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우리를 멍들게 한다
w.싸만코
1.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
하루의 말 한마디가 제형한테 파도처럼 밀려 발까지 다가왔다. 사실 제형도 하루가 자신을 원하지 않고 있단 것쯤은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던 거다.
평생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별]이란 단어가 생각보다 쉽게 찾아왔고, 또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졌다.
4년을 만나 온 하루와 제형이었고, 웬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또한 착각이었던 거다.
결국 제형은 하루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받아들이는 척이었지만.
"그래, 그럼."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하루는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그래도 4년을 만나고 알아온 서로인데 이렇게 쉽게 끝내잔 한 마디면 바로 끝맺을 수 있던 걸까.
하루는 한 달 전부터 이 말을 제형한테 뱉고 싶어도 뱉지 않은 채 꾹꾹 눌러 담았는데, [그래, 그럼.]이 말 한마디로 상황을 끝내려는 제형이 미워 보였다.
적어도 자신을 잡아주기라도 아님 이유라도 물었다면 어떻게든 자기 생각이 잘못됐다며 적어도 박제형을 탓하진 않았을 텐데, 한순간의 끝내버린 제형의 대답이 하루가 잡고 있던 마지막 마음마저 보내고 말았다.
결국 하루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마음속으론 계속해서 박제형을 욕하면서 그대로 카페 밖으로 나갔다. [ 끝이다 정말 박제형. 안녕. ]
하루가 일어났음에도 제형은 테이블만 쳐다봤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말이다.
2.
[나 박제형이랑 헤어짐]
[미친,]
[진짜?]
[만난 지 1시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또 트레이닝복입고 나왔어?]
[걔 저번에도 너랑 영화관 갈 때 연습실에서 바로 와서 운동복 입고 왔다며]
[야, 설마 너가 차였냐?]
[찬 건 내가 찼는데]
[왜 내가 까인거 같냐]
[아 ㅁㅊ]
[내가 그래서 처음부터 박제형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럴 걸 그랬나 정말]
하루는 원필에게 바로 카톡을 남겼다. 그리고 원필도 기다렸단 듯 빠르게 답장하기 바빴다. 원필과 하루는 중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로 특히 대학생 때부터 가깝게 지내왔다. 거기에 원필은 하루 주변 몇 안 되는 박제형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루는 지하철에서 한숨만 내쉰 채 창가를 바라보며 섰고 에어팟에 흘러 들려오는 가사가 마치 자기 얘기 같아 괜스레 센치해졌다.그렇다고 눈물이 나거나 훌쩍이는 일은 없었다.
노래가사를 듣다가 딱히 할 일도 없어 휴대전화 속 갤러리를 들어가 그간 박제형과 함께한 사진부터 박제형 단독 사진, 박제형이 찍어준 사진까지 삭제 버튼을 눌렀다.
갤러리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속에 넣어둔 사진까지 합치니 하루가 살면서 찍은 사진 전체 중 절반이 오늘 이후로 사라지게 될 예정이었다.
영현 선배 : [뭐해?]
그리고 갤러리 정리 후 날라온 영현의 카톡에 하루는 당황했다. 하루가 이토록 당황한 이유는 과거 자신과 제형이 크게 싸웠던 이유 중 하나인 영현이, 제형과 자신이 헤어진 후 바로 연락이 와서였다.
하루는 영현의 카톡을 바로 읽진 못했다. 대신 바로 원필에게 폭풍 카톡을 했다.
[야 김원필]
[너 영현 선배한테 나 헤어진 거 얘기했어?]
[ㅇㅇ]
[ㅁㅊ 그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얘기해?]
[왜 형한테는 희소식이지]
[?뭐]
[너도 형이 너 좋아했던 거 알잖아.]
과거 2년 전 박제형과 김하루 사이 폭풍 같던 사건, 강영현 사건 시작 때도이랬다. 박제형과 김하루가 사귄다는 걸 유일하게 김원필만 알던 시절.
하루에게 알게 모르게 다가오던 강영현, 그런 강영현의 흑심을 모른척하며 친하게 지내던 김하루.
그리고 박제형이 싫어 강영현과 하루 사이를 응원하던 김원필, 마지막으로 강영현과 김원필이 눈에서 걸리적거렸던 박제형.
결국 박제형이 참고 참다가 하루한테 강영현과 더는 깊은 관계를 갖지 말라는 말 한 마디로 상황은 일단락 정리됐다.
하지만 이 사건 뒤로 박제형과 김원필 사이는 더 틀어졌고 김원필은 박제형을 박제형은 김원필을 서로 싫어하게 됐다.
과거기억을 생각하던 하루는 결국 영현한테 온 카톡은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왠지 지금 자기가 영현과 연락을 하면 박제형한테 헤어지자고 한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3.
"어, 형 왔네? 오늘 하루랑 데이트한다며"
제형은 도운의 말에도 들은 척만 척하더니 그대로 앉아 기타를 만졌다. 연습실에 있던 도운과 성진은 제형의 이상 행동에 서로 쳐다보고선 말없이 기타만 만지는 제형을 쳐다봤다.
기타를 만지는 제형의 손이 거칠었고 평소와 다른 손놀림 때문인지 기타 소리마저 뻑뻑하게 들렸다. 결국, 성진이 제형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와 애꿎은 악기한테 화풀이하는데? 니네 싸웠나?"
성진의 말을 듣자마자 제형은 기타를 손에서 떼더니 성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느새 도운도 드럼 스틱을 들고 성진 옆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제형은 연습실에 들어온 지 10분 만에 입을 열었다.
"나 음악 관둘까?"
성진은 자기가 잘못들은 줄 알고 귀를 한번 후비고선 뭐라고 라고 되물었고 도운은 놀란 듯 눈만 커졌다.
제형은 되묻는 성진의 눈을 피하며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냥 음악 관둘까, 하루가 싫어하는 거 같아."
"뭔데, 하루 걔가 또 공무원 준비하라고 했나?"
"형, 하루 누나랑 또 싸웠어요?"
제형의 말에 성진과 도운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제형은 모르겠다며 냅다 연습실 바닥에 누웠고
도운과 성진은 다시 서로만 쳐다보며 제형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제형은 그 와중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연습실 바닥이 차갑긴 한데, 그냥 지금 제형에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음악도 뭣도 아닌 잠들어서 현실을 외면하는 거뿐이었다.
"형 여기서 잠들면 입 돌아가요."
제형은 도운의 말을 듣지도 않았고 성진은 한숨을 쉬고선 제형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오랫동안 옆에서 하루와 제형을 봐왔던 성진과 도운도 짐작했다. 평소처럼 싸워 잠시 헤어진 게 아닌 진짜로 이 둘이 끝이 났다는 것을 말이다.
"박제형 일어나면 집에 가서 치킨이나 먹자. 도운이 너 치맥 괜찮나?"
"아, 좋죠! 당연"
그렇게 한참을 도운과 제형은 각자 악기 연주하기 바빴고 제형도 뒤척이다 선잠이 들었다.
4.
[2년 전]
"아니, 형이 뭔데! 뭔데! 천사 같은 애를 꼬셔서 데리고 가냐고요!!!!!!"
밤 11시, 레몬포차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리고 그중 김원필 목소리가 레몬포차에서 가장 크게 들렸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 둥글게 자리 잡아 앉은 제형-원필-영현.
초반에는 셋이 술만 마시고 조용히 달리더니, 결국 김원필이 먼저 술에 취하면서 이성을 잃었다.
김원필의 필터링 없는 말들에 강영현은 어찌할 줄 몰라 말려댔고, 박제형은 꿈쩍없이 혼자 계속해서 잔을 채우며 술잔만 비우기 바빴다.
"야 김원필 너 많이 취했다.. 안 되겠다. 저,기 형 그냥 저희 먼저 일어날게요."
강영현은 더이상 김원필을 통제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자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원래는 박제형과 김원필만 단둘이 만나는 자리였는데, 김원필이 대뜸 강영현을 불러들여 어쩌다가 합석하게 돼버린 상황이었다.
강영현이 원필에게 코트를 입히려 하자 박제형이 입을 열었다.
"야 김원필, 너 김하루 좋아하지 마. 친구면 선 지키라고."
계속 혼자 술만 마시던 사람이 30분 동안 김원필 투정 듣고 나서 뱉은 말이 저 한 마디였다.
근데 저 말을 듣고 김원필이 강영현 손을 뿌리치며 제형을 마주 보고 다시 앉았다.
"그걸 알면서 형이 지금 그러면 안 되죠. 우리 하루는! 저도! 형도! 아닌 훨씬 좋은 사람 만나야 한다고요!!!!!"
그러고는 원필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더니 결국 술이 담기던 원필의 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술잔이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원필의 코트는 알코올 향이 뒤덮였고 강영현은 급하게 휴지로 술잔을 줍고 아르바이트생을 불렀다.
"야 김원필 일어나 너 지금 완전 민폐야. 민폐."
영현은 기어이 사고를 친 원필의 등을 때렸고 원필에게 코트를 건넸다. 원필은 결국 반강제로 코트를 입고선 휴대폰을 챙겨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형 죄송한데, 저희 진짜 먼저 가볼게요. 김원필 얘가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요."
결국 강영현은 김원필을 어깨동무해 질질 끌고 나갔다.
제형은 그와중에도 마지막 남은 술병에 있던 술을 자기 전에 부었다.
술잔을 붓는 와중에도 자기 주머니 속에서 울려대는 진동때매 바로 술잔을 비우진 못했다.
김하루: [제형아!!!!!!!!!]
[야 박제형 뭐하는데 전화를 안 받아!!!!]
[어쭈? 잠수?]
[박제형 너 진짜 내일 봐!!!!]
[아 ㅜ 뭔데 왜 전화 안 받는데?]
[뭐야 성진오빠랑 도운이랑도 같이 있는 거 아니야? 뭔데???]
하루의 10분씩 들어와 있는 카톡과 부재중 전화에 괜스레 제형은 웃음이 났다. [그래, 그래도 내가 너 때문에 웃는다.]
제형은 마지막 잔을 입에 털고 패딩을 챙겨 계산대 앞으로 갔다.
제형은 한참을 서 있어도 카운터에 계산하러 오지 않아,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불렀다.
"어, 그거 아까 코트 입은 남자 두 분 중 한 명이 결제하셨어요! 그냥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생의 말에 제형은 패딩을 목 끝까지 지퍼를 올리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얼떨결에 얻어먹기까지 해버린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했다.
이렇게 보니김원필이 왜 자기를 미워하는지도 알 듯했다.
그리고 김원필이 왜 그렇게 강영현을 좋아하고 하루랑 이어주려고 했던 거까지도.
제형은 이 울적한 마음을 누구한테 털어야 하나 하며 성진의 자취방으로 걸어갔다.
"야!!!!!!!!!! 박제형 너 왜 전화 안받아!!!!"
제형이 얼마만큼 걸었을까 또 자신이 얼마나 취했나 싶어 눈을 두어 번 비볐다. 그러자 이미 자신 앞으로 달려든 하루 때문에 현실인 걸 자각했다.
하루는 자기보다 훨씬 큰 키인 제형을 끌어안았다.
"야, 왜 전화 안받아.. 나 진짜 뭔 일 난 줄 알았잖아. 성진오빠는 한참 전에 나갔다고 하고 윤도운은 부산 내려가 있다 하고.. 뭐야 술 마셨어?"
"응? 조금 마셨어."
"냄새가 조금이 아니구만, 솔직히 말해 누구랑 마셨어?"
"혼술 했어."
"뭐 혼술? 죽을래 진짜 , 그럼 나 부르라 했지? 아 박제형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하루는 팔꿈치로 제형의 옆구리를 계속해서 공격했고 제형은 술김엔지 뭔지 몰라도 그냥 간질간질하게 느껴져 웃음만 났다.
그리고 하루의 모습에 제형은 더 처량하고 씁쓸했다.
"있잖아 하루야, 우리 헤"
"헤? 헤 뭐?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냐 별거 아니야."
"아 박제형! 나 말하다 마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말 안 해? 엉?"
"진짜 별거 아니야, 그나저나 하루야 너 왜 자꾸 나한테 반말해? 내가 오빠인데?"
"뭐? 지금 오빠라고 부르는 게 중요해?"
제형도 안다. 자기가 지금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도 그럼에도 자기가 얼만큼 하루를 사랑하는지도.
그래서, 감정에 휩싸여 하루한테 헤어지자고 말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꼭 하루 10년 안으로 웃게 해주자, 비록 지하 연습실에서 겨우 월세를 내며 지내지만 그래도 나중에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알리는 인디밴드로 성공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 너무 재밌네요,, 국시끝나고 글잡 쓰니깐 넘 재밌어여 히히히히힣
[아니,, 글잡이 너무 바꼈군요,,, 어이쿠 자꾸 수정수정하다 겨우 배경색 넣는법을 터득했습니다,,,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