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亂) 그리고 난(暖)
03-1 화월대군의 진심
♬ 이 노래를 들으면 좋아요 " 김수현 - 그대 한 사람 "
나에겐 하나뿐인 여인이 있었다. 어렸을 적엔 표현이 서툴러 내 연심을 장난으로 받아드려 나를 싫어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좋아해서, 사랑해서 더 장난치고 싶었다. 나는 그 아이를 메주라고 불렀다. 콩을 다져서 모양을 낸 것을 메주라 칭한다고 어머님이 알려주셨을 때부터 그 아이를 메주라고 불렀다. 그 메주가 단지 못생겨서 메주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내가 음식으로서의 메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걸 그 아이는 알지 못 했을 것이다. 어릴 적엔 둘도 없는 벗이었겠으나 운명이 틀어지기 시작한건 아버지의 결심이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그 결심은 그 아이의 가문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했다. 아버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영훈이, 선우,연희까지 모두 잃었다. 장난스런 성격 탓에 친구라곤 그 셋밖에 없었던 나에게 이젠 한 명의 벗도 남지 않았다. 아버지덕분에 얻은 권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정치에 고단한 내 몸을 위로해줄 친구 한 명 없는 이 삶이 너무 억울했다. 내 마음을 진실되게 고백했더라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 벗들을 챙겼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어느 날은 그 아이를 장에서 보았다. 옛 모습과 달리 낡은 천을 덧대어 입은 그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내 모든 재산을 그 아이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비를 시켜 비단옷을 사오게 하고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급히 말을 타고 달려갔다. 나를 본 그 아이의 눈빛은 반가움보단 당황스러움이 가득했고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며칠 전 군사문제로 의논할 것이 있어 판서영감을 만나러 기생집에 잠깐 들렀을 때 그 아이를 또 만났다. 그 아이는 이 나라를 세우기까지 내 장난스러운 성격을 숨기고 냉철한 척, 차가운 모습을 유지했던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게 했다. 메주라는 별명을 부르며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장난을 쳤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나의 어릴 적 책을 읽고 무예를 같이 배우던 그 아이는 없었다. 그저 내 앞에는 나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은 몰락한 가문의 한 여식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바라던 그 아이를 보지 못 한다는 서러움에 순간 화가 나서 막말을 퍼부었지만 그 아이가 나를 원망의 눈빛으로 쳐다보자 바로 후회했다. 이게 아닌데, 잘못은 그 아이가 아니라 내가 한 것인데 또 나는 상처만 주었구나. 연희야, 어떻게 하면 그 때의 너를 볼 수 있는 것이냐. 나는.. 아직 그 때의 너를 잊지 못하였다.
현생에 치여 늦게 왔는데 분량이 너무 짧습니다.. 다음엔 꼭 길게 가지고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