와 능력을 깊이 인정해
제22회 젊은 예비 건축가상을 수여 함
제 실력보다 잿밥에 관심 많은 매체가 싫은 아이.
아버지가 건설사 대표이자 당당히 실력으로 들어간 남자.
주가가 오르면 대기업과의 약혼설을 달고 다니는 사람.
이지훈.
내 프리지아.
* * *
한 대 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미꽃. 포토 타임에서 화려한 플래시를 받는 그에게 눈을 뗄 수 없다. 뒤이어 팀장의 전화는 일말의 희망도 없는 확인 사살이었다. 한눈에 보이죠? 다들 팀인데 혼자 상 받은 싸가지. 그래. 이지훈. 저번엔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했다니까? 아무튼 명함 오케이? 믿는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의사 따위 중요치 않았다. 세상 밖으로 꺼지고 싶었다.
그 많고 많은 수상자들 중에 하필이면 왜 이지훈이었나. 대한민국 수많은 잡지사 중에 왜 그린에이지였나. 나는 또 하필이면 이 시기에 한국을 왔을까.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황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프레임 밖으로 나온 그들이 이번엔 앞줄에 앉은 인사와 대화했다. 방문객 중 많은 이들이 꽃다발을 전했다. 다수가 지훈에게 갔다. 인파에 섞여 그가 잠시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들키기 전에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번엔 문 앞에서 사진을 정리하던 주 기자가 문제였다.
― “팀장님 연락 돼요? 인터뷰 때 쓸 사진 지금 컨펌할래요?”
― “…….”
― “스케줄 맞추기 어려워서 그래요. 팀장님 바쁘세요?”
― “…….”
― “여주 씨!”
주 기자는 자신의 대포 카메라만큼 목소리도 바리톤 급이었다. 그 넓은 홀에 내 이름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명함 줬는데 그 싸가지가 비행기 접어서 날렸어요. 팀장에게 들어갈 보고는 저딴 식으로 할 예정이었다. 주 기자가 보기 좋게 망쳤다. 꽃다발 속에 파묻힌 지훈의 시선이 내게 흘렀다. 증발 감이었다. 기포가 누렇게 타 깡그리 사라진다. 이 시간. 이 자리. 그것도 이지훈 앞에서.
아무튼 연락 기다립니다! 꼭이요! 주 기자는 모든 걸 망쳐 놓은 주제에 빠르게 사라졌다. 방문객들과 인사들이 사라지고 수상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 순간까지 망부석처럼 굳은 채 서 있었다. 정신 나간 육체가 제 주인 말 따위 들을 리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마침내 텅 빈 공간이 되었을 때 서로를 향한 길이 열렸다. 화려한 레드카펫의 끝에 그가 있다. 그 많던 방해물들이 순식간에 소멸했다. 흔적도 없이. 마치 엿 먹으라는 듯이.
지훈은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레드카펫을 따라 단상 밑으로 내려가는 내내 나를 김밥처럼 돌돌 말아 지구 밖으로 내쳐주길 염원했던 것 같다. 한 손에 이파리 뭉텅이가 날아간 장미꽃을 들고 다른 한 손엔 구겨진 명함을 들고서.
― “그린 에이지입니다.”
― “…….”
― “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트위스트한 혀가 어떻게 굴러 먹는지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허옇게 굳었다. 백발 노인의 머리칼처럼. 지훈은 원래 형태를 잃은 꽃과 명함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예전과 다른 매서운 눈매. 살이 더 빠진 듯한 얼굴. 매끄러운 콧대와 입술은 그대로. 하지만 날 보지 않는 눈. 어쩌면 승관의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이지훈은 지금 여기에 없었다. 생기 어리던 미소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였다. 숨이 턱 막혔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어디까지 왔고 또 어디를 향해 멀어지고 있을까. 감히 셀 수 없는 간극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 “그린 에이지.”
― “…….”
― “스토커네.”
빼앗다시피 가져간 명함을 아래로 흘려보낸다. 발밑에 볼품없이 착지했다. 처참했다. 그것이 꼭 나 같아서. 허리를 숙여 명함을 줍고 다시 내미는 것까지 그는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인터뷰 요청 드립니다. 끝내 자존심은 없었다. 7년을 깬 공백의 순간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태연했다. 공과 사에서 위태롭게 줄을 타는 나를 그가 알 리 없다. 결국 못 본 것처럼 지나친다. 그는 나를 지나치고 있었다.
다급하게 팔을 붙잡아도 매섭게 뿌리쳤다. 그에게서 한숨이 흘렀고 그 뒤론 적막감이 돌았다. 하늘에 신 따위가 뛰어 노는 정자가 있다면 당장 폭파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운명을 넘어선 장난질이었다. 오랫동안 꿈꾸던 재회가 물거품으로 날아갔다. 그의 표정이, 한숨이, 온도가 말해주고 있었다. 돌아서는 그를 붙잡는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 지도 모르니까.
작년부터 인터뷰 거부하셨죠. 알아요. 왜 거부하는지. 배경이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약혼설은 사실인지 이미 한 건지. 솔직히 사람들은 거기에 더 관심이 있으니까요. 다른 잡지사도 상 핑계로 파고들겠죠. 그런데 우리는 다 필요 없고요. 이지훈 건축, 이지훈 취향에만 관심 있거든요. 졸업 작품에 프리지아를 빽빽하게 심은 이유가 무엇인지. 작년 건축 공모전 주제 ‘기억’에도 프리지아가 왜 있었는지. 아직도 샤프보다 연필이 더 좋은지. 밤샘 작업하면 여전히 다음날 온종일 자야만 하는지.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단골 맛집이 있는지. 쉬는 날엔 뭐 하는지. 쉬는 날이 있긴 한 건지. 케첩도 카레도 계속 싫어하는지. 이건 봐서 빼든지 말든지 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 “……잘 지냈냐구.”
힘없이 손이 미끌어진다. 입구에서 지훈을 부르던 주최 담당자가 의아한 얼굴로 다가왔다. 허가받고 왔습니까? 어깨를 건드리며 지훈 앞을 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상에 명함을 놓고 마지막 발악 아닌 발악을 했더랬다. 작년 경쟁사에 인터뷰 뺏긴 팀장이 혼자 고군분투 중입니다. 올해도 그럴지 모르겠네요. 인터뷰 의향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없어도 제가 할게요. 해외에 유배당하며 배운 게 있다면 속과 달리 기세등등한 표정 따위를 드리우는 거였다. 인종차별과 언어차별을 맞설 때 유용하게 써먹는 방법이었는데 그게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화가 난 담당자에게 강제로 떠밀리다시피 나가는 순간에도 지훈은 그 자리에 있었다. 명함은 단상 위에. 반 토막 주작 뉴스를 펼치던 HBS처럼 반이 떨어져 나간 장미꽃은 그의 발밑에.
네 팀장님. 비행기 접을 것 같아서 단상에 일단 두고 나왔어요. 아뇨. 무시하진 않았어요. 나갈 때도 제가 먼저 나갔는데요. 네? 발톱때 만큼도 기대 안 했는데 대견하다고요? 팀장님 모르셨구나. 제 꺼 태평양 피라미 어획량보다 많잖아요. 네. 외국물은 스케일도 다르죠. 네. 네. 들어가세요.
* * *
당일 저녁에는 승관과 신촌 포차에서 술을 마셨다. 방송국 놈들은 앞뒤가 달라. 대리운전 번호도 앞뒤가 똑같은 마당에 사람이 그러면 안 되잖냐! 라디오 회의에서 직접 낸 아이디어가 승인된 게 불과 일주일 전인데 갑자기 까였단다. 윗대가리의 모함이라고 했다. 승관은 연거푸 잔을 기울였다. 사실 기울이는 정도가 아니라 술독에 빠지는 중이었다.
― “아이디어가 뭐였는데?”
― “라디오는 사랑을 싣고.”
― “첫사랑, 은사 이런 거 찾아주는 거야?”
― “엉, 완전 로맨틱하고 감동적이고 별거 다할 수 있는데 씨.”
― “왜 까였어?”
― “윗대가리 중에 한 놈이 첫사랑 실패했다고. 대차게 까였대 30년 전에.”
― “뭐?”
― “첫사랑 단어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오른대.”
― “완전 미친놈 아니야?”
― “그치? 근데 다른 놈들도 동의했어. 집단 싸이코 새끼들.”
승관은 돼지 껍데기를 먹다 목에 걸린 콩가루에 킁킁거렸다. 코가 막혔는데 등짝은 왜 때려! 너도 내가 하찮냐! 술기운 오른 녀석이 귀가 새빨개지도록 노려본다. 그렇다고 네 코를 개같이 쥐어 팰 순 없잖아. 녀석은 강하게 동의했다. 한 시간 뒤 소주병을 끌어안고 평생 고독방에서 썩어 뒤져라 저주를 퍼부었다. 라디오계 뿌랑둥이를 맡고 있다던 녀석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 “야, 나도 오늘 일진 드럽게 슬펐거든.”
― “왜? 너도 아이디어 까였냐?”
― “명함 까였어.”
― “어떤 스끼냐.”
― “이지훈.”
― “개가튼 스끼.”
― “응.”
― “이지훈?”
― “응.”
― “내가 알고 네가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이지훈?”
뿌랑둥이가 벌떡 일어나 각성했다. 미친! 이지훈 새끼! 그러더니 물을 마구잡이로 퍼마시는 거다. 술 깨고 싶은 건 알겠는데 옆 테이블 물은 훔쳐 먹지 좀 마! 녀석의 뒷덜미를 잡고 겨우 제자리에 앉혔다. 낯선 이들에게 죄송하다 고개를 숙였다.
네가 왜 갑자기? 왜? 네 발로 직접? 명함을 왜 내밀어? 네가 뭔데? 연속적인 질문 공세에 귀를 막았다. 왜긴 왜야. 잡지사 다니잖아. 1년 넘도록 공들인 인터뷰 대상자가 안 넘어오는데 어떡해. 그게 이지훈이었을 뿐이고. 나 다시 캐나다 갈까?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악귀 붙었나? 굿이라도 해야 하나? 응? 승관은 물컵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으로 넘겼다. 이제 살만한가 보다. 내 등을 퍽퍽 치며 기회의 신을 부르짖는 걸 보니.
야, 이게 기회지. 너희는 지금 접점이 없잖냐. 너는 글로 먹고살고 이지훈은 시멘트로 먹고사는데 둘이 어떻게 만나냐. 시멘트 바르면서 글 쓸 거냐고. 아니잖아. 하늘이 내린 계시다. 이건 운명이야. 승관에게 건축은 공사장에서 안전모 뒤집어쓰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관심사 외엔 시야가 좁은 편이었다. 녀석은 기름진 입을 손등으로 쓱쓱 닦았다.
― “그러지 말고 당긴 김에 뽕 뽑자.”
― “뽕을 왜 뽑아, 대한민국은 뽕 불법이야.”
― “인터뷰 무조건 따.”
― “그게 말처럼 되는 거면 벌써 카메라 들이밀었지.”
― “회사에도 찾아가고 단골 밥집 막 들락날락해. 눈에 거슬리라고.”
― “우리 회사 스토커로 찍혔다고 몇 번을 말해? 네가 걔 질린 눈을 봤어야 해.”
― “너까지 이지훈한테 스토커겠냐고.”
승관은 답답한 듯 머리를 헝클었다.
― “너희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
― “…….”
― “인마, 너 이지훈 좋아하잖아.”
이모 여기 불판 갈아주세요. 변명의 여지 없는 목소리가 애꿎은 이모를 찾는다. 깡소주만 한 병을 비웠다. 알딸딸했다. 그동안 승관은 조용했다. 우리 7년이야. 이지훈한텐 이미 묻은 과거일 수도 있어. 오늘도 봐. 네 말처럼 내가 아는 이지훈은 없더라. 7년 동안 트라우마 이겨낼 동안 걔도 변한 거야. 사람은 다 변해. 알싸함이 속을 헤집는다. 승관이 젓가락으로 잔을 탁탁 쳤다.
― “엉, 사람은 변해.”
― “…….”
― “근데 너 왔고, 이지훈도 너 봤고. 마음은 제 앞길도 몰라. 하루가 다르게 바뀌거든.”
― “…….”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똥꾸야.”
풀린 눈으로 입을 오물대던 녀석이 목청을 높였다. 난 여기서 그으만. 넌 넘겨짚는 뻘짓 좀 존나 그만해에. 우.우.우. 그날 밤 승관은 빈 소주병에 숟가락을 끼우고 신촌 포차 스타가 됐다. 인기 있는 디제이답게 페북 핫이슈 동영상 입성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다음 날 오랜 애청자 덕분에 녀석은 라디오 시작부터 놀림을 받았다. 칫솔을 물고 라디오를 틀었다. 개구진 녀석의 목소리가 주파수를 탔다.
여러분, 제가 7년 만에 만난 소꿉친구 덕에 SNS 스타도 되어보고 굉장히 기쁩니다.
당장 내일도 알 수 없는 인생, 정말 흥미롭지 않습니까?
부승관의 카스테라.
오늘 밤 첫 선곡은 이정희가 부릅니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
* * *
이지훈.
형식적 출퇴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그러나 직업 특성 상 제대로 지켜진 적 없음. 출근은 있는데 퇴근은 없음. 고로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함. 야근이 잦고 밤샘은 이틀에 한 번 꼴. 승관에 따르면 약속 세 번 중 두 번은 바빠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함. 아무래도 전 세계 건축은 혼자서 다 하는 듯. 운동은 시간 날 때마다 하는 편. 한강 조깅이나 헬스 장 이용 중. 최근 들어 꽂힌 건 말장난. 드립이 개운치 않으면 그렇게 놀린다고. 저번에 짱구 엄마 봉미선이 새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남편 이름이 ‘신형’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을 때 인연이 끊길 뻔했다는 일화가.
또한 칫솔이 일곱 개 무지개색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음. 21세기 각박한 세상, 소소한 행복을 위해 하루에 하나씩 빨주노초파남보…… 야, 승관아. 이건 진짜 아니지 않아?
― “뭐가? 완전 고-오급 정보인데!”
― “고급은 함부로 붙이는 게 아니라고 예전부터 말했잖아?”
― “자꾸 그렇게 나오면 서포트 없다.”
― “차라리 자급자족이 나을 듯.”
― “그럼 초고-오급을 알려주지.”
― “라디오국 안테나 잘려 나가는 건 시간 문제라고 알려 줬나? 내가 못할 것 같아?”
― “들으면 깜짝 놀랄걸?”
― “암 레디. 준비됐어.”
― “이지훈 단골 맛집 24시 할매순대국.”
뚝.
……넌 진짜 오백 원 엿이랑 바꿔 먹지도 못하겠다. 이것도 친구라고. 아니야. 승관이 착해. 야. 뭐가 착해. 미친놈이 내 카드로 술값 긁었어. 아냐. 친구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돼지 껍데기 같은 놈. 냉면을 두 그릇이나 다 처먹었어. 정다운 두 개의 자아가 대립하는 오늘은 이지훈에게 퇴짜 맞은 지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 지난 어느 오후였다. 외근을 핑계로 K건설 건너편 카페에 앉아 밖을 염탐했다. 일부러 점심 맞춰 자리를 꿰찼지만 정작 이지훈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사무실에 갇혀 일만 하는 건지. 카페가 아니라 승관이 말대로 순대국집에서 대기할 걸 그랬나. 밥은 먹고 살 거 아니야.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맵으로 대충 거리를 계산한 후 서둘러 난잡한 서류를 정리하던 참이었다. 밖은 비가 내렸고 테이블 위 휴대폰이 울렸다.
[우리 지훈이]
이지훈 번호 안 바꿨어
마음 정리 되면 연락해
머리가 기억하는 열 한자리.
예전 그 이름 그대로 저장한 번호.
우리 지훈이.
― [조건 있어]
― [……]
― [인터뷰]
전화를 받자마자 용건부터 말하는 습관이 반가울 새도 없이 그대로 올 스탑. 바닥에 떨어진 펜을 줍던 어정쩡한 상태로. 빗소리에 묻히던 상대방의 배경이 점점 내 것과 같아지고 있음을 느낄 때, 어지러운 틈 속에서 또렷하게 보이는 한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그토록 찾던 그 남자가 내 앞에 서 있다. 투박한 빗물에 젖은 어깨를 털고 역시나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면서.
― “날짜, 장소, 시간, 다 내가 정해.”
― “…….”
― “변경, 요청, 거부 그런 건 없어.”
― “…….”
― “상시 대기. 연락 미스 나면 너희만 손해니까.”
좌우간 고개를 끄덕였다. 부편집장에게 한국행을 들었을 때처럼 얼결에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판도가 바뀌고 있었다. 경위서가 아니라 계약서를 내밀 수 있는 것이다. 맞은 편에서 나처럼 거대한 서류 꾸러미를 든 지훈이 어깨를 으쓱인다.
― “보다시피 일이 많아서.”
― “우리가 다 맞출게.”
― “그럴 거야.”
그는 특유의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계약서에 내 조건 명시해서 가져와. 이메일로 보내던지. 왼쪽에 찬 시계를 확인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본다. 잘 지냈냐는 물음에 비로소 답을 받은 것이다. 늘 그렇듯 이지훈만의 방식으로. 웃고 싶은 입을 겨우 가리며 고개를 돌린다. 정리할 것도 없는 서류를 세고 또 세고. 팀장에게 전화 거는 것도 뒤늦게 생각나 급하게 가방을 뒤졌다. 잠깐만 기다려. 전화 좀 할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 “팀장님, 이지훈 씨 인터뷰 승인이요. 네. 자세한 건 들어가서 말씀드릴게요. 전 영문 교정으로 빠지고 취재팀은 따로 부르시면 될 것 같아요.”
― “아, 한 가지 더.”
나를 가리키는 말갛고 부드러운 손가락.
― “인터뷰 담당은 네가.”
― “…….”
― “마지막 조건.”
장마의 연속이었다. 대답을 채근하는 팀장의 목소리가 희미해진다. 카페 유리창에 비치는 당황한 내 얼굴과 그의 옆모습. 한껏 여유로워진 눈빛과 어렴풋한 미소. 마침내 켜켜이 쌓인 7년의 공백을 털고 조심스레 넘기는 페이지 첫 장.
― “연락할게.”
뜨거운 햇살에 젖는 줄도 모른 채.
한동안 너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