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박찬열이랑 사겨?"
"돌았냐?"
"박찬열이 너 좋아하는거 같던데..."
Witty/재치있는
벌써 해가 다 져가는 초저녁.
변백현 집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얘기도 하면서 놀다가- 어느새 박찬열과 나는 집으로 향하고있다.
"야, 너 어디사냐?"
"아... 얼마안돼, 학교에서 가까워."
"데려다줄게, 가자."
"나..나 혼자 갈수있는데!!"
왜, 같이가자. 박찬열이 씩 웃으며 내 손을 끌어잡았다. 어차피 집 안까지 들어갈 거 아니니까... 대충 웃어넘기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쯤으로 들어섰을까, 박찬열이 입을 열었다.
OO아, 나 엄마없다?
충격과도 같은 그 말에 깜짝 놀라 박찬열을 올려다보자,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더니 살짝 웃는다.
왜, 신기해?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기억도 없어. 그나마 남은 사진도 고모가 다 가져갔고.
잠시 벙해졌다. 나와 비슷한 사정인데도 나는 박찬열에게 말할 생각조차 할수없었다. 그런말을 하면 분명,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알수없는 불안감이었다.
오래 안 사이도 아니고, 1년이면 관계가 깨질수도 있는 그런 친구인데...
평소 다른사람의 고민도, 아픔도, 생각해본적 없었기 때문일까, 혼란스럽고 어색했다.
"...이거 변백현도 몰라. 너한테만 가르쳐주는거야."
"..."
"너랑 나랑만 아는거라고."
"..."
가로등이 하나 둘 켜져가는 골목길에서. 박찬열은 그 비밀을 나에게만 말해주었다.
"...나도 없어, 엄마."
그리고 나도.
*
"..."
"..."
"..."
삐익 울려대는 알람시계가 내 귀를 때리고, 동시에 눈이 번쩍.
또 동시에... 박찬열이...
...박찬열이...
"어, 일어났다."
"...뭐,뭐야.뭐야. 뭐야!!! 뭐,뭐야...무...므...무...어...뭐야!!!!!!!!!"
빠른속도로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확 덮어버리고, 그런 내 앞에서 박찬열은 숨 넘어갈듯이 웃고.
우리집은 어떻게 들어온거야! 이불안에서 빽빽 소리를 질렀다. 강도도 아니고.. 이게 뭐야 지금..
"야, 너는 단순하게 비밀번호가 0000이 뭐냐 0000이."
"나가, 나가!!!!"
"아무튼 꼭 비밀번호도 지같은걸로 해놔요."
"나가!!!!!"
"근데 너 원래 밤에 머리감냐? 아직 축축하던데..."
"안나가?!!!!!!"
대충 얼굴을 쓱 닦아내고 이불을 들추자 교복차림으로 장난스레 웃고있는 박찬열이 눈에 들어왔다. 저 미친놈이...
도어락을 산 후로 비밀번호 바꾸는게 너무 귀찮아서 그냥 놔뒀더니... 오늘은 당장 저 비밀번호부터 바꿔야지.
그러게 내가 어제 우리집을 가르쳐주는게 아니었어. 아침부터 소리를 질렀더니 머리가 띵 하게 울려온다.
"우쭈쭈~ 우리애기~ 세수부터 하세요~"
"아 박찬열 진!!!짜 싫어!!!!"
"양치도해야지~ 우쭈쭈!"
"안꺼져? 안꺼져?!!!"
"띠릉데? 차뇨리 안꺼질꽁데? OO이랑 밥도 같이먹고 학교도 같이 갈때까지 안꺼질꽁데에에에?!"
내가 저 미친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잘 처리했다고 소문이 날까.
격한 양치까지 마치고 아직 젖어있는 머리를 탈탈 털며 화장실에서 나오자. 배고프다며 숟가락만 딸랑 챙기곤 밥달라고 찡찡댄다.
이러다 진짜 노이로제 걸릴거같아...
*
"어엉- 지금 OOO이랑 같이 학교가고있어."
"..."
"담임 화났어?"
"..."
"헐. 무서워. 헐. 니가 잘 둘러대. 배쿄나 사랑해엥~ 안뇽~"
...박찬열 니가 그래서 지각을 자주하구나. 밥을 도대체 몇그릇이나 쳐먹는건지... 박찬열때문에 나까지 지각처리.
여전히 태평한 박찬열을 휙 노려봤지만. 못본척 고개를 돌려버린다.
"박찬열 진짜 싫어!!!"
"진짜 싫어?!"
"어!!! 싫어!!!!"
"나는 좋은데!!!"
...저 나쁜새끼...
아무튼 장난기밖에 없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일부러 걸음을 빨리하자, 삐졌냐면서 쫄래쫄래 따라온다.
짜증나는데, 귀엽다. 짜증나긴 하는데...
"앞으론 밥 빨리먹을게."
"그냥 우리집에 오질마."
"맨날 갈려고 했는데..."
"...오기만 해. 죽어."
"하나도 안무서운데?"
아오 박찬열!!!!!
*
"박찬열 넌 또 지각이야?"
"죄송합니다-"
"아무튼 맨날 죄송하다면 다지?"
"아이 선생니임~"
이럴줄 알았어...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교무실로 불려간 우리둘. 변백현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OOO, 넌 전학온지도 얼마안됬으면서 벌써 지각질이야?"
"...죄송합니다."
"박찬열, 올라가봐."
"네? OO이는요?"
"올라가라면 올라가."
박찬열이 어깨에 쭉 힘을 푸는 듯 하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무실을 나간다.
타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쏘아붙이시는 선생님.
"너 강전온거 다 눈감아줬지? 아무말도 안했잖아.
도둑질때문에 여기 온거라며, 요즘 도난사건도 많은데...
근데 지각까지해? 니가 제정신이야?"
"죄송합니다.."
"어쩌다 그런짓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조심해. 고등학생이야 너."
"...네..."
난 여전히 도둑년이구나... 적어도 선생님 눈에는 그렇게 비쳐졌구나.
올라가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교무실 문을 닫고 힘없이 걸음을 떼는데, 내 손을 확 낚아채 큰 보폭으로 복도를 걸어가는 박찬열.
화났어? 내 말에도 대답없이 묵묵.
그거 니 잘못아니야, 찬열아. 달래는 목소리에도 묵묵.
"수업 안할거지."
"응?"
"나도 안해. 따라와."
매점밖 벤치. 수업시간이라 아무도없는 이 곳에 박찬열은 나를 앉히곤 아이를 대하듯 무릎을 굽혀 나와 눈을 맞춘다.
"..."
"어..저..찬열아."
"..."
"그냥 편하게 앉아도 되는데..."
"여기 뽀뽀한다."
"뭐라..."
뭐라는거야, 내 말을 뚝 잘라버리고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는 찬열이.
박찬열. 찬열이. 박찬열. 내 짝지. 이름도 잘생긴애.
W.멜리
3 END |
찬열아사랑해 |