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한명이라도 먼저 입을 여는법이 없었다. 강준의 손에 이끌려 타게 된 차는 에어컨이라도 튼 것 마냥 싸늘했다.
강준은 그저 아무말 없이 운전대만 잡고 있었고, 그가 화났음을 보여주는 거친 운전솜씨는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빨간불에 걸려 차가 급하게 정지하자 내 몸이 앞으로 휘청이는걸 그가 팔을 뻗어준 덕분에 큰일을 면할 수 있었다. 곧이어 그는 내게로 뻗었던 팔을 거뒀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 내 말에 강준은 역시나 아무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두드리고 있을뿐이었다.
계속되는 침묵에 괜히 이 분위기가 싫어 손만 꼼지락 꼼지락 거리고 있는데 강준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체 내게 물었다.
"몇번째야?"
"뭐가?"
"이런 술자리 몇번째냐고."
"..너도 알잖아. 나 술 안좋아하는거 이번이 처음이야."
"왜 갔는데?"
대답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기 전까지는 순순히 놔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동안 그가 입술을 잘근 씹어댔다.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체 목소리만 향해있었다. 눈조차 마주치기 싫다는건가? 목소리에도 날이 잔뜩 서있었다.
강준이 내 앞에서 이렇게 화낸적이 있던가? 아니 단 한번도 없었다. 애초에 우린 말도 제대로 나눈적 없었으니까. 도대체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화가 났는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말해주기라도 한다면 참 좋으련만. 강준은 그런게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말이 많은 성격도 아닌데다가 표현조차 없는 그였으니까. 오죽하면 그에게 잘보이려던 여자들이 하나같이 울면서 나온다는 말이 있겠는가?
그가 왜그러는지 듣고싶었다. 아는 체 하기도 싫어하던 그가 왜 그 술자리에서 나를 데리고 나왔는지.
그리고 이걸 기회로 삼아 지금까지 몰랐던 그의 속내를 알고싶었다.
결국 그의 이름을 나즈막히 불렀다.
'강준아.' 내 부름에 운전대를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와 동시에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면서 멈췄던 차가 다시 움직였다.
역시나 대답이 없는 그였고 나는 지금까지 속으로만 되뇌였던 그 말을 입밖으로 꺼냈다.
"강준아. 이젠 말해줘."
전부다.
처음이었다. 강준에게 직설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낸게. 기분탓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내 말을 들은 강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흔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한 일분여간 우리사이의 침묵이 오고갔을때 쯤, 그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는 어느 한 길가에다가 차를 잠깐 세웠다. 양 옆이 개발중인 장소인탓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그런 조용한 길이었다.
차를 완전히 세운 강준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 다 말해줘? 뭐가 내 진심인지.
응.
그럼 말해줄게. 난 널 가족이라고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어.
이복 남매? 웃기지 말라그래. 피 한방울 안섞였는데 무슨 가족이야 씨발.
"어차피 너네 엄마도 우리 아버지 재산보고 우리집 들어온거 아니었어?"
"..."
"그게 내가 너를 인정 못하는 첫번째 이유야."
분명 다른사람이라면 상처받았을 그의 말이지만 솔직히 그의 말이 틀린것도 아니었기에 쉽게 무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행동에 그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넌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갑자기 올라오는 수치스러움에 금방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
결국 이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리기 위해 차 손잡이를 잡는 순간 그가 내 반대편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차에서 내리려는 행동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내 말 안끝났는데?"
그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의 입에서 또 무슨말이 나올까 되려 긴장한건 내쪽이었다.
그가 당황한 내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이번엔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너도 날 남이라고 생각하잖아 맞지?
그가 진지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의 질문을 곱씹었다.
나는 단 한번이라도 강준을 남매로 생각해 본적이 있나? 무언가로 머리를 크게 한방 맞은 듯 했다. 나조차도 이런 당연한 질문을 제대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와 처음 만났을때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단 한번이라도 강준을 가족이라고 여겼던적이 있을까?
아무리 진지하게 고민해봐도 마음속에서는 맞다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를 단한번도 가족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저 같은 집에 사는 동갑인 남자애일뿐. 나에게 강준은 그 이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 역시도 처음 그 집에 들어간날부터 무언의 선을 그어논걸지도 모른다.
내 대답을 읽어내기라도 한건지 강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우린 남이야. 강준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는 갑작스레 내게로 다가와 입술을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능숙하게 나를 리드하는 강준을 따라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서강준이 키스를 이리 잘했던가. 나도 모르게 정신이 홀려버릴뻔 한걸 겨우 잡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난건지 가늠조차 할수도 없었다. 그가 키스를 하던 것을 멈추고 내 쇄골에다 입을 진득하게 맞췄다.
순간적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오려던걸 간신히 참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스킨쉽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내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손으로는 내가 입고있던 와이셔츠의 단추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드디어 흩어졌던 퍼즐조각이 이제서야 하나하나 맞춰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