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1
W.디엔
여우라는 동물은 행동이 민첩해서 금방 눈앞에 나타났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뭇없이 사라져버린다.
예상치 않게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여우처럼, 여우비는 햇볕이 난 날에 잠깐 흩뿌리다가 마는 비를 말한다.
그 날도,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정리하는 중이었어.
학생들이 던져둔 책을 하나하나 꽂아두고 있었지.
도서부였던 난, 책을 정리하는게 하나의 낙이었어.
한 권 꽂아넣으며 이건 어떤 내용이었지,
또 한 권 꽂아넣으며 이건 어느 부분이 기억에 남아.
정리가 끝나고, 남은 책이 없나 둘러봤어.
그러다 누군가의 하얀 실내화에 시선이 닿았지.
어라, 누가 있었던가.
"저기, 5시라 도서실 문 닫을 시간인데..."
너와의 첫 만남.
넌 포슬포슬 여우비가 내리는 창가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등지고 서서 날 보며 웃고있었어.
"또 보자."
넌 또 보자는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나버렸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또 생각했지. 교복이 참 잘어울리는 아이라고.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똑같은 장소에 넌 서있었어.
결국 궁금증이 넘쳐버린 난 네게 다가가 말을 걸었어.
"너...이름이 뭐야? 왜 맨날 여기 서있는데?"
그러자 넌 소리내어 웃으며 대답했어.
"비밀."
"응?"
"넌 ㅇ별빛. 맞지?"
"응...네 이름은 뭐냐니깐?"
"비밀이야."
"그런게 어디있어!!"
"그것도 비밀이야."
비밀로 가득찬 너와,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금방 친해지게 되었어.
그럼에도 넌, 절대 너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지.
"ㅇ별빛, 난 비오는 날이 좋더라."
"나는 햇빛 쨍쨍한 날. 비오면 축축하잖아. 그래서 싫어."
"비오는거 예쁘잖아, 계속 보고있으면 왠지 서글퍼지기도 하고.."
빗물묻은 창문에 비친 네 모습이 어찌나 눈부시던지.
햇빛 때문인걸까?
"별빛아."
"응?"
"아니, 그냥. 많이 불러보게."
넌 알고있을까?
난 내 이름을 부르는 네 목소리가, 너무나도 좋아졌어.
그래 사실은, 이름모를 네가 너무나도 좋아져버렸어.
네 생각만 하면 왼쪽가슴이 찌르르 떨려올 정도로.
하지만 난 그저 네 이름도 모르는 내가 상처받고 말까봐,
그 마음을 꽁꽁 숨겨두고 있었지.
또다시 여우비가 내리는 날이었어.
유난히 햇빛이 눈부신, 온 세상이 반짝거리는 날.
"별빛아."
"응?"
"여우비가 왜 내리는지 알아?"
"알아."
"알아?"
"그게 대기 높은 곳에서 돌풍이 불어서.."
"아, 그런거 말고, 이 범생아."
넌 뭐가그리 즐거운지 소리내어 한참을 웃었어.
내가 째려보자 그때서야 웃음을 그쳤지.
"잘 들어봐. 옛날에, 구름이랑 여우가 살았대."
"전래동화? 갑자기 무슨.."
"잘 들어봐. 구름은, 예쁜 여우를 사랑했대. 아주 많이."
"응."
"하지만 구름은 용기가 없어서, 여우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날, 여우가 시집을 가게 된거야.
그 소식을 들은 구름이,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대.
그 구름이 흘린 눈물을...여우비라고 부른다는 거야."
이 이야기는...갑자기 왜 해주는 걸까?
말을 마친 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어.
"나 떠나, ㅇ별빛."
"떠난다니?"
"비밀이야."
진지하게 말을 하다가도 비밀 뒤에 숨어버리는 네가 너무나도 야속해서, 울컥했어.
"넌 왜 이렇게 비밀이 많은건데?"
"글쎄..."
"내가 너에 대해 아는게 도대체 뭘까?
난 네 이름도, 사는 곳도 몰라."
그저 교복이 잘 어울리는 아이.
웃는 모습이 아이같이 해맑은 아이.
비를, 특히 햇빛 눈부신날 내리는 여우비를 참 좋아하는 아이.
정말 많은 비밀 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아이.
내가 너에 대해 아는건 이게 다야.
그런데도....그런데도.
"많이 좋아하는데."
넌 눈물어린 내 고백에도 무덤덤해 보였어.
마치 알고있었다는 듯이.
"좋아해. 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난 비밀이 많아."
"...알아."
"나 떠나는데, 곧."
"왜..."
"이렇게 슬픈건 처음이라...안타깝네."
"안...떠나면...안돼? 어디로든. 아니면, 어디로 가는지라도 알려줘. 응?"
"안돼."
"도대체 왜..."
"혹시라도,"
넌 또다시 해맑게 웃어보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아이의 웃음.
"혹시라도 날 찾고싶다면, 내 이야기를 따라 길을 찾아와.
그 이야기의 끝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
"여우비 이야기?"
"비밀이야. 네가 알아서 해."
마지막까지 비밀 속에 숨어있던 넌,
그 말을 끝으로 도서실 밖으로 나갔어.
그 뒤로 난, 널 볼 수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