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들에게서만 나는 특유의 묘한 냄새가 있다.
가정 환경과는 무관하게 어딘가 결여된 사람들은 그들과 비슷한 동류의 냄새를 소름끼치도록 잘 알아챈다. 척척하고 습기가 잔뜩 낀 젖은 냄새. 뭐라 형용할 길이 없기는 하지만 준회는 으레 그 냄새를 비 냄새라고 자주 되뇌이곤 했다. 무지근하게 뇌 중추를 찔러들어오는 회색의 냄새. 우리에게선 태초부터 그런 냄새가 났을 터였다. 결핍의 흔적. 그것은 생전부터 우리를 괴롭히던 결여의 상흔이었다.
"제출된 증거랑 부검한 시체도 다 살폈어. 판결도 금방 날 거다. 아주 악질이야. 발견된 범죄가 한 두가지가 아니니 어쩌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을 수도 있을거다."
안개 속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희미하게 울렸다. 겹겹이 누적된 피로가 전신을 짓누르는 채였다. 의식이 깊은 물 속을 부유하듯 몽연해진다. 맥이 탁 풀렸다. 온 몸의 긴장이 이완되자 깊은 곳에서부터 둑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한숨이 그 뒤에 덧실렸다. 창 밖으로 내민 손가락 새로 미지근한 미풍과 빗방울들이 마구 엉켜붙었다. 손등 위로 부수어지는 빗방울들이 무수했다. 장마는 아니었다. 어느새 8월의 끄트머리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시점이니 이제 곧 여름이 끝날 것이다. 그토록 지겹던 계절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집에 아직 볼 일이 남았니?"
무덤덤한 목소리가 잠잠히 빗소리에 잡아먹혔다.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방울이 습기를 자아내 텅 빈 차체의 내부를 빙글빙글 순환했다. 익숙한 냄새가 콧잔등을 뱅뱅 맴돌았다. 준회의 커다란 손바닥으로 비가 섞인 바람이 스몄다. 코 끝으로 가파르게 비 냄새가 스쳤다.
"네. 제일 중요한 일이요."
헛헛한 숨소리가 입 밖으로 미약하게 일렁였다.
아. 지겹도록 익숙한 냄새.
*
내게 여름은 죽음의 계절이었다.
두 살 아래의 여동생은 부모님이 회사를 나가고 내가 친구들과 놀러간 사이에 집 안에서 무참히 난도질 당해 죽었다. 내가 입지 말라고 주의를 줬던 아끼던 티셔츠를 온통 척척한 핏물과 내장 조각으로 뒤덮은 채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던 동생의 창백한 얼굴을 기억한다. 채 감지 못한 눈과 질척한 핏물로 범벅이 되있던 입. 그 해 열 살이 되던 동생은 택배 기사를 가장한 연쇄살인마에게 강간당한 뒤 살해당했다.
회사에서 달음박질 치듯 집으로 도착한 엄마는 온 몸이 무너져라 꺽꺽대며 울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엄마의 속이 곪아 터져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죄다 뒤집혀진 것처럼 험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피투성이가 된 채 나동그라진 동생의 작은 몸을 끌어안았던 엄마. 덩달아 피칠갑이 된 채 엄마가 다 쉰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어쩐지 살려달라 외치는 것도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엄마는 죽는 날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정신병원에서 반쯤 감금된 상태로 치료를 받았다. 그 날의 기억이 엄마를 괴롭혀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했다. 엄마는 자식새끼를 잡아먹은 죄를 되갚아야 한다는 쪽지를 자주 남겼고 뾰족한 것으로 살갗을 파헤치곤 했다. 동생의 그것과 비슷한 색의 새붉은 피를 줄줄 흘려보내는 엄마의 부러질 듯 가느다란 팔목을 간호사들이 경악하며 붙잡는 광경을 보는 것이 익숙해졌다. 미이라처럼 빼짝 말라 동생의 이름을 어물어물 발음하던 뭉그러진 소리. 엄마는 동생 나이 또래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보면 어어어, 어어어, 하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고 비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이 일었다. 엄마는 나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반쯤 풀어진 동공으로 흘깃 시선을 주다가도 어린 여자아이들을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 것이 다였다. 엄마의 비명에선 내가 대신 죽었어야 한다는 힐난이 쏟아지는 것도 같았다. 준회 네가 친구 집에 놀러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네가 대신 죽었어야 했어.
환청같은 소리가 자주 귓가를 내리쳤다. 지독하게 더운 여름이었다. 언젠가 날 선 어어어, 하는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엄마가 달려들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삭아들어가던 가족의 굴레. 썩어 뭉그러지던 엄마의 속내에서는 시큼하고 지독한 썩은내가 줄곧 흘러나왔다. 엄마는 그것을 움켜쥔 채 서서히 죽어갔다.
내가 열 다섯 살이 되던 여름에 엄마는 죽었다. 시름시름 앓고 바싹 말라가다 8월의 어느 찌는 듯 더운 날에 떠나갔다. 속이 곪고 문드러지는 병의 이름을 의사들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몸 안에서부터 생겨난 거대한 염증이 종국엔 엄마를 삼켜버렸던 것이다. 끝내 엄마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도, 누군가를 눈에 담지도 못하고 죽었다. 멀겋고 뜨뜻하던 희멀건 흰자로 엄마는 어린 동생의 뒷모습을 온 생을 다해 하염없이 좇다 기어이 그 애가 있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 준회야.
아빠는 엄마가 죽은 날 밤 말없이 투명한 소주를 단박에 들이켰다. 방 안이 온통 소주병 투성이었다. 희붐한 달빛이 산산히 부서지던 아빠의 눈으로 시퍼런 파도가 철썩 일었다. 그 눈에서 서서히 명멸하던 생기를 기억한다. 볼품없이 바들바들 떨리던 아빠의 손과, 덩달아 같이 찰랑거리던 투명한 소주.
― 네.
자멸적으로 귓가를 회오리치는 척척한 목소리.
― 엄마 말이야.
아빠의 눈가가 환자처럼 질질 떨렸다. 아빠는 몰골이라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초라하고 빈 껍데기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 너무 원망하지 말어.
어느새 잔뜩 늙은 남자의 희뜩한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방을 윙윙 엇갈려 공명했다. 무어라 대답하려다 입을 꾹 다문 나를 앞두고 아빠가 덕지덕지 투박하게 정리한 메모지 뭉치를 내게 건넸다. 지그시 살을 베어 문 여린 입 안이 씁쓸했다. 머리가 어찔했다. 가끔씩 느이 엄마 새벽에 깰 때가 있었다. 그 땐 제정신으로 너 안으면서 많이 울었어. 아빠가 덧붙였다.
엄마가 습관처럼 써내려가던 일련의 단어들.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단죄하던 흉측한 모습이 눈 앞으로 엇갈렸다. 받아든 메모지에는 온통 내 이름이 도열되어 있었다. 우리 아들… 엄마가 미안해.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준회야….
먹먹함과 원통함에 녹아든 눈물이 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작은 눈물이 두 줄기 세 줄기가 되어 온 뺨을 함뿍 적셨다. 꺽꺽이는 비명. 엄마가 평생을 내질렀던 비명이 내 목에서 터져나왔다. 엄마는 어떤 단어도 조음해 내지 못하는 목으로 얼마나 애달프게 내 이름을 불렀을까. 뱉어내지도 못한 채 입 안을 하염없이 맴돌다 사라지고 부패될 말들로.
창 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나 둘 떨어지던 빗방울이 거세졌다. 세상 모든 것을 씻어낼 듯한 맹렬한 빗줄기였다. 바람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죽어간 이들에 대한 묵상이었다.
*
겨울이 되어도 내게선 죽음같이 잔학한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 여름의, 비의 냄새였다. 아마 평생동안 나를 따라다닐 것이 분명했다. 기억이란 것에는 영속성이 있어서, 잊을 만하면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 난도질 당한 동생의 시체를 보거나 해골처럼 말라 비틀어진 엄마의 얼굴을 보곤 했다. 어떤 사소한 요소들이 바늘처럼 기억의 주머니를 툭 터뜨려 나를 뒤덮곤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 꾹꾹 밀봉해 놓았던 상실의 고통은 물처럼 쏟아져 언제나 나를 잡아먹었다. 기억의 폐수 앞에서 나는 늘 무력했다.
열 일곱의 어느 날에 형을 만났다. 엄마의 죽음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형에게서는 나와 비슷한 동류의 냄새가 났다. 지독하게 외로운 비의 냄새가. 그것이 나로 하여금 형을 돌보게 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질고 무거운 외로움을 업業처럼 이고 가는 누군가를 향한 본능적인 끌림이었다.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경험은 이제 그만 전폐하고 싶었음에도.
그 무렵의 나는 악몽을 자주 꾸고 가위에 눌렸다. 축축하고 미끈미끈한 기억이 꿈틀거리며 전신을 기어다니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무의식 밑바닥의 우물 문을 우악스럽게 열어젖히던 모든 기억들. 폐부 속을 파고드는 날 선 잔상들이 속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난도질 해 나를 살해하고 또 살해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제어가 되질 않았다. 기억의 물살이 범람해 나를 끌고 저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꿈 속에서 내 무력함을 절감하며 어린 동생과 엄마의 죽음을 수없이 목도했다.
서투른 박음질처럼 엉키는 호흡으로 잠에서 깰 때면 언제나 옆엔 형이 있었다. 어딘가 결손되어 있는 말간 낯이 시야에 담길 때면 나도 모르게 안도했다. 광활한 대지에 홀로 뚝 떨어진 듯한 기분이 절로 상쇄되어졌다. 이유는 몰랐다. 그 얼굴을 보면 현실과 도태된 음습한 환각들이 사그라들었다. 형은 환상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변하고 급하게 흘러만 가는데 형은 언제나, 그 자리에, 마치 영원할 것도 같이 그곳에 있었다. 그것에 늘 방념했다. 좁은 침대의 구석에 쳐박혀 아스스한 들숨을 내뱉는 형이 언제까지나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형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바스라지지 않고 흩어져버리지 않고 내 곁에 오래간을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동시에 형이 금방이라도 없어질까 두려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무서웠다. 사랑하고 정을 주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엄마가 죽은 열 다섯 살 여름에 못박혀 있는 나의 어떤 부분이 영원토록 현재로 돌아오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결점도 맺지 못하고 떠나가버린 엄마와 동생과 나의 관계성이 결국은 그 자리에 모호하게 머물러 성장하려는 내 무의식적인 부분들을 일부러 붙잡아 그 열 다섯에 속박해두려 하고 있음을 몸만 어른이 된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둑이 터져나올 때마다 형의 잔상들이 그 위를 뒤덮었다. 형을 보듬고 그 가시같은 외로움을 쓰다듬을 때마다 동생과 엄마의 죽음을 좌시한 죄책감이 서서히 살멸되는 기분을 느꼈다. 비로소 비늘처럼 겹겹이 쌓인 죄의 편린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형을 돌봄으로써 나의 죄가 사그라들고 작아져 끝내는 고스란히 새하얀 정신으로 잠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필사적으로 형을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그래야 내가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것은 온전한 내 일이었다. 비로소 구원받는 기분이 들었다. 형의 외로움이 세례가 되어 나의 죄를 분쇄시켰다. 온건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아빠가 죽었다. 나에게 찾아온 세번째 죽음이었다. 신체를 난도질하는 고통은 잔인하고 무참했다. 죄악의 비늘은 무섭도록 빠르게 다시 돋아났다. 무력감과 암담함이 폐부를 들쑤시던 섬뜩한 통증을 기억한다. 변변찮은 사진 하나 없어 어설프고 엉성하게 자리한 영정사진이 그리도 죄스러워 한없이 목 안이 갑갑했다. 마음 같아선 죽은 엄마처럼 손발을 마구 내두르며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왜 자꾸만 세상이 내게서 모든 것들을 앗아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가진 것이 없다. 정말로 그랬다.
밥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니고 잠을 자는 것들이 과연 정당한 일들일까. 왜 나만 살아있는걸까. 왜 나만.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상실의 고통은 도무지 씻겨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육신을 이루는 장기 중 하나가 돌연 빠져나가버린 듯한 허무함이 전신을 장악하면 숨 쉬는 것도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아빠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 앞에 한없이 유약하기만 한 내 몸뚱이를 육살하고 싶었다. 나도 어느 축축하고 깊은 흙 속에 몸을 뉘인 채 영원한 잠을 잠들고 싶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나 혼자 이 세계를 살아감에 통탄하며 오랜 시간 나를 자력으로 살해했다. 죽음에 대한 연습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잠을 잤다.
죽음 같은 잠 속에서는 하염없이 시커먼 바다 속을 헤맸다. 부질없이 팔을 내뻗자 바다가 그것을 삼켰다. 가슴께도 자취를 감췄다. 허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다리가 흐물흐물 녹았다. 결국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엄습하는 서슬 퍼런 포식자에게 그대로 먹힌 채로 주저 앉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그 상태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어차피 이젠 내게 남은 것이 없다. 이대로 호흡을 멈추면 나도 그 때의 동생의 창백한 해골같은 얼굴로 죽게 되는 걸까? 이토록 쉽게?
그리고 나선 정수리께를 도닥이는 손의 감각이 느껴졌다. 차례로 부드러운 온기. 시야가 트였다. 거짓말처럼 바다가 옅어졌다.차례대로 먹혀 들어갔던 팔과 다리와 허리와 손 발이 다시 보였다. 귓가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음같은 자장가였다. 노래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죽지 마. 준회야. 나를 두고 가지 마. 쩍쩍 갈라져 건조한 목소리가 허공으로 부수어지고 있었다. 그것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검질기게 살아 숨쉬는 생명의 마른 불씨.
아. 내게는 아직 남은 것이 있었다.
형이 부른 노래가 미련이 되고 의지가 되어 나의 눈을 띄웠다.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것. 내 어깨를 붙잡아 끌어당기던 형. 죽음처럼 스미던 어둠을 걷어낸 성결한 목소리와, 그 가련하고 부박한 노래. 비명처럼 퍼져나가던 부탁과 애원. 형의 묽은 눈물. 울음기에 먹혀들어갔던 손 끝. 물먹은 채 위태롭게 흔들렸던 그 눈동자.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내게는 이리도 가까이 있었다.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살아남아 이 팽배한 어둠을 깨뜨려야만 하는 이유가. 광대한 고독과 무력감을 무너뜨리는 너의 자그마한 숨소리가 일순 떠올랐다 사라졌다. 너는 나의 일이었다. 이젠 정말로 그러했다. 불확실했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 명확해지고 선명해졌다. 나는 네가 나의 가족이라 잘해준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닮은 구석에 호기심을 느낀 것도, 단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해 그것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해 너를 보듬은 것도 아니었다.
모든 연민과 동정과 동질감이 어떤 거대한 응집체로 변질되어 가슴께에서 움트고 있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들을 마무리 해야만 했다. 언젠가는 너와 함께 이 좁은 우주를 빠져나와 어디로든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갈 거야. 그 때까지 내 손을 놓지 마. 나를 버리지 마. 나를 혼자 두고 떠나가지 마.
형.
나를, 나를 기다려 줘.
*
장대비가 내리쳤다.
회청색의 우울한 먹구름 새로 우르릉, 하고 누군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준회는 회색빛을 띠는 건물의 외벽을 살폈다. 이 낡고 연약한 집이 한순간 쏟아지는 비를 따라 부스러져 녹아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환의 19년을 전부 담고 있는 한 국가는 이렇게 미약하고 유취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준회는 곧 자신이 빗줄기임을 깨닫는다. 역사의 함몰을 일구어낸 것은 자신이나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자신은 폭우였다. 제가 진환의 세계를 멸망시킨 것이었다. 저의 가정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복수로 하나뿐인 핏줄인 진환의 어머니를 외부의 힘을 빌려 감옥에 쳐넣었고, 도주해버린 그녀의 조력자를 잡기 위해 증거를 모으고 소송을 준비해 결국엔 체포당하게끔 했다. 진환의 세계를 이루고 구성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결국엔 저 자신이 몰락시킨 것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껴안고 무력하게 나락으로 쳐박힐 진환에게 미안했다.
착잡함이 번지는 얼굴이 일순 어그러졌다. 녹이 슨 철제 현관을 힘을 주어 당기자 습한 먼지 냄새와 섞여든 죽음같은 악취가 훅 끼쳐왔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얼굴로 녹아내렸다. 참담한 침묵으로 가득 차 있는 집 안을 들여다 본 준회의 등줄기를 타고 창백한 공포가 스물스물 기어올랐다. 평소의 텅 빈 집의 기류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걸음의 초입부터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묵중한 불안감으로 인해 병든 풀처럼 바스락거리는 움직임으로 걸음을 옮겼다. 훅 역겨운 쇠냄새가 이곳저곳에 낭자했다. 준회의 맨 발바닥으로 척척한 무엇인가가 엉겨붙었다. 그것이 진환의 자그마한 몸뚱이에서부터 흘러나온 핏물이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죽음을 목도한 준회의 눈꺼풀이 미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핏기 없이 시퍼렇게 질린 시체같은 얼굴과 피처럼 붉은 눈을 하고 검불처럼 늘어진 진환이 눈에 한가득 고인다. 곧이어 제가 남긴 쪽지를 유일한 구원마냥 잡고 있는 손. 미동 하나 없이. 정말로 생을 다한 것처럼. 내장을 드러낸 채 눈을 까뒤집고 죽었던 동생과,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이 빼짝 말라 죽어있던 엄마의 시체와, 형체도 없이 뭉그러져 빗물로 번들거리는 도로에 흩어졌던 아빠의 몸뚱아리. 피칠갑의 살점들. 모든 끔찍한 죽음들이 눈 앞을 난타하며 와글거렸다. 지독한 통증이 다시금 쏟아져 내렸다. 무언가 쩡, 하고 갈라지는 파열음이 크게 난 것도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의 비명같이 아무런 의미있는 말도 조음해 내지 못하고 준회가 울부짖었다. 어어어, 어어어 하는 울음이 쿨럭쿨럭 터졌다. 절규였다. 살려달라는 절규였다. 무릎이 저절로 꺾여 핏물이 바다처럼 고인 바닥에 맞닿았다.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이미 반쯤 굳어진 것 같은 진환의 등허리께를 붙잡고 미미하게 흔들었다. 절박한 손짓이었다. 사람의 살결이 아닌 것 같은 건조하고 딱딱한, 시린 피부가 느껴졌다. 습하고 무거운 여름의 기류 안에서 혼자 얼음같은 한기와 함께 굳어갔을 진환의 고통을 곱씹는 준회의 눈으로 묽은 개탄이 스몄다. 반쯤 벌어진 입으로 자꾸만 의미 없는 울음이 터졌다.
일순 몸이 굳었다. 진환의 작은 몸에서 움칠움칠 고동치는 박동이 준회의 저린 손 끝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준회의 귓가로 엄마의 비명이 스쳐갔다. 기억의 물살을 헤집고 쏟아지는 엄마의 절규. 살려줘. 살려줘. 뼈가 툭 불거진 앙상한 다리로 바드득 구겨 몸을 일으킨 준회가 진환의 너덜거리는 팔목을 다 헤진 이불을 튿어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뻣뻣하게 응고돼 석고처럼 굳은 몸을 어거지로 들쳐 업고 나서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걸음을 옮겼다. 집 안 곳곳이 자꾸만 쏟아지는 빗물에 침수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름을 덮어 쓴 것 마냥 핏물이 엉겨든 몸이 쩍쩍했다. 가볍기만 했던 진환의 몸이 천근이라도 되는 양 무거웠다. 쓰러져 가는 집이 저를 잡아당겨 부서지는 암녹색 파도 안으로 쑤셔 박는듯한 환상이 일순 스쳤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빠져나가야 했다.
멸망하는 이 세계에서 너를 데리고 나가야만 했다.
*
밭은 숨이 차올랐다. 굴곡마다 음영으로 물든 얼굴이 세찬 빗물로 마구 뒤덮였다. 폭우였다. 구기듯 울음을 씹어삼키고 파들파들 떨리는 다리를 되는대로 마구 움직였다. 헤진 노끈처럼 얇은 숨이 저의 목덜미로 부서지는 순간 준회가 기도했다. 이내 미미한 진환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와작와작 씹혀먹혔다.
"…같이 가. 준회야…, 같이, 나만 두고 가지, 마…. 같이…"
진환의 말소리가 제게 있어 복음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은 얼굴이 울음으로 마구 뭉개졌다.
아. 형의 목소리에서 지독한 비 냄새가 났다. 뼈를 삭이고 살을 녹이는 짙은 외로움의 냄새가.
너의 가슴 속에 난 금이 쩍쩍 갈라져 부서지는 것을 내가 왜 그대로 묵살하고 방치했을까. 너의 우주를 부수고 망가뜨리는 동안 도대체 왜 너 또한 같이 망가지고 부식되어 녹아내릴 것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이렇게 끔찍한 고독을 한없이 곱씹으며 죽어갔을텐데. 왜 그것을 방관하며 너를 내가 살해했을까. 내가 진정 원하던 건 너의 삶이었는데. 네가 사는 것이었는데. 언제까지나 살아 숨쉬는 너의 호흡이었는데.
"어디로? 형…, 어디로…?"
네가 원하는 낙원으로 너를 데려다 줄게. 나와 함께 떠나는 거야. 너의 국가를. 궤적을. 너의 온 생生으로 점철되어 있는 이 바다를.
"어디든…"
준회의 입 안으로 다시금 꺽꺽이는 울음이 마구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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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진환이와 준회가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준회의 과거사도 매우 우울하죠? 준회도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속은 상처로 가득한 인물이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이제 정말 몇 편 남지 않았네요T▽T... 아직 세이브 분량을 확보해놓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12편, 혹은 13편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O'/ ♡ 제가 한번도 연재를 해 보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저는 항상 일을 벌려만 놓고 마무리를 못하기 때문에 쓰다가 중지된 글들이 너무 많기 때무네... 흑... 그래서 뭔가 저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또 버려두었던 글들 중에 가장 플롯이 그나마 단단하고 제일 애착이 가는 심해를 연재하기로 결심했었읍니다... 아니 근데 이 얘기를 제가 지금 왜하고 있는거져; 노답? 거의 고해수준..^^... 어쩌라는건지...ㅎ 아ㅏ! 그래서 제가 지금껏 나름대로 일주일에 한편? 정도씩 글을 올리면서 힘도 들고 또 글을 쓰면서 생기는 감정소모에도 쉽게 지쳤었는데 독자 여러분들이 글을 이해해주시고, 안에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해서 그 입장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시고 하시는게 정말 큰 힘이 되었었어요! T▽T.. 지금까지 휴재없이 무사히 달려온건 정말 의지박약인 저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에요...!!!! 정말정말 고개숙여 감사드리고 싶어요 여러분ㅜㅜㅠㅡㅠㅠㅠㅠㅜㅠ 저번화에 암호닉으로 댓글 달아주신 [고기국수]님, [진환아]님, [레모나]님, [뿌장]님, [지난질주]님, [뿌글렛]님 그리고 다른 독자님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_<♡ 다음편은 언제 나올지 약간 미지수인게 다시 한번 슬럼프가 와서...ㅎㅎ 최대한 빠르게 오도록 하겠습니다ㅠ_ㅠ 그리고 12편이 먼저 올 지 특별편이나 외전이 먼저 올 지는 잘 모르겠어요! 몰입을 높여주기 위해서 글 안의 대사들이나 부분들 + 제가 영감을 받았던 아이들의 분위기 있는 사진이나 움짤들을 첨부해서 같이 오고싶은거시,,, 저으 꿈,,,^^,,, (하찮) 그럼 다음 편에서 만나요>_<〈!--!!! 언제가 될 진 잘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