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안녕하세요 한빈씨?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요?]
[A. ...하늘이 맑아요...]
정신병동 이야기 01
하늘은 맑았다. 햇살은 좋았다. 사실 이런날 한빈은 더 불안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떨어지는 날. 왜인지 모르게 학교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길을 가면서 불어오는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좋았다. 나무들은 저마다 어린 잎들을 내보이고 초록빛을 자랑하려 들었다. 학교에 가면 많은 친구들이 한빈을 보고 인사할 것이다. 한빈은 친구가 많았다. 둥글둥글한 성격과 그에 맞는 외모, 언변도 좋았기에 고등학생의 눈에 한빈이는 선망의 대상이자 이상형이었다. 여학생들에게 수줍은 고백도 많이 받아봤고, 선물도 많이 받았다. 쿨하고 시원한 성격 탓에 남학생들도 한빈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런 한빈의 모습은 전생의 모습처럼 멀어져갔다.
교실에 들어오니 빨리 온 학생들은 먼저 앉아있었다. 7시 50분까지의 등교인데 지금은 7시 20분. 30분이나 빨리 왔지만 벌써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한빈도 자리에 앉았다. 한명쯤은 말을 걸어줄 법 한데... 아무도 한빈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한빈은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차원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되었다. 보통같으면 누구라도 와서 말을 걸어야했다. 숙제는 다 했느냐, 오늘 점심은 무엇이냐, 뭐라도 한빈은 학우들이 말을 걸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한빈의 바람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아무도 한빈에게 관심이 없었고, 한빈에게 말을 걸려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심지어 선생님마저...
생각해보았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어제까지만해도 모두들 한빈을 보고 좋아했다. 다들 한빈에게 눈인사를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주고 받으면서 지냈다. 이렇게 갑자기 다들 왜 이러는지 한빈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교복을 잘못 입고 왔나? 한빈은 애꿎은 교복 넥타이를 만지며 생각했다. 교복은 잘못된 부분이 없었다. 신발도 어제와 같은 신발을 신었다. 한빈은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 같지 않은 친구들의 모습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런 경험은 한빈에게 처음이었다. 잘못되어도 이렇게 잘못될 순 없었다. 그저, 오늘은 햇살이 맑았을 뿐이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무도 한빈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한빈은 학교라는 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밥을 혼자 먹었다. 반찬을 집는데 울컥했다. 한빈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반찬을 입에 우겨 넣는 일밖에 없었다. 말을 걸으려해도 한빈을 무시하고 가버리는 친구들, 뒤에서 물어보면 한빈을 보기 전엔 친절했다가 뒤돌아 한빈을 보면 싸늘해지는 얼굴들...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한빈은 점점 무너져갔다. 메말라갔다. 처음으로....한빈이 느껴보는 소외감이었다.
하교길에도 한빈은 혼자 걸어야했다. 저번주만해도 한빈은 친구들과 같이 피씨방에 가서 피파를 하고,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다가 과외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 기억은 이제 지워야했다. 한빈은 혼자였고, 피씨방에 가서 피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으며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을만큼 식욕이 돋지 않았다. 그저 집에가서 혼자 생각의 늪에 잠겼을 뿐이었다. 대체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한빈은 알 수 없었다. 물론 한빈은 알려고 노력했다.
"충원아."
한빈도 학교에서 가장 잘 지냈던 친구에게 말을 걸어 보았었다. 대체 무엇때문에 이러느냐고, 자기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이러느냐고...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충원은 한빈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마저 더럽다고 생각했는지 대답을 하지 않고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굉장히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내...내가 뭘 잘못..."
한번도 떨면서 말한 적이 없는 한빈이었다. 그러나 저 짧은 문장을 말하면서도 한빈의 동공은 흔들렸으며 손은 덜덜 떨렸다. 충원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한빈의 시선은 땅바닥에 떨구어졌고, 고개는 푹 숙여졌다.
"잘못한거? 더러운새끼"
충원은 대답하고 사라졌다. 침을 안 뱉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충원의 얼굴은 찡그려져 있었다.
한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더러운새끼? 내가? 대체 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신이 왜 더러운 놈인지 알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가지도 않았다. 그저 한빈은 친한 친구를 뺏겼다. 선생님을 뺏기고, 교실의 주도권을 뺏겼다. 인간관계도 빼앗기고, 삶도 빼앗겼다. 그, 무엇인지 모를, 조그마한 아주 사소한 소문 때문에...
[Q. 한빈씨. 오늘은 행복한가요?]
[A. ....사람은....믿으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