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Fucking thirst
"Even though death took away your sweet breath, it could not take away your beauty."
죽음이 당신의 달콤한 숨결을 빼앗아갔을망정
그대의 아름다움은 빼앗아가지 못했군요.
구준회의 낭만적인 대사와 이내 울려 퍼지는 노래로 연극이 마무리 되었고, 막이 내리자마자 딜런이 환호성을 지르며 멋진 연극이었다고 평가했다. 눈치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는 딜런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바비와 김한빈의 시선이 벌떡 일어나 쿵쾅쿵쾅 발을 구르며 무대 뒤쪽으로 향하는 클로이에게로 쏠린 것은 순간이었다. 잔뜩 당황해서 클로이에게 어딜 가는거냐며 묻자 클로이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보면 몰라? 대기실이지 어디긴 어디야. 바비와 김한빈이 어물쩡 하고 있는 사이, 딜런은 대기실이란 말에 고개를 홱 돌리고 사라져 가는 클로이의 뒷모습을 멀건히 좇다가 뭔가에 홀린 듯 벌떡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딜런, 넌 어디가는거야? 하고 묻자 딜런이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오, 클로이가 무슨 일을 벌일 지 궁금해서 말야.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김한빈이 곧바로 쏘아붙였다.
"Liar."
"Fuck it."
보나마나 연극부 대기실에서 여자애들 옷갈아입는거 보러 가는 거겠지 뭐. 정곡을 찔린 듯 딜런이 키들키들 웃으며 다시 답했다. 씨발. 연기한건데 또 들켰군. 난 연기 쪽으로는 가망이 없나봐. 그러자 이번엔 바비가 덧붙였다. 과연 가망이 없는게 연기뿐일까? 딜런은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려 바비와 김한빈에게 날려주곤 기대에 가득찬 표정으로 날아가듯 휘적휘적 빠르게 클로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알잖아. 구준회가 늘 저런 식인거."
바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버적버적 얼어붙은 날 슬핏 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난 잠시간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곤 빠르게 사라진 딜런과 클로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불쌍한 제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군."
내 뒷모습을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며 바비와 김한빈이 동시에 내뱉은 말이었다.
*
"Chloe, hey! stop it! Oh, Jesus."
잠깐 멈춰보라는 내 부름에도 클로이는 성큼성큼 그 긴 다리를 휘저어 대기실 안 저 깊숙한 곳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그 뒤를 쫓는 딜런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대기실 안의 구조를 스캔하는 듯 했다. 딜런이 클로이가 어디로 사라진지 모르겠다며 눈에 들어오는 문을 아무렇게나 벌컥 열어제끼자 공교롭게도 그 곳이 탈의실이었는지 헐벗은 여자애들이 마구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딜런이 오, 미안. 하고 중얼거린 뒤에도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인지 비명소리는 멈추질 않았고, 나는 클로이가 들어간 걸로 보이는 무대 바로 뒤쪽의 출연자 대기실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What the hell is going on?"
무슨 짓거리들이야? 약약한 열기를 품은 클로이의 목소리가 귀를 쟁쟁하게 파고들었다. 눈 앞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파르르 떨리고 있는 클로이의 야트막한 어깨가 보였고, 그 뒤로는 진한 키스라도 나눈 건지 에스더의 립스틱이 번져 입술이 붉게 물든 구준회와, 그런 구준회의 품에 안겨 있는 에스더가 보였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미간을 잔뜩 어그러뜨리며 상황파악을 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구준회가 눈썹을 으쓱이며 대답했다.
"The simple act of performance, sweetie."
뭐하는 짓거리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클로이가 묻자 구준회가 공연의 일부일 뿐이라고 가볍게 대답했다. 클로이가 분노에 겨워하며 있는대로 욕을 지껄였다. 너 진짜 씨발놈이다, 준. 역겨운 새끼! 그러자 구준회의 품에 안겨있다시피 해 있던 에스더가 얄밉게 코를 찡긋거리며 답했다.
"Well, Chloe. I'm just wondering why you're overreacting like this."
"Overreacting? Right in my face, you whore?"
음. 클로이. 네가 이렇게 과민반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에스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과민반응? 내 면전에서 그래놓고, 이 걸레 같은 년아! 클로이가 핏대까지 세우며 욕으로 점철된 문장들을 줄세워 대답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뒤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와중에 다시 에스더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 편집증적인 태도는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어. 너 치료가 필요한 거일지도 몰라. 내가 아시는 분이 심리학자니까 어쩌면 너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신랄하게 말을 잇는 에스더를 기가 차다는 듯 잠시간 노려보던 클로이는 이내 거세게 에스더의 뺨을 후려갈겼다. 철썩! 하고 큰 소리가 대기실 안을 크게 울렸다. 와우. 구준회가 한 쪽 눈썹을 꿈틀대며 클로이의 다부진 손길에 감탄했다. 내가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자왕 하는 사이 에스더가 비명소리를 내며 휘청거리더니 이내 클로이에게 면전을 들이밀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I'll kill you, you fucking flat-chested cock sucking spastic horse-fucker!!"
길길이 날뛰며 쟁쟁한 목소리로 마구잡이의 상스러운 욕을 뱉어내는 에스더에 머리까지 띵할 지경이었다. 가슴은 껌딱지에 좆이나 빠는 걸레년, 따위의 저급한 단어들을 줄줄이 나열한 문장이 고막에 그대로 콱콱 박혀왔다.
"Woah, good swearing."
욕 한번 콤보로 잘도 나오네. 구준회가 웃음을 참는 듯 입꼬리를 씰룩이며 또다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We're over."
"Later, sweetie."
클로이가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싸늘하게 식어빠진 말투로 구준회에게 이별을 고한 뒤 미련없이 자리를 떴고, 구준회는 태연하게 인사를 받으며 이따 보자고 대답했다. 대기실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 클로이 덕에 귓가가 왱왱 울렸다. 구준회가 에스더에게 잠시 제이와 둘만 있게 해줄래? 하고 묻자 에스더가 새침하게 대답했다. 그래. 난 병원에 가봐야겠어. 에스더는 주섬주섬 옷 매무새를 정리하곤 발을 구르면서 대기실을 나가버렸다.
"See, told you it'd be worth coming for."
봤지? 올 가치가 있댔잖아. 에스더가 대기실을 빠져나가자 구준회가 흐트러진 제 옷 매무새를 슥슥 정리하며 말했다. 몸을 틀어 조명이 쨍하게 빛나는 대기실의 거울로 제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던 구준회는 포마드로 넘겨진 머리를 두어번 만지작대더니 가볍게 인상을 쓰고 제 입술에 묻어 있는, 에스더의 것이 분명한 립스틱 자국을 휴지로 슥슥 문질러 지워냈다.
"You did that on purpose."
일부러 그런거구나.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하자 구준회가 당연한 것을 왜 언급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다 필요가 있으니까 그랬지. 여전히 느긋하고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맹수같은 눈이 대기실 거울의 조명을 받아 일순 산란하게 번쩍거렸다. 뭐라고? 하고 되묻자 구준회가 답답하다는 듯이 조금은 또박또박한 어투로 발음하며 답했다.
"Life throws up so few opportunities."
인생에 기회란 게 얼마나 적게 찾아오는 지 알아? 발랄하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내리 꽂았다.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자 구준회가 다시 대답했다. 클로이를 따라가. 나는 경악에 가득 찬 채 고개를 저었다.
"But she's your girlfriend!"
"Who you love."
"What?"
클로이는 네 여자친구잖아! 하고 대답하니 구준회가 아무렇지 않게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니가 사랑하는 여자이기도 하지. 내가 황당한 얼굴로 되묻자 구준회가 신랄하게 말을 덧붙였다.
"Change. It's wonderful thing."
변화는 멋진거야. 너 아원입자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알아? 기회, 혼돈, 우연을 따르지. 우주 어딘가에서 서로 부딪힌 다음에 꽝! 하고 에너지가 생성된다고. 이거랑 똑같아. 구준회가 여느 때처럼 그 빨려들어갈 것 같은 눈을 빛내며 유창하게 말을 이었다. 묘하게 즐겁고 흥미로워 보이는 미소가 구준회의 입가에 감돌고 있었다. 구준회가 찬찬히 여유로운 걸음을 옮겨 내 바로 앞에 섰다. 고개를 살짝 틀어 내 눈 속을 살피며 구준회가 예의 그 낮고, 거칠고, 도색적이기까지 한 목소리를 잇새로 속살거리듯 내뱉었다.
"That's the great thing about the universe. Unpredictable."
그게 우주가 멋진 이유지. 예측불가거든.
구준회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을 때 으레 나오는, 한 쪽 입꼬리를 비스름하게 끌어올려 웃는 낯이 눈가로 한가득 고였다. 구준회의 얼굴이 맞닿을 듯 가까이 다가왔다. 구준회의 암녹색과 회청색이 묘하게 섞여들어간 홍채로 어른어른한 물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한 환상이 일었다. 그 위로 자리한 촘촘한 속눈썹이 나비같이 팔랑였다. 지독하게 심미적인 장식물 같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느리게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날카롭고 번뜩이는 동공이 깜빡임조차 없이 나를 정적으로 몰아 넣었다. 머리가 핑글 돌았다. 뭔가에 홀린 듯한 느낌에 덜컥 겁이 나 걸음을 뒤로 물리려는데 구준회가 왼손을 뻗어 내 뺨을 가볍게 붙잡고 느리게 속삭였다.
"That's why it's so much fun."
그래서 재밌는 거야. 구준회의 번들거리는 망막에 반사된 내 모습이 보였다.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느릿한 구준회의 목소리가 주문이라도 외는 것 같이 몽연했다. 속이 메슥거렸다. 어쩐지 목구멍에 생선 가시라도 걸린 듯 콱콱해져서 나는 목울대를 일렁이며 침을 꿀꺽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숨이 턱 막혔다. 입술을 벙싯거렸다. 나도 모르게 두어 걸음 정도를 뒷걸음질치며 뺨을 가볍게 움켜쥔 구준회의 손을 털어냈다.
"Remember. Bang!"
기억해. 꽝!
두 손으로 펑, 터지는 듯한 리액션을 구현해 낸 구준회가 어린아이들을 놀래킬 때 내는 소리를 내며 내게 말했다. 움찔, 놀라는 내 표정이 재밌는 건지 구준회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하며 작게 웃었다.
"…아냐. 네가 잘못 짚었어."
겨우겨우 목구멍을 비집고 주춤거리는 목소리가 기어나왔다. 나는 쫓기는 짐승의 그것처럼 붉게 충혈된 눈을 겨우겨우 끔뻑일 뿐이었다.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덫이었다.
"난 클로이를 사랑하지 않아. 걘 내 친구일 뿐이야."
그리고 그건 내가 구준회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명이었다.
거짓말. 구준회가 작게 속삭였다.
"나는 눈을 읽어."
"무슨…"
"특히 네 눈을 자주 읽어."
물기를 머금은 희뜩한 눈자위가 나를 집어 삼켰다. 그르렁거리는 숨결이 내 콧대 위에서 으스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담배 냄새와 미묘하게 뒤섞인 구준회 특유의 짙은 체취가 훅 끼쳤다. 맹수 앞에 놓여진 초식 동물처럼 속 깊은 곳이 파드득 경련했다. 시선이 닿는 궤도마다 낱낱이 열기로 화끈거렸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자주 숨이 막히지."
새하얀 암전. 사정없이 진득한 시선이 은밀하게 후두엽 어딘가를 뭉근히 짓이겼다. 숨이 잠시 멈췄다. 진득한 간극.
"나는 그 눈을 잘 알아."
아, 질식할 것 같아.
"누군가를 사랑하는 눈 말이야."
나는 끝내 도망쳤다.
*
클로이는 블루스가 조용하게 흘러 나오는 근처의 작은 술집에서 청승맞게 울고 있던 중이었다. 클로이에게 어디냐며 기를 쓰고 추궁한 끝에 그녀가 위치한 술집을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클로이를 찾아 헤매는 걸음 걸음마다 구준회가 쏟아냈던 수많은, 악랄하고 짖궂은 질문들이 머릿 속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않고 뱅뱅 돌았다. 망막에 구준회의 나른한 조소를 띈 얼굴이 달라붙기라도 한 듯 그 잔상이 자꾸만 눈 앞을 떠다녔다. 속이 탔다.
"Oh, J. I'm so lonely…."
클로이에게는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아 자꾸만 구강 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엷게 들썩이는 클로이의 어깨를 토닥이자니 그녀가 바들바들 떨리는 울음과 함께 입을 뗐다. 난 준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외로워…. 제이,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어쩐지 클로이가 겪고 있는 패러독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심스레 그녀의 등을 쓸어주며 내가 답했다.
"I am here for you."
그런 말을 꺼내면서도 속으로는 구준회의 반듯한 얼굴과, 찬란하게 번쩍이는 형형한 눈매를 그리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You and Jun are different people."
너랑 준은 다른 사람이야. 클로이가 훌쩍이다 말고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눈을 치켜뜬 채 뭐? 하고 되물을 뿐이었다. 클로이가 다시 입을 뗐다. 넌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이렇게 곁에 있어줄 줄도 알잖아. 준은 달라. 준은 나를 외롭게 만들어. 같이 있으면 언제나 불안하고 무섭지. 언제 또 어떤 식으로 나를 힘들고 괴롭게 만들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하게 된다는 거야.
"So maybe…, we just can…,"
클로이가 말을 하다 말고 일순 고개를 돌려 내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클로이의 눈물만큼 뜨거운 숨결이 코 끝으로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아마 그녀는 구준회 때문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사고를 나로 인해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도 몰랐다. 클로이가 필요로 한 것은 구준회가 아닌 아무나의 따뜻하고,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일것이다. 이건 옳지 못하다고 말을 하기도 전에 묘한 기류에 잠식당한 채 멀뚱히 눈만 껌뻑이는 내 뒷목을 클로이의 두 손이 감쌌고, 그리고 서서히 그녀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머릿속이 온통 엉망이었다.
일각에 클로이의 물컹한 입술이 내 입술에 느릿하게 맞닿았다. 웃기게도 그것이 내 첫키스였다. 키스할 때는 귓가에서 종이 울리고 좋은 향기가 난다고들 하던데. 우습게도 내가 느낄 수 있던 거라곤 조금은 불쾌한, 그녀가 바른 립글로즈의 퍽퍽한 향과 찐득한 촉감과 뜨뜻한 온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정말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Chlo. I've been a bit silly, haven't I?"
클로이. 내가 바보처럼 굴었어.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클로이와 내 뒤 쪽에서부터 지독하게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제서야 섬광같은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터져나왔다. 스파크처럼 강렬한 어떤 것이었다. 뺨을 내리치듯 눈 앞이 점등했다. 온 몸의 솜털이 찌르르 울리며 곤두섰다. 메마른 입술의 표피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몸이, 전신을 감싸고 있던 혈관과, 근육과, 피붓결이,
"Please come back, Chloe. You love me, right?"
빌어먹게도 저 거칠게 갈려 툭툭 끊기는 음절 음절마다 아찔하게 전율하고 있었다.
돌아와줘, 클로이. 넌 나를 사랑하잖아. 맞지? 구준회는 예의 그 특유의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내게서 잠시 입술을 뗀 클로이의 어깨를 붙잡고 커다랗고 단단한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 쥐었다. 클로이의 검푸른 동공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구준회가 거칠 것 없이 고개를 살짝 외틀어 클로이에게 키스하자 클로이가 잠시 인상을 쓰더니 이내 구준회의 사과를 받아주기로 한 듯 그 애의 날렵한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열렬히 혀를 섞기 시작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구준회의 앞에만 서면 온 몸이 빳빳하게 굳고, 씹어 먹히기라도 할까 겁이 났었다. 가혹할 정도로 속 어딘가 깊은 곳이 바드득 떨려왔었다. 그치만, 도대체 왜?
"내가 맞았지? 넌 그녀를 사랑해."
물음에 대한 답이 갓 낚은 생선처럼 모든 상념을 제치고 머릿속에서 거세게 퍼드덕거렸다.
나는 눈을 읽는다니까, 제이. 눈을 감고 키스에 열중한 클로이에게서 잠시 입술을 떼내고 가늘게 치켜뜬 눈으로 구준회가 내게 속삭였다. 시선이 흥건했다. 나는 주춤주춤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틀렸어. 이건 그녀 때문이 아냐. 그러자 구준회가 도저히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느긋한 낯이 일순간 당황스러움으로 슬핏 어그러졌다. 당혹감이 울겅울겅 고인 구준회의 눈빛이 오롯히 내게로 화살촉을 겨눴다. 속이 울컥 뭉그러진다. 목구멍이 퍽퍽하게 막혀왔다. 갈증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어딘지 울고 싶어졌다.
*
염색약 냄새가 코를 마비시키기라도 할 듯 독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에 틀어박혀 구준회가 내게 장난처럼 건넸던 염색약으로 머리를 물들였다. 지독한 냄새가 방 안을 빠져나가지 않고 뱅글뱅글 돌았다. 자극적인 냄새 때문인지 눈머리가 시큰거렸다. 샛노란 빛으로 고르게 염색된 머리를 하고 거울 앞에 서자 따끔거리는 감각 때문인지 혹은 극명하게 느껴지는 현실의 양감 때문인지 눈물이 주춤주춤 솟았다.
나는 문득 너를 덕지덕지 온 몸에 바르고 싶어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가 이미 완연하고, 느리고, 완벽하게
"젠장…."
너에게 잡아 먹혀 있었음을.
*
"사랑에 빠진 눈을." > "누군가를 사랑하는 눈 말이야."
글 속의 준회 대사를 수정할게요ㅜㅜ..
가끔 독방에 들리는데 오늘 글잡에 글 올리고 심해 텍본 메일링 해드리러 독방 들렀다가 중간에 짐승연가 ? 그 대사랑 비슷하다는 언급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ㅠㅠㅠ
제가 봐도 너무 비슷해서 넘나 당혹스러운것... 사실 네독 구상을 하던 초기부터 이 장면과 대사를 생각해왔던 터라 대사가 겹칠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었는데 읽어보니까 너무 비슷하더라구요.. 글썽.... 너무 당황스럽네요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원래 다른 분들 글은 진짜 한두개? 말곤 읽어본적이 없어서 짐승연가도 물론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대사만 딱 놓고 보니 너무 겹치더라구요
모자란 필력으로 피해 드리는 것도 죄송한데 다른 글과 대사까지 비슷하다니... 충격쓰.... (절필을 결심한다)
아무튼 제 대사에서 다른 글이 생각났다는 건 (그것도 글을 쓴 시기가 제가 더 늦었으니) 제 과오가 확실하게 맞으니 대사를 수정하도록 할게요.
저걸로 해결이 될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또다시 글을 읽다가 또다시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의견을 수렴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ㅜㅜ
불편을 드려 죄송해요 T▽T
쭈구리 같은 글을 읽어주시고 피드백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8ㅅ8
그리고 홈에 글을 올리면 글잡에도 글을 올릴 예정이니 트래픽이 초과되어도 글잡으로 오시면 제가 있을 거에요!
항상 응원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닷...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