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너무 수고 많았다. 휴가 동안 건강하게 지내다가 다음 시즌에 보자- 해산!!!!!"
감독님의 말에 선수들은 저마다 유니폼과 물병을 있는데로 집어 던지며 포효를 했다. 아니 뭐 이건 미친놈들도 아니고.. 휴가라고 저렇게 좋아하다니.
하긴 이번 시즌이 유독 힘들긴 했다. 잘 풀리는 게임도 없었고 맨날 팬들한테 욕만 먹고.. 어쨌든 끝이라니까..
락커룸에 들어선 선수들은 다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싱글벙글이다. 마하의 속도로 가방을 챙긴 선수들은 저마다 인사를 하며 락커룸을 빠져나간다.
"형 다음 시즌에 뵈요!!"
다른 녀석들 보다 느긋하게 짐을 챙긴 동료 하나가 마지막으로 락커룸을 나가며 미친듯이 손을 흔들었다.
욕 먹고 축구하면서 휴가 받으니까 그렇게 좋냐- 하긴 이제 지옥 훈련 같은것도 1달 간은 면제니까.. 근데 나는 왜이리 피곤하기만 하냐.
다들 술마시고 여행하고 늦잠자고 못 먹었던 음식 다 먹고 여자친구도 만나고 부모님도 만난다는데 난 이번 휴가는 그냥 계획없이 뒹굴거릴 계획이다.
느릿느릿 짐을 싸고 락커룸을 나와 역시 또 느릿느릿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아 참, 집에 먹을게 없구나.. 오랜만에 마트나 들러 한 달 먹거리 왕창 사가야지. 그나저나 오늘 따라 왜 이리 피곤하냐-
마트에 도착해 조수석 뒤 수납칸에서 검은 모자를 꺼내 푹 눌러썼다. 에이 먼지- 백미러를 한번 보고 차키를 가지고 내렸다.
주머니를 뒤져 100원 짜리 동전을 넣고 카트를 뽑았다.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골라 넣다 보니 죄다 인스턴트다.
아 뭐 어때- 귀찮으니까 그냥 다 쓸어담자. 밥, 국, 카레, 짜장, 주전부리까리 모조리 카트에 넣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한다.
카드를 내밀으니 귀찮게시리 별걸 다 물어본다. 할인카드있으세요, 적립카드있으세요, 회원카드있으세요, 만들어드릴까요, 현금영수증해드릴까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박스에 담아갈까 생각하다가 그 마저 귀찮아서 봉투를 달라고 했다. 쪼잔하게 20원이나 받아.
두 손 가득한 봉투를 대충 차 뒷자석에 던져놓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인데 피곤해서인지 왜이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두 손 가득한 봉투를 들고 드.디.어 집으로 들어왔다.
밀려오는 피로감에 아무대나 봉투를 놓고 쇼파 위에 널브러졌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야? 김치찌개? 미쳤나봐. 무슨 김치찌개야.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발길은 주방으로 갔다. 예전에 엄마가 사다놓은것 같기도 뚝배기가 가스렌지 위에 올려져있다.
마치 방금 끓인듯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식탁 위에는 밥, 찌개, 반찬이 예쁜 그릇에 담겨 있다. 엄마가 왔다갔나? 아닌데.. 올리가 없는데..
집 안을 다 뒤져 봐도 엄마가.. 아니, 그 누구도 왔다간 흔적이 없다. 귀식이 곡할 노릇일세.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숟가락으로 찌개를 한번 떠먹어봤다. 엄마가 끓인 김치찌개 보다 훨씬 맛있는데...? 헐... 나도 모르게 식탁에 앉아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먹는 집 밥. 허겁지겁 집어 먹고 왼쪽에 놓인 물까지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진짜 누가 한걸까.... 에라 모르겠다. 간만에 배가 따수니까 눈이 절로 감기네.
"으악!!!!!"
살짝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는데 훈련이 생각났다. 그리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는데 휴가인게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철푸덕 하고 쇼파에 드러누웠다.
잠깐.. 내가 지금 뭔가를 본것 같단 말이야...? 설마 귀신은 아니였겠지.. 아니 지금 아침인데.. 아침형 귀신도 있나?
실눈을 떴는데 보이는건 천장 뿐. 벌떡 일어나 인영을 봤던 식탁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는 기절할뻔 했다.
"허....? 으아아아아악!!!!"
무릎 위까지, 그리고 긴 소매의 하얀 원피스를 입고 그와 대비되는 아주 까만 머리를 한 여자 아이. 내가 소리를 지르며 나자빠지자 두려운 표정을 짓는다.
"뭐꼬!!! 니 뭔데 여기 들어와 있나!!"
거실 탁자에 부딧친 허리를 매만지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입술을 옴싹달싹하는데 말은 안한다.
내가 초면에 너무 소리를 질렀나? 있는데로 구겼던 인상을 조금 펴고 큼큼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와 우리 집에 와있노? 어제 저녁 밥도 니가 해논기가?"
톤을 낮춰 말하니 금새 풀린 얼굴. 앳되 보이는데... 제법 부드럽게 물었는데도 뭐라 말하려 입을 벌리다가도 금새 입을 다문다. 말을 못하는건가?
"말 못하나? 글씨는 쓰제?"
종이와 볼펜을 찾으려 서랍을 뒤적이는데 내 옷깃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그 아이가 고개를 젖는다.
"글씨 못쓰나? 아나 미치겠네.. 진짜 말 못하나?"
"말... 할 줄 알아요.."
"와 니가 여기 있나? 어제는 아무도 없었는데.."
"모르겠어요. 눈을 떠보니까 여기였어요.."
"니가 누군데?"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아이. 쇼파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결국 그 아이가 아는건 본인 이름 OOO 뿐이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듯 했다. 아니 뭐... 눈을 떠보니까 여기였다는데 뭘 알리가 없긴 하지.
"아침은 먹었나?"
"저기...."
가스렌지 위에를 가르키는데 어제와는 다른 냄비가 올려져 있고 식탁은 이미 셋팅이 되어 있는듯 하다.
"니가 한기가? 와- 오랜만에 집 밥 왕창 먹겠네-"
밥에 환장을 해서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겠다는 생각도 잊고 어제 저녁 처럼 또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니 밥 되게 잘하디. 내는 맨날 바빠가 이런거 못 먹는다. 기냥 여기서 살아라"
아까 쇼파에 앉아 얘기 할 때 부터 딱히 내쫓을 마음을 없었다. 그 말을 하고 OO이의 얼굴을 보니 활짝 웃는 얼굴이다.
"천천히 먹어요 아저씨이......"
이왕이면 오빠라 불어줬으면 하지만 내 나이가 몇인데 너한테 오빠라는 소리를 듣길 바라겠니. 그냥 빙그레 웃어줬다.
왠지 이번 휴가는 재밋어질것 같아.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지 뭐.
안녕하세요! 초고추장입니다! ㅎㅎ 박주영선수 망상으로 돌아왔어요!
이번엔 임팩트가 있거나, 전개가 빠르거나 하지 않고 소소하고 달달하게 연재할 생각입니다.
어제 텍파 신청 받는 게시글에서 제일 첫번째로 댓글을 달아주신 분께서 아저씨와 꼬맹이를 소재로 주셔서
한번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전작 보다 훨씬 달달하려나요ㅋㅋㅋ
이번에도 많은 관심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다음편으로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