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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기타 방탄소년단 정해인 더보이즈 변우석
전체글ll조회 421l

FIND YOU #06 ------------------------------------------


"가진아? 그거 먹는거 아닌데. "


"앱퉤퉤퉤"


"가진아! 오븐 뜨겁다. 잘못하면 데인다."


"아, 죄송해요."






달콤한 케이크 냄새가 작은 가게안에 잔뜩 퍼졌다.






"자, 이제 데코만 하면 끝나. 내가 슈가폰던트 만들어놓은거 좀 줄까? 아님 아이싱을 좀더..."


"데코는 필요없어요. 그냥 가져갈래요. 저 이따 알바 끝나면 들러서 가져갈께요. "






싸부가 의문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 둘이 또 무슨일  있었니?"


"누구랑요? 뭐가요?"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 손을 후드티의 주머니에 넣었다. 뭔가 손끝에 잡혔다. 이게 뭐지? 꺼내보니 알바하는 서점의 카페 넵킨이 잔뜩 꾸겨진 채 들어있었다.  번진 펜 자국들에 닭스런 문구들과 영단어 몇개가 보였다. 찌그러진 하트그림들. 어우씨. 나는 냅킨을 돌돌돌돌돌돌 있는대로 구기고 말아서 이걸... 이걸 어디다 버리지.  싸부의 작은 가게를 둘러보았지만 휴지통은 보이지 않았다. 싸부 바로 옆에 커다란 쓰레기봉투가 보였다. 짤주머니를 들고 케이크 옆에 서는 싸부의 시선을 피해 나는 피아노 밑에 놓여있던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이따 퇴근하면서 케이크랑 같이 집에 가지고 가야지. 싸부가 케이크에 나 대신 레터링을 하고 있는 사이 나는 그 상자 안에 뭉쳐진 냅킨들을 버렸다.  집에 가서, 중고사이트에 다시 이거 되파는 것부터 알아봐야지.






"너네 또 싸웠니?"


"싸우긴 뭘요. 없어요 그런 거."






싸부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요새 너 좀 멍한데. 진짜 꾹이랑 무슨 일 있는거 아니야?"


"꾹이랑 저랑 아무일도 없었다구요. 우리가 뭐, 뭐. 누나랑 동생이지 뭐. 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뭐."






알바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꾹이랑 꼼짝없이 세시간이나 좁은 공간 안에서 부딪힐 생각을 하니 도저히 출근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땡땡이 칠까? 아니야, 안돼. 저 카메라 새거여도 중고로 팔면 최소 반값은 깍아야할 텐데. 꾹이 통장에 다시 채워넣을 돈 생각을 하니 다시 앞이 깜깜해졌다.  아이고 윤가진아. 바보같은 금사빠 윤가진아. 순간의 착각으로 이게 뭔 몇 개월짜리 사서 고생이니. 한숨이 포옥 새나왔다.


 




"알바시간 됐네. 태워다 줄까?"


"아니요, 저 혼자가도 돼요"


"정류장까지 데려다 줄께."






싸부가 만들던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고 나를 따라 나왔다. 괜찮은데. 나는 얼어있는 골목길 중간중간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조심해, 넘어질라."






한쪽 손으로 내 팔뚝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싸부가 다정하게 말했다.






-잡으라고. 넘어지지 말고.






내 옆으로 다가와 한쪽 팔을 내밀던 꾹이를, 나는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정류장 건너기 전 신호등앞에 설 때까지도. 꾹이의 한쪽 팔이 계속 생각나 옆구리가 시려왔다. 






"가진아!!! 빨간불이야! "


"헉"


"야이미친@@#%&%^*&(*&&*(%^*&#%!!!!! 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어 이18#$##$^&&!!!"


"죄송합니다 ㅠㅠ"






걱정스레 정류장에서 나를 쳐다보는 싸부를 보는데 또 다시 웃으며 손을 흔들던 꾹이의 얼굴이 겹쳐져 떠올랐다.  꾹이와 함께 듣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귀에서  잡아 빼고 나는 눈을 부볐다. 눈안이 꺼끌거렸다.  이놈의 미세먼지. 차라리 추운게 낫겠다. 계속 리플레이해서 듣던 음악의 목록을 뒤로 넘겼다. 




혼자 주저앉아 생각만 커져가  언제부터 넌 날 아프게 했던가  너조차도 모르잖아.




띠링. 톡이 울리는 소리가 노래 가사 사이에 파고 들었다. 휴대폰을 보니 음악창 화면 위로 조그많게 말풍선이 떠올랐다.






-누나, 바쁘면 톡해. 내가 일찍 나가서 ......






나는 꾹이의 톡을 가만히 보다가 그대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너도 한 걸, 내가 왜 못하겠어. 난 누난데. 너보다 어른인데.




아무렇지 않은데 그렇게 말하는데 사실은 내가 그게 아닌가 봐....  조곤조곤 귓가에 이어지는 가사를 들으며 차창 밖 우울하게 지나가는 익숙한 건물들을 보았다.  위로하듯이 노래를 따라 흐르는 기타소리가 코 끝을 더 시큰하게 만들었다.  차갑게 버스 옆을 지나 줄을 서는 자동차들의 지붕이 보였다. 그 옆 인도에서 찬 겨울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도 보였다. 다들 정신없고 바쁜데. 나만 이렇게 빨간불 앞에 멈춰 선 버스처럼 멍청하게 제자리에서 서있는 것만 같다. 빨간불, 파란불. 시간 맞춰 켜지고 꺼지는 그 신호 하나를 제대로 못 보고 멍청하게 제 길도 못찾는 바보같은 나를 우중충한 하늘이 비웃는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이번 겨울의 크리스마스도 내겐 저주처럼 스쳐지나갔고, 그렇게 새해가 다가왔는데-  아직도 지난 크리스마스의 저주는 내 옆에 머물러 있는것 만 같다. 이젠 크리스마스가 아닌데도 계속, 계속 나를 따라다니면서. 이럴 때 눈이라도 내려주면 기분이 조금 풀릴텐데. 온 세상이 다 내 편이 아닌가 봐.  너무해. 너무 불공평해. 나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가진아 정신 안차릴래, 라떼하나 아아 두개거든?"


"허억"


"자꾸 이러면 너 월급에서 깐다."


"죄송합니다ㅜㅠ"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여기는 서점까페테리아인데. 왜이렇게 커피손님이 많은지. 아예 따로 커피가게를 내야겠어. 정신없이 일을 할 수 있는게 오히려 고마웠다. 한숨 돌리고  나니 또다시 생각의 틈새로 꾹이의 얼굴이 치고 들어왔다. 미치겠네. 






-그래서 포기했지 머....  끝. 






포오기?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거라며. 그래, 나도 하지 뭐, 포기. 그게 뭐 별거라고.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커피를 내렸다.  꾹이가 출근할 시간이 가까워져 올수록, 나는 마음을 다 잡기가 힘들었다. 나쁜 놈. 치사한 놈. 비겁한 놈. 좋아하게 해놓고는 왜 맘은 너 혼자 정리한건데.  그럴거면 사람 두근거리게나 하지 말지.






"어우, 날씨가 추워서 그러나 왜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거야"






양반은 못 될 쌍늠의 후손 전정국이 같으니라고.






"왜 왔냐, 너 타임도 아닌데."


"톡 안봤어? 계속 답이 없길래 바쁜거 같아서. 그래서 조금 일찍 나왔지, 도와줄라고."


"됐거든? "


"됐기는 저기 벌써 줄 선다, 뭐하냐"






나는 서둘러 앞치마를 매고 나오는 꾹이를 노려보았다.






"왜?"


"반말하지 마라."


"뭐...뭐래 갑자기."


"앞으로 나한테 반말하지 마라."


"왜그러는데?"






당황한 듯 또 사투리 억양이 튀어나왔다. 당황스럽니?  네가 내 마음만할까.






"나도 올해 다시 복학하면 나도 이제 졸업 준비도 해야하고.  취업 걱정 하다보니 진짜 어른이 된 느낌도 들고."


"뭐 벌써 졸업 걱정을 해..."






말해놓고 나니 조금 억지같기도하고.






"아니 뭐...  내가 너를 너무 친하게 생각했나봐. 앞으론 좀 조심하자. 의심받는 것도 지겹고. "






착각하기도 싫고.






"....나 먼저 술 먹은 날 뭐 실수한 거 있나?"






나는 움찔했다. 꾹이가 내 옆으로 슥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나랑 시선을 맞추려 애썼다.  나는 반대로 고개를 팩 돌리고 삐죽이는 입술을 곧게 펴려고 애썼다. 물론 쉽진 않았지만.


 




" 맞네. 내가 뭐 잘못했는데? 응? 말해라 내가 뭐했는데."






뒤에서 보채는 녀석을 냅두고 나는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점심시간 직후의 바쁜 타임이 지나가고 조금 쉴까 했더니 다시 또 두어명씩 줄이 늘어나 있었다. 아니 여기는 북카페인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지 모르겠다고. 다 커피를 너무 맛있게 내려서 그래. 싸부한테 너무 열심히 배웠나봐.  언젠가 꾹이가 싸부를 사이비라고 몰아세우며 툴툴대던게 떠올랐다.   커피는 잘내려도 타로점은 사기가 맞았네.  한숨을 쉬면서 커피를 내오다 그만 쏟고 말았다.






"앗뜨..."






뜨거운 커피가 손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놀라서 컵을 잡았는데 안떨어져서 다행이다. 휴.... 뜨거운 손을 휘휘 털며 고개를 드니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손님이 동그란 눈을 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몰라도 익숙해보이는 얼굴이 단골 손님같았다.






"죄송합니다. 금방 다시 만들어 드릴께요"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손부터 봐요."






소매끝에 커피색으로 얼룩이 생겼다. 멍청이. 바보. 나이값도 못하고 멍때리고 뭐하는거니, 마음이 우울해졌다. 카운터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던 손님이 그 앞에 있는 냅킨을 뽑아 건냈다.  






"바빠서 힘들죠? 저도 어렸을 때 알바 많이 해봐서 알아요. 어서 닦아요. 전 괜찮으니까 천천해 해요."






인상이 차가워보여서 뭐라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딱 봐도 근처 회사에서 일하다 시간을 때우러 온 것같았다.  무심하게 올려 묶은 듯한 머리가 오히려 세련돼보였다. 깔끔한 자켓에 편해보이는 셔츠를 입고  거기에 대충 걸친 듯한 악세사리들도 언벨런스한데 묘하게 어울리고. 저 정도면 패션잡지 뭐 이런데서 일하나? 신경쓴 듯 안쓴 듯 무심하게 차려입었는데 한 눈에 봐도 멋있어보이는 그녀가 부러웠다. 진짜 어른이 되면 나도 저런 멋진 모습이 될까.  나는 멀었지.  방금도 꾹이한테 그렇게 유치하게 심술을 부리고는. 그래서 바로 벌을 받았나. 






"뭐야, 왜 그래"


"됐어, 저리가..."






뒤에서 내 상황을 지켜 보던 꾹이가 바로 다시 커피를 내렸다.  






"라떼하나 맞나?"






커피를 만들면서도 계속 내 상태를 흘깃흘깃 보는 거 같았다.  나는 대답없이 계속 싱크대에서 물을 틀어놓고 소매끝을 조물락거렸다. 아, 이거 꾹이가 사준 거였는데. 계속 이 옷만 입고 출근했는데. 손 끝의 얼룩이 아무리 비벼도 사라지지 않자 세탁소에 맡겨야하나? 하는 고민까지 치고 올라와서 속상했다. 지금 그게 문제니?






"여기 커피요....기다려주셔서 감사해서요. 이거 서점에서 책 사실 때 쓰세요"


"고마워요. 수고해요"






응? 하고 뒤돌아보니 꾹이가 방금 그 착한 손님한테 쿠폰을 세개나 주고 있었다.






"야 니 맘대로 쿠폰을 막 주면 어떻게 해?!"


"어허. 도와줬더니만 뭐라하고..."


"주임님이 쿠폰 다 세 본단 말야~  넌 왜 네 타임도 아닌데 나와서 오지랖이야아"


"내가 했다 해라~  손 좀 보자.  괜찮나? 데이진 않았어?!"






내 손목을 휙 잡아다가 이리저리 살피며 얼음맛사지를 하는 꾹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젠 이렇게 올려다보는게 익숙하다. 너는 언제 이렇게 컸니?






"흉터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나도 모르게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어버렸니?






"...왜. 많이 아파? 병원갈까?"






크지말지. 어른이 되지 말지. 그냥 그대로 가만히 아기같은 꾹이로 남지.






"윤가진, 너 괜찮아? 왜그래..."






아직도,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너 때문에 심장이 계속 두근거려서,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누나라고 부르라고. 반말하지말고."






꾹아, 이런 거 얼마나 지나야 다 포기가 되니? 얼마나 지나야 너처럼 아무렇지 않게 눈을 마주볼 수 있게 되는건데? 평생이 걸려도 안되면 어떻게 하지? 지금 같아선 평생 이렇게 아플 것 같아.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아 어떻게 하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데, 네가 그렇게 내 손을 잡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못하겠어. 울먹이는 내 표정을 보고 꾹이가 계속 당황하며 어쩔줄몰라했다. 얼음찜질을 하는 손에 힘들 잔뜩 들어갔다.






"많이 아파? 그럼 조퇴하고 병원 응급실이라도 갈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 줘?"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나 대신 주임님께 톡을 보내는 꾹이를 뒤로하고 탈의실로 향했다.  탈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주저 앉았다. 꾹이 얼굴이 안보이면 좀 덜 아플거 같았는데 소용이 없었다.  계속 마음이 아팠다. 숨쉬기도 힘들었다.   똑똑. 탈의실 밖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누나 괜찮아?"






더이상 꾹이랑 같이 못 있겠어. 아 큰일났다. 진짜 큰일났다. 나 이제 어떻게 하지.  겨우 짝사랑 하나에 이렇게 세상이 끝나버린 것 처럼 구냐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어. 이렇게 숨도 제대로 못쉬다가는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  나는 무릎에 고개를 파뭍었다. 띠링. 톡이 울렸다. 톡이 오는 것도 무섭다.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톡이 연달아 울리더니  잠잠해지고 나서 전화가 온다.  안받을 수도 없고.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내려다보는데 꾹이 번호가 아니었다. 어? 누구지? 이 번호 익숙한데... 누가 됐던 제발  나 좀 이 상황에서 꺼내 줘.






























































"잘 지냈니? "


"할 말이 뭔데요."






능글능글한 눈동자가 여전했다.  나는 썰렁한 동아리 방을 둘러보았다.  낡은 소파 앞 테이블 위에 빈 맥주병과 과자부스러기가 잔뜩 보였다. 내가 오기까지 사람들이 있었던 거 같기는 한데. 






"근데 다들 어디갔어요? 뭐 대본에 문제 생겼다면서."


"아 그거.... 저 앞에 야식집에 뭐 사러 나갔어. 밤 샌다고 하더라. "


"다요?"


"응. 아니면 나간김에 먹고 올래나, 다들..."


"오빠는 왜 안나갔는데요?"


"너 데리고 오느라."






이쯤이면 다들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아무도 안오는거야.  나는 느글느글한 시선이 불편해서 테이블 위에 놓여져있던 대본을 들었다.  대본을 넘겨보니 여기저기 형광펜으로 밑줄 쳐진게 보였고 어지럽게 적혀진  메모가 보였다. 아무리 뒤로 넘겨도 내 분량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내 캐릭터라 내세울게 없네. 뭐 당연한거라 크게 서운하진 않았는데. 이게 다 꾹이 때문이야. 나처럼 보잘것 없는 애를 왜 찍은 거야? 내가 뭘 잘해, 잘하긴.






1학년때 교양으로 듣던 수업에 희극 관련한 수업이 하나 있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지, 수업에 유난히 집중하다보니 나같은 친구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알음알음 이 동아리도 들어오게 되었고. 




꾹이는 나보고 꿈을 크게 가지라고 했는데 사실 나는 그리 큰 욕심이 없다. 그냥 난 이 과정들이 좋았던 거 같다. 대본을 보며 같이 연구하고, 공부하며 배우는 것들이 꼭 세상을 배우는 것 같아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 사람이 되어도 보고, 그렇게 전혀 다른 일생들을 하나하나 상상하는 거. 하숙집에서 살면서 익숙해진 건지. 많은 사람에 질려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만도 한데. 함께 지낸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아서였을까.  나는 북적북적한 느낌이 좋았다. 비극보단 희극이 좋고, 그래 하숙생 동생들 말대로 멜로보단 시끌시끌하고 신나게 때려부셔도 좋고.  으, 멜로라니, 뭔가 나랑 안어울려.... 




그러다 또 꾹이한테로 생각이 돌아간다.  너랑은, 멜로를 찍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는데.  장난스러우면서도 조심스런 눈빛,   툭탁대면서도 다정한 목소리. 츤데레처럼 뒤에서 나를 계속 챙겨주던 너.  이젠 너무 늦었는데. 아침에 건널목 앞에서 헤메던 것 처럼. 나는 신호등이 거기 있었는 지도 몰랐는데 이미 꺼진 초록불 밑에 꾹이는 그저 언제나처럼 서 있었다.  생각하는게 얼굴에 다 드러나던 애가, 이미 한참전에 그렇게 마음을 감추고 서 있었을 뿐이다.






대본을 덮으며 한숨을 쉬는데 덜그럭 덜그럭  문고리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아무도 없어요?"






꾹이다. 어라.  재가 왜 여기 왔지?  나도 모르게 몸을 소파 밑으로 숨겼다.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곧바로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꾹이에게 향했다. 나는 소파 밑에서 한숨을 쉬었다. 옆자리에서 일어서는 소리가 났다. 






"여긴 어쩐 일이지?"


"...........가진이 누나 여기 없나 해서요."


"없는데? 보다시피 혼자인데."






잠시의 공백이 흐르고 문닫는 소리가 났다. 나는 크게 한번 더 한숨을 쉬었다. 그런 내 뒤로 능글맞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 나 만나는 동안에도 쟤 만난거니?"


"아니요. 저랑 아무사이도 아닌데. 그 불여시가 착각한거에요."


"그럼 무슨 사이인데?"


"동생이요. 어릴 때부터 봐 온."






이 상황이 너무 불편하다.  휴대폰을 들고 동아리 사람들이 있는 그룹채팅창을 열었다.






"근데 좀 춥다. 히터도 안키고 뭐하는건지."


"망가졌대.  왜, 추워?"






다들 언제와..... 톡을 보내려는데 스윽, 내 옆자리로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두르는 익숙한 기척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많이 춥니?"






오빠 이러려고 나 만나? 짧게 사귀는 동안 지겹게 내 입에서 튀어나왔던 멘트가 다시 입안에서 맴돌았다.






"가진아. 오빠가 많이 생각해봤는데..."


"싫어요."






어깨 위로 걸쳐진 팔을 휙 잡아 떼내면서 나는 정색을 했다.






"가진아, 오빠가 진짜 잘할께. 너 만한 애가 없더라. 오빠가...."






거짓말. 크리스마스날 꾹이한테 박살난게 열받아서 다시 나한테 추근덕대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오빠는 딱 내 타입아니에요. 이제야 알겠네. 내가 왜 오빠한테 그렇게 정이 안갔는지. 사람이 급하다고 아무거나 막 주워먹으면 안되는 건데, 내가 바보였지."






아, 내가 말이 심했나 싶었는데.  다시 밖이 시끌거리며 사람소리가 났다. 다들 돌아온건가. 나는 휴대폰을  내렸다.  덜그럭덜그럭, 문고리 잡는 소리가 한참을 났다. 왜 안들어오지?






"응? 뭐야 여기서 밤새자며 다들 어디간거야?"


"뭐야, 문잠긴 거야?"


"우리 누나 동방에 일있다고 온다고 했다는데요.  아까까지도 사람있었고..."


"그냥 갔나봐. 열쇠 없으니까 내일 와."


"다들 어디갔지 술마시러 갔나?"






한참을 달그락 거리던 문 밖의 소리가 사라졌다.  뭐야, 문이 왜 잠겨?  동방 안 낡은 시계의 바늘이 자정을 가리켰다.  기분나쁜 숨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와서 나는 몸을 뒤로 젖혔다. 이 변태 쉐끼가.... 쎄한게 뭔가 느낌이 안 좋아져서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테이블 위로 뻗어서 더듬거렸다.  뭔가가 손에 잡혔다.




쨍그랑!!!! 




퍽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어서 쿠당탕 문이 부서지는 소리도.  






"누나!!!!"






큰소리를 내며 부서진 문짝이 벽에 걸려 삐그덕 댔다. 허억. 뭐야. 놀라서 쳐다보니 덜렁거리는 문짝 밖에 꾹이가 서 있었다.  무...문짝을 설마 뜯었어?  놀랄새도 없이 꾹이가 씩씩거리며 동방 안으로 들어서서 내 앞에 무릎꿇고 앉아있는 변태 쉐끼의 멱살을 번쩍 잡아 들었다.






"너 뭔데 우리 누나한테....."






있는대로 인상을 쓰던 꾹이 말을 못있고 헉,하는 소리를 냈다. 꾹이의 눈이 본 중 제일 크게 동그래져 있었다.  주루룩. 뺀질뺀질한 얼굴 위로 핏물이 한 줄 흘러내리는걸 보고 놀란 것 같았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푹 수그리는 뒤통수에서부터 유리조각이 주루룩 흘러떨어졌다.  꾹이가 멱살을 쥔 채로 천천히 나를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내 손에 들린, 목 밖에 안 남은 맥주병을.  그렇게 한참을 정적이 흘렀다.  내가 멋적은 표정으로 조용히 테이블 위로 부서진 맥주병을 내려놓자, 꾹이가 맥이 탁 풀린 얼굴을 하고 어이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웅성거리는 동아리 친구 두어명이 복도에서 안쪽을 쳐다보는데, 꾹이가 그대로 두 손을 탁 털더니 바로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 꾹아, 내가 ...  괜찮아. 별일 없었...."






그리고는 내 손목을 잡아 끌고는 그대로 동방을 나섰다.






"꾹아. 꾹아? 야 꾹아 아파. 이거 놓고 가자. 응? 야아-"






이 자식이, 제 다리 긴 것만 생각하고 .  안그래도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따라가기가 힘에 부쳤다. 결국 다리가 꼬여서 넘어질 뻔하고 나서야 꾹이는 내 손을 탁, 놓았다. 씩씩대는 폼이 아직도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이렇게 화가 난 꾹이는 처음봤다.  야무진 말빨로 까페테리아에서 사람 뼈를 때리던 꾹이를 보면서 속으로 다짐했던 게 떠올랐다. 나는 절대 꾹이를 적으로 두지 않을거야. 이런 애는 적으로 두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 방금 전 꾹이가 뜯어내다시피한 동아리 방 문짝이 떠올랐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띄우며 슬쩍, 꾹이의 한쪽 팔을 잡았다. 






"나... 여기 있는거 어떻게 알았어?"






꾹이가 내 손을 탁 쳐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집에 가니까 싸부형이 카메라랑 케이크랑 다 챙겨가지고 오면서 누나 저 자식 만나서 늦게 온다고 하드라!"


"아, 그게  집 앞까지 따라와서 기다린다고 하니까..."


"야!!! 너 진짜 미친거 아니야?! 거기가 어디라고 쫓아가! 위험하게!"


"아니, 동아리일이라고 하니까 다른 애들도 있을 줄 알고.."


"하여간 내가 눈을 뗄 수가 없어..."






울컥.






"니가 무슨상관인데"


"걱정되니까 그렇지"


"네가 뭔데 왜 내 걱정을 하는데!"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당황한 꾹이는 다시 말을 더듬거렸다. 당황하면 나오는 사투리억양도 따라 튀어나왔다.






"그, 그러니까... 내가... 그 형 안좋은 소문을 들어가지고... 누, 누나, 누나 사귈 때도 맨날...."


"그 오빠 소문 좋든 말든 네가 왜 신경을 쓰는데!!"






걱정되어서 나름 한달음에 달려와준 건 고마운데, 이렇게 신경쓰는 게 고마우면서도 화가났다. 






"너 이제 나 좋아하지도 않는다며!!! 포기했다며!!! 그래놓고 네가 무슨 상관인데!"






꾹이가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놈의 동그라미. 이젠 짜증나. 너무 좋아서 짜증나. 사람을 한껏 기대하게 해 놓고 마지막에 빅엿을 선사해?!  두근두근 했던 게 너무 창피해서 아직도 수많은 밤 이불킥 할 날들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내가 저런 어린 놈에게 설레고 착각하고.... 다 내 잘못인가 싶다가도 다시 이게 다 저 놈 탓인거 같고.  용서하지 않을거야 전정국. 가만두지 않을거야 전정국. 복수할 거야 전정국. 사지를 진미채 찢어놓듯이 쫙쫙 찢어버릴꺼야 전정구욱.






"나는 어쩌라고!!!"


"....."


"너 혼자 좋아해놓고 너 혼자 그만둬버리면 나는 어쩌라고!"






나는 너랑 달라. 나는 못 숨기겠어. 그래서 피한 거라고.






"다행히 싸부님이 내 대신 케이크랑 카메라 집에 가지고 가서 내가....."






응?  나는 말하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갑자기 벼락맞은 얼굴을 하자 꾹이도 같이 놀란 얼굴을 했다. 왜 또?!






"카메...라..."






꾹이가 그제야 내가 말을 멈춘 이유를 알았는지 몸에 긴장을 풀고 고개를 까닥거리며 팔짱을 꼈다.






"카메라 사놓고 왜 안주고 싸부형 가게에 모셔둔 건데? 내꺼라며."


"네...네꺼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거기 카드에 내 이름 써있..."






헉.






"너 상자 안도 다 봤어!?!"


"당연하지. 녹화는 또 어떻게 할 줄 알았대."






허어어어어억.






"너 그것도 봤어!!!?"






씨익.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음을 참고 있는게 보였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카메라 안 녹화된 영상에 내가 중얼거렸던 말들이 떠올랐다. 카메라와 함께 주려고 했던 카드에 쓰여진 꾹이 이름 옆의 하트들과 냅킨의 낙서들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아ㅏ아아아아아ㅏㄱ익미ㅓ이거아ㅓㄱ이ㅏㅓㅁ;ㅣㅇ"


"아 깜짝이야.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으아아아아아ㅏ앙가악이겅ㄱ이ㅏ"


"뭐야!! 야!! 윤가진!!! 너 어디가!? 야! 같이 가!!!!!"






쪽팔려. 창피해. 이렇게 세상 끝까지  달려가야겠다.  그 끝에서 고대로 지구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싶다.  지구야 잘 있거라.  딱 목성까지만 튕겨져 나가면 지금의 이 창피함이 좀 가실 려나.






"에이씨 진짜....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잊고 있었다. 전직 운동선수 전정국. 미친 근육덩어리 전정국. 






"으아악!!!!!! 따라오지 말라고!!!! 저리가!!! 저리가라고 ㅠㅁㅜ"


"아 멈춰서 봐!!!! 쫌!!!!"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는 꾹이의 스피드를 내가 감당해 낼 리가 없다.  학교 정문 앞 까지 다다랐을 때 거의 다 따라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눈앞에 정류장을 떠나려는 버스가 보였다. 다행이다. 학교 앞이라 심야버스가  다니고 있었구나!






"아저씨!!! 스톱!!!! 스톱!!!! 저 좀 태워주세요!!!!!!!"


"야 윤가진!!!!! 야!!!!! "






다행히 나만 태운 채 버스가 출발했고 나는 운전석 옆 손잡이 대를 잡고 그대로 주루륵 주저앉았다.  얼마나 미친듯이 달렸는지 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등 뒤에서 무섭게 쫓아오던 꾹이의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았다.   혹시 이 버스도 따라 잡는거 아니야?  잰 그러고도 남을 텐데. 목성이 뭐야, 명왕성까지도 따라올 것 같은 놈이.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에이 설마, 이쯤이면 정류장 꽤 벗어났는데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허억."






 아직도 차 뒤에 보이는 하얀 얼굴에 순간 숨을 헉 들이쉬었다.  저 미친 녀석이.  나는 두 손으로 손잡이 대를 부여잡고 제발 녀석이 달리기를 멈추라고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시며, 제발 저 미친 근육돼지의 시선에서 저 좀 벗어나게 해주옵시며......   간 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친 꾹이가 뛰어오다가 결국 자리에서 멈춰서는 게 보였다.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숨을 고르며 멀어지는 꾹이가 점이 되어 사라지고나서야 나는 한숨 돌렸다.  




그런데 이제 어쩌지? 집에 가도 꾹이가 있을텐데. 이 바보야. 바보 멍청이 쪼다 해삼 말미잘 불가사리 짬뽕 단세포 거지같은 윤가진아. 어쩌자고  그 영상은 안지웠니. 그 카드 냅킨들 쫙쫙 찢어서 씹어 삼키지 왜 그냥 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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