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남을 조심하세요.
CHAPTER 1 - 첫만남
BGM: Taylor Swift- Th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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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주말, 파란 하늘 아래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에 흐뭇한 미소를 띄우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는 무슨. 졸업 시즌에 들어선 지금, 나 또한 일개 취준생에 지나지 않아 청년 구직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나라에 희망을 가지고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내게 주어진 일자리는 편의점 알바였고 정장을 차려입고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을 쥐고 길거리를 위풍당당하게 거느리는 커리어 우먼이 되겠다는 내 계획은 무산된 지 오래였다. 내가 걸치고 있는 이 보라색 조끼가 내 현 상황을 말해 주고 있었고 가슴팍에서 간당간당하게 달려있는 명찰에는 내 이름이 아닌 시준희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어서 오세요.”
내 이름 하나도 지키지 못한 알바라니. 깊은 한숨만 푹 내쉬다 문뜩 떠오른 생각에 급히 시계를 보았다. 11 시 54 분. 6 분만 지나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시간이다. 생활고를 겪고 있거나 수중에 돈이 없는 편순이들이라면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음식 폐기 시간. 8 시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이 바로 FF다(흔히 말하는 신선 제품으로 fresh food를 줄여 ff라 부른다.) 보통 폐기 음식은 12 시와 14 시 사이로 나오게 되는데 폐기로 잘 나오지 않는 레어템인 백 주부의 삼첩반상을 나 성이름이 놓칠 리가 있나. 편의점 규정상 폐기 시간이 다가오는 식품들을 앞으로 진열해 놓게 되어 있지만 그거 몇 시간 앞당긴다고 매출에 영향이 가진 않을 거란 생각에 구석진 곳으로 숨겨 놓았다(따지고 보면 편의점 매출이 늘어난다고 내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니 상관 없지 않은가?).
‘점심을 사수하기 전 마지막 손님이니 친절하게 응대해 볼까...’
“에쎄 체인지 하나 주세요.”
멀끔히 차려입은 남자를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는 손에 들린 것을 받아 바코드를 찍으려는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백 주부의... 삼첩반상?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았던 내 점심을 이렇게 쉽게 놓칠 수는 없다. 12 시까지는 아직 3 분이나 남았으니 시간을 끌어야 한다.
“민증 확인을 해야 해서 그런데 민증 좀 보여 주시겠어요?”
제길! 준비했다는 듯이 빠르게 내미는 민증을 확인하고는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찾는 척 느리게 행동하니 남자가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는 말을 건다.
“제가 지금 학교에 가야 해서요.”
“네... 아, 근데 이 도시락 12 시가 폐기 시간인데 괜찮으세요?”
선하게 생긴 얼굴로 보아하니 조금만 구슬리면 점심을 사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눈에 띄게 밝은 모습으로 남자에게 폐기 상품이라 말하니 남자의 눈이 내 얼굴을 훑기 시작한다. ...얼굴을 훑는다?
“괜찮아요. 어차피 배로 들어가면 다 똑같은걸요.”
저 사람, 아니 저 xx 지금 날 보며 웃었다. 강아지처럼 순한 얼굴을 하고는 지금 보란 듯이 웃었단 말이다. 내 처지가 웃기다는 건가? 바들바들 떨려오는 내 손에 쥐어진 본인의 민증과 담배를 챙기고는 전자레인지 앞으로 가서 도시락을 데운다. 이름이 뭐였더라... 김...정우? 김정우, 넌 오늘부터 블랙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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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가 의문투성이다. 김정우 저 자식은 그날을 기점으로 매주 주말마다 편의점으로 와 내가 숨겨둔 음식만 골라 사 갔다. 매번 다른 곳에 더 깊숙히, 더 작은 것을 숨겨도 숨기는 족족 찾아 가져온다. 이 정도면 진짜 생김새뿐만 아니라 실제로 강아지, 아니 개(어쩌면 개xx)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오늘도,
“오늘은 이거예요?”
저 뻔뻔한 태도에 혀를 내두르며 무시를 하면 또다시 말을 걸어오는 김정우에게 욕이라도 퍼부을까 싶었지만 나는 저 자식보다 킹갓제너럴 어른이니까 또 한 번 참는다.
“다음 주에는 뭐 숨길 거예요? 나 이제 도시락은 지겨운데.”
...참는다는 말 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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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샌드위치네요.”
“혹시 저랑 내적 친분 쌓이셨어요? 그쪽 때문에 점심 못 먹은 지 3 주째인데 재미있으신가 보네.”
“그게 왜 저 때문이에요. 나는 내 돈 내고 밥 먹는 건데?”
“아, 예. 그러시겠죠. 오늘은 안 바쁘세요?”
“안 바쁜데 왜요?”
“저는 바빠서요. 알바 중이잖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김정우에게 씩씩대며 대꾸를 하자 이런 내가 웃긴다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는다. 저런 김정우를 보니 미x놈에게 제대로 걸렸다는 생각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버티고는 있다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이 일에 정착을 하기도 전에 그만두는 건 시간문제다.
'어떻게 구한 일자리인데!'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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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을 세우겠다고 생각한 지 이틀이 지난 지금, 김정우보다 내게 더 시급한 건 취업이라는 걸 깨닫고 아침이 밝자마자 눈도 뜨지 못한 채로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았다. 갑자기 쏘아진 불빛에 인상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자고 있던 새에 연락이 온 곳이 있을까 알림 창을 내려 확인했다.
010-1998-0219
시준희 씨 맞나요?
시준희... 어디서 본 이름이더라.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이름에 눈을 감아 생각하다 떠오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생각하길 그만뒀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피고는 창문을 열어 바깥 날씨를 확인했다. 겨울이 다가오는지라 하얀 입김이 서렸지만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에 만족하며 나갈 채비를 했다. 평소 누군가를 만나지도, 집 밖으로 일절 나가지도 않는 자발적 아싸지만 월급날도 가까워졌겠다, 장을 보러 나갈 심상이었다. 가볍게 세수만 하고 나와 1 층으로 내려오자 갑자기 들어오는 매캐한 담배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냄새의 원흉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건 별안간 보이는
"김정우...?"
뿌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보고 있는 김정우였다.
작가의 말 |
남주 투표가 전부 정우로 나와서 정우 글을 쓰게 됐네요. 재미있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도영이 글 설레임은 이번 주 중으로 올릴 수 있다면 올리겠습니다. 끝맺음을 하지 못해 계속 미뤄지네요... +반응 연재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