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란 어항 속 나란 인어 ++ "근데." 근데 뭐 어쩌라고. 내 앞에 서 있는, 머리를 연한 분홍빛으로 예쁘게 물들인 저 아이는 이런 나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건지, 머리를 두어 번 터며 싱긋, 웃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이동혁이 요즘 답지않게 질질 끌어가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뭐? 그의 말을 듣고 꽤나 당황해하는 나에게 다시금 싱긋, 파아랗게 핀 이파리와도 같은 미소를 내어보인 그였다. 그래서 와봤더니, 별 거 없네, 뭐. 여느 아이돌 뺨치게 예쁜 그 얼굴과, 나를 훑어보는 선해보이는 예쁜 눈빛. 그리고 예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비야냥은 꽤나 역설적이고 또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흘린 그 비아냥은 나를 욱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말이다. "너 지금, 뭐라고,"
"정신 차리라고." 뭣도 아닌 내가 너한테 이러는 거 어이없겠지만, 안타까워서. ...뭐? 이동혁한테 정신 못차리고 놀아나고 있는 애들 보면 나는 답답해, 여주야. ...언제 봤다고 여주래. 부르지마, 내 이름. 한심하다는 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며 답답하다 말해오는 그에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내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것, 그 것 하나뿐이었다. 나도 내가 답답해. 동혁이한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감정 하나 주체 못하는 내가,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다고. 물론 내 앞에 있는 분홍 머리 아이, 나재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 대사였을지도 모른다. 뭐가 두려웠을까. 뭐가 두려워서 이 대사를, 목에서 울렁거리던 이 대사를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까. 나재민이란 아이가 보내는 저 한심하다는 눈빛? 아니, 아니였다. 내가 이 말을 내 스스로 꺼내면, 진짜 인정하게 될까봐. "야, 나재민." ...내가 동혁이 너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까봐. "우리 주, 화장실 안 가고 왜 여기있어." 언제 왔는지, 훅 끼쳐온 동혁의 향에 잠시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 눈을 잠시 감았다 떼니, 어느 새 내 팔목을 잡고 있는 이동혁의 검게 그을린 손이 눈에 들어왔다. "..어, 아. 가야지, 가야 되는데..."
"어, 이동혁이네." 좆 같은 우리 동혁이. 뒤이어진 자신을 향한 재민의 말에 안 그래도 재민을 보며 찌푸려져 있던 그의 미간이 더욱 더 좁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얘기 하는 거 들었을라나?"
"재민아, 좆같게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던 길 곱게 지나가." "동혁아,내가 좆같이 남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게 조용히 살던가." 나 간다. 여주야, 너도 부디 내 충고 새겨들었기를 바랄게. 이 말을 끝으로 뒤돌아 멀어져가는 나재민이었다. ...쟤 뭐야. 쟤 뭔데. ...기분나빠. 멀어져가는 그의 예쁜 분홍 머리카락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자, 이런 나의 시야에 불쑥 조금 가무잡잡한 손이 들어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분홍빛 머리통을 가렸다.
"보지마, 주야." 쟤 보지 말고, 나 봐 줘, 주야. ...아, 알겠어. 동혁아. 조금, 아니 많이 찜찜한 나재민의 충고 따위, 마음 한 켠에 묻어두고, 나는 또 다시 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너란 어항 속 나란 인어 ++ ...궁금해. 그 아이는 동혁이를 왜 그렇게 싫어할까? 단순히 여자문제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밤 새 잠을 뒤척였다. 원래도 잠이 잘 오는 편이 아니라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는 건 꽤너 자주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원인은 항상 오로지 이동혁뿐이었는데, 오늘은 그 핑크머리 남자애, 나재민도 동혁 못지않은 지분을 가져갔다. 왜일까. 왜? 동혁이랑 무슨 일이 있었나? 그 때였다. 동혁과 재민의 관계에 대해 심도있는 추론을 하고 있을 무렵, 침대 옆 탁상에 둔 핸드폰에서 불빛이 잠깐 밝게 빛나더니 사라졌을 때는. 뭐지, 카톡인가? 새벽 두 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한테 연락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똥한 눈빛으로 탁상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들어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들어온 핸드폰 화면의 밝은 빛에 눈이 잠시 찌뿌려졌다. "...이동혁?" 새벽에 좋아하는 아이에게 연락이 오는 것 만큼 가슴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동혁과의 카톡은 놀랍게도 처음이었으니, 나의 조그마한 심장이 달에 있는 토끼가 절구를 찟듯 미친듯이 뛰기 시작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학교에서는 이동혁 김여주, 집 근처의 작은 슈퍼에서 파는 1 + 1 과자처럼 붙어다니지만, 정말 놀랍게도 우리는 그 흔한 문자 한 번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 다들 알겠지만 나는 1 + 1 중 후자에 속했다. 한 개를 사면 하나가 덤으로 붙어서 올 때, 그 '덤'이 바로 나라는 뜻이다. 뭐, 그와의 관계에 있어서 + 1 이 아닌 1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사실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뭐, 다 각오하고, 알고서 시작한 사랑이니, 딱히 할 말은 없다. ...없었는데. '정신 차리라고.' 아까 그 나재민이란 아이가 한 여섯 글자가 자꾸 귓속에서 되풀이 되는 건 무슨 이유일까.
아.. 뭐야. 뭐라 대답하지. 3학년에 올라와 그를 처음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같잖은 플러팅이지, 하며 질색팔색할 카톡 메세지 하나에 나는 지금 이렇게 모든 사고 회로가 일시정지 된 채 얼어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을까? ...너의 그 의미없는 메세지 하나에 오늘 밤은 다 잔 것 같아, 동혁아. 공부가 너무 안돼서 좀 끄적여봤습니다......ㅋㅎ방금 그냥 후다닥쓴거라 좀 짧고 이상하죠....알아요......(대체로 자신의 글에 자신이 없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