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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찬열 x 주인닮은 강아지 백현
분명 넓지는 않다. 하지만 좁지도 않은 원룸에서 다간 여름에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옆에 나란히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있는 찬열과 그의 반려동물 혀니.
"백현아. 개로있으면 힘들지않냐?"
"......"
"그냥 편하게 있어."
만화였다면 '뿅!'하는 효과음이 들렸겠지만 소리없이 사람처럼 변한 혀니. 백현은 찬열의 품을 파고들며 졸리다고 칭얼댄다. 아무리 귀차니즘이 심하다고해도 백현을 이길 재간은 없는지 웃으며 백현을 끌어안는다.
***
찬열은 백현과 동거생활을 한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지난여름 비가 하늘에 구멍이 난건지 억수로 쏟아지던 날에 집으로 귀가하던 찬열의 눈에 들어온건 집 앞에 다 젖은 상자안에서 부들부들 떨고있던 강아지 한 마리. 매사에 무관심하던 찬열이라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고했다. 유리문을 열고 계단을 세칸정도 올랐을때, 찬열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다 뒤돌아 내려가서 강아지를 데리고 올라갔다. 집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서랍에서 수건 두어장을 꺼내 몸을 감싸주었다. 답답한듯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강아지에게 너 이렇게 안하면 감기걸려서 죽어. 가만히 있어라. 오빠가 지금 생각하는중이야. 말을 알아들은건지 가만히 찬열의 품에 안겨있는 하얀 강아지였다. 찬열은 조그맣게 웃음이 터졌고, 이내 핸드폰을 꺼내 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찬뇰. 모에요?'
"아. 레이형. 저 제가 강아지를 주웠거든요. 근데 비 많이 맞았는데 어쩌죠?"
'병원가요.'
"그 대답 들으려고 전화한게 아닌걸 누구보다 잘 알고 이쓸튼드..."
'미안해요. 내가 가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폐인처럼 게임을 하다가 아이템을 들고 튄 사람이 수의사일줄은... 그것도 집 주변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일 할줄은... 그 인연을 계기로 둘이 합심해서 퀘스트를 완료해서 얻은 이득은 상상을 초월한다. 찬열은 내심 뿌듯해하며 안겨있는 강아지를 바라봤다.
"오빠가 감기 안걸리게해줄게."
"......"
"근데 너 주인 없나보다. 목걸이도 없네."
"......"
"그럼... 그냥 같이 살자."
"낑..."
"싫어? 그래도 별 수 없어. 내가 데리고 온 순간 넌 이미 나의 반려동물이 된거야."
"......"
"이름은 뭘로하지..."
"......"
이름을 무엇으로 지어야 잘 살까. 오래살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지끈거릴즈음 레이가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며 현관문을 두드렸다.
"와쏘요."
"알아요."
"오디이써요?"
수건에 둘둘말려 품에안긴 강아지를 보고 레이는 이렇게 해놓을걸 예상한듯 바리바리 들고온 짐을 풀렀다.
"요고눈 샴푸."
"주는거에요?"
"사이죠."
장사하기 참 쉽다 레이야. 그치? 물주하나만 잡으면 되니까. 돈없는 자취생의 지갑에서 코뭍은돈을 다 뜯은 레이는 본격적으로 강아지를 욕실로 데려가 씻기고 털을 말려주고 밥을 해줬다.
"몽몽이 애기에요."
"아..."
"캄귀 골리묘 주글수도 이쒀."
"위험할 뻔 했네."
"응. 다움에 또 부러요."
"형."
"응?"
"저 아직 강아지 잘 모르는데 내일아침까지만 같이 있어주면 안되려나..."
"......"
"젠장."
"왜 욕해!"
"형 방금 표정이 내일아침까지 있으면 너가 뭘 해줄건데 표정이잖아."
"찬뇰."
"왜요."
"오또케 아라써? 나 바빠. 바이 사요나라."
"중국인이 일본말 쓰고 지랄이야"
"나 지짜 강꺼야."
"아 미안해요. 내일까지 있어주면 밥 사줄게요."
"딜? 옵션 쏘주."
"...콜"
내일 레이형에게 밥이랑 옵션으로 술을 산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레이형은 신발을 벗고 집에 다시 들어왔다.
"찬뇰."
"왜요."
"멍멍이 이룸. 모야?"
"아직 못지어줬어요."
"뵹신."
"어디서 배워요? 미치게하네."
"나미사."
"......"
"키키키(ㅋㅋㅋ)"
"형이 지어봐."
"움... 혀니?"
"응?"
"혀니."
"혀니?"
"아니 혀니!(honey)"
"그래 그냥 혀니로 하자."
이름은 평생 쓰는거라고 그랬는데 대화시작한지 1분도 채 지나지않아서 백현의 이름은 혀니가 되었다. 그리고 둘은 게임얘기를 신나게 하더니 새벽쯔음이 되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레이는 찬열이 잠든것을 보고 '나주에 밥 안사면 죽음.' 이라는 쪽지를 남기고 집으로 홀라당 가버렸다. 찬열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정도로 자고있었다.
"찬녈아..."
"끄음..."
"찬녈아아..."
누군가 자신을 깨우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레이형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하지만 일어나자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건 레이가 아닌 사람이었다.
"누구..세요?"
"......"
"아니... 어떻게 들어오셨... 그보다 옷은... 아니... 제가 설마 어제 멍멍이가 아니라 사람을..."
말이 되지도 않는 망상을 하며 '다_큰_남정내_셋이서_3p.ts'를 찍고있는 찬열은 신경쓰지도 않고 백현은 그저 울망울망한 눈으로 배가 고프다고했다. 찬열은 허겁지겁 일어나 주방으로 갔고, 거실에 늘어져있는 강아지용품을 보면 지금 뭐가 뭔지 납득이 되질 않는 찬열이다.
"혀니 밥주세요."
"혀니?"
"응.어제 찬녈이가 나보고 혀니라며."
"어제 내가 데려온 강아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해사하게 웃는 백현을 보고 찬열은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영화속에서나 볼법한일이... 소설책. 그것도 판타지 소설에서 나올법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다는 생각에 찬열은 멘탈붕괴.
"일..일단 밥 먹고 생각합시다."
"응!"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쥐어주자 찬열이 숟가락을 쓰는 모습을 보고 곧잘 따라하던 백현은 소담스럽게 밥을 먹으며 오물거렸다. 그런 백현을 보고 '위험하지도 않은데... 그냥 같이 살지뭐.' 라고 생각한 찬열은 밥을 마저 먹었다.
***
"찬녈아! 무슨생각해?"
문득 아침밥을 먹다 옛날생각에 젖은 찬열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앞에서 옛날처럼 숟가락으로 소담스럽게 밥을 먹는 백현이 앉아있었다. 찬열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반찬을 집어먹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백현은 찬열과 같이 1년동안 동거를 하며 요리도 배우고 사람들이 사는 방법을 배웠다. 예전엔 혼자 장을 보러갔다가 길을 잃어 경찰서에 많이 가서 경찰들과 안면을 튼 백현이지만 요즘은 혼자서도 척척 장도본다. 요리도 집 한채를 태워먹을뻔한 백현인지라 찬열이 주방접근금지령을 내렸지만 백현이의 살가운 애교에 홀랑 넘어간 찬열은 가벼운 요리는 허용해줬다.
"우리 혀니 옛날엔 집도 홀랑 다 태워먹을뻔했는데."
"그건 옛날일이야! 지금은 잘하잖아. 그치?"
마치 자신에게 칭찬을 하라는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찬열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찬열은 그런 백현의 속내를 눈치채고 글쎄... 잘하는건가 하며 갸웃거리자 백현이 울상지으며 나 요리못해? 정말? 이러면서 자신이 서운하다는 티를 팍팍내고있었다.
"백현이 요리가 제일 맛있지."
"...정말?"
"응. 그래서 결혼도 못해 오빠는."
"......"
"남들이 만든거 못먹어. 백현이가 너무 잘해서."
"......"
"그러니까 백현이랑 결혼해야겠다."
결혼얘기가 나오자 급 시무룩해져서 괜히 딴짓을 하는 백현이 찬열의 갑작스러운 프로포즈에 눈을 크게뜨고 찬열을 바라보자 찬열이 백현에게 오빠멋있냐? 라고 물어본다. 백현은 찬열과 마주보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짱멋있어!"
식탁아래로 마주닿은 두 무릎이 전혀 불편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