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왔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봄인지 여름인지 분간도 안 갈만큼 무더위에 땀을 흘리는 동안 여름은 지나갔고, 이제는 가을에 접어들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계절이 바뀌는 사이 종인에게도 세훈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년이 바뀌었고, 성격도 바뀌었지만, 무엇보다 많이 변한 건 조금 특별해진 일상에 종인이 덤덤해진 것이었다. 그토록 종인에게 매달려 안달 냈던 백현과 찬열은 결국 종인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섰다. 사실 말이 포기한 거지 아직까지도 둘은 시시탐탐 틈을 노리며 종인에게 치근덕댔다. 경수와 준면은 예전보다 종인을 더욱더 챙겨주며 돈독한 정을 다졌다. 종인이 뭐만하면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또 걱정하며 마치 부모님같은 손길을 보내오는 둘을, 종인은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였다면 시험기간이라 손에서 책을 놓지 않거나, 영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보려고 달달 기를 써도 모자랄 판에 반류 고등학교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분명 시험기간이 맞긴 맞는데 반에 있는 반류 중 그 누구도 공부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평소대로 서로 시비도 걸어가고 열애설로 화제가 되고 있는 연예인의 기사도 검색해보고, 못 봤던 티비 프로그램을 다시 시청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시험기간이라고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것도 시험이 바로 다음 주라면 더더욱. 그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건 분명 종인이었다. 이제 막 반류가 돼서 그런지, 아니면 원인과 섞여있어 시험공부를 했던 기억에 그걸 따르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서른 명 남짓 하는 학생들 속에서 책을 펴놓고 시험범위까지 확인해가며 열심히 밑줄도 죽죽 그어놓는 것은 종인 하나뿐이었다. 바로 옆자리에 엎드려 고개를 돌린 세훈이 책에 열심히도 집중하는 종인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무언가 계속 중얼거리며 앞을 잠깐 바라봤다 다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퍽 귀여웠다. 덩치에 맞지 않게. 1년을 조금 넘어선 시간동안 종인의 체구는 그대로였지만, 키도 조금 더 자라고 어깨도 다부져진 세훈은 많은 것이 변했다. 엇비슷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웠던 키차이가 둘을 나란히 세워놓으면 확연히 눈에 보일 정도로 차이 났고, 제멋대로 색을 바꾼 머리는 푸석푸석해진지 이미 오래였다. 물론 교칙에 염색하지 말라는 말은 없어 상관이야 없었지만 회갈빛이 도는 밝은 색깔은 어디서나 눈에 띄기 좋은 것임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그새 또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건지 색이 바뀐 책등을 잠자코 보던 세훈이 상체를 일으켰다. 종인에게 사실을 말해줄까 싶다가도 어딘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은 그림이라 굳이 방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나 열심히 공부하는 종인에게 피해라도 갈까 끌리는 쇳소리가 나지 않게 의자를 내뺀 세훈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확인하고 뒷문으로 향했다. 흘끗 비어버린 세훈의 자리를 훔쳐본 종인이 고개를 돌려 등을 보인 세훈을 응시했다. 뒷문을 열고 나가려하는 세훈에 자리에서 일어난 종인이 세훈에게 다가가 소매 끝을 잡아당겼다. “어디가,” “매점 가는 거야. 빨리 하던 공부나 마저 해.” “…나는?” “너는 공부해야지.” 제 말에 입이 삐죽 튀어나온 종인을 다시 제자리에 앉힌 세훈이 머리를 몇 번 어루만지다 교실을 나섰다. 매점으로 가기 위해 곧장 왼쪽으로 방향을 튼 세훈이 낮게 경사진 계단을 두어 칸씩 뛰어 내려갔다. 많은 계단수와는 달리 완만한 경사는 몇 칸씩 뛰어넘으면 금방이었다. 하필이면 또 매점은 가파르게 경사진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야 해서 배로 어려웠다. 차라리 반대편으로 올 걸 그랬나, 반대편엔 강당이랑 곧장 이어지는 짧은 계단이 있어 그길로 쭉 올라와 방향을 몇 번 틀어 주차장을 지나면 바로 매점이라는 걸 다 내려오고 난 지금에서야 떠올린 세훈이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뒷머리를 헤집으며 앞에 펼쳐진 아스팔트길을 돌아갈까 생각한 세훈이 이내 돌아가는 게 더욱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걸 깨닫고 묵묵히 다리를 움직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높은 경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직접 걸어서 가기에는 충분히 힘들고도 남았다. 매점 문을 열고 들어가 볼 것도 없이 이온음료 두 개를 골라 계산한 세훈이 매점 아줌마에게 작게 고갯짓해 인사했다. 손에 들린 페트병을 위로 던져 공중에서 돌아가는 걸 받아낸 세훈이 이번엔 아까 왔던 길과는 달리 다른 쪽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건 저쪽이 더 빨랐으려나,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시 방향을 틀 생각은 없는 세훈이 마저 발을 움직였다. 반류는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보던 못 보던 크게 상관없었다. 모든 게 성적에 의해 갈리는 원인들과는 달리 혼현의 희소성에 따라, 능력에 따라, 지위에 따라 갈리는 게 반류 사회였다. 최중종에 가까울수록 반류 사회에서든 원인 사회에서든 높은 곳에 위치해있고, 경종에 가까울수록 낮은 계급에 있는 게 당연시되었다. 원인과는 달리 반류는 그런 것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각 종(種)에 따라 받쳐주는 체력이 그 정도였다. 경종이 최대한 나아갈 수 있는 체력은 이미 정해져있었고, 그에 따라 그 안에서 최대한으로 노력에 정해진 위치에 올라서면 되는 거였다. 중종도 마찬가지였고, 최중종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단지 그 체력이 받쳐주는 게 달라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느냐, 그 차이였을 뿐이다. 힘이 세면 셀수록, 종이 찾기 힘든 멸종 위기에 놓여있을 수록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건 당연했다. 반류에게 있어 중·고등학교란 그저 원인 사회에 맞춰가는 한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이었지만 그저 형식을 위해 존재하는 학교에서 굳이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각 지위에 맞게 부모님이 탄탄하게 다져놓은 길을 따라 평탄대로를 달리면 되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원인에 비해 머리도 뛰어난 반류는 굳이 공부를 하지 않고 앞으로의 일에 필요한 어느 정도 기초만 배워놓으면 그걸 응용해 더 높은 성과를 올리곤 했다. 굳이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어지간해선 다 어릴 적에 배워놓았으니 그걸 다시 한 번 배우는 건 매우 시시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건 세훈도 마찬가지였다. 준면과 함께 지내는 세훈이 쓸데없이 커다란 집에 있는 것도 어쩌면 사치가 아니었다. 이미 회색늑대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높이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준면은 곧바로 준면의 집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 팀장직을 맡았고, 1년만 더 있으면 졸업을 앞둔 세훈도 준면이 있는 부서로 들어가 몇 주 정도만 인턴을 한 다음에 다른 부서의 팀장을 맡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백현과 찬열, 경수 또한 이미 앞날이 보장되어 있었다. 특히 백현은 국내 유일한 백두산 호랑이의 직계 혈통으로서 그 누구보다 더욱 많은 메리트를 가지고 있으니 곧바로 백현의 집에서 운영하는 대기업의 이사직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질투 때문이 아니라 그냥 백현의 행동이 아니꼬웠던 거지만, 백현이 그 정도도 못해낼 만큼은 아니었던지라 세훈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찬열과 경수도 큰곰의 포효하는 얼굴을 로고로 만든 대기업에서 각각 팀장직을 맡는다는 건 안 봐도 뻔했다. 서로의 종이 모두 한가닥 하는 피라서 각 기업도 뼈마디가 굵은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김종인은? 재규어도 반류 사회에서 알아주는 집안이었다. 그래, 집안이었지. 그러나 몇 세대 전부터 그냥 평범한 인간처럼 살겠다며 돌연 옷을 벗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재규어 종족은 그 지위가 사라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세훈이 곧장 종인에게로 향했다. 동그란 뒤통수를 보면서 계속 쓸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종인이 하고 있는 폼이 이상해 슬쩍 옆으로 몸을 틀어 무릎을 굽히고 앉은 세훈이 밑에서 종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종인은 잠들어있었다. 조용히 페트병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세훈이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쌀쌀한 찬바람을 느끼고선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종인의 어깨 위에 살짝 걸쳐놓았다. 와이셔츠위에 고작 조끼 하나만을 입어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잠깐 떨다가 이내 익숙해진 세훈이 조심스레 종인을 책상 위에 눕혔다. 가디건을 입고서도 추웠는지 제 가디건을 하나 더 덮어주고 나서야 인상이 펴지는 종인의 얼굴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세훈이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제 쪽으로 틀어놓은 고개를 통해 고스란히 보이는 종인의 얼굴은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게 공부 좀 적당히 하지, 이렇게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열심히 어딘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였다. 그게 요즘 유행하는 게임도 아니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책더미들이라면 더더욱 어려웠을 텐데도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고집한 종인을 알만해 세훈은 그저 웃음만 내뱉었다. “누가 그런 거 신경 쓴다고,” 그렇게 열심히 해. 뒷말은 집어 넘긴 세훈이 곤히 잠든 종인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다음엔 꼭 사실을 말해줘야지, 너는 공부 안 해도 먹고살 걱정은 할 필요 없다고. 어차피 자습시간이었다. 앞으로 족히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종이 울릴 일은 없으니까, 그 생각을 하며 불편해 보이는 종인의 자세를 다시 바로잡아준 세훈이 종인의 뭉툭한 코를 슬슬 쓸어내렸다. 자습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올 일은 없을 터였다. 반류 고등학교에서 공부가 필요 없다는 걸 선생님들도 반류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니, 오히려 들어오면 그걸 통제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이렇게 어딘가에 열중하는 모습도 좋지만, 그렇게 진중한 모습보다는 평소처럼 자신에게 매달리며 칭얼대는 종인이 더 좋았다. 그래서 자신이 더 챙겨줄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게끔 허술한 그 모습이 좋았다. 이런 진지한 모습은 오늘 하루면 충분했다. 평소와는 달리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느라 모든 기력을 다 쏟아 부었을 모습이 눈에 훤했다. 그래서 이렇게 깊게 잠든 거겠지. 지금처럼 종인이 잠든 모습은 꼭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뛰어노는 어린애들 같아서 세훈은 유심히 종인의 잠든 모습을 살피곤 했다. 왠지 그 모습을 통해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더욱 애착이 가는 게, 세훈도 자기 스스로가 그 생각을 하는 게 어이없어 헛웃음만 내뱉었다. 만약 누군가 와서 오늘 같은 모습과 평소의 모습 중에 어느 것 하나만을 볼 수만 있어 골라보라고 한다면…, 그럼 저는 작은 망설임 끝에 평소의 모습을 선택할 것이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이 오늘처럼 자기 할 일만 꿋꿋이 한다면, 왠지 무척이나 섭섭할 것 같았다.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혼자 다 하고, 꿋꿋하게 자기 일만 해나가고…. 종인의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세훈이 책상을 붙여 종인을 마주보고 엎드렸다. “그냥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 거니까,” 제 할 말만을 내뱉고 종인에게서 손을 떼어낸 세훈이 선선한 가을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색색거리는 숨을 내뱉으며 잠든 세훈이 머리가 옅게 휘날렸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일어난 종인이 살짝 부은 눈을 꾹꾹 눌러 붓기를 빼내며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제 어깨에 걸쳐져 있는 가디건에 달린 세훈의 명찰을 지긋이 바라보던 종인이 이내 걸쳐진 가디건을 벗어내 품에 다 들어오게 안았다. 포근히 느껴지는 가디건에선 세훈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가디건에 얼굴을 묻고 한껏 숨을 들이마신 종인이 더욱 진하게 느껴져오는 체향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세훈이 냄새 나. 고개를 돌려 잠든 세훈을 바라본 종인이 가디건을 활짝 펼쳐들고 다시 세훈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어깨에 줄곧 걸쳐져 있던 가디건을 벗어서 그런가, 그 무게가 그닥 무겁지 않았음에도 뭔가 허전한 느낌에 종인은 연신 어깨를 들썩거렸다. 세훈의 얼굴을 턱까지 괴고 쳐다본 종인의 눈에 곧 장난기가 가득 차올랐다. 손가락을 다 접고 검지만 길게 펼친 오른손을 세훈의 코 밑 가까이로 가져간 종인이 세훈이 숨을 들이 내쉴 때마다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숨죽여 웃었다. 우리 세훈이. 아까 얼핏 들었던 세훈의 목소리는 가을의 낙엽을 닮아 포근했다. 자기가 다 해줄 테니 너는 가만히 있으라던 세훈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잠결에 똑똑히 들려왔다.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흐릿해서 뿌옇던 정신이 금세 맑아졌다. 또랑또랑해진 정신에 금방 일어나려다가 그냥 세훈이 잠들 때까지 기다린 종인은 세훈이 완전히 잠에 취한듯해 보이는걸 확인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그리도 좋다고 자꾸만 제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길에 발끝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간질거림을 참느라 혼났다. 종래엔 제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했던 그 손길이 떠올라 푸흐, 하는 버석한 웃음을 내뱉은 종인이 세훈의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올려 훤히 드러난 이마를 보았다 다시 손을 치워냈다. 손을 얼굴 가까이로 가져와 유심히 살피던 종인이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쳐 몇 번 비볐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났다. 다시 손을 옮긴 종인이 이번에는 세훈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이정도로 머리가 상했던 것 같진 않은데…. 언제 이렇게 많이 상했는지 내심 놀란 종인은 괜히 서운해져오는 느낌에 입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렇게 머리가 상할 동안 나는 왜 몰랐을까, 하는 마음에 세훈의 머리칼을 만지는 손길이 더뎌졌다. 굳이 따져 말해보자면, 자신이 서운해 할 입장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 세훈이 머리색을 처음으로 바꿔왔을 때 잘 어울린다며 이런 색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한 번 권했던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세훈은 자신이 말한 색으로 염색해왔다. 아마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제 말을 곧이곧대로 기억해놓았다가 머리엔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고 말했던 색으로 바로 바꿨던 게. 푸석푸석해질 대로 푸석해져 더 이상 머리를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약해져 있는 모발을 만지작거린 종인이 미안함에 눈썹을 늘어뜨렸다. 내일은 모발 관리 용품을 사와서 세훈의 머리에 발라줘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한 종인이 이내 세훈을 마주보고 웃었다. 차마 입 밖으로 뱉어내기엔 낯간지러워서 꾸역꾸역 목구멍 밑으로 눌러 내린 종인이 세훈에겐 들리지 않을 말들을 내뱉었다. 나도, 네가 다 해줬으면 좋겠어. “잘 자, 세훈아.” 휘어지는 눈꼬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더 가디건을 꼼꼼하게 덮어 준 종인이 다시 책상에 엎드려 세훈을 마주봤다. 이렇게 봐도 세훈은 참 잘생겼다. 새삼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눈을 감은 종인의 입가에 웃음이 머물렀다. 아마도 오늘 자습은 둘 다 잠만 자다 끝날 듯 싶은 걸 종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구태여 그 이유 때문에 지금부터 벌써 잠을 깨기는 싫었다. 그건 아마 세훈도 마찬가지일 거라 제멋대로 단정 지은 종인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좋아해. 좋아해, 세훈아.” 많이 좋아해,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눈을 감은 종인을 실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세훈이 기침하는 척 낮게 웃었다. 나도 좋아해, 많이. 웃음을 머금고 굳게 눈을 감고 엎드린 둘의 머리맡으로 아까보다 푸근해진 바람이 흩날렸다. 더보기정말 오랜만이죠? 허허허허 의도치않게 잠수를 탔습니다! 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사실은 연중할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얼마 전에 달아주신 댓글에서 용기를 얻고 다시 왔습니다. 사실 제가 얼마 만에 돌아왔는지 가물가물한데, 엄청 오래됐지 않나 싶어요. 분량이 어떤지..ㅠㅠㅠㅠㅠ 많이 쓴다고 썼는데 옮기니까 조금밖에 안돼는 것 같고. 사실 다른 분들에 비해 제 분량이 턱없이 조금이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서 맘에 걸린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게 멋대로 안돼는거에요, 그래서 최대한 많이 쓴다고 하루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있긴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암호닉은 처음부터 다시 받으려구요. 원래 계시던 암호닉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다시 신청해주세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일 있는지도 사실 확실하진 않지만 제가 감히 암호닉을 다시 신청해달라고 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떨떠름한 분들도 계실지 모르고, 저를 잊어버렸던 분들도 계실지 모르고, 또 무엇보다 제 문체가 맘에 들지 않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해서, 그래요..허허그리고 제 주제에 감히 구독료를 답니다. 2-30포인트를 왔다갔다 하지만 독자님들에겐 이게 맘에 드실 지 모르겠어요, 구독료를 붙이지 않던 글이다보니. 또 하나 더, 연재텀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최대한 분량을 많이 늘이려고 틈나는대로 쓰긴 쓰지만 요즘 시험기간인 것도 있고 분량을 최대한 늘이려 하다보니 그만큼 더 늦어질 것 같아요. 원래 제 분량은 한글로 2-3 쪽 정도밖에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5-6 쪽으로 늘렸습니다.그럼 오랜만에 돌아온 섹피였습니다. 제게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 건 참 감사하지만 제가 어떻게 작가님 소리를 듣겠어요, 혹시 저를 부르시고 싶다면 작가님 대신에 섹피라고 불러주세요! :)
겨울이 왔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봄인지 여름인지 분간도 안 갈만큼 무더위에 땀을 흘리는 동안 여름은 지나갔고, 이제는 가을에 접어들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계절이 바뀌는 사이 종인에게도 세훈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년이 바뀌었고, 성격도 바뀌었지만, 무엇보다 많이 변한 건 조금 특별해진 일상에 종인이 덤덤해진 것이었다.
그토록 종인에게 매달려 안달 냈던 백현과 찬열은 결국 종인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섰다. 사실 말이 포기한 거지 아직까지도 둘은 시시탐탐 틈을 노리며 종인에게 치근덕댔다. 경수와 준면은 예전보다 종인을 더욱더 챙겨주며 돈독한 정을 다졌다. 종인이 뭐만하면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또 걱정하며 마치 부모님같은 손길을 보내오는 둘을, 종인은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였다면 시험기간이라 손에서 책을 놓지 않거나, 영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보려고 달달 기를 써도 모자랄 판에 반류 고등학교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분명 시험기간이 맞긴 맞는데 반에 있는 반류 중 그 누구도 공부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평소대로 서로 시비도 걸어가고 열애설로 화제가 되고 있는 연예인의 기사도 검색해보고, 못 봤던 티비 프로그램을 다시 시청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시험기간이라고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것도 시험이 바로 다음 주라면 더더욱.
그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건 분명 종인이었다. 이제 막 반류가 돼서 그런지, 아니면 원인과 섞여있어 시험공부를 했던 기억에 그걸 따르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서른 명 남짓 하는 학생들 속에서 책을 펴놓고 시험범위까지 확인해가며 열심히 밑줄도 죽죽 그어놓는 것은 종인 하나뿐이었다. 바로 옆자리에 엎드려 고개를 돌린 세훈이 책에 열심히도 집중하는 종인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무언가 계속 중얼거리며 앞을 잠깐 바라봤다 다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퍽 귀여웠다. 덩치에 맞지 않게. 1년을 조금 넘어선 시간동안 종인의 체구는 그대로였지만, 키도 조금 더 자라고 어깨도 다부져진 세훈은 많은 것이 변했다. 엇비슷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웠던 키차이가 둘을 나란히 세워놓으면 확연히 눈에 보일 정도로 차이 났고, 제멋대로 색을 바꾼 머리는 푸석푸석해진지 이미 오래였다. 물론 교칙에 염색하지 말라는 말은 없어 상관이야 없었지만 회갈빛이 도는 밝은 색깔은 어디서나 눈에 띄기 좋은 것임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그새 또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건지 색이 바뀐 책등을 잠자코 보던 세훈이 상체를 일으켰다. 종인에게 사실을 말해줄까 싶다가도 어딘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은 그림이라 굳이 방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나 열심히 공부하는 종인에게 피해라도 갈까 끌리는 쇳소리가 나지 않게 의자를 내뺀 세훈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확인하고 뒷문으로 향했다. 흘끗 비어버린 세훈의 자리를 훔쳐본 종인이 고개를 돌려 등을 보인 세훈을 응시했다. 뒷문을 열고 나가려하는 세훈에 자리에서 일어난 종인이 세훈에게 다가가 소매 끝을 잡아당겼다.
“어디가,”
“매점 가는 거야. 빨리 하던 공부나 마저 해.”
“…나는?”
“너는 공부해야지.”
제 말에 입이 삐죽 튀어나온 종인을 다시 제자리에 앉힌 세훈이 머리를 몇 번 어루만지다 교실을 나섰다. 매점으로 가기 위해 곧장 왼쪽으로 방향을 튼 세훈이 낮게 경사진 계단을 두어 칸씩 뛰어 내려갔다. 많은 계단수와는 달리 완만한 경사는 몇 칸씩 뛰어넘으면 금방이었다. 하필이면 또 매점은 가파르게 경사진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야 해서 배로 어려웠다.
차라리 반대편으로 올 걸 그랬나, 반대편엔 강당이랑 곧장 이어지는 짧은 계단이 있어 그길로 쭉 올라와 방향을 몇 번 틀어 주차장을 지나면 바로 매점이라는 걸 다 내려오고 난 지금에서야 떠올린 세훈이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뒷머리를 헤집으며 앞에 펼쳐진 아스팔트길을 돌아갈까 생각한 세훈이 이내 돌아가는 게 더욱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걸 깨닫고 묵묵히 다리를 움직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높은 경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직접 걸어서 가기에는 충분히 힘들고도 남았다.
매점 문을 열고 들어가 볼 것도 없이 이온음료 두 개를 골라 계산한 세훈이 매점 아줌마에게 작게 고갯짓해 인사했다. 손에 들린 페트병을 위로 던져 공중에서 돌아가는 걸 받아낸 세훈이 이번엔 아까 왔던 길과는 달리 다른 쪽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건 저쪽이 더 빨랐으려나,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시 방향을 틀 생각은 없는 세훈이 마저 발을 움직였다.
반류는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보던 못 보던 크게 상관없었다. 모든 게 성적에 의해 갈리는 원인들과는 달리 혼현의 희소성에 따라, 능력에 따라, 지위에 따라 갈리는 게 반류 사회였다. 최중종에 가까울수록 반류 사회에서든 원인 사회에서든 높은 곳에 위치해있고, 경종에 가까울수록 낮은 계급에 있는 게 당연시되었다.
원인과는 달리 반류는 그런 것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각 종(種)에 따라 받쳐주는 체력이 그 정도였다. 경종이 최대한 나아갈 수 있는 체력은 이미 정해져있었고, 그에 따라 그 안에서 최대한으로 노력에 정해진 위치에 올라서면 되는 거였다. 중종도 마찬가지였고, 최중종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단지 그 체력이 받쳐주는 게 달라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느냐, 그 차이였을 뿐이다.
힘이 세면 셀수록, 종이 찾기 힘든 멸종 위기에 놓여있을 수록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건 당연했다. 반류에게 있어 중·고등학교란 그저 원인 사회에 맞춰가는 한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이었지만 그저 형식을 위해 존재하는 학교에서 굳이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각 지위에 맞게 부모님이 탄탄하게 다져놓은 길을 따라 평탄대로를 달리면 되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원인에 비해 머리도 뛰어난 반류는 굳이 공부를 하지 않고 앞으로의 일에 필요한 어느 정도 기초만 배워놓으면 그걸 응용해 더 높은 성과를 올리곤 했다. 굳이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어지간해선 다 어릴 적에 배워놓았으니 그걸 다시 한 번 배우는 건 매우 시시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건 세훈도 마찬가지였다. 준면과 함께 지내는 세훈이 쓸데없이 커다란 집에 있는 것도 어쩌면 사치가 아니었다. 이미 회색늑대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높이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준면은 곧바로 준면의 집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 팀장직을 맡았고, 1년만 더 있으면 졸업을 앞둔 세훈도 준면이 있는 부서로 들어가 몇 주 정도만 인턴을 한 다음에 다른 부서의 팀장을 맡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백현과 찬열, 경수 또한 이미 앞날이 보장되어 있었다.
특히 백현은 국내 유일한 백두산 호랑이의 직계 혈통으로서 그 누구보다 더욱 많은 메리트를 가지고 있으니 곧바로 백현의 집에서 운영하는 대기업의 이사직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질투 때문이 아니라 그냥 백현의 행동이 아니꼬웠던 거지만, 백현이 그 정도도 못해낼 만큼은 아니었던지라 세훈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찬열과 경수도 큰곰의 포효하는 얼굴을 로고로 만든 대기업에서 각각 팀장직을 맡는다는 건 안 봐도 뻔했다. 서로의 종이 모두 한가닥 하는 피라서 각 기업도 뼈마디가 굵은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김종인은? 재규어도 반류 사회에서 알아주는 집안이었다. 그래, 집안이었지. 그러나 몇 세대 전부터 그냥 평범한 인간처럼 살겠다며 돌연 옷을 벗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재규어 종족은 그 지위가 사라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세훈이 곧장 종인에게로 향했다. 동그란 뒤통수를 보면서 계속 쓸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종인이 하고 있는 폼이 이상해 슬쩍 옆으로 몸을 틀어 무릎을 굽히고 앉은 세훈이 밑에서 종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종인은 잠들어있었다. 조용히 페트병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세훈이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쌀쌀한 찬바람을 느끼고선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종인의 어깨 위에 살짝 걸쳐놓았다.
와이셔츠위에 고작 조끼 하나만을 입어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잠깐 떨다가 이내 익숙해진 세훈이 조심스레 종인을 책상 위에 눕혔다. 가디건을 입고서도 추웠는지 제 가디건을 하나 더 덮어주고 나서야 인상이 펴지는 종인의 얼굴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세훈이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제 쪽으로 틀어놓은 고개를 통해 고스란히 보이는 종인의 얼굴은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게 공부 좀 적당히 하지, 이렇게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열심히 어딘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였다. 그게 요즘 유행하는 게임도 아니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책더미들이라면 더더욱 어려웠을 텐데도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고집한 종인을 알만해 세훈은 그저 웃음만 내뱉었다.
“누가 그런 거 신경 쓴다고,”
그렇게 열심히 해.
뒷말은 집어 넘긴 세훈이 곤히 잠든 종인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다음엔 꼭 사실을 말해줘야지, 너는 공부 안 해도 먹고살 걱정은 할 필요 없다고. 어차피 자습시간이었다. 앞으로 족히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종이 울릴 일은 없으니까, 그 생각을 하며 불편해 보이는 종인의 자세를 다시 바로잡아준 세훈이 종인의 뭉툭한 코를 슬슬 쓸어내렸다. 자습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올 일은 없을 터였다. 반류 고등학교에서 공부가 필요 없다는 걸 선생님들도 반류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니, 오히려 들어오면 그걸 통제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이렇게 어딘가에 열중하는 모습도 좋지만, 그렇게 진중한 모습보다는 평소처럼 자신에게 매달리며 칭얼대는 종인이 더 좋았다. 그래서 자신이 더 챙겨줄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게끔 허술한 그 모습이 좋았다. 이런 진지한 모습은 오늘 하루면 충분했다. 평소와는 달리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느라 모든 기력을 다 쏟아 부었을 모습이 눈에 훤했다. 그래서 이렇게 깊게 잠든 거겠지. 지금처럼 종인이 잠든 모습은 꼭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뛰어노는 어린애들 같아서 세훈은 유심히 종인의 잠든 모습을 살피곤 했다.
왠지 그 모습을 통해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더욱 애착이 가는 게, 세훈도 자기 스스로가 그 생각을 하는 게 어이없어 헛웃음만 내뱉었다. 만약 누군가 와서 오늘 같은 모습과 평소의 모습 중에 어느 것 하나만을 볼 수만 있어 골라보라고 한다면…, 그럼 저는 작은 망설임 끝에 평소의 모습을 선택할 것이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이 오늘처럼 자기 할 일만 꿋꿋이 한다면, 왠지 무척이나 섭섭할 것 같았다.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혼자 다 하고, 꿋꿋하게 자기 일만 해나가고…. 종인의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세훈이 책상을 붙여 종인을 마주보고 엎드렸다.
“그냥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 거니까,”
제 할 말만을 내뱉고 종인에게서 손을 떼어낸 세훈이 선선한 가을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색색거리는 숨을 내뱉으며 잠든 세훈이 머리가 옅게 휘날렸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일어난 종인이 살짝 부은 눈을 꾹꾹 눌러 붓기를 빼내며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제 어깨에 걸쳐져 있는 가디건에 달린 세훈의 명찰을 지긋이 바라보던 종인이 이내 걸쳐진 가디건을 벗어내 품에 다 들어오게 안았다. 포근히 느껴지는 가디건에선 세훈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가디건에 얼굴을 묻고 한껏 숨을 들이마신 종인이 더욱 진하게 느껴져오는 체향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세훈이 냄새 나.
고개를 돌려 잠든 세훈을 바라본 종인이 가디건을 활짝 펼쳐들고 다시 세훈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어깨에 줄곧 걸쳐져 있던 가디건을 벗어서 그런가, 그 무게가 그닥 무겁지 않았음에도 뭔가 허전한 느낌에 종인은 연신 어깨를 들썩거렸다. 세훈의 얼굴을 턱까지 괴고 쳐다본 종인의 눈에 곧 장난기가 가득 차올랐다. 손가락을 다 접고 검지만 길게 펼친 오른손을 세훈의 코 밑 가까이로 가져간 종인이 세훈이 숨을 들이 내쉴 때마다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숨죽여 웃었다.
우리 세훈이.
아까 얼핏 들었던 세훈의 목소리는 가을의 낙엽을 닮아 포근했다. 자기가 다 해줄 테니 너는 가만히 있으라던 세훈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잠결에 똑똑히 들려왔다.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흐릿해서 뿌옇던 정신이 금세 맑아졌다. 또랑또랑해진 정신에 금방 일어나려다가 그냥 세훈이 잠들 때까지 기다린 종인은 세훈이 완전히 잠에 취한듯해 보이는걸 확인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그리도 좋다고 자꾸만 제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길에 발끝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간질거림을 참느라 혼났다. 종래엔 제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했던 그 손길이 떠올라 푸흐, 하는 버석한 웃음을 내뱉은 종인이 세훈의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올려 훤히 드러난 이마를 보았다 다시 손을 치워냈다. 손을 얼굴 가까이로 가져와 유심히 살피던 종인이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쳐 몇 번 비볐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났다.
다시 손을 옮긴 종인이 이번에는 세훈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이정도로 머리가 상했던 것 같진 않은데…. 언제 이렇게 많이 상했는지 내심 놀란 종인은 괜히 서운해져오는 느낌에 입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렇게 머리가 상할 동안 나는 왜 몰랐을까, 하는 마음에 세훈의 머리칼을 만지는 손길이 더뎌졌다.
굳이 따져 말해보자면, 자신이 서운해 할 입장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 세훈이 머리색을 처음으로 바꿔왔을 때 잘 어울린다며 이런 색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한 번 권했던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세훈은 자신이 말한 색으로 염색해왔다. 아마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제 말을 곧이곧대로 기억해놓았다가 머리엔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고 말했던 색으로 바로 바꿨던 게.
푸석푸석해질 대로 푸석해져 더 이상 머리를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약해져 있는 모발을 만지작거린 종인이 미안함에 눈썹을 늘어뜨렸다. 내일은 모발 관리 용품을 사와서 세훈의 머리에 발라줘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한 종인이 이내 세훈을 마주보고 웃었다.
차마 입 밖으로 뱉어내기엔 낯간지러워서 꾸역꾸역 목구멍 밑으로 눌러 내린 종인이 세훈에겐 들리지 않을 말들을 내뱉었다.
나도, 네가 다 해줬으면 좋겠어.
“잘 자, 세훈아.”
휘어지는 눈꼬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더 가디건을 꼼꼼하게 덮어 준 종인이 다시 책상에 엎드려 세훈을 마주봤다. 이렇게 봐도 세훈은 참 잘생겼다. 새삼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눈을 감은 종인의 입가에 웃음이 머물렀다. 아마도 오늘 자습은 둘 다 잠만 자다 끝날 듯 싶은 걸 종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구태여 그 이유 때문에 지금부터 벌써 잠을 깨기는 싫었다. 그건 아마 세훈도 마찬가지일 거라 제멋대로 단정 지은 종인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좋아해. 좋아해, 세훈아.”
많이 좋아해,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눈을 감은 종인을 실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세훈이 기침하는 척 낮게 웃었다. 나도 좋아해, 많이. 웃음을 머금고 굳게 눈을 감고 엎드린 둘의 머리맡으로 아까보다 푸근해진 바람이 흩날렸다.
더보기정말 오랜만이죠? 허허허허 의도치않게 잠수를 탔습니다! 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사실은 연중할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얼마 전에 달아주신 댓글에서 용기를 얻고 다시 왔습니다. 사실 제가 얼마 만에 돌아왔는지 가물가물한데, 엄청 오래됐지 않나 싶어요. 분량이 어떤지..ㅠㅠㅠㅠㅠ 많이 쓴다고 썼는데 옮기니까 조금밖에 안돼는 것 같고. 사실 다른 분들에 비해 제 분량이 턱없이 조금이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서 맘에 걸린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게 멋대로 안돼는거에요, 그래서 최대한 많이 쓴다고 하루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있긴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암호닉은 처음부터 다시 받으려구요. 원래 계시던 암호닉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다시 신청해주세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일 있는지도 사실 확실하진 않지만 제가 감히 암호닉을 다시 신청해달라고 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떨떠름한 분들도 계실지 모르고, 저를 잊어버렸던 분들도 계실지 모르고, 또 무엇보다 제 문체가 맘에 들지 않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해서, 그래요..허허그리고 제 주제에 감히 구독료를 답니다. 2-30포인트를 왔다갔다 하지만 독자님들에겐 이게 맘에 드실 지 모르겠어요, 구독료를 붙이지 않던 글이다보니. 또 하나 더, 연재텀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최대한 분량을 많이 늘이려고 틈나는대로 쓰긴 쓰지만 요즘 시험기간인 것도 있고 분량을 최대한 늘이려 하다보니 그만큼 더 늦어질 것 같아요. 원래 제 분량은 한글로 2-3 쪽 정도밖에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5-6 쪽으로 늘렸습니다.그럼 오랜만에 돌아온 섹피였습니다. 제게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 건 참 감사하지만 제가 어떻게 작가님 소리를 듣겠어요, 혹시 저를 부르시고 싶다면 작가님 대신에 섹피라고 불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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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이죠? 허허허허 의도치않게 잠수를 탔습니다! 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사실은 연중할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얼마 전에 달아주신 댓글에서 용기를 얻고 다시 왔습니다. 사실 제가 얼마 만에 돌아왔는지 가물가물한데, 엄청 오래됐지 않나 싶어요.
분량이 어떤지..ㅠㅠㅠㅠㅠ 많이 쓴다고 썼는데 옮기니까 조금밖에 안돼는 것 같고. 사실 다른 분들에 비해 제 분량이 턱없이 조금이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서 맘에 걸린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게 멋대로 안돼는거에요, 그래서 최대한 많이 쓴다고 하루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있긴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암호닉은 처음부터 다시 받으려구요. 원래 계시던 암호닉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다시 신청해주세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일 있는지도 사실 확실하진 않지만 제가 감히 암호닉을 다시 신청해달라고 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떨떠름한 분들도 계실지 모르고, 저를 잊어버렸던 분들도 계실지 모르고, 또 무엇보다 제 문체가 맘에 들지 않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해서, 그래요..허허
그리고 제 주제에 감히 구독료를 답니다. 2-30포인트를 왔다갔다 하지만 독자님들에겐 이게 맘에 드실 지 모르겠어요, 구독료를 붙이지 않던 글이다보니.
또 하나 더, 연재텀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최대한 분량을 많이 늘이려고 틈나는대로 쓰긴 쓰지만 요즘 시험기간인 것도 있고 분량을 최대한 늘이려 하다보니 그만큼 더 늦어질 것 같아요. 원래 제 분량은 한글로 2-3 쪽 정도밖에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5-6 쪽으로 늘렸습니다.
그럼 오랜만에 돌아온 섹피였습니다. 제게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 건 참 감사하지만 제가 어떻게 작가님 소리를 듣겠어요, 혹시 저를 부르시고 싶다면 작가님 대신에 섹피라고 불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