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많이 바빠 보이네? "
하필이면 지금 이 타이밍에 이 꼴로 만날 건 뭐람
렌즈도 빼 버려서 도수 높은 안경에 운동복 바지, 끌고 신은 슬리퍼,
헐 나 심지어 화장도 다 지웠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굴을 급히 가리려 손을 들다 몇 개 집었던 안주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물건들을 주우려 주저앉자 김선호도 함께 주섬주섬 주어서 나에게 돌려줄 듯하다 다시 씨익 웃으며 자신의 품에 넣었다.
" 아까 많이 바빠 보이던데 일은 잘 끝냈어? "
저 표정, 생글생글 웃고는 있는데 다 아는 표정이다.
너 대답 잘해라 난 모든 걸 알고 있다. 딱 이런 표정이야
나는 누가 봐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하하.. 덕분에요' 하며 이 날씨에 나오지도 않는 식은땀을 닦는 듯 이마를 살짝 쓸어넘겼다.
아니 근데 김선호 당신은 왜 여기 있는 건데?
" 그런데 선배는 여기에 왜 계실까..요? "
" 나? 나도 맥주 마시려고, 건너편이 내 자취방이거든 "
응? 거긴 내가 자취하는 건물인데?
김선호가 턱짓으로 가리킨 건물은 내가 방금 나왔던 건물이었다.
말도 안 돼. 에이. 아니지. 농담이 심하네 거 참 하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루요?
*
*
*
각자 사려던 맥주와 안주를 계산하고는 어색하게 엘리베이터를 함께 기다렸다.
괜히 봉지만 만지작거리며 옆에 나란히 서니 더 크게 느껴지는 선배를 흘끔 보다 시선을 돌리던 김선호와 눈이 마주쳤다.
" 집에 가서 뭐해? "
" 아- 아까 보던 넷플릭스나 보면서 뒹굴...거릴려구요 "
어색한데 긴장한 나머지 지나치게 솔직했다
선호가 으음- 하며 '그거 보려고 일찍 갔구나?' 하는 눈빛으로 봤다.
" ㄴ..넷플릭스 같이 보실래요? "
*
*
*
망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온 말을 주워 담을수도 없는데.. 하며 후회하고 있는 사이
김선호는 그래- 하며 자신의 층을 누르며 내가 눌렀던 층을 다시 눌러 취소시켰다.
" 우리 집에서 보자 "
*
*
생각지도 못하게 그렇게 나는 선배의 자취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와.. 되게 깨끗하네, 깔끔하게 정돈된 집을 바라보며 발을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였다.
남자가 사는 집은 처음 들어와 보는데 이렇게 사는구나..
신발장 위에 있던 선배의 어릴 적 사진이 보이자 나는 한번 보고는 웃음이 나왔다.
진짜 귀엽다아.. 근데 지금이랑 별로 안 다르네?
어릴 적 사진을 보며 김선호를 바라보자 김선호는 편하게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 실례하겠습니다아.. "
" 무슨 맥주 마실래? "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양손에 맥주를 쥐어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오른쪽 맥주를 가리키자 오케이- 하며 나머지 맥주들은 냉장고에 넣고 안주를 접시에 부었다.
볼 영화 먼저 고르고 있으라며 티비 앞 작은 소파 위에 있는 리모컨을 가리키자
나는 어색하게 소파에 앉아 볼 영화를 고르다가 신작으로 나와있는 영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엇 50가지 이거 새로 나왔네? "
" 무슨 영화인데, 로맨스 영화인가? "
맥주랑 안주를 가져오며 내 옆에 자연스레 앉으며 말을 걸었다.
로맨스 영화 하.하.. 그쵸 로맨스 영화이긴 한데...
혼잣말을 생각없이 너무 크게 했나 보다..
선배는 그새 그걸 듣고는 내가 들고 있던 리모컨을 가져가
말릴 틈도 없이 그대로 재생을 눌렀다.
*
*
*
진짜 망했다.
하필이면 50가지 영화를 틀어서는...
초반부터 괜히 맥주만 엄청 들이켜 마셔버렸다.
아직까지는 초반이라 그럭저럭 평범한 내용이기에 김선호는 아무 의심 없이 옆에서 집중하며 보고 있었고
나는 불안한 마음에 언제 저 리모컨을 가지고 와서 꺼버리지 하며 타는 목만 맥주로 축이고 있었다.
" 이런 로맨스 영화 좋아하는구나- "
" 예? 아니요!!! "
괜히 혼자 찔리는 바람에 큰 소리로 부정하자 놀란 선호는 날 커다란 눈으로 바라봤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 영화가 재미가 없네요! ' 하며 이때다 싶어 리모컨을 뺐어 영화를 꺼버렸다.
얘가 왜 이러나 싶은 얼굴로 날 봤지만.. 어쩔 수 있나 이게 최선인걸.
아마 더 보면 선배도 후회하실걸요.
" 맥주 시원한 거 더 있어요? 아 좀 더워가지고.. "
" 많이 더워? "
술에 취하니 더 더워졌다. 손부채질을 하며 입으로 바람을 불고 있자
선호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두 캔 더 꺼내어줬고 나는 급하게 하나를 따서 바로 벌컥벌컥 마셨다.
내 주량은 생각지도 못하고.
:
:
:
" 김서노오오 "
이미 내 주량을 넘어서고도 계속 마셨던 나는 결국 혀도 잘 안 돌아갈 정도로 취해버렸고 선호는 내 주정이 재미있다는 듯 턱을 괴며 날 바라봤다.
" 왜? "
" 너가 댕댕이면 나는 야옹이다!! 야옹- "
" 어후, 이젠 사람도 아니네 "
김선호가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웃긴 왜 웃어? 누구 좋으라고.. 이 모지리가..!
" 그 웃음! ...나보구 지금 비웃은거죠오오 "
내가 술에 취해 몸을 흔들면서 고양이처럼 손을 들어 보이자
선배는 그런 내 손을 잡아 내리고는 등을 두드리며 술을 깨우듯 물을 한잔 건넸다.
" 다은아? 나 댕댕이 안 할 테니까, 너도 이만 사람으로 돌아 오는게 어떨까? "
그때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술에 취하면 용감해진다고 그랬던가,
맨정신이었으면 절대 기어코 맹세코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다.
마치 진짜 고양이가 된 것 마냥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을 건네는 김선호의 하얀 손등을 살짝 핥았고
생각지 못한 나의 행동에 깜짝 놀란 김선호는 급히 뒤로 몸을 빼며 옆에 남아있던 자신의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봤다.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다급해진 김선호는 급하게 옆에 있던 안주를 멀리 던지며 말했다.
" 무..물어와! "
?? 뭐라는 거야. 내가 진짜 동물인 줄 아나-!
이보세요 김모지리씨. 그리고 지금 나 강아지 아니고 고양이에요.
멀리 던져진 안주를 한번 바라보고 나는 피식 웃으며 더 다가가 다시 한번 김선호의 볼을 살짝 쓸어 핥았다.
김선호가 숨을 잠시 멈추며 참기 위해 몸에 힘을 주고 있자 오히려 그의 목덜미에 살짝 올라온 혈관이 나를 더 자극했다.
나는 그 목을 바라보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에 천천히 몸을 숙였다 잠시 멈추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 더워.. 답답해 "
나는 뭔가 모를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 등으로 손을 뻗어 후크를 풀고는 익숙하게 팔 사이로 끈을 빼어 속옷을 벗어 바닥에 내평겨 쳐버렸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바지마저 덥다는 이유로 내려가지 말라고 잘 묶었던 마지막 끈마저 풀어 벗어던지고는 날 보지 않기 위해 벽에 기대어 눈을 꼭 감고 있던 김선호에게 한 발 한 발 기어갔다.
야옹-
--------
이 정도는 불마크 안해도 되는거겠죠?
과연 김댕댕씨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