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럼 하겠습니다!"
이 부서에 신입이 들어온건 2년만이었다. 우리부서는 회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회사 내에서도 신입을 들여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부서에 간만에 신입이 들어왔으니 회식은 필수라며 신난 사원들이 신입을 향해 건배사를 해보라며 이리부추기고, 저리부추겼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자리에서 일어난 신입이 맥주잔을 높이 들었다. 그 모습에 사원 모두가 맥주잔을 따라 들었다.
제일 상석에 앉은 여자만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볼뿐이었고, 그 모습에 부서내의 소식통인 권대리가 여자의 팔을 툭툭쳤다.
-에이 간만에 신입들어왔는데 팀장님께서도 잔 드셔야죠!
"..도대체 저 신입은 왜 하필 우리 부서로 온거야? 다들 오기 싫어하더만."
-저야 모르죠? 다만 이번신입 낙하산이라는 소문이 있긴한데, 그래서 이미지좀 쌓으려고 여기 왔다는 말이 있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권대리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거 아니야?"
치. 소문이 괜히 도는줄 아세요? 권대리가 입을 삐쭉거렸다. 그모습을 애써 무시했다.
권대리는 '역시 팀장님은....'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내 신입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얼른 건배사를 하라는 신호였다.
권대리를 한번, 여자를 한번 바라보던 신입이 이내 침을 꼴깍 삼키더니 건배사를 외쳤다.
'회사의 무궁한 발전과 또 팀장님의 솔로탈출을 위하여!'
*
"아.. 아니 팀장님! 저는 그게 금기인줄 몰랐어요! 하도 대리님께서 팀장님 결혼 언제하나..."
저는... 권대리님이... 이부서로 발령 됐을때부터 저한테 오셔서는 제 손을 이렇게 막 잡고 말씀하시길래.... 정말 죄송합니다!
신입이 자신의 왼손을 오른손에 포개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내게 호소를 했다. 주차장까지 쫓아와서 말이다.
권대리 오랜만에 젊은 남자사원 들어왔다고 여우짓 했구만. 후.
애써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괜찮다고 어차피 회식에서 제일 윗상사는 먼저 빠져주는게 진정한 회식이라며 먼저가는 날 붙잡는 신입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지만,
내가 먼저 가는게 자기탓이라고 생각하는지 계속해서 연신 사과를 해대는 신입에 오히려 난처해진건 내쪽이었다.
아니 다른 사원들은 이럴때 안말리고 뭐하는거야......
"진짜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첫회식 잘 하고 오세요. 이미지. 잘 쌓으셔야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회사 생활이 처음이라.. 또 결혼이 금기단어라는것도 모르고...."
"최우식씨....?"
"아... 아니! 헙... 아 진짜."
이번엔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아버린 신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아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애가 들어온거야?
당황한'척'을 하는건지 정말 당황한건지 분간이 안갈정도로 내가 늙은거야?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저 속셈을.
그런 신입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진절머리가 나, 결국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무작정 탔다.
그런 내 행동에 이번엔 정말 당황한거같은 신입이 팀장님! 팀장님! 하면서 창문을 두드렸다.
진짜 권대리의 말이 맞기라도 한건가? 애초에 사회생활이라는게 정말 처음인건지, 상도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입의 행동에 밑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애써 무시하고 출발하려 했지만,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신입의 눈빛에 결국 창문을 내렸다.
"신입. 할말있으면 월요일날 내 자리로 와서 해줘요."
-어.... 팀장님!
신입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도대체 무슨말을 하려고......
신입의 입술이 옴짝달싹 거렸다. 그리고 신입이 뱉은 말은 내 모든 감각들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제가 남자친구 해드릴까요?"
미친놈. 미친놈이 들어왔다. 나는 허- 하고 실소를 내뱉었다. 하지만 신입은 왜그러냐는듯 고개만 까딱할뿐이었다. 저 영문도 모른다는 표정.
결국 나는 차에서 거칠게 내렸다. 열린 차문에 살짝 부딪힌 신입이 아아- 하고 고통의 신음을 흘렸다.
난 그모습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채 결국 너를 존중해주는건 여기까지라며. 딱딱하게 말했다.
"야. 낙하산."
내 말의 신입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너 사회가 좆같아보여? 여기가 아직도 학교같아? 정신 똑바로 차려. 회사생활 망치고 싶지 않으면."
"... ..."
신입이 나를 벙찐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회사생활 10년넘게 하면서 이렇게 화낸것도 처음이었다.
아무리 실적이 저조해도 부하직원한테 단 한번도 화내본적 없었는데, 이 미친놈은 하필 왜 우리부서로 발령이 되서는.
진짜 얘가 낙하산이라면. 분명 회사에서 꽂은 빌런일것이다. 실적이 저조하니 일부러 고문관을 우리부서로 넣어서 실적좀 올리라는 회장님의 계시임이 틀림없다.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신입을 뒤로한채 차에 타기위해 차 문 손잡이를 잡은 그때 신입이 말했다.
"그럼 학교면 돼요? 팀장님이 대학생이었을때? 아 예뻤겠다.."
"뭐?"
"그럼 그때가서 저 잊지 않으셔야해요. 아셨죠?"
"무슨말을 하는거ㅇ...."
말을 마치기도 전, 여자는 자신의 몸에 누군가 수면마취제라도 주입한듯 싶었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레 온몸이 나른해지더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일분조차 지나지 않아 여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그곳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쓰러진 여자도, 그런 여자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도 없었다.
그저 썰렁한 공기만이 머물고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