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내일을 바라다 #01. 비교적 쉬운 수락이였다. 과연 받아줄까 꽤나 고민했던 우리 쪽의 고민을 무색하게 만들어줄 정도로 신속한 결정이었다. 이미지 하나면 그 뒤론 아무것도 없다는 연예계인데. 19살, 데뷔한지 3개월된 아이에겐 조금은 잔인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됐어! 이제 다 된거야!" "그래, 그쪽이 허락했다잖냐. 남은 일은 껌도 아닐걸?" "그러니까요. 우현씨! 어디 아파? 표정이 왜이래? 상대 맘에 안 들어?" "뭐, 아니요. 괜찮아요." 나 말고 그 애는 괜찮을까, 동성애 화보가. 심의는 당연하고, 거의 빨간 딱지를 각오할 정도로의 고수위 동성애 화보를, 견딜 수 있을까. 한 2년전 즈음에 1997년을 배경으로 남녀노소 할것 없이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가 있었다. 거기서 조연을 맡은 한 남자 아이돌이 남자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역할로 나온 적 있었는데, 그 후유증은 장난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성적 소수자인 팬이 늘어났던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고, 덕분에 그쪽이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었던걸 얼핏 들었었다. 근데 고작 19살인 신인이 같은 길을 걸으려 하고 있었다. 그래, 물론 제안한건 우리 쪽이 맞지만 내가 만약 그였다면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쉽게 승낙했을까. 단지 뜨고 싶어서? 어느 배우들과 달리 동양적이지만 섹시함을 머금은 얼굴, 그리고 신인치고 탄탄한 연기력으로 차세대 배우로 주목받고 소속사도 꽤 이름있는 곳인데, 굳이 이 위험한 화보까지 필요는 없었을 터인데. 혹시 취향이.. 뭐, 이미 연예계에선 알게 모르게 꽤 있다 하지만 한창 뜨고 있는 지금, 굳이 의혹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김성규, 19살, 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부탁해요 아빠'에서 엄친아 역할로 데뷔. 문득 그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그래봤자,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겠지만. #02. 승낙을 받은 후로 1주 반, 화보 촬영 당일 날이었다. 야외 촬영인지라 모든 스태프들은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나는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고, 그 아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었다. 이번 촬영은 그냥 어느 몇 페이지로 끝나는 동성애 포르노 화보가 아니였다. 몇십 페이지를 내 사진으로만 채울 개인 화보집인데 그냥 컨셉이 동성애였고, 상대역이 김성규일 뿐이었다. 그리고, 화보 주제는 동성애 버전으로 각색한 '보니 앤 클라이드'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리가 불편한 보니와 그의 연인인 클라이드가 함께 이곳 저곳 강도짓을 하며 떠돌아 다니다가 종국엔 경찰에 쫓기게 되고 비극을 맞는, 그런 로맨스였다. 그 실화를 최대한 호모섹슈얼하고 끈적하게 바꾸는 게 이번 화보였고. 게다가 조금 더 자극적이게, 그는 교복을 입고 난 정장을 입고. 그래서, 화보는 꽤나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한다고 들었다. 그 중, 오늘 촬영은 바닷가였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의 날씨는 여간 쌀쌀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일교차가 심한 터라 밤이 되기 전까지 촬영을 끝내야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중, 벤 한 대가 도착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김성규가, 온 것이다. 그는 학생인 티를 벗지 못한 순수한 모습으로 해맑게 웃으며, 모든 스태프들에게 방아깨비처럼 인사했다. 그런 성규에 모든 스태프들은 아빠 미소를 지었고, 그리고 그는 어느새 내 눈 앞에 왔다. "안녕하세요, 우현 선배님. 김성규입니다." 샐쭉 눈웃음을 지으며 내 이름을 담고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예쁜 바람에, 나도 모르게 웃으며 반가워요, 성규씨 라고 대답해버렸다. 정말로, 이때까지 봐왔던 수많은 여자 연예인들보다, 더 예뻤다. 김성규가 게이일수도 있겠다는 도대체 무슨 정신에서 나온 생각이었을까. 정작 본인이 문젠데. "자, 촬영 들어갈게요." 미리 메이크업을 받고 온 듯한 김성규가 의상을 갈아 입자마자 최 실장이 카메라를 들었다. 6년간 수없이 카메라 앞에 서서 화보는 물론, 드라마도 영화도 찍었던 나였는데, 이렇게 긴장감과 설레임을 느껴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서막은 이제 시작되었다. #03. 첫번째 씬은 간단했다. 해가 지고 있는 지금, 역광을 이용해 애절하게 키스하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번 화보가 수위가 있다해도, 보자마자 키스라니. 어쨌든 최실장의 사인이 떨어졌고, 우리 둘은 키스신을 찍어야 했다. 좀만 더 가면 발을 적실수 있을 듯한 거리의 모래사장 위, 두 사람이 섰다. 이내 두 사람은 눈을 맞추더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맞추었다. 좀 더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남자가 한 손으로 어린 남자의 허리를 손으로 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뒷목을 감쌌다. 그에 대응하듯이 어린 남자도 뒤꿈치를 더 높이 들어, 두 팔을 남자의 목에 감쌌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지 않게, 서로를 꽉 메꿀 수 있게. 우리는 떨어질 수 없어, 서로에게 주문을 걸 듯이. 강도짓을 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의지할 거라곤 서로밖에 없는, 그런 마음을 담아서. 우현은 성규에게 키스하면서 혀를 넣고 싶은 미칠듯한 충동을 느껴야만 했다. 특히, 성규가 제 목에 팔을 감을 때, 진심으로 촬영을 멈추고 싶었다. 하, 앞으로 더한것도 할텐데. "좋아요! 둘이 장난아닌데? 감정도 실려있고, 보기에도 좋고. 성규씨, 잘 했어요!" "흐, 감사합니다. 선배님이 잘 해주신 덕분이죠. 수고하셨습니다." "아, 성규씨도요." 좀 버거웠는지, 숨을 살짝씩 몰아 쉬며 입술에 묻은 타액을 훔치는 성규에 자꾸 시선이 갔다. 분명, 그는 비즈니스적인 마음으로 응했겠지. 어쩌면 난.. 아니, 이미 난 그에게 이미 마음을 내주고 있는 걸수도. #04. "다음 촬영은.. 스토리 라인 이미 읽으셨겠지만 성규씨가 총을 부여잡고, 우현씨 가슴에 갖다 대면 되요. 그러다 곧 눈물을 흘리며 무너지는, 그런 신이에요. 준비 됐어요?" 최실장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고, 김성규는 눈물이란 말에 조금 긴장되었는지 숨을 들이쉬며 네- 라고 대답했다. 이번엔, 눈물이 찍혀야 했으므로, 태양을 정면으로 찍을 수 없었다. 덕분에 촬영 장비를 옮기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냥 그 모습을 무료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저... 선배님." 그가 말을 걸어 왔다. 고개를 돌려 그를 보니 조금 멋쩍어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말씀 편하시게 하세요. 아까 계속 존댓말 하시길래..." "아, 그래. 그럼 너도 편하게 해." "네?" "딱딱하게 선배님 하지 말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우현이형, 이렇게."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적잖지 않게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붉어진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형. 이란 말과 함께. 참으로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05.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현실에, 그를 의지해도 되지 않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대로 같이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에 예전에 그에게서 받았던 총을 꺼냈다. 이내 입술을 꽉 깨물고 그의 가슴에 겨누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의 얼굴을 보자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게 또, 너의 손이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어, 너의 선택을 믿어, 라는 말을 해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내가 뭐라고, 평생을 약속해주고 죽음까지도 내 손에 맡겨주는지. 결국 총은 손에서 떨어졌고,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다리가 풀려 무너지자, 그의 손이 날 감싸왔다. 결국, 나도 그뿐인데. 이런 현실이라도 날 잡아주는 그의 손처럼 그만 있으면 못 견딜 것도 없는데. 몇분 되지 않는 촬영에, 그는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눈물을 흘려 주었다. 역시, 차세대 배우라더니. 최실장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이 그에게 박수를 쳐주었고, 그는 눈물을 눈꼬리에 달고서 헤헤- 웃었다. "잘했어. 바로 감정 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아니에요. 형 화보인데 열심히 해야죠." "근데.. 부담되지 않았어? 게이 화보인데 너 아직 신인이잖아. 게다가 야한건데," "어, 음, 그게, 가릴게 어딨어요! 신인이면 다 해야죠." 궁금했었던 질문을 하자, 그는 잠시 말을 더듬다 미심쩍은 대답을 했다. 뭐, 신인이면 열심히 해야하는 건 맞긴 하다만. "그럼... 형은 왜 게이 화보했어요?" "하라는데 어쩌겠냐. 이미지 변신이다 뭐다 하니까 이리로 오게 됐지." "형은.. 게이에 대한 혐오감 같은 거 없어요?" "글쎄다,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게이인 것 같아서 말이지, 라는 뒷말을 삼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아까 질문할 때 보다 한층 밝아진 표정이었다. 그 밝아진 표정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건 나였지만. 일단 간단하게 올릴게요~ 기존의 내일에게 내일을은.. 쓰지 않을게요.. 뭔가 저랑은 밝은 문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쓸 내용이 부담되는 것 같아서요ㅠㅠ 그래서 살짝만 바꿔서 다르게 쓰려합니다! 한 초중편이 될 것 같아요ㅎ 연재는 최대한 빠르게 쓰도록 노력할게요ㅋㅋㅋㅋ 헿 그리고 일부러 글의 전개를 위해 짧게 짧게 끊어서 가요ㅎ 그래서 한번 업뎃 할때마다 5~6화씩 올라갈것 같아요! 암호닉은 언제나 받아요~ [텍파 제작시 이름 넣어드려요ㅎ] p.s. 보니까 타그룹에 비슷한 소재가 있더라구요.. 킁ㅇ.. 어쩌죠? 비교 많이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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