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w.별모양곰돌이
[우현]
손에 쥔 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천을 더욱 더 꽉 쥐어 맸다. 성규가 윤두준에게 끌려간 지 육개월이 지났다. 떨리는 손과 칼끝이 나의 긴장감을 말 해 주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호흡을 하며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도어락을 열었다. 두 세 번의 시도에 쉽게 도어락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그 소리에 행여나 윤두준이 깨지는 않았을까... 나는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 칼을 휘둘렀다. 조용한 내부. 인기척은 없었다.
조심스러운 걸음에도 발자국 소리는 들렸다. 더 숨을 죽이고 더 느린 걸음으로 윤두준이 있을만한 방을 찾았다. 거실을 지나 있는 두 개의 문 중 어느 방일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며 왼쪽 방문을 열었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바로 몸을 돌려 오른쪽 문을 열었다. 이 문 뒤에는 분명히 윤두준이 있을 테지.
문고리를 천천히 돌려 밀었다. 문 뒤로 약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칼을 더욱 세게 쥐었다. 손과 칼을 함께 묶은 천이 내 손을 죄여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더욱 천천히. 신중하게 문을 열었다. 불빛은 침대 옆 스탠드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잠이 잘 오도록 적당한 불빛의 빛이었다. 그 옆에는 침대가 있었고 그 곳에는 윤두준이 있었다. 두 눈을 뜨고 침대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윤두준과 눈이 마주쳤다. 윤두준의 침착한 분위기가 공기를 누르고 있었다.
“윤두준,”
“쉿.”
윤두준은 검지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듯 모션을 했다. 순간적으로 모든 행동을 멈춘 나는 윤두준의 옆에서 잠이 든 성규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도 구하려 했던 김성규는 윤두준의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
[성규]
윤두준에게 끌려온 지 삼일이 되었다. 윤두준은 이상했다. 이 집에 들어오고 난 후 나의 몸을 탐하려 하지 않았다. 우현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 어떤 모욕과 수치는 이 악물고 견디리라 각오했던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를 위해 좋은 옷과 음식을 사왔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 그대로 있는 옷과 음식을 보았을 때 나는 커터칼 조각을 손에 쥐었다. 행여나 그가 나를 탐하려 했을 때 그것을 삼켜 죽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한 번 보더니 지나쳤다. 윤두준은 샤워실로 들어갔고 곧 물소리가 들렸다.
샤워를 마친 그는 소파에 앉아 경계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배고프지 않아?”라고 물었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 음식을 버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소름이 끼치도록 두려웠다. 두 눈을 감고 그가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나는 무릎을 더욱 깊게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렸다. 윤두준이 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 줬으면 좋겠다.
윤두준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웃는 소리도 들렸다. 아마도 예능프로인 것 같았다. 웃긴다. 무게나 실컷 잡으면서 나와 우현이를 협박한 조폭이 저녁에 예능따위나 보다니. 잠시 뒤 담배냄새가 났다. 콜록- 독한 연기에 기침이 나왔다. 윤두준이 소파에서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나는 호기심에 고개를 들었다. 윤두준은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혼자 어딜 보는 건지 구부정한 자세로 난간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웠다.
윤두준의 어깨 넘어 보이는 담배연기가 지독했다. 텔레비전에는 여전히 방송인들이 나와 농담이나 하며 웃고 있었다. 나는 멍하게 텔레비전을 봤다. 우현이랑 자취방에서 둘이 껴안고 보면 정말 재밌었는데. 눈물이 나도록 웃었었는데.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우현이가 너무나도 보고 싶다.
**
[우현]
편모가정에 가난한 집안사정. 모나기 쉬운 환경에 나는 나름 잘 자랐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도 들어왔다. 하지만 집안의 빚과 비싼 등록금은 어떻게 해결이 되지 않았고 그런 나에게 기회가 왔다.
“넌 몸도 날쌔고 머리도 좋고 힘도 있으니까 형이랑 일 좀 안 해볼래?”
“무슨 일이요?”
“형이 밤에 형님들 좀 모시고 있는데. 넌 그냥 거기서 막내노릇 적당히 하면서 있으면 돼.”
“...”
“하루에 백은 벌 수 있어.”
그렇게 나는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를 포기할 수 없어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성규에게도 말 하지 않았다. 성규는 내가 단순히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다.
성규는 동아리 한 기수 선배였다. 중문과 김성규라고 하면 학교에서 알아주는 보컬이었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까지 했을 정도로 나름 스타라면 스타였다. 그런 김성규를 거의 한 학기동안 따라다녔고 결국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일까. 아니면 성규와 사귀고 나서일까. 아니면 윤두준이 애초에 성규를 노리고 그 형에게 명령을 해서 접근을 했던 걸까.
어째서 윤두준은 성규를 데리고 갔을까...
옛날을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지금 도망자다.
성규를 살리기 위해서는 윤두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스포츠 도박을 조작해 수익을 내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이제는 윤두준이 나를 아예 가둬버리기 위해 일부러 경찰들에게 정보를 흘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 손으로 꼭 성규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잡혀서는 안 된다. 끝까지 도망치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성규를 구해야만 한다.
잘린 검지손가락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꼭 구해줄게, 성규야.
**
[성규]
또 끔찍했던 그 때의 꿈을 꿨다. 꿈이 너무 힘들어서 아프다.
과제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납치를 당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 곳으로 끌려가던 그 순간은 다시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공사장 같은 그 곳은 어두웠고 낡은 기름통의 불만이 그곳을 밝히고 있었다. 거기서 윤두준은 서 있었고 우현이는 쓰러져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우현아...”
윤두준의 앞으로 끌려간 나는 우현이를 보았고 우현이에게 가려던 나를 남자들이 막았다. 왜 우현이가 여기에 저런 꼴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감각으로 알았다. 윤두준. 이 남자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우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너무나도 두려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행여나 우현이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현이를 둘러싼 남자들이 우현이에게 해를 끼칠까봐 두려웠다.
우현이는 너무 많이 맞아서 피가 흐르는 얼굴이 부어 있었다. 얼굴에 멍이 들고 온 몸은 삐그덕 거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게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흘렀다. 흐르는 눈물은 내 턱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나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성규... 놔 주세요...”
왜 내 걱정부터 하는 거니, 우현아. 너 아프잖아. 너 많이 아프잖아. 너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내 우현이, 우리 우현이...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울음소리가 잇새로 빠져나갈까 싶어 이를 악물었다. 눈물 때문에 흐려진 시야가 답답했지만 몇 번을 닦아도 흐르는 눈물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충성을 다... 다 할게요... 그러니까... 성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우현의 말이 끊겼다. 피를 토해내는 우현이가 안쓰러워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우현이에게 가려던 내 팔이 낚아채었다. 윤두준이었다. 세상에 그 어디에도 없을 악마. 그 악마를 나는 그 날 보았다.
윤두준의 팔에 끌려 우현이에게 멀어졌다. 몇 걸음 앞에서 우현이는 피를 토하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 손을 잡아주고 싶지만 다른 손을 잡은 윤두준은 나를 억눌렀다. 뒷걸음질로 윤두준의 앞으로 간 나는 그의 눈을 마주쳤다. 차갑기만 한 그 눈을 보며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이 남자는 우현이를 죽일 것이다.
윤두준은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마주치며 나이프로 내 옷을 천천히 찢어 벗겼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 떨어지는 소리가 끔직했다. 윤두준은 어깨를 훑으며 손길을 내려갔다. 나는 그의 앞에 무기력하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우현이가 안 된다며 오열하는 소리밖에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우현이가... 나대신 울어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힘의 논리는 거부할 수 없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우현아, 미안해. 너가 지켜줬던 내 몸은... 이제 이 사람에게 주게 되었어.
바지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바지가 내려갔다. 속옷도 벗겨졌다. 나는 윤두준의 앞에 그냥 서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주변의 많은 남자들의 시선이 느껴져 온 몸이 따가웠다. 수치스러움에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저항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나는 인형이다. 나는 인형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형이다.
윤두준은 나를 맨바닥에 눕혔다. 무릎을 꺾게 하고 다리를 벌리게 했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 지 알 수 있었다. 귓가에는 우현이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그만해!!!!!! 성규야!!!!!! 김성규!!!!!!! 이거 놓으라고!!!!!! 성규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나는 괜찮으니까... 너는 안 아프니? 우현아... 너 아프지 마. 제발. 아프지 마, 내 우현이...
윤두준의 검지손가락은 한 곳을 계속해서 찔렀다. 어쩔 수 없는 오르가즘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온 몸이 떨렸다. 윤두준은 검지손가락 하나만 가지고 나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내 자존심, 자존감, 우현이에 대한 사랑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쾌감에 나는 온 몸을 떨었다. 나는... 윤두준의 품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
[우현]
성규는 끌려갔다. 울다가 실신을 한 것 같았다. 멀어지는 성규를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 앞으로 윤두준이 왔다.
“이 손으로 나는 김성규를 가졌다.”
윤두준은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나에게 보였다. 그 손가락을 당장이라도 물어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이 무거운 몸뚱아리는 온 몸에 고통을 호소하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넌...”
윤두준은 성규의 옷을 잘라냈던 나이프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는 나의 검지손가락을...
“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윤두준은 내 눈을 맞췄다. 끊어지는 정신력을 겨우 붙잡으며 나는 여린 입안의 살을 깨물어 정신을 깨웠다.
“안성에 가면 도박장이 하나 있다.”
“으으... 으으으...”
“그곳으로 가면 네 역할을 줄 거다.”
“...”
“대답해.”
“알... 겠... 습... 니... 다...”
입 안의 여린 살이 터져 피가 흘러 나왔다. 윤두준은 내 머리채를 그대로 놓았다. 바닥에 그대로 박은 머리가 울렸다. 멀어지는 윤두준의 발걸음을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
[성규]
윤두준의 집일 것 같은 곳에 온 나는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부엌을 뒤졌다. 가장 튼튼하고 날카로운 칼을 찾았다. 흐르는 눈물을 이제야 닦았다.
“으흡, 흐으윽, 으으흐윽... 현아, 우현아아... 흐읍.”
우현이를 부르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터지는 그것 그대로 두었다. 현관문 앞에 서서 칼을 쥐고 섰다. 윤두준이 오면 바로 죽일 거다. 죽이지 못하면 죽을 거다.
윤두준이 들어왔다. 현관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바로 칼을 찔러 넣었다.
“아악!”
내 손은 윤두준의 손에 의해 꺾였고 칼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윤두준은 칼을 발로 차고 나를 그대로 뒤로 밀쳤다. 맨바닥에 넘어진 나는 몸을 돌려 빠르게 칼을 찾았지만 곧바로 윤두준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윤두준은 내 앞에 무언가를 던졌다. 처음에는 처음 보는 것에 알지 못 했다. 아니, 외면하려던 거 같다. 잘려진 손가락은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되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으흐흐, 으흡, 현아... 우현아!!!! 으허허엉!!!”
나를 지나친 윤두준은 여유롭게 방으로 들어갔다. 곧 이어 알몸이었던 내 몸 위로 샤워가운이 덮였다. 내 앞으로 온 윤두준이 내 턱을 들어 올렸다. 처음으로 제대로 윤두준의 얼굴을 보았다. 차가운 얼굴. 핏기 없는 얼굴. 감정이라고는 없는 얼굴.
악마.
“앞으로는... 알아서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흐으...”
“복종 해.”
그 한마디에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
[우현]
손에 쥔 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천을 더욱 더 꽉 쥐어 맸다. 성규가 윤두준에게 끌려간 지 육개월이 지났다. 떨리는 손과 칼끝이 나의 긴장감을 말 해 주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호흡을 하며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도어락을 열었다. 두 세 번의 시도에 쉽게 도어락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그 소리에 행여나 윤두준이 깨지는 않았을까... 나는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 칼을 휘둘렀다. 조용한 내부. 인기척은 없었다.
조심스러운 걸음에도 발자국 소리는 들렸다. 더 숨을 죽이고 더 느린 걸음으로 윤두준이 있을만한 방을 찾았다. 거실을 지나 있는 두 개의 문 중 어느 방일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며 왼쪽 방문을 열었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바로 몸을 돌려 오른쪽 문을 열었다. 이 문 뒤에는 분명히 윤두준이 있을 테지.
문고리를 천천히 돌려 밀었다. 문 뒤로 약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칼을 더욱 세게 쥐었다. 손과 칼을 함께 묶은 천이 내 손을 죄여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더욱 천천히. 신중하게 문을 열었다. 불빛은 침대 옆 스탠드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잠이 잘 오도록 적당한 불빛의 빛이었다. 그 옆에는 침대가 있었고 그 곳에는 윤두준이 있었다. 두 눈을 뜨고 침대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윤두준과 눈이 마주쳤다. 윤두준의 침착한 분위기가 공기를 누르고 있었다.
“윤두준,”
“쉿.”
윤두준은 검지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듯 모션을 했다. 순간적으로 모든 행동을 멈춘 나는 윤두준의 옆에서 잠이 든 성규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도 구하려 했던 김성규는 윤두준의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나는... 성규야... 나는...
윤두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렇게 편한 얼굴로. 이렇게 좋은 곳에서. 저렇게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아이인 성규를... 다시 데려갈 자신이 없다. 도망자가 되게 할 수 없어.
“김성규 행복하게 해 주시면 계속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거 먹여주고 좋은 거 입혀주고 좋은 거만 보고 들을 수 있게 해 주시면 당신 밑에서 그 어떤 짓이라고 하겠습니다.”
진심이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돌아가. 빚도 다 갚아줄테니. 일상으로 돌아 가.”
“...”
“김성규 잊고. 평범하게 살아. 그게 네가 할 일이다.”
“...”
나는 그의 앞에서 붕대로 묶은 칼을 풀었다. 그 칼을 바닥에 놓고 그대로 나는 윤두준의 방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성규의 얼굴을 한 번 더 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
[성규]
윤두준에게 끌려온 지 삼일이 되었다. 윤두준은 이상했다. 이 집에 들어오고 난 후 나의 몸을 탐하려 하지 않았다. 우현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 어떤 모욕과 수치는 이 악물고 견디리라 각오했던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를 위해 좋은 옷과 음식을 사왔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 그대로 있는 옷과 음식을 보았을 때 나는 커터칼 조각을 손에 쥐었다. 행여나 그가 나를 탐하려 했을 때 그것을 삼켜 죽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한 번 보더니 지나쳤다. 윤두준은 샤워실로 들어갔고 곧 물소리가 들렸다.
샤워를 마친 그는 소파에 앉아 경계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배고프지 않아?”라고 물었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 음식을 버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소름이 끼치도록 두려웠다. 두 눈을 감고 그가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나는 무릎을 더욱 깊게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렸다. 윤두준이 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 줬으면 좋겠다.
윤두준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웃는 소리도 들렸다. 아마도 예능프로인 것 같았다. 웃긴다. 무게나 실컷 잡으면서 나와 우현이를 협박한 조폭이 저녁에 예능따위나 보다니. 잠시 뒤 담배냄새가 났다. 콜록- 독한 연기에 기침이 나왔다. 윤두준이 소파에서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나는 호기심에 고개를 들었다. 윤두준은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혼자 어딜 보는 건지 구부정한 자세로 난간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웠다.
윤두준의 어깨 넘어 보이는 담배연기가 지독했다. 텔레비전에는 여전히 방송인들이 나와 농담이나 하며 웃고 있었다. 나는 멍하게 텔레비전을 봤다. 우현이랑 자취방에서 둘이 껴안고 보면 정말 재밌었는데. 눈물이 나도록 웃었었는데.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우현이가 너무나도 보고 싶다.
담배를 다 핀 윤두준은 방으로 들어갔다. 담배연기 때문인가... 눈앞이 이상하게도 흐렸다.
정신을 잃었었나보다. 잠에서 깨어나니 나는 윤두준의 침대에 있었고 내 팔에는 주사바늘이 꽂혀 있었다. 삼일을 물 한 모금 안 먹고 굶었으니 당연했다.
윤두준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달라졌다. 당연하게 윤두준의 옆에서 잠을 잤다. 윤두준이 권하는 죽을 먹었다. 물을 떠다 주고 약을 주면 먹었다. 윤두준은... 나를 탐하지 않았다. 묵묵히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었다.
나는 윤두준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하지만 윤두준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지는 않았다.
윤두준은 집을 나갈 때 꼭 텔레비전을 틀고 나갔다. 가끔은 비싼 포장음식을 사서 오기도 했다. 어울리지도 않게 꽃을 사서 오기도 했다. 잠을 잘 때 악몽을 꾸는 나를 위해 스탠드를 구입했다. 예쁜 옷을 사왔다. 작은 어항에 들어 있는 예쁜 열대어도 한 마리 사서 왔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 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우현이가 그리워졌다. 그냥 그리워만 졌다. 잘 지내겠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윤두준이 말을 걸어야 짧은 대화만 했었던 사이가 이제는 내가 말을 먼저 거는 사이가 되었다.
“나가고 싶어.”
“응?”
“맛있는 거 먹고 싶어.”
“그래.”
윤두준은 짤막하게 말 하고 방을 나갔다.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윤두준은 옷을 챙겨 다시 들어왔다. 옷을 보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이곳에 끌려오고 난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던 것을 실감했다. 나는 윤두준이 나가고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내 손에는 누군가에게 받은 독약이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둘이서 식사를 했다. 대화는 없는 삭막한 식사였다. 윤두준은 물을 마시지 않았다. 집에서 식사를 할 때 윤두준은 식사를 하면 물을 꼭 마셨다. 하지만 마시지 않았다. 끝까지 물을 마시지 않고 식사를 마쳤다.
그 날 저녁. 나는 몸을 씻었다. 몸을 닦고 발가벗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윤두준은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나를 본 윤두준의 눈이 잠시나마 흔들렸다. 나는 윤두준이 누워 있는 곳 앞에 걸터앉았다.
“거의 일 년을 나를 가졌었잖아...”
“...”
“놔 줘.”
“...”
“이제... 놔 줘...”
눈물이 흘렀다. 이 집으로 끌려온 뒤로 절대로 울지 않았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무리 손등으로 닦고 닦아도 흘렀다. 침대가 흔들렸다. 윤두준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각오했다. 이 정도는... 이제 나는 윤두준에게 안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죽을 거다.
머리가 가볍게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은 윤두준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윤두준이 나간 방문이 다시 닫혔다. 방문 너머로 현관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뜬 눈으로 밤을 샜다. 방은 어느새 새벽빛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불을 끌어 아랫도리를 가렸다. 윤두준이 다시 들어 올 방문을 보았다. 문이 열리고 양복을 갖춰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윤두준이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이것 한 마디만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
“미안하다.”
아... 윤두준... 당신은... 당신은... 나를 지독하게 사랑했었구나.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나갔다. 자유? 자유다... 나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알몸으로 맞이하는 새벽은 낯설지만 포근했다. 이제야 방이 보였다. 넓은 침대와 스탠드뿐인 이곳은 차가운 곳이었다. 나는 거실로 나갔다. 텔레비전이 하나 있는 곳이었다. 부엌은 잘 쓰지 않아 차가움이 유독 시리게 존재했다. 이제야 보였다. 이 공간. 윤두준의 공간...
“윤두준... 당신...”
외로웠구나.
나는 나의 흔적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칫솔도, 신발도, 옷도, 모두 다...
그리고 그가 볼 수 있는 곳에 메모를 남겼다.
[두준씨... 나중에... 웃으면서 봐요.]
**
[우현]
휴학을 했다. 한 학기 휴학이 점점 늘어나 1년 휴학을 하고 다음 학기도 휴학을 할 생각이었다. 성규가 싫어하는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뿜어져 나오는 연기 사이로 성규가 보였다. 나는 패배자였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내 앞에는 김성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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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이나 시간이나 왔다갔다 복잡하지만
그냥 나는 내가 쓰고 싶은 데로 주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룩~~~~ 썼답니다:)
의식의 흐름 그대로 썼다고할까요...ㅎㅎ
좀 마이너스럽고 하지만...
제 취향은 이렇답니다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