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남을 조심하세요.
CHAPTER 3 -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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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가세요."
꽤나 괜찮았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찾아온 주말, 평소보다 더 몰려오는 손님들에 정신없이 카운터에 서서 일하다 드디어 조용해진 내부에 종아리를 두드리며 의자에 앉으려 허리를 숙였다. 신의 장난인 건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편의점 앞에 멈춰 선 차에서는 상자들이 내려지기 시작했고 쉬기 위해 폼을 잡던 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기사 아저씨와 마주했다. 멋쩍은 웃음을 내보이며 숙이던 허리를 펴 물류 앞으로 다가가 오늘 들어온 상자들을 세어 봤다. 하나... 둘... 셋... 10 개? 이렇게 많은 물류가 들어오는 건 월초에나 있는 경우인데...
“오늘 좀 많죠?”
“네...”
소매를 걷어 물류 상자를 편의점 내부에 옮겨 넣고 재고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한 손에 볼펜을 쥐고 수량에 맞게 왔는지를 체크하며 몇 분 동안 정리만 했을까, 끝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상자에 허리를 젖히며 작게 탄식을 하던 중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발로 상자를 툭 차며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세...”
“누나, 저 왔어요.”
제집을 드나들 듯 하루도 빠짐없이 오는 김정우다. 오늘은 안 그래도 바쁜데 귀찮게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밀린 정리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편의점 내부를 둘러보다 내 쪽으로 와 오늘 들어온 삼각김밥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김정우에게 내려 놓으라고 말을 했지만 자기가 사면 그만이라며 어깨를 으쓱인다. 처맞는 말만 해대는 김정우에 무시를 하며 삼각김밥을 채가자 입술을 삐죽이며 쌓인 물류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이거 할 줄 알아?”
“네. 알바 잠깐 했었어요.”
“그럼 이것도 해.”
“명령하는 거예요?”
“부탁하는 거지.”
“강압적인 말투잖아요.”
“그럼 하지 말든가”
“할게요. ㅋㅋㅋㅋㅋ 아, 누나 저 친구 오기로 했는데.”
“...? 여기가 무슨 카페인 줄 아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여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들어온 인영에게 물었다.
“정재현?”
“누나, 여기서 뭐 해요?”
“뭐야? 아는 사이야?”
우리는 마치 삼각관계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를 번갈아 가면서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되물었다. 나 또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고는 상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김정우야 뭐... 그냥 같은 건물 사는 남자라 정리를 하고 정재현은 같은 과 후배로 안 지는 1 년 정도 됐다. 근데 이 둘이 아는 사이라니? 어울리지도 어울릴 필요도 없는 조합에 정재현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무슨 사이인지 묻자 몸을 움츠리며 말하는 정재현이다.
“아, 정우 우리 과 편입 온 편입생인데 몰랐어요?”
“내가 3 학년이 아닌데 어떻게 아는데!”
“아, 아! 알겠어요! 아파요!”
김정우와 또 한 번 엮어진 관계에 뭐 이런 상황이 다 있나 생각을 하며 피곤해진 기분에 어서 빨리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재현과 내가 아는 사이라는 것에 소외감을 느낀다며 입술을 삐죽이는 김정우다. 축 처진 모양새가 퍽 강아지 같은 모습에 머리카락 사이로 귀가 삐져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김정우의 머리를 만지자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뭐... 나도 놀라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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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저희 이제 갈게요.”
“엉. 잘 가.”
“난 간다고 안 했는데?”
“정재현, 김정우 데리고 가라.”
“네 ㅋㅋㅋ 졸업식 때 봐요, 누나.”
“너 누나 졸업식도 가?”
물류 정리를 도와준 두 명이 가보겠다며 인사를 하고 나가자 조용해진 내부에 왠지 모를 허함을 느끼고 빈 상자를 쌓아 문밖으로 밀어 놓았다. 이제 좀 쉬어 볼까 하는 마음에 카운터로 가 앉으려는데 처음 보는 휴대폰에 잠금화면을 켜 보자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보였다.
"김정우 휴대폰인가?"
익숙한 얼굴로 웃고 있는 김정우의 휴대폰을 보고 넋을 놓고 있다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사람이 생각이나 급히 문을 잠그고 주위를 둘러봤다. 키만 멀대 같이 큰 두 명이 다리를 휘적이며 걷는다는 게 보통 사람들과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미 저 멀리 가 있는 정재현과 김정우를 있는 힘껏 불러 보았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두 명이다. 하여튼 도움 되지 않는 저 귀여운 두 명을 어떻게 죽일까 생각을 하다 점점 더 멀어지는 김정우에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생전 뜀박질이라고는 1 도 몰랐던 내가 김정우 때문에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운동이라면 칠색 팔색하는 내가 달리기라니... 잡히면 욕 한 바가지 내뱉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갑자기 시작된 달리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몸이 결국 뚝딱거리며 목 끝까지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헉헉대며 김정우와의 거리를 좁혔을까, 귓속으로 들려오는 대화 내용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늦췄고 내 몸은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너 근데 이름누나 좋아하냐?"
"그게 누군데?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왠지 모르게 저릿한 가슴에 답답함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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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정재현 |
김정우 휴대폰 나한테 있으니까 이따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 |
짧은 용건만 남기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한 마디가 뭐라고 몇 시간 째 넋을 놓고 있는 건지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호의를 관심으로 착각한 건가... 참, 사랑에 빠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평소 김정우에게 툭툭 내던지는 말투에 선을 그었던 건 나인데 상처를 받는 것도 나 자신인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김정우에게 스며들었나 보다. 사랑이라 확신하진 못해도 이렇게 아린 것을 보면 싫지만은 않았던 건가, 마음이 시린 건지 좁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이 시린 건지 으슬으슬 떨려오는 몸에 벗어 둔 패딩을 입었다. 교대 시간에 맞춰 온 알바생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고 편의점 밖으로 나가자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눈은 질색인데... 참 마음에 안 드는 하루라고 생각하며 몇 발자국 내디뎠을까, 얼마 가지 못하고 앞을 막아서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언제부터 서 있던 것인지 코가 새빨개진 김정우가 눈처럼 깨끗한 미소를 띠며 웃어 보인다. 차가운 손에 쥐어진 손난로를 내 손에 쥐여주며 또다시 호의를 베푸는 너에게 나는 다시 한번 착각의 늪에 빠진다.
"누나 안 추워요? 이따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눈도 오고 올 때 위험할 거 같아서 왔는데..."
나는 아주 깊고 짙은 이 늪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