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sey - Not Afraid Anymore
[NCT/느와르] 타는 목마름으로 001
어느 여름 밤이었다. 이안은 침대에 누운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눈을 감지 못했다. 당연히 잠에 들지도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몰랐다. 내일을 살아내려면 지금쯤 꿈나라를 유영하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밤이 너무나 깊었다. 아마 곧 동이 터오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후,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이안은 덮고 있던 이불을 거두었다. 침대 깊숙이 묻어두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제 시야를 까맣게 덮고 있던 암막 커튼을 걷어냈다. 널찍하게 난 유리창으로 집 앞 정원을 지키고 서 있는 가로등이 빛났다.
"...마크다."
그 순간이었다. 검고 긴 승용차 하나가 정원을 가로질러 집 앞에 정차한 것이. 이안은 유리창 너머로 차에서 내리는 인영을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한 청년, 그러니까 이안이 '마크'라고 불렀던 그 남자가 장정 둘의 부축을 받으며 검고 긴 승용차에서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부축을 받으며 질질 끌려왔다는 게 맞았다. 이안은 제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메신저를 켜 키보드를 두드렸다.
[재민아. 자? 마크가 돌아왔어.]
메세지를 보낸 뒤로 5분이 흘렀다. 보낸 메세지에는 답이 없었다. 이안은 제법 실망스러운 얼굴로 메신저를 끄곤, 노트북을 닫았다. 검고 긴 승용차가 다시금 빠져나간 정원은 음산하리만치 조용했다. 여전히 흰 불빛의 가로등은 정원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이안은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침대 머리맡에 윗몸을 세워두곤 무릎을 쪼그려 안았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에 붙어있는 손톱을 잘근, 잘근 깨물었다. 까칠하게 말라 비틀어진 입술이 만져졌다. 입 안도 바짝 말라 침을 삼켜도 그 어느 것도 딱히 삼켜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안은 그렇게 잠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 타는 목마름으로 - 001. DISTOPIA
[미안. 자느라 이제 봤어. 아침 먹을 거지?]
지난 밤 재민에게 보낸 메세지에 대한 답장이 도착했다. 이안이 짐(gym)에서 트레드밀을 사십분 동안 빠르게 걷고 방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요 근래 재현의 지시로 현장에 잘 나가지 못했더니 몸이 둔해진 것 같았다. 몸 이곳저곳에 붙었을 지방을 태우기 위해 빈 속으로 트레드밀을 달린 지가 어느덧 한 달 째였다. 제노는 아침 공복 유산소는 근력을 떨어뜨린다며 말렸지만, 이안은 제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알겠는데, 둔해진 몸부터 어떻게 좀 처리하는 게 나한테는 더 급한 일이라고. 그래야 다시 현장을 나가든 말든 할 거 아냐. 제노는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이안을 보았다.
[어. 근데 한 한 시간 뒤에.]
이안은 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대충 머리를 말렸다.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지난 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마크였다. 이안은 가벼운 옷을 걸쳐 입었다. 마알간 맨얼굴이 거울에 비춰 보였다. 너무 맨얼굴인가. 자주 열지 않는 화장대를 열어 립밤을 꺼내 발랐다. 재현 앞이 아니고서야 립밤 하나를 바르는 것도 이 집 안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안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거울을 한 번 더 보며 옷매무새를 정돈한 이안은 방을 나섰다. 마크는 아마도 2층에 있을 것이다. 이안은 잰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계단을 내려갔다.
똑똑. 이안은 닫힌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문에는 [치료실]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들어오세요. 울려 퍼지는 낭랑한 목소리는 정우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안은 살짝 고개를 숙여 정우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네요. 정우가 이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안은 말 없이 정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쪽이요.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칸."
이안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누구를 보러 왔는지 정우는 이미 알았다. 이안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곤 정우가 말한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칸에 놓인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 위에는 상처 투성이가 된 마크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이안은 옆에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는 마크를 바라봤다. 마크는 잠에 든 모양이다. 이안은 한숨도 못 잔 채로 아침을 맞았는데. 그러고는 정신 없이 트레드밀을 달리고 왔는데. 마크는 이렇게 수액을 맞으며 평온한 얼굴로 잠에 들어 있다.
이안은 손을 들어 마크의 얼굴과 손에 난 상처를 쓸어 보았다. 자면서도 아픈 건지 마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안은 마크의 눈썹을 덮고 있는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붉은 상처가 가득한 손을 한 번 가볍게 잡아주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깊게 앉았다.
"걱정이 돼서 말야. 한숨도 못잔 거 있지."
"......"
"그래도 다행이야. 살아 돌아와서."
"......"
재현은 왜 너만 그런 사지(死地)로 보내는 걸까.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행여 저 멀리서 정우가 들을까 싶어 재빨리 삼켰다. 이안은 그렇게 한참을 마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치료실은 현장에서 작전 수행 후 반죽음이 되어 돌아오는 조직원들을 위해 재현이 마련해 놓은 공간이었다. 일반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면 신원 조회가 되어버려 조직원들의 개인정보가 탄로나버리기 때문에, 상주하는 의사로 김정우를 두었다. 종종 조직원들이 많이 투입되는 작전의 경우 정우 말고도 의사와 간호사를 몇 더 불러 그 작전을 마칠 때까지 대기하도록 했다. 어제는 이 집에 거주하는 조직원들 중에는 마크만 작전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정우만 있었을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마크를 응급 처치하고 이 상태까지 만들어 놓은 게 정우였다.
"....으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안은 여전히 마크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크가 잠에서 깬 건지 앓는 소리와 함께 눈썹을 꿈틀거렸다. 자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북받쳐 올라 정신이 없을 것이었다. 이안은 정우를 불렀다. 선생님! 하는 부름에 정우가 알약 몇 가지를 들고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칸을 찾았다. 마크는 힘겹게 눈을 떴다. 간신히 붙었다 떨어지는 눈에 초점이 돌아온 건지, 그 돌아온 초점으로 이안을 보았다. 웃으려던 입꼬리가 상처 때문에 채 올라가지 못하고, 마크의 눈이 찡긋거렸다. 정우는 마크를 향해 약과 물을 내밀었다. 마크는 앓는 소리와 함께 윗몸을 겨우 일으켰다. 이안은 일어나 마크의 등을 지지해주었다. 마크는 정우가 내민 약과 물을 받아 들었다. 마크의 목울대로 약이 꿀꺽, 꿀꺽, 두 번 넘어갔다.
"통증이 심할 거예요. 많이 다치셨어요."
"....진짜, 진짜 아파요."
마크는 미간을 좁히며 이안을 바라봤다. 웃으면 안 되는데. 아픔을 호소하는 마크를 보려니 한 시름 놓이며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런 이안을 보며 마크도 웃으려다 다시 아파온 입꼬리에 아아, 하고는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웃지마. 아직 움직이면 안돼. 이안이 마크를 향해 말했다. 마크는 고개를 끄덕이곤 정우를 향해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정우는 푹 쉬세요. 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용케 눈은 떴네. 어제 상태 보니까 며칠 혼수상태일 줄 알았는데."
"어제 나를 봤어?"
"잠이 와야 말이지. 너 차에서 내리는 거 보고... 못 잤어. 한숨도."
이안의 어깨로 손을 옮기던 마크는 아아, 하며 또 아파했다. 움직이지 말래도. 마크는 이안을 향해 어깨 좀 토닥여주려 했지, 하고는 덮고 있는 이불 위로 다소곳하게 손을 내렸다. 이안은 받은 걸로 할게. 하고 웃었다. 이안은 아침 먹을 수 있겠어? 여기로 가지고 와달라고 할게. 하고 마크에게 말했다. 마크는 어... 아니. 좀 더 잘게. 했다.
"으응. 그럼 난 밥 먹으러 가야겠다. 괜찮은 거 봤으니까."
"...괜찮진 않아."
마크가 이안을 향해 말했다. 이안은 마크를 향해 쓰게 웃었다. 마크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나오는 마크의 습관이었다. 이안은 아직 너 그렇게 많이 말하면 안 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크가 누운 침대 옆의 빈 공간을 툭툭, 두드렸다. 조금만 더 있다 가지. 마크가 말했다. 이안은 재민이랑 밥 먹기로 했어. 재현도 올 것 같아. 하고 말했다. 마크는 더 이상 이안을 잡지 않았다.
- 타는 목마름으로 - 001. DISTOPIA
"오셨어요."
"응. 마크는?"
"아까 치료 마치고, 지금은 잠들었어요. 많이 다친 것 같아요."
재현이 내게 외투를 내밀었다. 난 깃 가운데를 잡고 세 번으로 나누어 접은 뒤 창가 옆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티셔츠 바깥으로 곱게 근육이 새겨진 팔을 나를 향해 뻗는 재현이다. 나는 팔을 들어 그의 허리를 안았다. 재현은 보고싶었어, 하고 내 귓가에 나직이 말했다. 나는 그의 어깨에 내 얼굴을 파묻곤 저도요. 하고 답했다. 재현은 내 머리칼에 코를 파묻곤 큰 숨을 들이켰다. 채 다 말리지 않아 제법 물기를 머금고 있을 텐데.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는 손을 들어 내 뒷머리칼을 쓸었다. 그간 맡지 못했던 내 향기와, 느끼지 못했던 내 체온을 느끼려는 듯 더 가까이 몸을 밀착해오는 그다. 점차 숨이 막혀왔지만 그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그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있었다.
"....."
몸을 떼어내곤 나와 눈을 맞추는 그다. 밤새 한숨도 못자 꽤 상해 있을 얼굴이다. 그는 손을 들어 엄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쓸었다. 까끌한 손의 촉감에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한참 내 눈을 바라보던 그는 내 입술로 눈을 옮겼고, 이내 제 입술을 바짝 부딪혀 왔다. 혀와 혀가 섞였다. 옅은 민트맛이 났다. 얼마 간 입맞춤이 이어졌다. 허리를 쓸어오는 손길이 느껴졌다. 발걸음이 조금 급하게 옮겨지고, 이내 방 안에 자리한 침대에 내 몸이 닿았다. 그가 나를 침대 위로 눕혔다. 자연스럽게 침대에 파묻혀진 몸. 두 팔을 뻗어 그의 등을 안았다.
".....이안아,"
한참 내 입술에 머물던 그의 입술이 나의 볼과 눈, 눈썹, 이마, 그리고 귀로 차례를 따라 자리를 달리했다. 저 아래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멍울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손은 그의 뒷머리를 쓸었다. 또 얼마가 지났을까. 한참 내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던 그가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입술에 짧게 뽀뽀를 하고 눈을 맞춰왔다.
"아침 먹어야지. 아무것도 못 먹었을 텐데."
"......."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걸린 옅은 웃음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식사부터 해요, 우리. 한참의 정적 뒤에 나온 나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재현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곤 머리칼 끝자락에 입을 맞춰주었다. 나는 내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리나베이는 어땠어요?"
"아무래도 이제 지은 지 좀 되었으니까. 여기저기 보수 좀 지시했어."
"그래도 여전히 근사하죠? 지난 겨울에 정말 좋았는데."
그는 싱긋 웃어주었다. 재민이 '이안 한정 웃음'이라 부르는 그 웃음이었다. 날카롭고 차갑기 그지없는 재현이 나에게만 보이는 웃음이라며 재민이 이름을 지어버렸다. 재민이 그런 이름을 짓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부터 유심히 보게 되었다. 이안 한정 웃음. 내게 그 웃음을 보일 때는 온전히 나와 그가 함께 있는 시간 뿐이었다. 재민은 우연히 나와 그가 둘이서 있었던 시간에 그 웃음을 보았던 건데, 그래서 그런지 재민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재민의 말을 잘 믿어주지 않았다. 재현이 그런 웃음을 지을 리가 없어, 하면서.
재현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에 있는 리조트로 일주일 간 출장을 다녀왔다. 리조트는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이자 우리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고수입원이었다. 카지노에 미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그런 만큼 재현이 가장 자주 출장을 가는 곳도 싱가포르였다. 다른 출장도 더러 있었지만, 무슨 사안이 있으면 당장 달려가야 하는 곳은 단연 마리나베이였다. 종종 나 또는 다른 이들을 함께 데려가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혼자 결정할 중요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영호만 데리고 짧게 다녀왔다. 재민은 뭐가 될지는 몰라도 조만간 무언가 공지든, 지시든 꽤 큰 이야기가 들릴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생각은 내게도 들었다. 그리고 마크가 저렇게 잔뜩 다쳐 돌아온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그렇게 예상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식탁에 자리한 재민이 재현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재현은 가볍게 눈인사로 받아주었다. 오래간만에 영호도 식사 자리에 얼굴을 비췄다. 나는 영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영호는 잘 계셨습니까, 아가씨. 하고 나직이 인사를 건넸다. 좀처럼 반가운 기색도,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기색도 없었다. 늘 재현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그는 항상 그런 모습이었다. 처음 보았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제노는 아침을 먹지 않는 모양이다. 아마도 재현이 오자마자 먼저 인사를 건넸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와 재현, 재민과 영호 넷이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 타는 목마름으로 - 001. DISTOPIA
"...하아, 하아."
잠에서 깬 이안은 한껏 밭은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하고 내뱉은 숨결 뒤로 묘한 김이 서렸다. 두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낸 이안은 눈가를 매만졌다. 이 꿈을 꾸다 깨면 항상 눈가는 눈물로 적셔져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눈가를 적신 눈물을 닦아내곤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까지 이 꿈에 시달려야 하나, 생각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 유리창을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을 걷어냈다. 어젯밤처럼 흰 불빛은 집 앞 정원을 비추고 있었다. 이안은 한참 동안 그 불빛을 바라봤다. 다시 잠들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이안이 매일 밤 잠드는 이 집은 디스토피아(DISTOPIA)라 불렸다. 살아남아선 안 되었던 존재들이 유토피아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많은 눈들의 관리감독 하에 다시는 나갈 수도 없게 되는 암흑 같은 곳. 그래서 그 집에 머무는 이들은 그 집을 디스토피아라 불렀다.
재현은 태영그룹의 1대 회장 정준우의 증손자였다. 그말인즉 그의 아버지는 카지노를 동반한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을 갖고 있는 태영그룹의 3세였고, 현재 회장으로 있는 그의 아버지가 자리를 내려놓으면 그 자리를 이어받는 후계자였다는 말이다. 태영그룹은 카지노 불모지인 국가에 거액을 투자해서 최단기간에 손익분기점을 일구어내곤 했는데, 그 거액 투자의 배경에는 마약과 살상무기 밀매 및 인신매매를 통한 비자금이 있었다.
태영그룹은 실상 두 개의 다른 그룹이 하나의 모양으로 있는 셈이었다. 화려하고, 근사하고, 누가 봐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세계 최대 호텔 체인과, 더럽고, 추악하고, 누가 봐도 사라져야 마땅한 검은 돈을 만들어내는 기업. 디스토피아는 후자,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인물들이 거하는 일종의 숙소였다. 태영그룹은 인신매매를 통해 거두어진 나름의 인재들을 데리고 그렇게 끊임 없이 비자금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디스토피아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은 혈혈단신의 고아이며 이 세상에 아무런 연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오천."
"오천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
"낙찰되었습니다. 오천. 오천입니다."
이안은 저를 사들이던 순간 영호의 눈빛을 기억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저가 팔리던 그 순간, 영호의 무미건조한 눈빛이 담긴 그 장면을 자꾸만 꿈꿨다. 아마 뇌 어딘가 그 장면이 깊게 틀어박혔기 때문이라고 이안은 생각했다.
이안은 불안하거나 걱정이 될 때마다 그런 꿈을 꾸곤 했다. 누런 조명이 이안을 비추고 있었다. 이안은 붉은 양탄자가 깔린 무대에 올라 있었고, 몸은 거의 헐벗은 채였다. 붉은 양탄자 위에는 이안 말고도 대여섯 명이 더 헐벗고 있었다. 듣기론 그 곳에서 팔린 몸들은 보통은 장기가 털리거나, 성매매 용도로 넘겨진다고 했다. 그러나 이안은 아니었다. 그를 거둔 이가 영호였기 때문이다. 영호는 태영그룹, 그 명암 중에서도 암에 속하는 부분에서 재현의 수행비서를 맡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 부분의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중요 업무를 담당했다. 모든 이들이 영호의 손을 통해 디스토피아에 들어왔다는 소리다. 영호에 의해 거두어진 이안은 디스토피아에 들어왔다. 그게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갓 스물둘을 바라보는 이안을 기준으로 그 험한 꼴을 겪은 게 고작 열 살 남짓할 무렵이었다.
이안은 다시 잠들 요량이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불면증은 다시 잠들려고 노력해봐야 고통밖에 안겨주지 못했다. 하얀 빛이 비추는 정원을 좀 산책할까 싶어 옷을 갈아입었다. 방 안에 위치한 협탁에 올려진 시계는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깥은 여름이라도 제법 쌀쌀할 터였다. 이안은 옷장에서 두툼한 가디건을 꺼내 입었다. 새벽에 집 밖을 나서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재현이 이안에게 묘하게 허락해준 예외사항에 해당했다. 요즘 잠이 통 오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재현을 안고 토로하던 이안의 모습을 안쓰럽게 여겨 재현이 허락해준, 밤 산책이었다. 이안은 옷장 밑 서랍을 열고 권총을 꺼냈다. 제 아무리 예외사항이라 해도 늦출 수 없는 경계가 있었다.
이안은 뒷주머니에 권총을 찔러 넣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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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입니다. 이런 거 좋아하실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저는 느와르 정말 좋아합니다! BGM이 잘 나와야 할 텐데..ㅠㅠ 나올 때까지 잘 수정해보겠습니다. 댓글은 항상 힘이 나요! 왠지 극악의 연재텀일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장마철인데 건강 유의하시고 다음 편에서 만나요! (포스타입에도 연재하려고 해요. 등록은 해놨는데, 인티에 주소 공유가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시스템 좀 더 공부해서 돌아오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