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새로운 시작...?
"나 지금 되게 용기내고 있는건데... 여주씨, 저랑 할래요? 데이트."
"네?"
너무 갑작스런 데이트 신청에 아무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자,
강준 선배는 "너무 부담스러운가....? 부담 갖지 마요."라며 선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아... 저... 주말에...."
"그날, 저랑 만나서 데이트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여주씨 시간 양보 못할 것 같네요."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뜬금없이 나와 주말에 데이트하기로 했다는 김선호.
내가 김선호를 짝사랑하던 시절, 이런 상황 한 번쯤 상상해 본 적 있다.
김선호가 내게 먼저 데이트 신청하는 모습과 다른 제 3자가 내게 데이트 신청했을 때,
이를 질투하며 본인과 데이트하기로 했다며 없는 약속 만들어내는 그런 모습.
그때 였으면 지금 이 상황이 설레고, 두근거리고, 행복했을 테지만...
지금 현재 나는...
"내가.. 너랑... 주말에 데이트를...?"
"김여주씨 옆자리도 양보 못할 것 같고..."
"여주씨, 그날 시간 안되면 다음에 데이트하죠. 저 먼저 들어가볼게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는 강준 선배.
"선호씨도 먼저 들어가세요. 저 잠깐 바람 좀 쐬고 갈게요."
잠깐 바람 좀 쐴 겸 근처 공원까지 걸어왔다.
오늘 하루 정말 정신없이 보낸 탓인지...
아니면 술기운 떄문인지...
쌀쌀한 바람과 거리의 분위기, 약간 몽롱한 정신에 피로가 더해져
그냥 하염없이 걷다가 잠깐 주저 앉았다.
"그날, 저랑 만나서 데이트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여주씨 시간 양보 못할 것 같네요."
"김여주씨 옆자리도 양보 못할 것 같고..."
"그때나 좀... 나 좀 봐주지... 왜 이제와서..."
내가 선호에게 좋아한다는 마음을 완전히 숨겼던 것은 아니다.
그 누가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마음을 완전히 숨길 수 있겠는가...
나도 나름 티도 많이 내고,
주변에서도 많이 밀어줬었다.
김선호 또한 이런 내 마음을 알고 내게 '난 너를 친구로서 참 좋아해'라며 먼저 선을 그었었다.
내 마음을 그에게 제대로 고백하기도 전에 차였던 내가 어떻게 정식으로 고백할 수 있었겠어...
당시의 나는 그와 친구로 계속 이어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고백도 못 하고 내 마음을 혼자 삭혔었는 데...
그와 친구로도 남지 못하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간 지금.
이제와서 나를 양보를 하지 못 한다고?
물론 지금 나를 호감을 가지고,
선호가 그렇게 말햇던 것은 아닐거다.
그런 걸 아는 내가 선호의 그 한 마디에 순간적으로 두근거리고 설렜다는 사실이...
내가 아직까지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난 분명 널 잊었는데...
이제 너에게 그때의 설렘은 다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복합적인 생각과 술기운이 합쳐져서 그런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선호를 다시 마주할 일이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좋았던 추억, 나의 10대를 예쁘게 포장할 수 있었던 추억이었다.
그렇게 추억으로 두면 예쁜 추억으로 남을 그가 비즈니스로 다시 만나게 되다니...
꿈으로도 꾸기 싫은 상황이다.
그렇게 꿈으로도 꾸지 않았던 상황이 바로 오늘 이뤄졌다.
"하 오늘 진짜 최악이다..."
"뭐가 그렇게 최악인데"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던 걸까...
선호는 예전부터 헷갈리게 하는 뭔가 있다.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뭔가 그런...
"놀랐어? 아니...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길래... 뭐 하느라 안 오는 건가 싶어서"
"내가 오든 안 오든..."
"혹시나..."
"혹시... 뭐? 걱정이라도 한거야?"
"어? 응. 뭐 그렇지.. 들어가자 춥다."
선호야.. 넌 내가 아무렇지 않겠지만,
나는 이런 너의 행동들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워...
그렇게 걱정됐다는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아무 행동도 하지마.
나는 그동안 너를 다 잊고, 너에 대한 마음이 아무것도 안 남았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랬던 내가 너에 대한 모든 감정과 기억을 다 잊고 마음을 정리한 것들이 전부 없었던 일인 것마냥
그저 내 마음을 모른 척 넘기고 도망쳤던 것 같단 말이야.
"그래. 들어가자."
들어가서... 빨리 자리를 빠져 나와야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 내 혼란스러운 감정은 그냥 순간의 감정이었던 것처럼...
다 잊어버려야지..
"왔어요?"
"네? 네..."
뭔가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진 우리 테이블.
강준 선배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 것 같은건... 내 기분 탓인가...?
"선호씨 다시 들어오길래... 여주씨 혼자 바람 더 쐬고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둘이 같이 오네요...?"
"아.. 네.. 어쩌다 보니.."
"뭐... 여주씨가 좀 걷고 싶다고 해서 같이 좀 공원에 갔다 왔습니다. 근데 그런거까지 상사한테 다 보고드려야 하나요?"
"아뇨. 그런 의도로 물어본 건 아니었다만... 그렇게 들렸을 줄은 몰랐네요."
"뭐... 거기까지 생각 못하셨다니. 유감이네요."
김선호 쟤는... 갑자기 왜그러는거야...?
취한 것 같진 않는데
오늘 첫 출근이면서 내일 어떻게 출근하려고...
"여주씨도 그렇게 느꼈다면... 죄송합니다."
"아... 전..."
"여주씨. 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집 가죠."
"아니. 선호씨 잠깐. 강준선배 아니..."
내가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선 김선호.
왜 자꾸 너 맘대로니.
나 진짜 내일 강준 선배 어떻게 보라고...
"김선호 잠깐..."
내 말을 못 들은건지.
아니면 내 말을 못 들은 척 하는 건지.
잡고 있는 손에는 힘이 점점 더 들어가고,
뒤도 안 돌아보고 무작정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김선호.
순식간에 이뤄진 이 상황도 이해가 안 가는데...
지금 김선호의 행동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
분명 김선호의 입사 환영회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회식에서
본인의 환영회인 척 취한 팀장과 다른 팀원들.
김선호가 오기 전 강준 선배와 내가 있는 테이블 또한 그 분위기에 맞게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 갑자기 자리에 합성한 김선호.
갑삭스런 데이트 신청과 동시에 의도치 않은 거절.
그리고 지금 현재.
나는 평소에도 내 생각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지만...
만약 누군가 내게 살면서 가장 최악이었던 날이 있었냐 물어본다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오늘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선호. 제발 내 말 좀..."
점점 손에 피가 통하지 않고,
김선호는 어딘가 계속 데리고 가는데...
"야! 김선호!"
"어? 아.. 미안..."
드디어 내 손을 놓아주는 김선호.
"하... 너 진짜 왜 자꾸..."
"여주야"
"내 말 끊지 말고. 나 말 좀 하자. 아까 전 부터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미안... 내가 뭐 어떻게 됐었나 봐... 오늘 너무 내 멋대로였지?"
"그걸 아는 애가 그래?"
김선호의 다정한 목소리 탓인지...
아니면 최악이었던 오늘 하루 때문인지...
평소 눈물이 없던 내가 그간 쌓였던 설움이 한 번에 복받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런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하는 김선호다.
"여주야... 울어?... 아니.. 아 내가 미안해. 울지마 내가 미안... 아니 내가 그럴려고 그런건 아닌데."
"너... 진짜... 나한테 왜그러는거야..."
"미안해... 내가 미안해... 다 미안해... 잘못 했어. 울지 마 여주야..."
계속되는 김선호의 사과
김선호가 사과를 하면 할 수록 내 감정은 점점 더 올라왔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왜 내 앞에 나타나서. 나한테 왜 그러는건데... 왜 나 그동안 잘 지내왔단 말이야..."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미안해... 그러니까 여주야"
"예전부터 너는 항상 네 멋대로였어."
"어...?"
한 번 터진 눈물과 입은 멈추지 않았다.
"아까 전도 그래. 내가 혼자 있고 싶어서 너 먼저 들어가라 했잖아. 나 혼자 바람 쐬러 공원 좀 걷다 들어간다고 했잖아."
"아니 그건... 너가.. 너무 안 들어 오ㄴ..."
"내가 안 들어오면 바람 좀 오래 쐬고 싶구나 하고 혼자 있게 냅두면 안되는 거였어? 안 들어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겠지."
"너가 걱정되니까."
"너가 왜 날 걱정해. 왜? 너가 뭔데 나를 걱정해."
"친구니까..."
"그 놈의 친구... 예전에도 지금도 넌 항상 친구라는 이유로 항상 네 멋대로 였어."
제발 그만 말하자...
머리로는 그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입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처럼 계속 터져 나왔다.
"나 내일 강준 선배는 또 어떻게 봐. 너가... 무슨 자격으로 강준 선배한테 그렇게 말해?"
"..."
"너가 뭔데 내 일터에 갑자기 나타나서 내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들 전부 망쳐 놓는 거냐고."
"김여주"
이렇게까지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하.. 선호야. 나에게 넌 정말 좋은 친구였고, 너와 함께 했던 그 순간이 정말 좋았던 추억이었고, 너를 항상 좋게 생각해왔는데."
"너..."
"근데 오늘은 정말 최악이야. 선호야."
"....."
"내일 보자."
어차피 내일도 봐야하는 데 더 이상 말했다간 나나 김선호 둘 중 한명이 회사를 떠나야 할 것 같아 자리를 피하려 했다...
피하려 했는데...
"잠깐만.. 여주야... 이 얘기.. 지금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오늘 내가 내 멋대로 행동한 거... 진짜 미안해. 나도 이럴려고 그런 게 아닌데..."
"미안하면... 제발... 이제 그만. 내일 얘기하면 안될까?"
"아니. 지금도 내 멋대로인 거 알지만. 이 얘기를 지금 안 하면 너랑 나랑 진짜 친구로도 못 남을 것 같아서 그래. 맞아. 오늘 내가 너무 내 멋대로 행동했어. 나도 지금 반성하고 있고. 그런데..."
"진짜 넌... 끝까지..."
"핑계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핑계 듣고 싶지 않아 나는"
"여주야... 한 번만..."
어느 새 김선호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난 또 왜 그런 김선호의 모습에 약해지는 건지...
"나와 함께 했던 그 순간이 정말 좋았던 순간이라고 그랬지?"
"..."
"나한테도 그래. 넌 내 첫 사랑이었고, 어쩌면 아직도..."
"잠깐, 뭐라고...?"
저건 거짓말일거다.
김선호 너가 나를 좋아했을 리가 없어.
이건 내가 확신할 수 있는데...
"너는 몰랐겠지만. 난..."
"너 지금 말 잘해야해. 너 지금 말실수 한거야. 너가 나를 좋아했다고? 말도 안돼."
"너도 알잖아. 나 거짓말 안 하는거... 없는 얘기 안 지어내."
그건 맞다.
그동안 김선호는 예의상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었던 사람이기에.
내가 김선호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오늘 내 멋대로 행동했던 건... 핑계일 수 있겠지만... 그동안 다시 만나지 못 할것 같았던 내 첫사링인 너와 재회해서 내가 너무 들떴었던 것 같아."
"..."
좀 빨리 너의 마음을 내게 표현해주지...
왜 이제와서...
"그리고... 너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마음이 너무 앞서 갔었나봐."
"김선호"
"미안해... 나도... 아니.. 하. 미안해..."
진짜 오늘 하루.. 정말 길다.
오늘 하루...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없고,
갑작스런 일들만 가득이다.
"네게 부담을 주려고 하는 말은 아닌데... 아니... 오늘 너한테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거도 아닌데"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지 머리를 계속 쓸어 넘기며 말을 헤메는 김선호.
"오늘 진짜 미안해... 내가 너무 마음이 앞섰던 것 같아."
근데 선호야...
너의 그 말... 차라리 하지 말지.
차라리 안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오늘 내게 했던 행동들을 수습하려고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냥 또 한 번의 상처로 다가오는 것 같아.
"선호야 미안. 지금은 너가 무슨 말을 해도... 좋게는 안 들리는 것 같아.
오늘 하루 네 멋대로 행동했던 건 사실이고. 너로 인해 잘 다니던 회사 생활에 어쩌면 살짝의 금이 생겼다고 생각 들기도 해.
나중에 다시 오늘을 회상 했을 때 그때는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 나한테는 오늘 하루 정말 최악이었어. 너에게 상처가 됐다면 정말 미안해.
오늘은 더 이상 내게 해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나 먼저 집 갈게."
나는 그대로 선호를 두고 자리를 피했다.
내가 그동안 김선호를 두고 먼저 자리를 떴던 적이 었었던 가.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오늘이 처음이다.
항상 김선호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가는 모습 다 보고 자리를 떠났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알 수 없는 기분을 지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주야. 오늘 하루... 정말 미안했어. 조심히 들어갔지? 내일 보자.]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나와 침대에 눕자마자 날라온 문자 한 통.
김선호였다.
김선호의 문자를 보고 답장을 하려 했으나
답장을 하면 또 끝이 없을 것 같아... 그냥 보고 폰을 덮었는 데.
'띠리리링'
폰을 덮어 두고 다시 자려고 눈을 감자마자 울리는 벨소리.
하... 김선호인가...?
폰 확인도 안 하려고 했는데 이 궁금증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름 김선호이길 바라며 폰을 봤지만
폰 화면 속에 뜬 이름은 다름 아닌 '강준 선배'
"잘 들어갔어요...?"
오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한 없이 다정한 목소리의 강준 선배.
이런 다정한 목소리에 미안함은 더 커졌다.
오늘 같은 날은 차라리 내게 화냈으면 하는 데...
다른 후배들에겐 어쩌면 단호하고 쌀쌀한 선배이지만,
내게 만큼은 단 한 번도 쓴 소리 없는 다정한 선배이다.
그런 선배의 목소리 듣자마자 겨우 달랬던 내 감정이 다시 몽글몽글 올라왔다.
"네. 방금 들어왔습니다."
"다행이네요... 오늘 고생 많았어요. 여주씨. 다른 생각하지 말고, 푹 자요. 또 잡생각에 밤새지 말고"
선배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잘 아는 걸까.
최악이었던 하루였기에...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은 매우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
그게 바로 오늘이다.
"잠이 너무 안 온다 싶으면... 난 괜찮으니까 전화해요. 바로 여주씨 있는 곳으로 갈게."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던 걸까?
강준 선배는 아무 의미 없이 평소처럼 나를 배려한 말이었겠지만
저 한 마디가 그 어떤 말보다 내게 크게 와 닿았다.
"선배...하.. 아니에요."
"지금 갈까요?"
"선배도 피곤하실 텐데..."
"아니 난 괜찮으니까. 내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여주씨에게 집중해봐요."
"선배만 괜찮으시다면... 오늘 하루만 신세져도 괜찮을까요...?"
"그러면 지금 잠깐 창문 열어 주실래요?"
"네...?"
선배의 말에 급하게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보니...
"나... 필요 없을까봐... 걱정했는 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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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들고와서 죄송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