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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일삼 전체글ll조회 1535l 2








마른하늘에 날벼락. 태형은 모처럼 맞은 휴일에 벼락 맞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나 동창회 가야 해.”




저 한 마디 때문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죄다 함께였던 둘이지만. 여주가 한국에서 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간 터라, 미국에서 사귄 한국 친구들끼리 동창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미리 말하지 못한 건 까먹은 여주 탓도 있지만 그간 타 지역으로 출장 다니느라 바빴던 태형의 탓도 있어서. 태형은 끓는 속을 삼킨 채 물어야 했다.




“언제 가는데…….”

“내일 아침에 올라가서 모레쯤 올 거야.”

“1박 한다고?”

“응. 이안이, 아 그러니까 걔는 동아리에서 사귄 친구인데. 걔가 한국에서 호텔 사업을 하거든. 거기서 묵기로 했어.”

“아……이안.”

“동창회도 걔네 호텔에서 하려고 했는데, 또 제인이 강 건너에 레스토랑을 차려서. 거기서 모여서 이동하기로 했어.”

“아……제인.”




태형은 여주가 종알종알 내뱉는 말을 경청하면서도 죄다 모르는 이름을 곱씹어야 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여주에 관한 것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야 하는 태형에게는 뭐든 고역이었으니까.




“데려다 줄까?”

“여기서 서울까지? 차 끌고? 괜찮아. 괜히 나 때문에 힘 빼지 마.”

“너 때문이 아니라…….”




사실 여주 때문이 맞아서 태형은 말끝을 흐렸다. 더 물어보면 여주가 싫어할까, 어떻게 하면 심기에 거슬리지 않게 제가 원하는 대답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뭐 마려운 똥강아지 마냥 졸졸 따라다녔지만, 신나게 짐을 싸는 여주를 보니 입이 열리질 않았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될 때까지 태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용희가 들었으면 그 표현과는 결이 다르다며 펄쩍 뛰었을 것이다. 질투에 눈이 먼 사내의 욕망이자 불안일 뿐이라고!




“충전기랑 보조배터리는 챙겼어?”

“응.”

“휴대폰 전원 안 꺼지게 조심하구.”

“응응. 연락 안 끊기게 할게.”

“지갑이랑 에어팟도 챙겼지?”

“너 지금 그거 세 번째 물어 봐.”

“가는 길에 심심하면 안 되니까 그렇지.”

“걱정 마세요, 다 챙겼으니까.”

“응……. 잘 다녀왕.”

“응! 도착하면 연락할게!”




어쨌든 간에 태형은 여주를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주고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곁에 있다 바로 창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버스의 뒤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가 아닌, 서울에서 열리는 동창회에 내놓은 아내를 벌써부터 그리워하며.




“윤 비서. 여주가 미국에서 다닌 학교에서 이안이랑 제인이라는 사람 좀 알아 봐. 지금 당장.”




뭐, 전화로는 다른 일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방탄소년단/김태형] 농촌 느와르 4 | 인스티즈




농촌 느와르

4부: 장마와 불꽃놀이




여주는 자신에게 완전한 자유란 없다는 걸 알았다. 태형을 두고 집을 나왔을 때부터 이는 정해진 운명이었다. 태형이 그곳에 남아 있는 한 제자리에 있는 행복 또한 없다. 그래서 부러 거처를 옮겨 다니며 공부에 몰두했다. 아버지가 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구석지고 눈에 띄지 않는 곳. 여기에는 이안이 크게 도와줬었다. 이안네 집안이 여주네만큼 장성해 있는 탓도 있었고, 이안은 이리저리 정보를 쳐내는 데에 탁월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한 마디로 그냥 돈이 많았다.




“이 근방 사람들은 다 나에 대해 알아. 그러니까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돼.”

“마음대로 돌아다닌다고 해도…… 들판뿐인데.”

“그러니까 그래도 되는 거지.”




이안이 얄궂게 웃을 때면 여주는 태형이 생각났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저를 대할 때 부드러운 음성의 어딘가가 향수를 건드리고는 해서. 가끔은 이안에게 태형을 대입해 함께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상상도 했다. 부질없는 짓인 걸 알면서도 그리움을 충족할 방법이 그뿐이라.




“그 애 때문이지?”

“응?”

“그 애 때문에 도망 온 거잖아.”

“…….”




그리고 이안은 그런 여주를 자주 간파하곤 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태형?”

“응. 김태형. 근데 나 도망 온 것 같아?”

“그럼 안 그래? 울면서 도와달라고 했잖아.”

“안 울었어.”

“그래, 안 울었어.”

“놀리네…….”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주디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이름의 뜻을 물어오는 이안에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그 마저도 태형과의 기억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입 밖에 내밀기 어려웠다. 남이 보기에도 도망처럼 보이는데 태형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까 겁이 났다. 인간 김태형으로 만들어 주고 싶대놓고 끝없이 방파제 역할을 맡기는 자신에게는 이골이 났다. 그래서 병적으로 집착했다. 한국이든 어디든, 기반을 마련하고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끝없이 연구하고 공부했다. 태형이 만들어 준 시간이니 태형을 그리며 버텨냈다. 이안에게 태형을 끌어내고 제인에게 자신을 불어넣으며 세상을 배워갔다.




“힘들면 기대도 된다고 말한 거, 잊지 않았지?”

“이미 너한테 많이 도움 받고 있잖아. 뭘 더 어떻게 기대겠어.”

“아직 그 애. 많이 좋아해?”




여주가 이안을 돌아봤다. 처음 봤을 때가 열여덟 고등학생이었는데, 벌써 성년이 훌쩍 넘어 졸업을 앞둔 어른이 되었다. 한층 짙어진 눈매가 이안이 얼마나 어른이 되었는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주는 그 속에서 또 태형을 끌어내었다. 우리 그때 만났을 때, 너무 울어서 생긴 그 쌍커풀 아직도 있어? 있다면 더 짙어졌을까? 짙어지지 않아도 좋으니까, 내가 보고 있는 이 눈이 너의 것이었으면 좋겠어.




“난 그 애 얘기할 때 좋아한다고 말한 적 없는데.”

“그럼 있잖아. 나 한 마디만 해도 돼?”

“응.”

“좋아해.”




내가 듣고 있는 이 목소리가 너의 것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좋아했었어.”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이 우리의 것이었으면 좋겠어.




“이제 없는 마음이라 고백하는 거야.”

“……미안해.”

“됐어. 제인한테 말 하지만 않으면 돼. 얼마나 놀릴지 벌써 짐작이 가거든.”

“나는……”

“더 말하면 나 되게 불쌍한 놈 되는 거 알지?”




태형아.




“그러니까, 나중에 그 애한테 가면 보란 듯이 행복해야 해. 주디.”




보란 듯이 행복 하고 싶었어, 나는.




“누가 찾는다고요?”

“김태형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회장, 회장이라고요.”




8년이 지났다. 8년이 지나 밟은 땅은 달라진 게 없었지만, 태형과 같은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태형을 찾았을 때, 그리고 태형을 만났을 때 떳떳할 수 있을지 쉴 새 없이 고민한 끝에 도착한 한국이었다. 그래서 태형의 소식을 알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들은 호칭은 참으로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회장. 회장이라니. 그 끔찍한 자리에 끔찍한 이름으로 어떻게 올라가 있는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처음은 부름에 응하지 않았지만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집 앞에 도착한 차에 결국 탈 수밖에 없었다.




“올 거라며.”

“…….”

“온다고 했잖아. 나 먼저 가 있으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네가 날 어디로 부른 건지 알아?”




8년 만에 본 얼굴에, 지난번처럼 웃어주질 못 했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재회였는데 너무나도 바뀐 모습에 속이 상했다. 그 차가운 서재바닥이 이제 태형의 자리가 되었고, 옥죄던 것을 도리어 둘러 잡으며 숨구멍마냥 쥐고 있는 게 다 제 탓인 것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궁금하네. 네가 상상한 내 모습이 어땠을지.”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그러면서도 베갯잇에서는 익숙한 향이 나서. 멈출 수가 없었다.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지하 창고에서 피를 토하던 아이가 이제는 피를 삼켜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어딘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그날을 시작으로 장마가 이어졌다. 주인 없는 방에서 일기예보나 틀어놓으며 가만있었다. 장맛비가 몇 주간 이어질 거라는 예보에 눈을 뜨고,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충전하지 못 한 휴대폰은 고철이 된 지 오래였고, 축축한 공기가 지하창고마냥 무거웠다. 비가 그치고 나서야 눈물이 그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하는 자학은 소용없다.




“결국 이렇게 됐니.”




문이 잠겨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들어오는 음식을 거부한 것은 처음 가출을 감행했던 심보와 비슷한 것이었다. 아이 같은 방법은 통하는 사람이기를. 너는 아직 나를 사랑하기를.




“결국, 이러려고.”




간절히 바라면서 말했다. 겨우 이 집의 주인이 되려고 사람을, 목숨을 쉬이 여기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감정을 잃은 인간이 되었니. 정말 개가 되어버린 거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문을 열고 나와 향한 곳은 서재였다. 여전히 차가운 바닥에 한기가 돌았다. 맨발로 오롯이 그날의 감정을 읽으며 뚝뚝 흘렸다. 태형의 손에서도 한기가 돌았다. 라텍스 재질의 장갑이 벗을 때마다 핏소리를 냈다. 그게 누군가의 비명 같아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누구의 것인지, 그 누구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서도 궁금해 해서도 안 되는 이 집에 다시 발을 들인 것도 치가 떨리는데. 너는 겨우 이러려고 나를 보낸 거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비 그친 하늘에 노성이라도 내리려는 듯 악을 썼다.




“아니.”




태형이 장갑을 던지듯 내려놓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데 자꾸만 몰아세웠다. 등 뒤에 닿은 벽이 이렇게 시릴 줄 알았으면 그때 네 손을 잡아끌걸. 다시 잡혀 들어오더라도 네 손을 놓지 않을걸. 그곳이 어디든 항상 같이 있을걸. 어리석었던 결정들을 후회하며 저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웠다.




“너와 함께 하고 싶어 이 짓을 벌인 거다.”




속삭이듯 외치는 목소리가 제가 알던 태형이 아님을 아는 순간. 여주는 무너져 내렸다. 짓무른 눈은 뜰 힘도 없었다. 태형이 어떤 표정인지 보면 제 혀를 베어내어 죽은 아버지의 관 위에다 던지고 싶을 것 같았다. 그저 벼랑 끝에서 태형이 저를 끝내주기를 바랐다.




“너와 함께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태형이 천천히 여주의 볼을 감싸 쥐었다. 엄지가 천천히 눈가를 어루만졌다. 흐르는 눈물이 죄다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왜 그걸 몰라…….”




여주는 느리게 눈을 떴다. 태형은 울고 있었다. 비가 아니라 불꽃이 터지는 하늘 아래에 서 있는 것처럼 터뜨리고 있었다.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묵혀온 감정들에 밀려 죽을 것처럼, 그렇게. 장마가 끝이 났다.














-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다음 화가 마지막입니다.

그럼 이만.. ~~







 
독자1
잠깐 떠나있던 기간이 길었던거구나...! 돌아오자마자 알콩달콩했던건줄알았어요!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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