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 kile making love - 웅산
1. 박지성
오늘 아침 이상하게도 눈이 번뜩 떠졌다. 그리고 정신없이 달력을 살폈을 때 오늘이 그의 어머니 생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몇 달을 영국에서 지내는 오빠 대신 어머님께 신경을 많이 쏟았었는데-, 요근래 바쁘다고 자주 뵙지도, 통화도 하지 못했다.
딸처럼 여겨주시는 어머님을 보며 오빠가 참 많이 닮았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조용히 고집 피우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이 더-.
정신없이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누르자 세네번의 신호음이 들리고 곧 정갈하신 어머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어머님, 저에요."
"응, 밥 먹었니?"
"네, 어머니 미역국 드셨어요? 제가 끓여드릴걸 그랬어요."
"얘는, 됐어 먹었다. 저녁에 지성이랑 온다며? 방금 통화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 아는 척 연기하고는 속으로는 무슨? 복잡한 머리를 살살 긁어내며 생각하자 저번 달 오빠와 통화했던 게 생각났다.
젠장, 나 무슨 병 있는 거 아냐? 어머님 생신 때 맞춰 들어온다고 했었는데.
"네, 어머님 저녁식사 밖에서 하세요. 오빠 벗겨먹어야죠."
어머님의 즐거운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웃으시는 일 드무신데, 오빠 왔다고 기분 좋으신가보네.
전화를 끊고 오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꺼져있다지 않고 신호가 가는 한국 핸드폰.
"여보세요-."
"오빠아..."
"잘 있었어? 전화 없길래 자나 했다."
"네, 글쎄 나 어머님 생신 깜빡한 거 있죠. 아침에 눈 뜨고 알았어-. 어떡해."
"그럼 나 입국하는 것도 몰랐겠네?"
"미안해요, 진짜."
"나야 괜찮지 뭐, 어머니도 신경 안 쓰실꺼고. 너 요새 바빴잖아."
"그래도-."
"됐어, 예쁘게하고 가서 축하노래나 불러드려. 오케이? 전화하면 나와-."
그냥 넘어가기 찝찝하고 죄송한 와중에 머리 속을 번뜩 스치는 생각. 오빠와 전화를 끊고 회사에 전화를 걸어 계약 중인 쥬얼리샵에 연락했다.
준비를 마치고 나가자 차에서 내리는 오빠. 진짜 오랜만이네-. 쪼르르하고 달려가 목을 감싸안자 역시나 꾹 안아주는 오빠.
"더 예뻐졌네?"
"오늘 신경 좀 더 썼지요-."
시무룩하던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눈에 띄게 콧대 높아진 나를 보던 오빠가 무슨 일 있구나 하고는 쿡쿡 찔렀다. 뭔데? 응?
"우리 회사에서 계약 중인 쥬얼리샵 있거든, 거기가서 어머니 귀걸이라도 해드리려구요."
"안돼, 비싸."
딱 잘라 거절하는 단호한 얼굴에 그럴 줄 알았다며 의기양양하게 웃어보였다. 오빠한테 방어할 어느 정도 수단이 생겼다 이거지.
"저번에 미팅했던 팀장님이 나 맘에 들어하셨거든요, 언제든지 콜하라구 하셨지-."
브이까지 들어올리며 헤-하고 웃자 결국엔 졌다는 식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악 하지마요! 공 들였단말이야.
샵에 도착해 문을 열자 화려한 광채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팀장님과 만나 가벼운 포옹을 나누는데 오빠의 표정이 심히 안좋다.
"어디 안 좋아요?"
"남자였어?"
"응? 말 안 했나?"
"안 했어, 저 남자는 뭔데 껴안는거야?"
"미국에서 살다와서 그래요."
"맘에 안 들어, 너."
몇 번의 귓속말을 끝으로 들려온 오빠의 곱씹은 말에 아랑곳없이 생글 웃어보이자 결국엔 한숨을 내쉬며 정장바지에 손을 푹 꽂는다.
팀장님의 안내에 따라 샵을 한 번 둘러보는데 반짝반짝 이쁜 아가들이 너무 많아.
그 와중에 팀장님이 데려간 코너에 눈을 깜빡였다. 팀장님 여기 예물 코너에요.
"예? 결혼 예물 보러 오신 거 아니었어요?"
"아, 아니에요-. 여기 남자친구 어머님 생신이라-."
"아아-. 실례했어요. 예물하러 오신 줄 알았네요."
간략하게 얘기만 했더니 이런 사태가. 팀장님께 애써 웃어보이고 오빠 눈치를 살피자 얼굴이 조금은 펴졌다.
그리고는 귓가에 속삭이는 말. 저 쪽은 좀 맘에 든다. 그리고는 큼큼거리며 미간을 문지른다.
"김팀장님."
"예?
"혹시 이 반지들 좀 볼 수 있을까요?"
오빠의 말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생글맞은 내 웃음을 따라하며 입을 연다.
"조만간 필요할 거 같아서요."
2. 기성용
언니의 결혼식, 내가 아무리 예쁜 옷을 입고, 아무리 공 들여 꾸며도 작고 못나보이는 날이었다.
눈가를 찡그리자 옆에서 툭 이마를 치는 오빠에 작은 짜증을 내자 하하 웃으며 빨간 기가 남아있는 이마를 문질 두드렸다.
"왜 그러냐, 너 오늘 진짜 이쁘다니까?"
"뻥."
"아이씨, 머리도 예쁘고 화장도 잘 됬고 원피스도 짱이라니까? 너 오늘 진짜 이뻐. 짱!"
"뻥."
"아, 말을 말자. 말어."
처음엔 이쁘다고 치켜세워주고 달래주다가 무관심한 내 반응에 결국 고개를 도리질로 젓고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에 집중한다.
기성용 나쁜 놈, 이쁘다는 말 좀 더 들어보겠다는데 그 놈의 성격도 못 죽여주고.
막상 식장에 도착에 신부 대기실에 들어가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럴만큼 언니는 이쁘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보였다.
"언니, 진짜 이쁘다."
"알아, 기지배야. 이제야 오냐? 성용씨도 왔네?"
"당연하죠, 누구 결혼식인데. 누님 결혼 축하드려요."
"땡큐에요, 맞다 다음은 니네야-. 조심해라 언니처럼 배불러서 드레스 입기 싫으면-."
당당하게 웃는 언니 얼굴이 너무 이뻤다. 매일 투닥거리던 철 없던 언니가 어느새 애엄마가 되선 집에 없을거라는 거에 허전하기도 했고.
새식구가 하나, 아니 둘이 더 는다는 것에 벅차오르기도 했다. 밖에 나가 한복을 입은 엄마와 새로 맞춘 정장을 입은 아빠를 마주했다.
나보다 오빠를 더 반기는 것 같은 건 단지 내 기분 탓이겠지...? 그럴거야... 그래야돼...
검은색 정장의 나이스 바디를 자랑하며 내 옆에 서 우리 측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오빠를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뭐랄까, 굉장히 낯설어-. 눈을 돌려 엄마 아빠를 바라보자 마찬가지신 듯 오빠를 올려보고 계신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할아버지 되신다면서요?"
"하하, 어떻게 녀석들이 급했나봅니다."
"요즘에들 그렇게 혼수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측 손님이신 것 같은데, 자꾸 오빠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씀하시는 바람에 오빠도 나도 아빠도 뻘쭘헀다.
"거- 축구선수 아니요? 익숙하네 그래."
"예, 소개가 늦었습니다. 기성용입니다."
깍듯하게 인사하는 오빠 모습에 우리 가족 모두 얼음, 무슨 사이라고 말해야 돼, 이거? 호칭을 생각하는 사이 오빠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변명을 멈췄다.
"여기 OO이, 약혼잡니다."
놀란 빛이 역력한 우리 가족들 뒤로 오빠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손님은 나이 덕이신지 대수롭게 않으신 듯 잘 됐다며 발을 떼셨다.
"오, 오빠!"
"왜?"
"무슨 약혼자야!"
"그럼 뭐야, 나보고 기서방 기서방 하시고 나도 장모님, 장인어른 하는데. 혼인신고 안 했으니까 약혼자지."
오빠를 끌어 구석진 자리에서 몰아붙이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오빠에 별말없이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멀리서 언니 친구인듯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한 손에 갓난 아이를 꽁꽁 품에 안고, 한 손에도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언니는 인사도 하기 전에 내 품에 아이를 맡겨놓고 여자 화장실로 쏙 들어가버렸다. 급했나봐.
바닥에 놓인 아기 가방을 팔에 걸고 어색하게 아이를 안자 오빠가 웃으며 아이 가방을 건네 받는다. 꼼지락 품에서 움직이는 아이가 하도 귀여워 웃자 따라 웃는다.
"어머, 얘 웃는 거 봐. 어떡해-, 너무 귀엽다."
"진짜, 까꿍?"
오빠는 아기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다르다, 아이도 귀여워하고 나한테도 안 보여주던 애교도 보여주고.
오빠 까꿍 한번에 작은 아이는 금새 꺄르르 따라 웃는다. 오빠가 붉게 물든 볼을 문지른다. 모찌같다.
"아빠 엄마가 훤칠하네, 애도 크면 한 인물 하겠어."
지나가며 아주머니 한 분이 흐뭇하게 흘리고 가신 말씀에 오빠는 또 그렇죠? 하며 부정없이 너스레를 피운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애기한테 집중해야지." 화장실에서 나온 언니에게 아이를 건네며 아쉬운 인사를 건넸다.
그 뒤로 오빠가 아랫배를 감싸 문질렀다. 움찔하며 돌아서려하자 딱 잡고 가만히 세운다.
"뭐하는거야?"
"아기랑 인사 중."
"참나, 애가 있대?"
"응."
"누가?"
"내 감이."
"오빠아."
"말 안 될 건 없잖아. 매일 하는데-."
대꾸없이 깊은 한숨을 푹-. 쉬자 오빠가 뒤에서 쿡쿡 웃는다.
그리고 지금, 그걸 누군가 찍어서 올렸다는 게 문제였다, 기성용 결혼에 이어 기성용 속도위반이 인기 검색어에 진입한 게 더 큰 문제였고.
3. 박주영
한낮이 다 되도 연락없는 오빠에 결국 직접 집을 방문했다,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손을 들어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오빠, 나-."
한참을 웅얼거리는 투정소리가 들려 괜스레 미안해졌다. 괜히 깨웠나봐 그냥 들어갈껄.
벌컥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긁는 오빠가 보였다.
"뭐야, 해가 중천인데 여태 잤어?"
"도어락은 폼이냐."
"오빠, 지금 열두시 넘었어! 한시야 한시!"
"안다-."
피곤으로 찌들어 다시 쇼파에 푹 누워버린 오빠를 보니 또 늦게 들어왔나보다.
야-.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려 내려보니 턱을 치켜든 오빠가 보였다. 뭐, 뽀뽀?
"빨리."
쪽, 허리를 숙여 가볍게 입술을 떼고 몸을 뗐다. 며칠 안 들렸다고 엉망이 된 집안에 한숨이 푹 샜다.
부엌 한 켠의 앞치마를 꺼내입고 허리춤 끈을 묶는 사이 뜨거운 손이 허리새로 들어와 한참을 휘돌았다
"더 자, 깨워줄게."
정말 피곤한 듯 대답과 함께 방으로 들어간 오빠를 뒤로 거실에 널린 빨래를 모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거실로 나와 여기저기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기를 돌렸다. 아 배고프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만지며 부엌으로 들어가니 더 가관이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워낙에 밖에서 먹는터라 물, 술, 자잘한 간식거리 밖에 없다.
거하게 쌓인 설거지를 끝내고 요깃거리 없을까하고 둘러보지만 있을리가.
오빠방 문을 똑똑 두드리고 고요한 방안에 문을 열었다. 더블침대에 드러누워 이불도 걷어차고 푹 자는 오빠.
서랍 위에 올려진 핸드크림으로 손을 문지르고 앞치마를 벗었다. 옆에 누워 깨기를 기다렸지만 미동도 없는 오빠에 결국 옷걸이에 걸린 겉옷을 집었다.
핸드크림 옆, 오빠 차키를 집어들고 방을 나서려는 차 오빠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 가."
"마트, 뭣 좀 할래도 할 게 없네."
".......가자."
하품과 함께 일어난 오빠가 윗도리를 훌렁 벗어 갈아입고 캡모자를 집어쓰고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손을 척 내미는 모습에 어이없이 헛웃으며 차키를 건넸다.
"오빠 나한테 차 맡기기 불안해서 그러지."
"......밥 뭐 할껀데?"
"아니라고는 안 하네."
"밸트나 매라."
능숙하게 운전하는 오빠 옆에서 괜히 뚱해져 밸트를 매자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볼을 꼬집는다.
"누가 볼 내미래."
대답없이 창밖을 내다보다 막상 메뉴도 정하지 못했다는 것에 당황스러워 핸드폰을 꺼냈다.
된장찌개, 두부조림, 고등어구이-. 이미 자주한 단골메뉴다.
"오빠 저녁 먹고 싶은 거 있어?"
"스파게티."
"크림?"
"응."
나참 어려운 것도 주문하시네. 뭐 하기는 힘들어도 맛있겠다. 메뉴를 검색하자 우수수 쏟아져나오는 레시피에 재료를 살폈다.
사야할 것도 많아, 그냥 면만 삶고 크림만 부으면 되는 거 아냐?
마트에 도착해 카트를 빼내자 내 손에서 자연스럽게 넘겨받는 오빠를 보며 실없이 웃었다.
"왜."
""응? 아니야."
예전엔 그렇게 무뚝뚝하던 남자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오빠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런 오빠가 너무 사랑스러워 뒤에서 폴싹 안자 사람들 눈 안 보이냐 하며 타박을 준다. 그 타박도 오늘은 왜 이리 듣기 좋은지-.
"오빠, 여기-."
몇 개의 코너를 돌았을까, 스파게티 재료는 하나 담지도 못했는데 카트는 벌써 반이 차버렸다.
물 만난 고기마냥 아이스크림이며 과자며 군것질거리를 채워넣는 모습에 웃음이, 그리고 한숨이 나왔다. 이럴 때 보면 애라니까.
유지품 코너에 다라 크림을 고르며 고민하자 오빠가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왜?"
"뭐가."
"왜 쳐다 봐-."
"그냥, 이대로 살아도 좋겠다 싶어서."
그거 청혼이야? 화끈해진 얼굴에 대충 넘어가려하자 오빠도 머쓱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린다.
마지막으로 카트에 와인 한 병을 담고 계산대를 향해서 걷는데 오뺘가 툭치고 턱끝으로 시식코너를 가리킨다.
"에이고, 신혼 부부인가봐? 어떻게 이런 참한 색시를 얻었어? 능력도 좋네!"
"그럼요, 제가 어떻게 매달렸는데요."
시식코너에 서서 입을 벌리는 오빠 입에 물만두 하나를 쏙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툭하니 뱉는 말에 나는 얼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차마 변명할 틈도 없이 대답하는 오빠에 반론제기도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마냥 서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내 얘기로 주고 받던 오빠가 대화를 마쳤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허리를 감싸왔다.
"내가 오빠랑 언제 결혼했어?"
"방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내가 민망할만치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오빠를 보며 지금 내가 이상한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몰려오는 사람들에 허리에 얹힌 손을 풀고 카트에 두 손을 얹어 끄는 오빠를 보며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야!"
"아이구, 우리 오빠 나랑 결혼하고 싶었구나? 그랬지!"
"야이씨."
큭큭대며 웃는 내 모습에 오빠도 결국 허탈하다는 듯 너털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니 한번만 더 놀려먹으면 죽는다.
시원하게 드러난 이마를 꽁하고 두드리는 오빠의 손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이 내 곁에 평생 있었으면, 나랑 아침을 먹고 밤에도 꼭 안고자고, 한시도 안 떨어졌으면.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결혼하고 싶은 건 나였구나.
4. 구자철
늦은 아침 오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자 또랑하게 신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OO아, 나 삼촌됐다!"
"...응?"
"형수 딸 낳았대!"
"뭐? 아, 딸이래? 딸 바래셨잖아. 잘 됐다. 애기 이뻐? 이쁘지!"
"응, 아 나 이제 병원 갈거야, 같이 갈꺼지?"
"그래야지, 일어날 때도 지났네."
오빠와 통화를 끝내고 찬물에 얼굴을 묻었다. 시원스럽게 얼굴을 덮는 냉수에 몽롱했던 정신이 아릴만큼 맑아졌다.
뭐 입지, 옷장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입을 옷이 없다. 옷은 매일 사는데 대체 왜 입을 옷은 없는거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오빠가 독일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낸 누드빛 복숭아색의 원피스를 꺼내들었다.
어깨를 여리게 감싸고 허벅지를 덮어 무릎 위로 타이트하게 붙은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서 한 바퀴 뱅그르 돌다 만족스럽게 화장대 앞에 앉았다.
깔끔하게 화장을 마치고 자몽빛의 립스틱을 들어 자연스럽게 문질렀다. 소리나게 부딪히는 입술 위로 반짝이는 글로스를 바르고 핸드백을 집었다.
"아래야, 올라갈까?"
"아니, 지금 내려가. 신발만 신으면 돼."
전화를 끊고 방문을 나서다 허전함을 느끼고 화장대 앞에 섰다. 아 까먹을 뻔 했다.
서랍을 열어 정돈 된 귀걸이들 사이로 가장 어울리는 아주 작은 진주 귀걸이를 걸었다. 귀에 딱 붙는 게 단정해 보이고 좋았다.
오늘따라 손가락의 커플링도 더 이뻐보이고, 원피스와 같은 색상의 하이힐을 신고 거울 앞을 서자 모든 게 완벽하게만 보였다.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차 앞에 서서 네이비색 정장 바지에 손을 꽂고 있는 오빠가 보였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이뻐?"
"언제는 안 이뻤나-."
장난어린 투정에 오빠가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 웃으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백화점 좀 들리자."
"왜?"
"빈 손으로 가? 애기 선물이라도 사가야지."
"아, 그럴까 그럼?"
백화점을 향해 운전대를 돌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뜻 없는 개그에 허탈한 웃음을 짓는 오빠가 보였다.
밀리는 차에 지루하게 창밖을 보다 깜박 존 사이, 백화점에 다 다랐는지 조심스럽게 어깨를 흔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OO아, 일어나 다 왔어."
"...응."
차에서 내려 오빠에 기대 끌려가듯이 매장을 돌다 멈칫하는 오빠 등에 머리를 박고 눈에 띈 곳은 다름아닌 스포츠 매장.
최신 축구화와 축구복, 축구공들을 살피던 오빠가 내 타박에 쩝하며 들고있던 축구화를 내려놓는다.
"저번 주에 샀잖아."
"응..."
아쉬운 표정의 오빠에 팔짱을 끼고 매장을 찾아 한참을 돌았다. 그리고 이내 보이는 아기용품들의 지루했던 오빠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헀다.
"우와, 진짜 귀엽다."
"그렇지, 다 이뻐서 뭘 사야할지 모르겠어."
"간단하게 사, 형이 다 준비해 둔 거 같더라."
그래? 코너를 도는데 색색의 유모차, 아기자기한 장난감과 젖병, 귀여운 신발과 옷가지들.
너무 귀여워 정신도 팔아놓고 구경하다 문득 오빠를 떠올리고 찾아보니 카트에 몸을 기대고 지루하게 눈을 깜빡이는 오빠가 보였다.
"오빠-. 이거 어때?"
"귀엽다."
"아까도, 그 아까도 다 귀엽다며."
"다 귀여운 걸 어떡해."
손에 가볍게 들린 분홍색 아기신발을 들고 흔들다 오빠의 무념한 대답에 뾰루퉁해져 나도 모르게 틱틱거렸다.
그러자 오빠가 손을 뻗어 볼을 주욱 잡아늘린다. 아프잖아-, 뭐야. 오빠가 짠하며 왼손 손바닥을 내밀자 앙증맞게 올려진 연분홍빛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사자구? 괜찮다-."
"아닌데?"
"응?"
"나중에 우리 애기 신겨주자."
오빠가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건네는 말에 머리가 멍했다. 진지함은 보이지 않는 밝은 표정의 오빠에 나를 놀리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빠가 작은 아기 신발을 내 손가락에 걸어주고 장난감 코너를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손에 걸린 신발에 눈을 돌리자 연분홍색에 하얀 레이스가 달린 깜찍함에, 이걸 골랐을 오빠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 때 오빠가 이름과 함께 손을 까딱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니 장난감 코너에서 반짝이는 모빌을 들고 있었다.
"모빌?"
"진짜 이쁘지. 소리도 좋다."
"응-. 좋아보인다. 그걸로 할까?"
"네, 그게 제일 잘 나가는 제품이세요."
네?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춤하자 오빠가 허리춤을 잡았다. 실례합니다-. 무안하다는 듯 웃는 여직원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놀래라. 오빠 귓가에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이자 오빠도 작게 웃으며 나도. 라고 대답했다.
"정말 잘 어울리세요, 몇 개월이세요?"
"네?"
"임신 중이지 않으세요?"
"아, 아니에요-. 선물 사러왔어요."
"어머, 죄송합니다. "
모빌을 들고 포장하는 여직원을 뒤로 배내옷 앞을 서성이는 오빠 앞에 주눅이 들어선, 그렇게 배 불러보여? 나름 신경 쓴 거란 말이야.
"섭섭했어, 나."
"뭐가?"
"완전 딱 잘라 말하더라? 우이씨."
"에?"
"난 니가 나랑 결혼하는 거, 내 아이 갖는 거, 그래서 이렇게 쇼핑하는 거 상상 많이 했는데-."
오빠의 섭섭한 말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당황스러움 반, 놀라움 반. 장난기 없는 진지함에 눈길을 돌렸다.
계산 다 됐다. 자리를 비켜 계산하고 쇼핑백 속 포장된 모빌을 슥 훑었다. 그리고 그 옆 오빠가 고른 작은 아기신발도.
"나도 그랬어."
"응?"
"나도 오빠랑, ....많이 상상했다구."
부끄러움에 눈을 내리고 쇼핑백을 건넸다. 그 안을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오빠가 싱긋 웃었다.
핸드백을 고쳐들고 앞서가자 뒤에서 낮은 구두소리를 내며 어깨 위로 스윽 팔을 올리는 오빠가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웃음기가 다분한 오빠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렀다. 하기야 내가 이런 맛에 이 남자랑 만나는거지.
너구리의 말 + 공지 |
올ㅋ 나름 분량 폭발ㅋ 우왕 굳ㅋ 앞으로는 이 네명으로만 갈 계획이고요, 만약 추가할 선수가 생긴다면 생각해보고 추가할 생각입니당. 저 이과생인 거 아시져? 그냥 망상으로만 보시길ㅋ... 저번에 반응이 너무 좋아서 감사했구여,, 눙무리 앞을 가렸슴.. 엉엉 아 분량은 항상 이 정도로 갈 꺼 같아여, 언제 올릴지는 모름... 그냥 내킬 때.... 맨날 오지는 못합니다.... 흑흑. 이런 나를 봐서 댓글 하나만 떨궈주고 가시지 않으실래여? 추천 한 번만 눌러보라구여!!!!!!!!!!!!'' 그럼 이 비루한 손은 이만 꺼집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