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잠에서 깨버렸다. 퀸사이즈에 침대에 혼자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한파가 집안에서도 도는지, 공기가 차가웠다.
버릇처럼 옆을 바라봤을땐, 권지용은 없었다. 늦잠 많은 사람이 왠일로 일찍 일어나 어디를 간건지. 왜 말도 없이 간건지, 난 알 방법이 없었다.
잘 개어진 수건을 가져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권지용은 오지 않았다.
김치찌개가 놓여진 반대편 밥그릇과 수저가 권지용의 부재를 나타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눌러 보았지만 역시나 집에서 울렸다.
핸드폰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권지용의 버릇이,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혼자 집에 남아있는 일이 드물었던 난 점점 초조해졌다. 밥을 한숟갈도 뜨지 않은체, 고픈 배를 무시하고 권지용이 올때까지 기다렸다.
눈을 뜬지 4시간이 지나고 있는데도 권지용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함 때문에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겠어서, 방안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형의 드레스룸까지 걸음이 닿았고, 내가 드레스룸에 올 걸 알았다는 듯 편지가 보란듯 접혀져 있었다.
「미국으로 간다. 안올거야.
집은 계속 지내던가 그러기 뭐하면 알아서 해라.
더이상 널 사랑할 자신이 없다. 지켜줄 자신도 없고.
책임지기로 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연락 할 방법 없을테니깐 잊어라.
남은 짐은 사람 시켜서 가져갈테니깐 두고.
있을 곳 없으면 지태한테 가봐.
이제 길게 못쓰겠다. 잘있어라.
- 박지태 010 7527 3350」
눈으로 편지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느껴졌다. 종이 쪼가리가 바스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다리에 자연스레 힘이 플려버려 풀썩 주저앉았다. 무심코 옷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아끼던 옷들은 그대로였다.
단지 모자 몇개와 선글라스 몇개, 옷 몇벌만 챙겨 도망치듯 미국으로 간 것 처럼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스탠딩 옆에 엎어진 액자를 바로 새웠다. 안에는 사진이 없었다.
가져간건지, 버린건지. 어찌됬건 권지용이 해결했을 추억이였다.
간신히 룸에서 나와 쇼파에 앉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가 날 떠난 이유와, 이제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걸까.
눈물이 이상하게도 고이지 않았다. 그냥 어안이 벙벙했고, 다가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형은 그냥 잠시…. 잠시, 일탈일 것이다. 그래. 형은 반드시 돌아올거야.
한참을 내 자신을 세뇌시키고, 종이에 휘갈겨 써있던 번호를 눌렀다.
몇번 수화음이 가기도 전에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권지용의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형….”
[승현이?]
“알고…있었어요?”
[승현아…. 정말 너한테는 내가 할말이 없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에요? 지용형은 왜 간거에요? 지금 형은…, 어딨는거에요?”
[일단 집 정리 대충 하고 형 집으로 와. 아는데로 말 해줄테니깐.]
일단 와서 말하자는 지태형의 말에 난 전화를 끊고, 어제처럼 어지럽게 정리가 안 된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자 둘이 사느라, 청소를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잘 몰랐지만 집안은 엄청 더러웠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면 내가 다 정리를 했다고 생색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널려있는 옷을 하나하나 주워들었다.
하나하나 권지용이 사다 준 옷, 같이 쇼핑을 나가서 고른 옷, 커플티. 온통 권지용에 관한 옷들이였다.
문득 현실이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에 청소를 하다 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난 정말 어쩌지. 한숨을 푸욱 쉬며 머리를 쓸었다.
둘러보니 의자에는 어제쯤 권지용이 입었던 청바지가 걸려있었다. 그 밑에는 버릇처럼 벗어둔 양말도 널려있었고, 하고 갔던 모자까지 버려져있었다.
다만 내가 사준 싸구려 니트는 없었다. 챙겨간건지, 버린건지, 역시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어제쯤 빨간 니트를 입고 있었다.
널부러진 옷들 사이에, 내가 사준 그 옷을 집었을 권지용을 생각하자 눈물이 고여버렸다.
고개를 팩 돌리자 권지용의 침대도 보였다. 내가 골라준 초록색 시트와 권지용이 골른 베게 두개가 눈에 익었다.
예전에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집 안에는 온통 내 손길과 권지용손길이 깃들여 있었다.
함께 집안 용품들을 고르며,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이 생각나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황급히 닦았다.
내가 울 필요는 없잖아. 형은 곧 돌아올거야. 몇번을 되새기며 안방에서 간신히 나왔다.
주방에 차려놓은 찌개가 냄새를 풍기고 있었지만, 보면 웃으며 밥을 떠넘기던 권지용이 떠오를까 눈을 감고 신발을 챙겨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