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파는 처음인데요
w.1억
"이제 진짜 그만해요. 그만."
우도환을 피해 그냥 도망쳤다. 아무곳이나 도착해서 공원 벤치에 앉아있기는 한데.. 뭐 이렇게 후련하지만은 않은지.
앉아서 한참을 있다가 뒤늦게 떠올랐다.
"…아."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들렀다가 가야 될 것 같아]
장기용한테 카톡이 와 있었고,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방금같은 상황이 있고 얼마지나지않아서 장기용을 만났다면 정말 미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젠간 정말 언젠간 장기용도 알게 될 건데.. 내가 이렇게 뻔뻔하게 계속 장기용을 만나도 되는 걸까.
시간이 지날 수록 계속 죄책감이 커졌고, 한숨은 늘어갔다.
집에 와서 잠이 들었을까, 장기용에게서 오는 전화에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여.."
- 잤어?
"어..네엡.."
- 피곤했나보네 ㅎㅎ 더 자.
"네에?? 어딘데요 선배???"
- 잠깐 너 보려고 나왔다가.
"아, 볼래요! 선배 볼래요...! 오늘 조금밖에 못 봤잖아요.."
- 그럼 5분 뒤에 집 앞으로 나와. 추우니까 따듯하게 입고 나오고.
"네..!"
5분도 안 돼서 나왔는데도 벌써 도착한 장기용은 차에 팔짱을 낀 채로 기대어 서서 나를 바라본다.
나를 보자마자 웃는데.. 어떻게 따라서 안 웃을 수가 있나. 따라 웃으며 손을 흔드니, 장기용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예요.. 5분 뒤에 나오라며..."
"준비할 시간은 있어야 되잖아."
"에이이...근데.."
조금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표정과 목소리가 좋지 않아서 멈칫하고 바라보면, 장기용이 응? 하고 나를 내려다본다.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그래? 피곤해서 그런가.. 요즘 잠을 별로 못 자서."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왜요오..."
"아버지가 아프셔. 그래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느라고.."
"아버지가 아프시다구요..? 근데 왜 말 안 했어요오..ㅠㅠㅠ.....어디가...어디가 아프신데요..? 괜찮으신 거예요?"
"괜찮아 걱정 하지 마. 근데 너 밥은?"
"아!... 먹었어요! 엄마랑 둘이서!! 선배는요? 먹었어요?"
"나도. 방금 먹고 왔어."
"내일은! 꼭 같이 먹어요! 어때요?"
"그래, 그러자."
"ㅎㅎㅎㅎ.."
"……."
"왜요.....?"
"응?"
"왜 그렇게 뚫어져라 봐요...?"
"…그냥."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차에 들어가서 얘기할까? 안 추워?"
"아, 네! 들어가요! 추워요...!"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눈치가 보였지만.. 그래도 가족 일 때문이라면 나라도 기운 차려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겠단 생각에 계속 웃으면, 장기용도 나를 보며 웃는다.
"장기용."
"……."
"장기용 안 왔어??"
장기용이.. 결석했다. 그것도 말도 없이..
"졸업반에 결석이 웬말이냐.. 선배는 왜 안 나온 거야?"
왜 안 나왔냐는 말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몰라- 하고 대충 말하면 가영이가 '여친인데 그것도 모르냐..'하며 고갤 저었고.. 나는 턱을 괸 채로 정면을 보다가 우도환을 보았다.
어제 일이 떠올라서 괜히 나도 모르게 째려보고 있으면, 우도환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마치 저 표정은 '왜 그따구로 쳐다봐' 이거였다.
"……."
학교가 끝나서는 갈 길 잃은 강아지마냥 일어서지도 못 하고 앉아서 핸드폰만 보고 있으니, 가영이랑 진구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며 내 팔을 잡는다.
전화가 오기에 급히 애들에게 놓으라고 소리치고선 화면을 보자, 장기용에게서 오는 전화다.
고작 아침에서부터 지금까지 연락이 안 된 것 뿐인데.. 이런 적이 없어서일까.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선배!!"
- 미안해. 정신이 없어서 핸드폰 확인을 못 했어.
"무슨 일 있었어요..?"
- 병원에 있느라고.. 미안해. 오늘 저녁에 못 만나겠다.
"괜찮아요!... 선배 괜찮은 거 맞죠?"
- 괜찮아.
"……."
- 걱정 하지 마. 알겠지?
장기용이 내게 걱정을 하지 말랜다. 걱정을 시키면서 말이다.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나는 고갤 끄덕였고, 장기용은 급히 전화를 끊었다.
"뭐냐?? 설마 이별통보?"
"미친놈아. 이별통보 한다고 학교도 안 나오냐?"
"솔로가 최고다 이지?"
진구의 말에 난 그냥 무시를 하고서 강의실에서 나왔고.. 우도환이 강의실 앞에서 팔짱을 낀 채로 서있는 것이다.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못 본 척 지나치려고 하면, 우도환이 내게 말한다.
"장기용이랑 싸웠냐?"
"아니거든요."
"농담인데 뭘 그렇게 인상을 써?"
"재미 없거든요."
"어제 일."
"에?"
"그래. 우리 하던 건 관두자."
"……."
"그대신 그것만 관두는 거야."
"에?????"
우도환은 내 말을 들을 생각 조차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관둔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확하게.. 아주 정확하게 말이다. 이제 나에게 섹파란 없다. 섹파 우도환이란 없다. 다행인 건 맞지만.. 이제 그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가 문제였다.
기용이 책상에 앉아서 한참을 멍만 때린다. 불도 키지도 않고 한참 있던 기용은..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비밀번호 치는 소리에 그제서야 시선을 돌린다.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도환 뿐이다. 도환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너무 어둡다며 불부터 켰고, 방 안에 들어와 불을 킨 도환은 기용이 있자 놀란 듯 심장부근에 손을 댄 채로 말한다.
"야..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왜 이렇게 무섭냐."
"……."
"뭐야.. 안주 없이 웬 맥주."
"그냥."
"요즘 병원 왔다갔다 하느라 정신 없지? 밥은 먹었냐?"
"먹었지. 시간이 몇신데.."
"나가서 맥주 한잔씩 하고 올까? 집에서 이러기엔 오늘 날씨 너무 좋던데."
"아니. 그냥 집에서 마시다가 자려고."
"…그래?"
"……."
"근데 결석하면 어떡하냐.. 4학년에 결석은 좀 그렇지않냐."
"뭔 상관이냐, 미친놈아."
"저녁 잘못 먹었냐..."
"……."
"야, 어디 가???"
"맥주 사러."
"뭐야.. 같이 가."
기용이 평소와 다를 건 없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많이 다운이 되어 있기에, 도환도 눈치는 보고 있다.
기용이 '같이 가던가'하고 웃으면 도환이 따라 웃으며 먼저 앞장 서서 신발을 신고 나간다.
도환이 앞장서서 걸으며 핸드폰만 하고 있자, 기용은 도환보다 조금 느리게 걷다가도 우뚝- 멈춰선다.
도환은 기용의 발소리가 들리지않자 뒤돌아보았다가.. 기용이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똑같이 멈춰서서 기용을 바라본다.
그럼 기용이 한참을 도환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입을 연다.
"너 지랑 섹파야?"
너무 돌직구로 물어보는 기용에, 도환이 잠시 놀란 듯 했다.
꽤나 많이 놀랐지만 표정에서는 티가 나지 않았다. 도환이 아무 대답도 않고 기용을 바라보자.. 기용이 대신해서 입을 연다.
"어제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모텔 앞에서 둘이 얘기 하는 거 들었거든."
"……."
"지한테 물어보기는 싫어서, 너한테 먼저 묻는 거야."
"……."
"섹파야?"
"……."
도환은 여전히 말이 없다. 기용은 여전히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신에게 화라고는 한 번도 낸 적 없는 기용이 지금 상황에서도 표정이 좋자 더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더 말을 하기가 힘이 든 거일 지도 모르다.
"어."
도환이 짧게 대답했고, 기용은 이제서야 조금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티는 나지 않았지만.
"너랑 이지랑 알기도 전에 섹파였어. 술 마시다가 만났거든,"
"……."
"이지가 그만하자고 했고, 나는 이지 놀리고싶어서 싫다고 했고. 이지는 너한테 죄책감 느낀다고도 했어."
"……."
"근데."
"……."
"나도 너한테 죄책감 들고 미안한데."
"……."
"나도 이지 좋아해."
"…무슨 소리야 그게?"
"나도 이지 좋아한다고."
"……."
"그래서 너랑 사귀고 있는 거 알면서도 내가 이지한테 계속 들이댔었어."
"말이 안 되잖아."
"……."
"네 친구 여자친구를 좋아한다고? 근데 그걸.. 나한테 직접 얘기하는 이유가 뭐야."
"그럼 내 친구가 내 섹파랑 사귀는 건 말이 되냐?"
"…미친새끼야 넌."
"상식적으로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그냥 이지랑 헤어지라고. 애초에.. 나랑 이지랑 섹파였던 거 안 이상.. 네가 이지랑 계속 만나는 것도 웃기잖아. 안 그래?"
"지금 네가 나한테 했던 말들이 더 웃긴 거 모르냐?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상황이 그랬다, 말 못 해서 미안하다.. 그게 그렇게 어려워? 왜 너는 나한테 더 상처를 주는 건데."
"나랑 섹파였던 거 알면서도 만나면 그럼 네가 호구가 되니까."
"날 위해서라고 하지 마."
"……."
"넌.."
"……."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긴 했냐?"
"앞으로 네가 날 안 보고 살 것 같아서 하는 소린데. 너."
"……."
"앞으로 이지 보면 내 생각 먼저 날 텐데. 계속 사귈 수 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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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짧아라...
그런 의미로.. 내일 오겠다. 오바.
헤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