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
며칠동안은 또다시 예전의 도경수로 돌아갔다. 이렇게 감정이 빠르게 반복될지는 몰랐지만 종인이 저를 향해 가시를 돋은 말은 아직도 충격이다. 그 끔찍한 저녁식사가 끝나고 찬열과 종인의 인사는 커녕 힘없이 올라가 잠을잤다. 다음날도 계속 자고, 또 잤다. 안자는 날은 울었다.
하루하루를 잠으로 지내도 어느순간부터 두 악마가 저를 쫓아와 끝에는 총구가 제 이마에 닿는순간 눈을 크게 떴다. 두 악마와 종인과 찬열이 씌어져 잊혀져 가던 전의 기억이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아질것 같았지만 그걸 아니라고 말해주듯 경수는 저와의 모든것을 다 막아버렸다. 종대와 루한. 그리고 크리스가 와서 경수에게 안절부절하며 말을 건네지만 돌아오는건 창밖의 바람소리였다. 그리고 타인의 숨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이불속에 숨죽인채 혼자 울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찬열은 정확히 삼일 후. 암컷 퓨마와 섹스를 하다가 자신이 강간한것을 확실히 알아버렸다. 그 순간 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니 뒤에서 소리지르는 여자를 뒤로한 채 외투를 걸치고 나갔다. 조금씩 떨어지는 비에 빠르게 산을 탔다. 늦은 주점 처마 밑에 주저 앉았을 땐 이미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허공을 한없이 보다가 나머지 한손으로 얼굴을 쓸며 마른세수를 했다. 이마 부근이 뜨거웠다.
아무리 제가 남들이 말하는 날라리 급에다가 여자남자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었지만 그사이에 아무것도 없었고 가족들에게는 누구보다 착하고 가족들을 사랑하는 찬열이였다. 10대의 후반선에서 종인을 만나서 더 많은 사고를 친 적은 있지만 종인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깊게 사귀면서도 가끔은 얉게 돌았다. 근데 제가 강간을 했다. 저들의 무리와는 다른 무리의 남자를 강간했다.
술에 취해서 몰랐어요..
옛날 뉴스를 보면서 엄마와 항상 저런 쓰레기는 죽어야 한다고 혀를 찼는데 자기가 쓰레기보다 못한, 괴물이 되버렸다. 단지 그날은 지독하게도 술에 취했고, 지독하게도 성욕이 부풀어 올랐으며, 지독함을 뛰어선 독하지 못해 염산을 소년에게 뿌려버렸다. 소년은 저들에게 녹았고 뿌연 액체만 남긴 채 흐물거렸다. 그리고 둘은 자연스럽게 시간을 타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마 종인은 까먹었을지도 모를일이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뒷목이 땡기며 아팠다. 미안함은 둘째치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막막했다. 어떡하지? 김종인이라면 어땠을꺼 같아?
집에 돌아와서 매일 매일 꿈속에서 소년이 저를 쳐다봤다. 울고 빌고 도망쳐도 소년은 울지 않았다. 어떤 표정도 없었다.
*
다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에 경수가 이불을 더 끌어올렸다. 계단에 아직도 핏자국이 어스름하게 희미하게 남았다.
계단 끝에와서. 웅크려진 이불을 보자하니 찬열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 뒷못을 잡은채 조금씩 침대로 걸어갔다. 이불속에서 눈을감지 못한채 제 손을 봤다. 어둠속에 흰손이 꼼지락 거렸다. 모든 소리에 귀를 집중하던 경수가 침대 가까이로 발소리가 멈추가 몸 전체를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다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저번의 찬열이였다. 놀란마음에 눈을 크게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낮은 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이불을 꽉잡았다. 그날 밤의 일이 눈앞에 쫙 펼쳐지는것 같았다. 다시 꿈에서가 아닌 현실에서의 악몽이 시작됬다. 찬열의 목소리에선 진심이 담긴 사죄의 마음이 들려왔지만 경수는 알면서도 이미 찬열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진짜 미안해, 이 말로는 안될거 알지만,"
마지막 말에 찬열의 목이 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찬열또한 경수의 뒤모습만 봐도 그날의 경수가 떠올라 제가 너무 끔찍했다. 어릴 때를 마지막으로 울지않았던 제가 지금 울고 싶었다. 눈물은 안나오고 가슴만 물에 젖은 솜을 쌓아 놓은듯 먹먹했다.
"나.가줘.요.."
결국엔 참았던 울음이 밑에서 올라와 꾹꾹 삼켜내며 힘겹게 이 말을 꺼냈다. 경수의 목소리에 눈을 크게떴다 마지막말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용서받을 일이 못되구나. 얼굴을 쓸며 뒤돌았다. 난 이제 어떡하지? 절벽에서라도 뛰어내려 죽고 싶은 심정이였다 경수가 저를 분명히 원망하고. 이미 마음속에선 제 사지를 찢는 상상을 천백번을 할지도 모른다 확신했다.
힘없이 경수를 등진채 걸어가는 찬열뒤로 인기척이 사라지자, 결국은 참았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입술을 물다가도 두려움에 다시 서럽게 작은소리로 끅끅대며 울었다. 큰소리로 울지못하는 서러움과 공포가 섞여 결국은 곯다가 터져버렸다. 문득 제가 왜 여기에. 왜 이러고 있는지 몰랐다. 또 그게 제 자신에게 화가나 눈물이 났다.
아예 처음부터 제가 백현을 잊지못해 달려가지만 않았더라도 유린당하는것조차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 집에 제가 눈치보며 살지도 않을것이다.
민석이는 잘있을까?
아마 저를 찾으러 다닐 모습에 서러웠다. 괜히 백현이 미웠다. 눈을 닦아도 닦아도 계속 나오는 눈물에 결국은 손으로 눈을 덮고 엉엉 울었다.
"계십니까?"
루한이 깃을 목까지 추스린채 문을 두드렸다. 준면 또한 추운지 코를 문지르다 훌쩍거리며 양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움츠렸다. 준면역시 저랑은 생판다른 소과의 네뿔영양이지만 생긴것과는 따로노는 성격의 소유자 준면인걸 알기에 건드릴 일도 없었다. 또 같은 연구를 하고있어서 더욱 친밀하기도 했다. 루한이 경수의 이야기를 듣고 온 동네를 다뒤져 찾은 집이 이 집이였다. 물론 전의 경수가 사자랑 살았을리는 없고. 그나마 준면이랑 가는게 더 안전할거 같아 침을 삼키고 문을 계속 두드렸다.
"안에 없는거 아니야? 아우 추워ㄷ...아오 깜작야."
열자마자 삼백안인데다가 키는 저보다 몇뼘더 큰 남자와 제눈높이와 똑같은 남자가 안긴채 문을 확여니 준면이 놀라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분명히 소과의 냄새인데 핏비린내와 저희의 향이 섞여 풍기는 냄새에 세훈이 눈썹을 찡그렸다.
"저기..혹시졸리세요?" "아니요." "근데 눈이 왜그러세요 기분나쁘게" "형 얼굴도 존나기분나빠요. 아 존나 삭았어." "시발 너 자꾸 주둥아리를 벌리면 메스로 회바르듯 쪼개서 니척추순서를 뒤바꿔놓을수도있어."
"김준면!..저기... 혹시 형제관계 이세요?" "아니... 그냥 지인인데.."
"죄송한데.. 혹시 여기가 도경수씨댁 아니에요?" "..........네?"
"아진짜 말 답답하네. 지금 경수랑 저희 같이 있어요"
계속 세훈과 눈싸움을 하던 준면이 루한의 행동이 답답한지 팔짱을 끼고 말하더니 먼저 춥다고 벙쪄있는 민석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민망해진 루한이 세훈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선 세훈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앉아 루한이 경수가 겪었던 일과. 그동안의 모든것을 다 말해줬다. 굳은 표정으로 듣던 민석이 결국엔 코를 실룩이다 울음을 터트렸다. 손으로 얼굴을 다가린채 끅끅대며 울었다. 세훈이 옆에서 휴지로 눈가를 닦으며 훌쩍였다. 민석이 몇분간 제 잘못이라고 울면서 한참동안이나 경수를 불렀다. 그 모습에 준면과 루한 도 가슴이 아파 가만히 땅만 바라보며 민석의 울음이 그칠 때 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경수...지금도 잘있어요?"
갈라진 목소리로 빨개진 눈가를 닦아낸 민석이 루한에게 물었다. 잠시 말하길 망설이다 한숨을 쉰 루한이 지금 경수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다시 쏟아지는 화살같은 말에 민석이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구슬프게 우는 민석을 세훈이 안아 등을 토닥였다. 루한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괜히말했나싶은 제가 죄책감이 들어 이마를 손바닥으로 꾹꾹눌렀다.
"살아는 있는거죠?" "네. 상처도 다 치료했고 나아지고있어요. 그런것도 갑자기 아픈거니까, 곧 나을거에요. 걱정말아요."
루한의 희망 가득한 말에 민석이 울음을 그치고 규칙적이게 숨을 뱉었다. 조금은 편안해진 분위기에 루한이 편안한 미소를 띄며 민석이 묻는 말에 하나하나 자세히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옆에서 간간히 세훈과 준면의 욕소리가 들려왔지만 말이다. 차분하던 공간에 물끓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민석이 귤차를 꺼내 루한과 준면의 앞에 건넸다. 향긋한 귤내에 눈을 감고 향을느끼는 준면에 반면, 처음 먹는듯 루한이 코를 킁킁대며 잔을 살살 돌렸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꺼먼 하늘에 밝은 달이 떴다. 늦은 밤이기도 하니, 옆에서 세훈과 준면이 턱을 괸채 꾸벅꾸벅 졸고있는걸 하니 가야 싶었다. 준면을 깨운 루한이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고있을 때 세훈을 침대에 눕혀놓고온 민석이 저에게 뛰어왔다. 헐레벌떡 뛰어온 민석에 눈을 크게 뜬 루한이 한번웃어 보이고 아직 안갔다며 민석을 일으켰다.
작은손에서 건네 받은것은 작은 앨범이였다. 앨범을 받은채 민석에게 물었다. 이게 뭐에요?
"경수... 한테 줄수있어요?" "당연하죠."
"꼭 전해주세요. "
루한의 말에 상기된얼굴로 웃으며 연신 고맙다고하며 인사를 수차례했다. 부끄러운 루한이 민석을 일으켜세워 이만가보겠다고 했다. 짧은 문위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며 팔사이 앨범이 작게 흔들렸다. 루한. 그리고 준면과 저와의 거리가 조금 멀어졌을때, 아직 닫지 않은 문사이로 민석이 크게 소리쳤다.
"혹시!.. 제가 경수를 한번 볼수는 없는건가요!!"
흐릿한 인영이 제 목소리를 들은건지 잠깐 멈춰서더니 뒤로 돌았다. 그리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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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분들 |
읽어주시는분들께 너무 감사하고 너무감사해요 댓글 읽을때마다 힘들어도 제가 조금이라도 사랑받는 기분들어서 행복해요. 여신님들 모두고맙고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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