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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부끄러운 거야, 숨기고 싶은 거야.” “아, 그게 아니라..” “콜 왔다.” 그렇게 재욱은 굳은 표정으로 휴게실에서 나갔고 난 한참을 멍하니 있다 역시나 울리는 콜에 응급실로 향했다. 사실 숨기는 거라기 보단 부끄러운 게 더 컸다. 온전하지 못 했던 우리 과거에 비해 현재 서로를 원하는 마음이 컸기에 그만큼 부끄러운 마음도 컸다. 어릴 때 하지 못 했던 것들을 지금은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또 혼잡한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재욱이를 수없이 많이 마주쳤고 바쁘다는 이유로, 그리고 지금 재욱이의 기분이 별로 좋지 못 하다는 이유로 우린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 못 했다고 하자, 그냥. 응급실이 많이 바빴으니까. 시간은 흘러 응급실도 한가해지는 시간이 찾아 왔고 차트를 확인하는 재욱이의 옆으로 갔다. 그를 툭툭 치며 밥 먹으러 가자고 했고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너는 그내식당으로 향하는 날 따라왔다. “...” “...” “숨기고 싶은 거 아니라 부끄러운 거..” “...?” “좋아 죽겠는데 왜 숨겨. 부끄러운 거라고.” “...” “왜 말이 없어?” “아깐 화났어, 잠깐. 혹시나 네가 나 싫어서 그러는 건가 싶어서.” “아니야, 그런 거..” “네가 나 싫어하는 거 싫어. 나 숨기려 하는 것도 싫고.” “...” “본과 때 그렇게 너 놓치고 이제야 내 옆에 두나 싶었는데 혹시나 네가 나 싫어서 그러는 걸까봐,” “...” “... 불안하다고.” 마음이 아팠다. 아프다고 하는 게 맞나. 아린 느낌이었다. 나한테 사랑을 준 재욱이와 그걸 버린 나, 그리고 지금까지 제 사랑을 내가 받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재욱이. 다 내 잘못인데 왜 아직까지 재욱이만 더 큰 상처로 자리 잡은 거 같은지 속상해서 마음이 너무 아렸다. 불안하다고 하는 너의 마지막 말에 아무 말 없이 재욱이의 볼을 가볍게 쓸어줬고 그 뜻은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었다. 걱정 말라고.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내 작은 대답이었다. 사실 밥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별로 먹지도 않았지만 작게나마 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서로에게 안심이 된 시간이었다. “윤아름 선생님!” “네, 윤쌤.” “ㅈ,지금 응급실에 정신과 치료 받다 오신 분이 난동을 피우셔서..”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빨리 가보셔야 될 거 같아요.” “네, 갈게요.” 어떻게 응급실은 조용할 날이 없는 건지. 근무 하면서 이런 난동은 또 처음이다. 불안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던 환자가 응급실로 내려왔고 카드에 있던 메스 하나를 쥐고 여기저기 휘두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응급실인 만큼 위급한 환자들도 많고 앞으로 들어오게 될 환자까지 시간이 지체 될 수록 여기 상황은 더 최악이 된다는 걸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해야했다. 가만히 그 사람이 진정 되길 바랄 수가 없었다. “... 환자분.” “...” “진정하시고 칼 내려 놓으세요, 위험해요.” 최대한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낮은 음성으로 말을 걸고, 그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으로 손바닥을 내보이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이나 환자들에게 휘두르지만 않았으면 했다. 다쳐도 내가 다치지. 불안하다. 사실 나도 다치기 싫다. 나 의산데 다치면 안 되는 거잖아. 얼른 병원 내 경호원분들이 오길 바랐다. 그치만 그 시간은 느리게만 갔고 칼을 내게 보이며 손을 달달 떠는 환자는 내 앞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무서울만 하지. 메스는 일반 칼 보다 날이 섬세해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깊게 베이는데. 근데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다가오는 칼을 그냥 잡아 들려고 했다. 휘두르지 못 하게 잡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겁도 많은데 겁이 많은 만큼 깡다구도 강하다. 모르겠다. 무식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오고 배워와서 그런건지 멍청한 건지 잡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칼날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에 의해 손목이 잡혀 그 환자로부터 멀어졌고 순식간에 경호원들에게 제압되어 칼을 되려 놓치는 환자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힘을 쓸수도 없게끔 막무가내로 누군가에게 끌려 갔고 손목에서 느껴지는 힘이 너무 쎄서 저절로 얼굴엔 인상이 씌어졌다. 뒷모습만 봐도, 아니 손목에 느껴지는 압만 봐도 날 끌고 가는 사람이 재욱이란 걸 알았고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처럼. 휴게실로 들어 와 문을 세게 닫은 재욱은 날 화난 얼굴로 보기 시작했고 입이 떨어지질 않는지 그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 “...” “... 하하.” “웃어?” (눈치) “웃음이 나와, 윤아름?” “... 나 괜찮은데. 보시다시피.” “제발, 멍청하게 굴지 좀 마.” “...” “제발, 사람 돌게 만들지 좀 마.” “...” “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 말을 하다 끝내 잇지 못 하고 다가와 나를 품에 안는 재욱이었다. 사실 나도 방금 전 일이 마치 꿈 같다. 그런 생각을 왜 했는지 판단이 그렇게 안 섰는지. 내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지금은. 화가 났다기 보단 불안해 했던 너였기에 너를 꼭 안았다. 이것도 괜찮다는 무언의 뜻이었다. 네 등을 두어번 쓸어 내다 안고 있던 팔을 떼고 널 바라봤다. 널 풀어주기 위해 웃는 얼굴로 널 올려다 보며 장난을 건넸다. “누가보면 나 또 쓰러진 줄 알겠어?” “장난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윤아름.” “미안해.” “나 진짜 불안했어.” “알아서 더 미안해.” “...” “...” “나 좀 사랑해줘, 아름아.” “사랑하고 있어.” “나 사랑해?” “응.” “그럼 다치지 마. 아프지도 말고.” “알겠어.” “나 진짜 미치겠어. 너 그러는 거 보면.” (쪽) “... 뭐야?” “사과의 의미로. 받아 줄 거지?” 처음으로 재욱이한테 먼저 한 뽀뽀였다. 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걸로 인해 지금 네 불안한 마음이 풀린다면 몇 번이고 더 해줄 수 있는 마음이었다. 응급실은 빠른 시간 안에 정리 됐고 오늘은 너와 나 둘 다 정시 퇴근하는 날이라 옷을 갈아입고 바로 주차장에서 만났다. 자연스레 네 차 조수석으로 올라 탔고 난 올라 타자 마자 네비에 내 집 주소를 쳤다.
“뭐야?” “같이 자자.” “..ㅁ, 뭐?” “잠만. 누가 뭐 하재?” 당황한 널 보며 웃다 이내 시선을 창문으로 돌렸고 그런 날 멍하니 보다 출발하는 너였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네게도 큰 후드티 하나와 큰 츄리닝 바지 하나를 줬다. 먼저 갈아 입고 나왔는지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 너였고, 그런 너를 보자마자 네 무릎 위로 올라가 앉았다.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게끔. 그리고 네 몸에 기대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네 등 뒤로 손을 감싸 안았다. 너는 그런 내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고 나머지 한 손으로 머리를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나 사실 아까 무서웠어.” “근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모르겠어. 잡으면 끝이라고 생각 했는데,” “...”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바보 같아. 의사 어떻게 됐는데. 그런 위험한 선택을..” “다음부턴 나서지 마. 나라도 불러, 제발.” “차라리 정쌤을 부르지.” “...” “너 다치는 거 나도 못 봐.” 재욱의 가슴팍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재욱이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서. 대학교 때도 이렇게 하나하나 자세히 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컸다고 선이 더 굵어져 남자다워진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을 재욱이 얼굴을 보다 자연스레 손으로 재욱이 얼굴을 감싸 쓰다듬기 시작했다. 눈도 만져보고 코도 만져보고 입술도 만져봤다. 내 손은 재욱이 입술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고 몇 번을 더 쓰다듬다 말랑한 네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대었다. 말랑한 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고 벌어지는 네 입술 사이로 장난스레 혀를 넣어 네 입천장을 슬쩍 건들였다. 처음으로 재욱이한테 먼저 한 키스였다. -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변명이나 핑계도 감히 못 대요 그냥 현생에 치였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