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은 자신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 난 일단 아니라고, 내 잘 못이 아니라고 무조건 우겨대곤 한다. 물론 어른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저 아이와 달리 후에 죄책감이 남을 뿐, 다른 건 없다.
"여어 김성규!"
"어디서 개가 짖나."
개처럼 뜀박질하며 멀리 2-4반에서 자신이 있는 2-1반으로 달려오는 박지혁을 외면하곤 복도를 걸어 급식 실로 향했다. 그런데도 박지혁은 어느새 옆에 딱 붙어 어깨에 꾸준히 팔을 올렸다.
" 너 급식 나랑 같이 먹는 건 잊었나 봐?"
"지랄이야, 누가 들으면 단 둘이 먹는지 알겠네."
누가 김성규 입에 필터 좀 달아줘야겠다, 좋은 걸로. 중얼거리며 앞서는 최윤민의 팔을 붙잡곤 박지혁의 팔을 잡아 끌어 걸었다. 니 입에는 지퍼 달아줄테니까 그런 줄 알어. 나는 나름 내 무리에선 엄마 같은 존재라 자부하고 있었기에 이 아이들을 한데 모아 밥을 먹여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김성규 엄마, 규마미.
"야 김정림 쪼다 새끼야 핸드폰 쳐보지 말고 앞에 봐."
"아, 예."
"진태현 여자들한테 추파 날리지마."
"내가 뭘? 그냥 그윽한 눈빛 교환이야."
지랄하고 있네. 언뜻 지나가다 본듯한 긴 생머리의 여자애가 얼굴을 붉히곤 옆에 있던 친구와 지나갔다. 느끼한 표정으로 위아래 스캔 하던 진태현은 이내 여자애가 들어가는 반을 확인하곤 고개를 돌렸다. 야, 작작 좀 해. 몇 명째냐 올해만 해도. 어깨를 으쓱하는 그를 한심하게 노려봐주곤 지혁의 팔에 손을 올렸다. 늘 이렇게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요즘 따라 묘하게 기분 좋았다.
"오늘 뭐 나오냐."
"강낭콩 밥, 과일, 육개장, 치킨샐러드, 치즈계란 말이."
"아싸, 육개장에 밥 비벼 먹어야지."
"아 수요일에 콩밥이 나오고 지랄."
누가 봐도 평화로운 남고딩들의 점심 그리고 평범한 남고딩들의 점심. 나는 이 삶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
오년 전 내가 열세 살, 그리고 명수가 열두 살. 그 해 여름날 우리가족은 할머니 집으로 휴가를 갔다. 부드러운 햇살과 따뜻한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가족에겐 더 없는 행복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서울인 우리집과 여주인 할머니 집은 그리 가깝지 않으면서도 가까운 탓에 일년에 열번 남짓 방문했지만 긴 휴가를 목적으로 가는 것은 일년 중 한 번 뿐이였다.
그런데 명수가 사라졌다.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나가신 후 마당에서 명수와 강아지랑 놀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보니 명수는 감쪽같이 사라진 후 였다. 어린 나는 바로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다. 뒤쪽에 바위산이 하나 덜렁 있는 시골이라 찾기도 쉽고, 아마 할머니와 밭으로 나간 부모님을 따라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면 죽어 김명수! 오히려 나를 버리고 나간 명수에게 신경질을 낼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명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님이 들어오는걸 보고 명수에게 고나리를 먹이려 달려나갔지만 집으로 들어오는 건 할머니와 부모님뿐이었고, 명수는? 하고 묻는 엄마를 보며 덜컥 겁이나 울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난 존나 좆같았던 것 같다.
'명수...엄마 명수가 없나 봐...나, 난 명수 잘 보고 있었는데, 화장실을 내가...명수가...'
나 때문일까봐, 명수가 없어진 게 나 때문일 까봐 횡설수설 책임 회피하기 바빴었다. 혹시 내가 아이스크림을 명수보다 하나 더 먹어서 명수가 집을 나간 걸까? 아님 저번 주에 내가 명수의 로봇을 빼앗아서?
밀려들어오는 명수의 부재에 어린 나는, 그냥, 그냥 무서웠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가족은 이 주 동안 할머니 집에 더 머물며 명수를 찾았다.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 또한 명수를 찾지 못했다.
'흔적도 하나 없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된다, 경찰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말이 안됐다. 어린 아이가 어딜 갈 수 있냐고, 정말 흔적은 커녕 발자국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그 길로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서던 경찰이 우리에게 말했다. 정말 인력을 총동원해 찾지 않아도 되냐고, 이런 기묘한 사건은 많은 지원이 따를 거라고. 엄마는 거절했다. 어린 나 때문에, 성규가 놀랄 거에요. 명수를 끊어낼 수 있을만큼 우리는 명수의 색이 빛 바래가는걸 느꼈다. 집에 도착한 후로 엄마는 말이 줄었고, 아빠는 담배를 시작했다.
그리곤 우리가족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명수 빼고.
-
이번 여름엔 할머니 집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오 년 전 이후로 처음으로 보내는 할머니 집에서의 휴가. 나는 설렘과 동시에 두려웠고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듯했다. 전날 밤. 엄마는 짐을 풀었다 다시 쌌다를 반복했고, 아빠는 요즘 뜸하게 읽던 신문을 한 뭉치 들고 들어왔다. 어느 샌가 낯설어진 장소,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 집 안의 할머니 모습, 나이 들어 죽어버렸지만 명수와 놀던 강아지의 새끼, 전과 다름 없는 부드러운 햇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탁, 풀려 부모님이 성묘를 간 사이 평상에서 잠이 들었다.
악몽이였을까? 아니, 악몽은 아니다. 명수가 나왔다. 없어졌을 때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의 명수가. 어떤 곳에 홀로 서있었다. 꿈속에서도 난 차마 명수를 불러 돌려 세울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홀연히, 명수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깼다. 어쩐지 싸해져 닭살이 올라온 팔뚝을 괜히 쓱쓱 문지르곤 평상에 몸을 비틀어 엎드렸다. 막상 사라지는 명수를 보고나니 더욱 무섭거나 그렇진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뭔가, 곧. 그런... 느낌?
"...아!"
불현듯 꿈 속의 장소가 떠올랐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할머니 집 뒤쪽에 있는 바위산 동굴과 할머니 집이 이어진 작은 골목길 입구가 배경이였던 것 같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내 촉이 말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보라고, 네가 찾는 어떤 것이 그곳에 있노라고. 내가 찾는게 뭔데?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난 무엇인가에 홀린 듯 겉옷을 입었다.
-
찬찬히 걸어가서야 다다른 곳이 꿈에서 본 그곳이라고 나는 확신 할 수 있었다. 윽, 퀘퀘한 냄새... 워낙 산골인지라 이곳을 지나다니는 생명체라곤 가끔가다 산짐승이 다인듯했다. 내가 언제부터 꿈을 믿었더라,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괜히 바보가 된 기분에 보는 사람도 없지만 머리를 주먹으로 두어 번 콩콩 쳤다. 블랙홀 같이 까만 동굴 속에 등골이 오싹해져 발걸음을 돌릴려던 참이였다.
-형.
동굴 안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지? 귀신? 평소에도 공포영화는 커녕 무서운 이야기도 못 듣는 나는 그 이상한 꿈을 믿고 이곳에 오는 게 아니라고 일 초 만에 확신 할 수 있었다. 에이 씨발 괜히 왔어...
-형.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성규형, 이거 봐!
"....?"
-형?
정체불명의 동굴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 분명 명수의 것이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머릿속으로 온갖 좋은 것들(잘생긴 것, 예쁜 것, 엄마 아빠 명수, 천사님, 핸드폰 등) 을 떠올리며 동굴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귀신이면 어떡하냐... 하필 이 산은 귀신산이라고 동네 어르신들이 바위산 출입을 극구 금지하고 있던 산이였다.
"아... 퀘퀘한 냄새..."
꽤나 깊숙이 들어 갔다고 느꼈을 때 즈음, 비좁아진 샛길을 막으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테이프들이 뜯겨 나뒹굴고 있었다. 이게 뭐야... 아무래도 이 테이프가 뜯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나마나 오 년 전 명수가 들어가려 뜯었겠지, 경찰이 뜯었거나. 전자라면 하여튼 새끼 호기심이 많아가지고. 손전등 대용으로 들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 시간은 확인했다. 오후 4시 40분.
아무리 봐도 작은 물 흐르는 웅덩이 밖엔 샛길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허무해진 나는 더운 덩굴 속 열기를 피해 웅덩이에 발을 넣었다. 이상하게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솔직히 평소였다면 입구도 못 들어갔을 텐데, 김성규 살아있네! 괜히 뿌듯해져 싱글벙글 웃다가 문득 꽤 지난 것 같은 시간에 휴대폰을 들었다.
4시 44분.
"동굴이라 그런가... 아무것도 안 하니 4분이 40분 같고 좋네."
그만 일어나 나가려 손을 털었지만, 나는 일어날 수 없었다. 변기 속 물을 내리면 물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처럼, 분명 발 하나 들어갈만한 깊이였던 웅덩이가 돌연 일어나려던 내 몸을 안쪽으로 깊숙이 빨아들인 것이다.
아, 씨발... 나 죽는 건가?
-
-이보시오.
아...천국인가?
-어이.
천사....?
-죽었나....?
죽어?
-어,어어?
죽긴...
-눈 뜬다!
"누가 죽어!!!"
고함을 지르며 일으킨 상체에서 뻐근함이 느껴져 인상을 썼다. 입,코나 귀에서 뜨끈한 물이 흐르고 콧구멍이 존나게 아픈걸 보니 천국은 아니구나. 코를 킁킁대며 둘러본 주위는 가관이었다. 놀란 듯 나를 쳐다보는 이상한 아저씨 세 명과,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제일 이상한 건 그들의 옷차림이었다. 어젯밤 새로 뽑은 노트북으로 밤새 정주행했던 해를 품은 달에 나오는 바로 그 옷. 한 명도 빠짐 없이 조선시대 옷차림의 사람들.
"어이구... 이보게 정신이 드나?"
"...누구시죠?"
"포졸이지, 보면 모르나?"
"포졸...그래요 포졸...나 참"
코스프레단인가, 저 뻔뻔한 표정.
"자네 이름이 뭔가."
"알아서 뭐하게요."
"이놈 말버릇 보게?"
"...김성규요."
엮여서 좋을 것 없다고 느낀 나는 그저 그들이 묻는 대로 답했다. 나이는? 열여덟... 약관이군, 부모형제는? 호구 조사해요? 뭐하는거야 진짜. 호구...무어라고? 호구조사...됐어요. 어느 나라 사람이오? 내가 딱 봐도 한국인처럼 안보이나, 작은 눈 때문에 일본인 처럼 보이나? 아니면 중국인?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한국사람인데요."
"한국...? 한나라...?"
나는 이때, 내가 역사시간에 항상 졸았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해야 했다.
"왜...왜이래요!"
"네놈은 첩자가 분명하렸다!"
"예? 첩자?"
나는 그렇게 옆에 서있던 포졸이라는 아저씨들에게 두 팔을 잡혀 끌려갔다. 뜬금없이 첩자라고 주목 받은 이 상황에 내게 더 황당했던 건 끌려가면서 본 풍경이었다. 빌딩이라곤 볼 수 없는 사극 드라마 속 시장 한복판. 정말이지 좆같군... 나는 생각했다.
-
그렇게 말로만 듣던 포도청에 끌려가는 동안 나는 인정했다. 나는 조선시대에 와있었다, 정말이지 좆같게도 현실이었다. 끌려가는 감각도 생생했고 못 볼 것 보듯이 나를 보는 눈들도 생생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현실적응이 빠를 줄은 정말 몰랐네 씨이바... 바둥바둥 거리며 반항하는 것도 지쳐 포기하고 날 이끄는 아저씨...그니까 포졸 두 명에게 내 몸을 맡겼다.
"오 씨발."
고운말 바른 말하기 캠페인 우수 참여자 김성규는 이미 동굴에 던져놓고 온지 오래였다. 바닥의 핏물이나 그 옆에 칼, 창들이 널려있는 포도청에 입성하려니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나왔다. 힘 뺀 몸에 불끈 힘을 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버둥거리며 비명을 난사했다.
"씨발 이건 아니지! 내가 뭘 잘 못 했다고!"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라며 후려친 뒤통수가 이제껏 내가 살아와 맞은 어떠한 충격보다 더 아파서 이대로 반항하다간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왠 소란인가?"
그때, 닫혀있던 포도청 건물의 문이 열리더니 선비의 옷을 입은 사내와 포도청의 높은 관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줄이 뒤따라나 왔다. 순간 꾹 닫힌 포졸 아저씨의 입을 이상하게 보다 발 끝에 두던 고개를 들어 문을 열고 등장한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박지혁...?"
감히 절친이라 부를만한 친구 지혁의 얼굴과 똑 닮은 사람이 고개를 비틀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주위는 고요했다.
-
안녕하새오 닝겐이애오 전글들은 무시해주새오 제 글이...아마 아님미다.
대충봐주새오 감사해오
주제는 욕쟁이 성규가 타임 슬립하여 사랑에 빠지는 코믹로맨스세드격정시대물입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