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집이 좀 좁아요."
"응, 괜찮아."
나는 승현선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내 월세방에 들여놨다.
풀지않은 거대한 짐덩이가 있는듯한 기분이다.
내가 사는 이 곳은 작은 거실하나에 방이 두개인,
남자 혼자 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방이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이제 더이상은 그럭저럭 괜찮은 방이 아니라 그럭저럭도 못되는 그런 방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 거대한 짐덩이 때문이라고는 말 하지 않겠다.
어차피 공부라고는 2년전부터 때려치운 형편이라 공부방이라고는 없고 그냥 용도없이 아무거나 때려넣는 방 하나와
고등학생이라면 꼭 갖고싶어한다는 옷방. 세련되게 말하자면 드레스룸 하나와 디비져 자는 거실하나가 이 집의 용도다.
그 집의 용도는 이제 바뀌어서 내 방과 승현선배의 방, 그리고 거실(옆에 작게딸린 부엌도 포함)로 바뀌었다.
어차피 창고에는 별 거 없고, 옷방만 조금 개조하면 될 듯 하여 잠도 안자고 집을 뜯어고친 결과
옆방에서 닥치라고 민원들어왔다.
미안합니다. 닥치면서 할게요...
"다 했다!"
"시끄러워요."
"응, 닥칠게."
알면됐어요. 집을 다 뜯어고치니 시간은 새벽5시 반. 지금잠들어 봤자 학교가기 더 힘들어 질 뿐이다.
결국 우린 야식이나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선배, 나가서 떡볶이랑 어묵이나 사오세요."
"어엉-내가 왜-?"
"내가 이 집 주인이니까. 싫으면 나.."
"2인분씩 사오면 되지?"
오케이, 약점잡혔다. 앞으로 부려먹고 싶을땐 방빼라는 말로 입닥치게 만들어야지.
선배가 나가고 잠깐 심심해진 나는 선배 방이나 구경해볼 심산으로 한 번 들어가 봤다.
"뭐야, 의외로 별 거 없네?"
이 선배라면 분명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방 안에 들어가 있을것이다.
라는 상상을 해온 나로써는 약간의 충격을 안겨주기 충분한 방이었다.
그건 정말로 '방'이었다. 정상적인.
"그럼그렇지."
책상서랍엔 양갱이 한가득이었다. 그래, 이정도는 이해해주자. 최승현이니까.
"어, 이게뭐야."
잠시 책꽂이를 둘러보던 나는 몇 없는 책들 사이에서 작은 수첩을 하나 발견했다.
"다이어리야?"
그건 여자애들이나 쓸 법한 그런 아기자기한 다이어리였다. 최승현, 이런면도 다 있구나.
살짝 웃은 나는 첫페이지를 폈다.
'친구가 다이어리를 선물해줬다. 뭐 이런걸 다 선물해주는지..그 친구와의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적어야겠다'
"호오-이런면도 다 있고."
친구와의 우정이라...그럼 그 우정 한 번 봐주셔야지.
나는 다이어리 뒷장을 펼쳤다.
그리고 내 표정은 급격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이게뭐야..."
계속 페이지를 넘겼지만 내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왜냐하면...
"텅텅 비었잖아!"
그렇다, 첫페이지를 끝으로 그 이후에는 공장에서 찍어낸 태초의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다이어리였다.
잘 알았어요. 당신의 우정은 첫페이지로 끝이군요.
그것도 모자라서 군데군데 찢겨져 있다. 단언하건데, 이건 학교에서 쪽지보내는 용도로 쓰인 것이다.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이름모를 형. 당신과 이 짐짝의 우정은 이미 오래전에 찢겨진 것 같네요.
"너 뭐보냐?"
"선배, 전 선배를 보면 커튼이 생각나요. 예쁜 벨벳커튼.."
"왜?"
"쳐버리고 싶거든."
"아니 왜?!"
"댁과 이 형의 우정은 첫페이지가 끝입니까?"
게다가 찢어먹기까지 해?
"어, 그건 또 뭐냐?"
정정한다. 이건 그냥 바보다.
선배는 내가 들고있던 다이어리를 가져가 이리저리 보더니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 기억났어!"
"거 참 축하드립니다."
"이거 내가 작년에 내 짝한테 받은거야."
"오, 그럼 꽤 친한사이?"
"응, 그냥 알기만 하는 그런사이."
그게 친한사인가요?
"예전에 양갱때문에 한 판 싸우고 냉전상태거든."
"....."
"이왕 다시 발견한 거니까 앞으로는 열심히 써야겠어."
"네, 제발 그래주세요."
댁과 그 이름모를 선배와의 우정이 얼마나 갈지 지켜보겠슴다.
떡볶이와 어묵을 먹으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나니 어느새 학교갈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나란히 학교로 향했다.
"선배, 그 다이어리는 왜 들고 가십니까?"
"응, 동영배한테 자랑하려고."
"다시 쓰려고 마음먹은걸요?"
"아니, 찾은거."
"아..예. 선배라면 그게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거 욕이야 칭찬이야?"
"칭찬이요."
그래, 칭찬이지. 이런게 칭찬이 될 수도 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지.
어느덧 학교 안에 도착했고, 우리는 각자의 반으로 갔다.
"어여, 그거아나?"
대구 토박이라서 대구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시는 내 앞의 옆. 그러니까 얼마전 친해진 이승현의 짝이 내게 물었다.
"무얼?"
"소문 쫙 퍼졌는데 아직도 몰랐나? 우리학교에 도둑있는것 같다카더라."
"도둑? 왠 도둑?"
"요 며칠새 물건 도둑맞은 애들이 억수로 많이 나왔더라. 게다가 도둑맞은게 전부 현금이나 지갑같이 돈 좀 될만한 거라더라.
게다가 1,2,3학년 할 것 없이 다 털고있다카데. 니도 조심하거라."
"오냐, 고맙다."
도둑? 나와는 관계없다. 난 털어갈 게 없거든.
지갑도 없이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한 장과 몇백원을 바지주머니에 넣어다니는 신세다. 바랄걸 바래 도둑놈아.
얼마후 곧 1교시 수업을 시작했고 난 칠판대신 창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 승현선배다...1교시 부터 체육을 하는구나. 불쌍하다.
하지만 선배는 전혀 불쌍해보이지 않았다. 전과목 중 유일하게 듣는 수업중 하나인 체육이라 그런지 이리뛰고 저리뛰고
잘 날아다니는 걸 보니 괜시리 나도 흐뭇
해질리가 있나, 저 정신머리로 공부를 좀 하면 얼마나 좋아?
참고로 전과목 중 유일하게 듣는 수업들은 체육,미술,음악 이다.
체육은 보시다시피 공부안한다는 이유로 좋아하고, 음악은 노랫소리에 파묻혀 코를골며 잘 수 있기 때문이고
미술은 결과물만 있으면 아무런 터치가 없기에 편히 잘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못살아.
물론 이렇게 1교시부터 창밖이나 바라보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시커먼 남자들이나 쳐다보는 내가 한심해져서 꿈속에서 소녀시대나 보자는 심산으로 잠을 청했다.
소녀시대를 꿈꾸길 원한 나는 절망했다. 소녀시대는 개뿔 세상모든 남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군대꿈을 꾸었다.
이딴 잠이라면 깨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눈이 떠졌다.
잠에서 깨니 뭔가 어수선했다.
"야, 왜이리 어수선해?"
"아, 2학년 털렸대."
"또 고놈의 도둑아새끼가 든기라."
내 질문에 이승현이 답했고 그 짝이 받아쳤다.
흠....내가 알 바는 아니지.
밤새 집을 갈아엎느라 심히 지친 나는 좀 더 잘 생각으로 엎드렸다.
"권지용!!!!!!!!!!!!"
그때 누군가가 벼락을 내리는 제우스와도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군대 꿈을 꾼 나는 우렁차게
"이병, 권지용!!!!!!!!!!!"
이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뭐래냐? 이 병신이."
제우스의 목소리와 이병의 우렁찬 목소리에 콤보로 놀란 내 짝이 정색하며 욕을 했고, 뻘쭘해진 나는 날 부른 쪽으로 달려갔다.
"아, 승현선배네요, 영배선배와 대성선배도?"
"음, 우리도 왔단다."
"네, 안녕하심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란다."
"그럼 무엇이 문제죠?"
어느새 쫄래쫄래 내 뒤를 막고 서 있는 이승현이 질문을 했다.
"내 다이어리가 없어졌어."
"네?"
"그 도둑놈이 훔쳐간게 틀림없어."
"아니 그딴걸 데체 누가훔쳐간다고...."
"그딴거라니!!!!"
"아 놀래라!"
소리를 지른것은 영배선배였다. 아니 왜?
"내 높은 안목으로 고른 다이어리를 감히 그딴거라고 해?"
"....선배가 선물한 거였나요?"
"응."
"둘이 작년에 짝이었고?"
"잠깐 짝이었지."
"양갱때문에 냉전중이고?"
"요즘은 좀 덜해."
..........이거야 말로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반전이 분명하다.
다 큰 남자 생일선물로 아기자기한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안목높으신 영배선배나
넙죽 받아놓고 다 찢어먹으신 승현선배나 둘이 다른게 뭐지?
"어쨌든, 우린 그 도둑놈을 잡을거야."
"그냥 다이어리 하나 새로 사시죠?"
"안돼, 내가 어떻게 고른 다이어리를 감히 그 도둑놈한테 넘겨줘?"
"어떻게 고르셨는데요."
"인터파크에서 세일하길래 냅다샀지."
"그냥 집어쳐요."
"난 그 도둑놈한테 도라에몽 인형을 뺐겼어. 반드시 잡아서 능지처참을 해줄거다."
"그래요? 거 참 힘든 어드벤쳐가 되겠네요. 행운을 빌어드릴게요. 그럼 이만!"
"어딜가니?"
도둑맞은 도라에몽인형에 순간 빡침을 느낀 대성선배가 내 뒷목을 잡았고 난 그자리에 딱 멈춰서야 했다.
"나한테 뭘바래요?"
"그렇지, 역시 넌 이해가 빠르군. 그래서 좋아."
이 무슨 3류 범죄영화에나 나올법한 대사인가...그래, 물어나 보자. 나한테 뭘바랍니까?
"원래 악을 처단하는 무리는 항상 5명이거든."
"그런데요?"
"근데 우린 세명이란 말이야."
"네."
"너와 니 옆의 그 다크서클을 합치면 딱 5명이네?"
"......."
"좀 돕고삽시다?"
뭐 그딴이유가 다 있어?
"그리고 우린 전에 함께 불도 껐고, 딱 환상의 조합이네?"
"어이쿠, 미안합니다. 제 능력은 그다지 쓸 데가 없어서!"
솔직히 사실이다. 내 예지능력은 이런일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아니, 넌 그냥 인원수만 채우면 된단다!"
"뭐요?"
"방과후에 교실에 남아있도록, 하하하하핫!"
이 순간만큼은 한패가 된 3명의 선배는 사람 배알꼴리게 하는 하하하웃음을 날리며 유유히 사라졌고
쓸쓸히 남은 이등병과 다크서클은 처량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날 이런일에 끼어들게 한 그 도둑놈을 어떻게 해서든지 잡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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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크리+덜한 방학숙제 크리=2주일의 시간
2주일동안 바빴슴다...그래서 소설도 못쓰고 방학숙제만 했어요.
예고는 방학숙제도 아트적이네요. 짜증나요.
괜찮아요.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좀 늦게와도 괜찮겠지 뭐.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